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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내게 오는 자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리라(6월 23일; 요 6:1~29)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06.24|조회수79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내게 오는 자는 하나도 일어버리지 아니하리라

설교본문 : 요한복음 6:1~29(참고, 요한복음 6장, 민수기 13~14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4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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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오늘은 요한복음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이와

    민수기에서는 이스라엘을 함정에 빠뜨린 10명의 정탐꾼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경우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에서는 한 소년이 바친 오병이어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5000명이 배불리 먹고도 12바구니를 남겼다는 것에만 주목합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 기적을 경험한 자들을 예수께서 몹시 실망하셨고,

    그들 역시 모두 예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 왜 그들에게 실망하셨고,

    그들은 왜 예수님을 떠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 오병이어의 기적

 

1. 굶주린 무리를 먹이신 예수님

 

1) 몰려오는 사람들을 피하여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신 예수님(6:1~4)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으로도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동생)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의 서쪽 지역인 가버나움 근처에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때가 마침 유월절 명절이 가까워서

    예수님의 기적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예수께로 모여 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여 갈릴리 바다 동편 지역인

    벳세다 근처 디베랴 바다 지역으로 건너가셨습니다.

 

 2) 그러자 바다를 건너 예수께로 모여 온 사람들(2절)

 

    가버나움에서 바다 건너편까지는 뱃길로 약 6.5km쯤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적을 본 사람들이

    일부는 배를 타고, 일부는 육지로 돌아서 돌아서 왔습니다.

 

    육지로 돌아서 오는 사람들은 그보다 조금 먼 길을 굶주린 채 먼 길을 왔습니다.

 

 3) 빌립과 안드레의 믿음(5~9절)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으로도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동생)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이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에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빌립은 이 사람들에게 떡을 아주 조금씩 나누어 준다고 할지라도

    200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한 소년이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와서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소용이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빌립은 사태는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 상황을 해결할 능력은 갖지 못한 자입니다.

    그저 그 상황을 파악할 뿐입니다.

 

    이에 비하여 안드레는 예수님께 대한 소박한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그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진 소년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4) 오병이어의 기적(10~13절)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더라.

 

    예수께서 안드레가 데려온 소년의 음식에 축사를 하신 후 모든 이들에게 나눠주라 하셨고,

    그 결과는 5,000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를 가득 채울 만큼 엄청난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남자 어른들이란 각 집안의 가장들을 말하는 것이므로

    그들이 데려온 가족까지 하면 그때 모인 사람 전체의 수는 적어도 2만 명이 넘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도 12 바구니를 남긴 것입니다.

 

 

2. 무리를 피하여 혼자 산으로 오르신 예수님

 

 1) 서둘러 사람들을 피하여 홀로 산으로 올라가신 예수님(14~15절)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배불리 먹이고도 12 바구니를 남기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이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그 선지자가 맞다고 말하며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세우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왕으로 세우려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피하여 서둘러서 혼자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2) 예수께서 사람들을 피하신 이유

 

    ➀ 첫째 :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만 세우려 했기 때문

 

       예수께서 사람을 피하여 혼자 산으로 가신 이유는

       예수님은 세상 만민을 구하러 오셨는데

       그들은 단지 유대인의 왕으로만 세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도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해 오셨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국을 세우는 세상 왕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➁ 둘째 : 예수님이 아직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셨으므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아직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시면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게 되는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하니 그에 응하실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3. 자신을 찾는 자들을 도리어 책망하시는 예수님

 

 1) 예수님을 찾고자 하는 무리의 열정(22~25절)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는 무리가 배 한 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 예수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가서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무리는 이틀 동안 적어도 13~20km나 되는 거리를

    배를 타든지 혹은 걸어서 굶주린 채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열심입니다.

    그들이 이튿날 아침에 예수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간 것은

    예수님을 찾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었는지를 나타냅니다.

 

 2) 예수님의 책망 :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찾은 무리들(26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칭찬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온 목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표적을 보고

    이 일을 하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리시기 위해 표적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 표적을 보이신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인지를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는

    그저 예수님을 따라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만 생각했습니다.

 

묵상 : 무리의 열심을 보시고 실망하신 예수님

 

    적어도 이 무리가 이틀 동안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찾으려 한 것을 신앙의 행위로 본다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열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열심을 보시고 실망하셨습니다.

