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너는 누구냐’입니다.
설교본문 : 요한복음 15:1~17
참고 : 요한복음 14장, 룻기 2:16~4:22
살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4년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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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룻기에서 룻과 나오미와 보아스에 대한 말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제 1 부 : 기업 무를 자(고엘)의 사명을 감당한 자에게 주시는 복
1. 나오미에게 열린 새로운 소망
1) 그의 며느리 룻으로부터 열린 소망(룻 2:17~19)
17. 이렇게 하여 룻이 저녁까지 이삭을 줍고
주운 이삭을 떨어보니 보리가 한 에바(약 22ℓ)쯤 되는지라.
18. 룻이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그 주운 것을 시어머니에게 보이고,
또 룻이 배불리 먹고 남은 음식도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 시어머니가 룻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에서 이삭을 주웠느냐?
어디에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삭을 주운 룻은
주운 이삭을 떨어보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었습니다.
한 에바는 오늘날 20ℓ짜리 쌀 한 포대보다 조금 넘는 정도로
여자가 하루 동안 주운 이삭치고는 상당히 많은 분량입니다.
나오미는 룻이 주워 온 보리를 보며 말을 들어보기도 전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하고 말합니다.
모압 땅에서 고향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나오미는 미래의 소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가리켜 ‘마라(씀, 괴로움)’라고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오미에게
그의 며느리 룻으로 말미암아 소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위하여 정말 열심히 이삭을 주워 온 며느리 룻을 보며
나오미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2) 그의 남편의 친족인 보아스로부터 열린 소망
그러나 나오미는 그의 며느리를 통해 더욱 놀라운 소식을 듣습니다.
룻이 자기를 도와준 자의 이름이 ‘보아스’라고 알려주자
나오미는 그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가까운 친척으로
그들의 ‘기업 무를 자’라는 것을 기억해 냅니다.
기업 무를 자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자의 가까운 친척으로,
그의 잃어버린 것을 회복해 낼 책임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지난주 설교문 참조).
“그가 먼저 세상을 뜬 우리 식구들에게도 자비를 베풀더니,
살아있는 우리에게도 한결같이 친절을 베푸는구나.”
2. 나오미가 룻에게 보아스에게 청혼하도록 조언함
이 부분은 룻기 전체의 흐름 중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장면입니다.
모든 희망을 잃은 나오미를 위하여 자기의 인생 전체를 바치며 희생한 며느리 룻에게
하나님의 복이 찾아오는 전환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룻에게 한 나오미의 이 조언은
룻을 향한 하나님의 복의 초대장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1) 나오미의 조언(룻 3:1~4)
1.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 나오미가 며느리인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네가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을 누리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일하고 있는 여종들의 주인인 보아스는 우리의 가까운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부를 것이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고운 옷으로 몸을 단장한 후에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몸을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그가 잠자리에 들거든) 그가 눕는 곳을 잘 보아두었다가
다가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러면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일러 줄 것이라” 하니
룻이 밀과 보리의 추수가 다 마치기까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아스의 밭에 나가 이삭을 줍는 일을 하자,
룻의 헌신에 감동한 나오미는 어느 날 며느리 룻을 불러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네가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네가 복을 누리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1절).
나오미는 보아스가 룻의 죽은 남편의 가까운 친족으로
기업 무를 자(고엘)의 자격을 가진 자이니,
룻을 보아스와 결혼시키기로 마음을 먹고 이 일에 대해 조언합니다.
2) 고운 옷으로 몸을 단장하고
나오미는 룻에게 목욕을 하고 향유를 바른 후에,
과부가 입는 칙칙한 옷을 벗고 고운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말합니다.
온몸을 단장하여 젊은 여자의 매력을 마음껏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3)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리고는 보아스가 타작마당에서 추수를 마친 후에 곡식더미 곁에서 잠이 들면
살며시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워있으라고 말합니다.
여인이 남자의 발치 이불을 들치고 그 안에 들어가 남자와 함께 잠을 자는 것은
“내 몸은 당신 것이니 당신 마음대로 하십시오”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보통의 경우라면 대단히 위험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보아스의 인품을 믿고
룻에게 여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하고 과감한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합니다.
3. 룻의 프로포즈와 보아스의 응답
1) 나오미의 조언대로 보아스의 발치 이불에 누운 룻(룻 3:7)
7. 보아스가 먹고 마신 후에 마음이 즐거워져서 곡식더미 곁으로 가서 눕는지라.
룻은 살그머니 다가가서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➀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행하는 룻
룻은 나오미의 조언대로 목욕하고 온몸에 향유를 바른 후에
과부의 옷을 벗고 화려하고 고운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는 타작마당 근처에 몰래 잠입하여 보아스의 동태를 살핀 후에,
그가 일을 마치고 곡식더미 곁에서 겉옷만을 덮은 채 잠이 들자,
살며시 그 겉옷의 다리 부분을 들치고 그 안에 들어가 보아스와 함께 눕습니다.
➁ 룻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
보아스는 룻의 시아버지인 