    그들이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주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하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직 나에게 남아 있는 잘못된 것을 치료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다윗처럼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자가 되도록 구하십시오.

 

 

4. 복만 구하고 변화는 싫어하는 무리들

 

1)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당신이 보여줄 표적이 무엇이니이까?(30절)

 

           30. 저희가 다시 예수께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예수님을 찾아서 디베랴에서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가버나움으로 온 무리들은

    불과 이틀 전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어른들만 해도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12 바구니나 남긴 것을 본 자들입니다.

 

    그때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구약성경에서 장차 오시기로 예언된 그 선지자라고 말하기까지 했었고,

    심지어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삼으려고까지 했었습니다(요 6:14~15).

 

    그런데 그들이 지금 불과 이틀 만에 예수께

    자기들이 믿을 수 있도록 표징을 보여 달라고 다시 요구합니다.

 

    특히 30절에서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하는 말은

    “도대체 당신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자신을 가리켜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이냐?”라고 하며

    빈정거리는 말로 예수님을 조롱하기까지 하는 말입니다.

 

 2) 이들이 마음을 바꾼 이유

 

    처음에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에는

    그 능력으로 자기들에게 무엇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니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변화 없이 그저 복만 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의 자리에서, 세상의 기쁨과 즐거움의 자리에서 떠나기 싫은 것입니다.

    자기들은 가만히 있을 테니 복만 달라는 것입니다.

 

 3) 중요한 구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27절)

 

           27. 썩는(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영생하게 하고,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인치신 자’에 해당하는‘에스프라기센’의 원형동사 ‘스프라기조’는‘인(印)을 치다, 도장을 찍다’라는 뜻입니다.

    당시 도장을 찍는 것은 계약서에 동의와 합의를 하는 뜻이 있고

    또 정해진 자 외에는 편지나 문서를 읽지 못하게 하는 뜻이 있는데,

    ‘스프라기조’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도장이 찍힌 문서는 도장을 찍은 자의 권위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라는 뜻은

    예수께서 하시는 모든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권위를 갖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특히 사람을 구원하고 심판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예수께 모두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알게 하려고 여러 기적을 보이셨는데

    그들은 그 많은 기적을 보고도 이분이 누구인지

    관심을 가진 이가 없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2 : 참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1.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1)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27절)

 

            (27절 성경구절 위에)

 

    예수님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➀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게 하는 양식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는 양식은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양식이 우리 육신의 생명을 이어가게 하듯,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의 생명을 이어가게 하여

       주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육의 생명을 위하여 날마다 육의 양식을 먹듯

       영의 생명을 위하여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읽고 묵상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➁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는 양식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는 양식이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양식을 뜻합니다.

       그 양식을 주신 예수께서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시니

       주님을 사랑하며 섬긴 일들 또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 것은 이 세상을 떠날 때 다 없어지지만,

       주님을 사랑하며 섬긴 일들은

       우리가 죽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합니다.

       주께서 심판하실 때 그 일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그에 합당한 상을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2)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건강한 영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는 영의 양식은

    오직 예수께로부터만 얻을 수 있습니다.

 

    엄마 배 속에 있는 아이들이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통해

    생명에 필요한 양식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과 동행하는 자들이 주님과 연결된 그 신령한 탯줄을 통해

    주께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주님과의 신령한 연합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십시오.

 

 3) 하나님의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니라(28~29절)

 

           28. 그러자 그들이 예수께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예수께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시자

    무리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하고 묻습니다.

    이들은 구약의 율법처럼 무엇인가 지켜야 할 율법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사는 것,

    주께 예배하고 경배하며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제부터 모든 은혜와 기쁨과 생명과 복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주시기 때문입니다.

 

 4) 하나도 잃지 아니하리라(38~40절)

 

           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어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뜻을 밝히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아들(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자는 하나도 잃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38~39절).

 

    율법을 다 지킨 자가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고 주께 의지하는 자를 살리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나 이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께 도움을 청하는 자는

    마지막 날이 다시 살아나서 주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5) 영생을 가졌고(54절)

 

           54.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살과 피는 인간 전체를 뜻하는 유대인의 관용적 표현으로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믿음과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거하는 주님과의 신비로운 연합 속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주님과의 신비로운 연합 속에서 살아가는 자는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과 연합되었으므로 이미 영생을 가진 자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주 안에서 하나 된 모든 백성들이

    함께 연합을 이루어 주님의 은총과 기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2. 떠나는 자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

 

    처음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의 떡도 맛보았고,

    말씀으로 각종 병을 치유하시는 것을 보고 감동도 했습니다.

 

 1) 예수님을 떠나는 자들(66절)

 

           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그러나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생명의 떡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말이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영이며,

    자기의 말을 듣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하시자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왔던 자들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납니다.

 

    이제 무리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따르는 자와

    자기의 만족을 위해 따랐다가

    자신의 뜻과 다른 것을 알고 떠난 자들로 나누어집니다.

 

    주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들은 계속 주님을 따르지만

    물질적인 만족을 찾기 위해 왔던 자들은 모두 떠났습니다.

 

 2) 그러나 예수님은 떠나는 무리들을 끝내 붙잡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붙잡기 위해 그 어떤 이벤트도,

    그 어떤 퍼포먼스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적당히 믿는 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 제자들의 고백(67~69절)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그들이 모두 떠나자

    예수님은 남은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으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묵상 :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

 

    이들은 믿음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 주님의 제자로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그 믿음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자기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다른 것이 있어도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훈련시켜 주님의 나라의 큰 일꾼으로 세우셨습니다.

 

 

3 : 믿음이 있어야 보이는 신비한 믿음의 세계

 

1. 가나안 땅을 정탐하려는 이스라엘

 

 1)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 :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로 함(신명기 1:22)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서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지,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지를 알리게 하소서’하기에

 

    바란 광야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가까운 곳입니다.

    드디어 약속의 땅 가까이에 이르렀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때 가나안 땅으로 그냥 진격하여 들어갔다면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나안 땅을 진격하기에 앞서서 그 땅을 정탐하자고 제의합니다(신 1:22).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면 그냥 진격하면 되는데

    굳이 그 땅을 정탐하자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잘 믿지 못하겠다는 뜻입니다.

    혹시 그 땅 백성들이 아주 무서운 사람들이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마지못한 허락(민 13:1~2)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사람들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각 가문 지파 중에서 족장(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백성들이 그 땅을 정탐하자고 모세에게 부탁했고, 모세가 하나님께 이 사실을 아뢰었더니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시고 각 지파의 족장들을 정탐꾼으로 보내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명하시기는 하였습니다만,

    그들이 원하니 마지못해 허락하신 것입니다.

 

 

2. 정탐꾼들의 상반된 보고

 

 1)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 : 아름다운 젖과 꿀이 흐르는 땅(민 13:25~27)

 

           25. 그들은 40일 동안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의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그들이 모세에게 보고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이 바로 그 땅에서 난 과일이니이다.

 

    먼저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이

    참으로 아름다운 땅이고, 과일도 풍성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합니다.

 

    그들은 포도송이 하나를 두 사람이 나무에 꿰어 가져올 만큼

    엄청나게 큰 포도와 석류와 무화과를 가져와서

    사람들에게 그 땅의 아름다움을 소개하였습니다.

 

 2) 엇갈린 보고 : 그 땅을 악평하여 말함(28~30절)

 

           28. 그러나 그 땅의 백성들은 강하고 성읍은 요새처럼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게다가 거기서 거인족의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그리고 그 땅의 남쪽 지방인 네게브에는 아말렉 사람이 거주하고,

                산간 지방에는 헷족과 여부스 족과 아모리 족이,

                지중에 연안과 요단 강변에는 가나안 족이 거주하더이다.

           30. 그때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진정시키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러나 그다음 순간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와는 정반대로 다른 보고를 합니다.

 

 

3. 자기의 믿음대로 보인다

 

1) 믿음의 사람은 그 땅이 아름답게 보이고(26~27절)

 

            (26~27절 성경구절 위에)

 

    같은 곳에 다녀왔음에도 이렇게 다른 보고를 하는 것은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왔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눈에는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그 땅에 견고한 성읍이 있고, 그 백성 중에 거인족 아낙 자손이 있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그들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믿으니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그것은 더 이상 문젯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의 눈에는 그 땅의 아름다움이 가려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2)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그 땅에 사람을 삼키는 땅으로 보인다(30~33절)

 

           30. 그때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진정시키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하고

              (32~33절 성경구절 아래)

 

    그러나 믿음이 없는 나머지 10명의 정탐꾼의 눈에는

    그 땅이 사람을 삼키는 땅으로 보입니다.

 

    그 사람들은 ‘비록 그 땅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만일 그 땅에 들어가자마자 죽는다면

    그 땅이 아름답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두려움으로 그 땅을 보니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 않고

    자기들을 집어삼킬 만한 무섭고 두려운 것들만 보입니다.

    두려움을 갖고 보니 하나님께서 도우시리라는 약속의 말씀도 생각나지 않고

    그저 그 땅에 들어가면 곧 죽을 것 같은 두려움만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1) 하나님의 말씀보다 은밀하게 퍼져나가는 소문(13:32~33, 14:1)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나쁜 소문을 퍼뜨리며)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곳에 사는 사람을 삼키는(사람을 잡아먹는) 이요,

                거기서 본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모두 키가 컸으며),

           33. 거기서 우리가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가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처럼 보였으니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라.”

         14:1. 이 말을 듣고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우리말 개역 성경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보고한 데 이어 10명의 정탐꾼들이

    반대의 보고를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원어의 뜻은 그들이 백성들 틈에 은밀히 숨어들어서

    거짓 소문을 퍼뜨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백성들 앞에서

    그 땅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며 공식적인 보고를 할 때

    10명의 정탐꾼은 뒤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저 말이 헛된 거짓말이라며

    은밀하게 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

 

➠ 그들이 은밀하게 퍼뜨린 거짓 소문

 

    그들은 그 땅이 요새처럼 튼튼한 성벽을 가졌고, 그 백성들도 거인들이었으며,

    그 땅이 지나치게 좋아 많은 나라들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당할만한 땅이니

    그 땅에 들어가면 필경은 전쟁에 모두 죽고 말 사람을 삼키는 땅이라고 보고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틈에 들어가서 그 땅의 사람과 비교하면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며,

    그 땅에 들어가면 우리가 모두 다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이라며

    은밀하게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이때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공식적인 보고를 듣지 않고

    은밀하게 펴져 나가는 거짓 소문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2) 밤새도록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통곡하고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이 거짓된 소문을 더 믿었습니다.

 

    은밀하게 속삭이며 전파되는 그 거짓 소문을 진짜로 믿었습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모두가 죽어 멸망 당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소리를 높여 부르짖었다는 것은 간장이 녹아내리듯

    불타는 심정으로 울부짖으며 절규했다는 뜻입니다.

 

 3) 불평과 원망은 곧바로 하나님께 대한 적대감으로 발전(2~3절)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이 땅으로 끌고 와서) 칼에 맞아 쓰러지게 하려 하는고?

               우리 아내와 자식들이 사로잡히게 될 것이니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밤새 세상이 망한 것처럼 절규하며 울부짖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더니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죽이기 위해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4)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백성들(4절)

 

            4. 그리고는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끼리 지도자 한 사람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

    사람을 삼키는 땅, 자녀들이 칼에 맞아 죽을 땅으로 인도하셨다고 확신하는 순간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땅으로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과거 그들이 나왔던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지금 당장 자기들을 애굽으로 인도할 새로운 지도자를 뽑자고 말합니다.

 

 5) 그들을 말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돌을 던지려고까지(10절)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바로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이 말을 들은 모세와 아론은 곧바로 회중 앞에 엎드리고(5절),

    여호수아와 갈렙은 곧바로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더 이상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말은 백성들의 외침에 묻혔고,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돌을 던지려고까지 했습니다.

 

묵상 : 기독교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만일 교회가 소돔성에 있다면 민주주의로 그 교회가 바르게 운영될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말씀 앞에 복종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훈련하는 사람의 말에

    온 교회가 복종해야 합니다.

 

    ---------------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교회를 이끌 지도자가 이 나라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목사와 당회가 먼저 하나님의 권세 앞에 엎드려 복종할 때 교회의 권위가 바로 설 텐데,

    자기들도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 목사와 당회의 권위만 부르짖는다면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4. 1년이 40년으로 늘어난 광야 생활

 

 1) 내가 너희를 싫어하면 너희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게 될 것이라(민 13:32~34)

 

           32. 그러나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서 엎드러질 것이요,

           33.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수인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쳐서

               그 40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야 내가 너희를 싫어하면 너희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 한 분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숫자가 수백만 명에 이르니,

    그들이 힘을 합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지만 어림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싫어하시면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들은 알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께 저항을 하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 나쁜 소문을 퍼뜨려 백성을 원망하게 한 자들은 그날 재앙으로 죽고(36~37절)

 

           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나쁜 소문을 퍼뜨려서) 온 회중을 선동하여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나쁜 소문을 퍼뜨린)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38.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하나님 편에 선 자는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 네 사람뿐입니다.

    그러므로 수백만 명이 그 숫자의 힘을 믿고

    하나님 편에 선 네 명을 돌을 던져 죽이려 합니다.

 

    숫자로 보면 금방이라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를 비롯한 그 네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배반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정탐한 날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쳐서

    40년을 광야에서 지내며 마지막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방황해야 하고,

    나쁜 소문을 퍼뜨려 백성들을 원망하게 한 그 10명의 정탐꾼들은

    그날 하나님의 재앙으로 죽었습니다.

 

 

결 론 : 생명을 구하는 일에 너무 지체하지 마십시오.

 

 1) 너무 늦은 회개(39~40절)

 

           39. 모세가 여호와께서 하신 이 말씀을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주니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40. 이튿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자,

    그제야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며 슬퍼합니다.

 

    너무 늦은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말씀을 전하시기 전에 모세와 아론이 그들 앞에 엎드렸을 때,

    혹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자기들의 옷까지 찢어가면서 호소했을 때 그 말을 들었더라면

    그들은 그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호소할 때는 듣지 않다가

    하나님께서 최종적인 심판의 말씀을 하시니 그제야 후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2) 하루가 늦은 회개

    ‘하루가 늦은 회개’에 대한 말씀이 히브리서 4:1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것이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누구라도 거기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하는 것이라.” (히브리서 4:1)

 

    여기에서 ‘이르지 못할’에 해당하는 ‘히스테레오’는 ‘하루가 늦다’입니다.

    이것은 본문 민수기 14장의 열두 명의 정탐꾼의 사건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실 때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 데리고 오셨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자들이,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시고 다시 광야로 돌아가라고 명하시자

    이튿날 아침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 앞에 와서 잘못했다고 회개하며

    이제라도 가나안으로 진격하겠다고 했을 때 모세가 한 말이 40~41절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려 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가 대적에게 패하리라.”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가나안에 진격했지만 하루가 늦었습니다.

    어제 했더라면 하나님께 큰 칭찬도 받고 복도 받았겠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이 불평한 것에 대한 판결을 내리시고도 하루가 지났으므로

    그들의 회개도 소용없고, 그들의 믿음의 고백도,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결단도 다 소용없었습니다.

 

    히브리서 4:1의 ‘이르지 못할 자’는 ‘하루가 늦었다’라는 뜻으로

    이제 와서 가나안을 향해 진격하겠다고 한 것에 대하여

    히브리서가 하루가 늦었다는 의미에서 사용한 말입니다.

 

    -------------------

    히브리서는 마지막 때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는 믿지 않은 자들도

    신앙의 일과 주님의 심판에 대한 모든 사실을 알게 될 것이므로

    그제야 비로소 주님 앞에 잘못했노라고 회개하는 자들이 있을 것임을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그날 역시 하루가 늦은 것입니다.

    죽기 전, 혹은 주께서 재림하여 오시기 전에

    내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살아있을 때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묵상 :

 

    회개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너무 지체하지 마십시오.

    내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을 채우는 일에 너무 늦지 마십시오.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신앙의 시간이 항상 ‘오늘’, 혹은 ‘지금’이라고 말합니다.

    내일은 고사하고 단 한 시간 후도 나의 시간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시간을 항상 하나님과 함께하며 주님 오시는 날을 기다리는 성도가 됩시다.

 

 

주님

 

예수님의 말씀이 참 진리의 말씀인 줄 믿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이미 영생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신실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과의 신비로운 연합에 참여하여

이 땅에서부터 이미 영생을 소유한 자답게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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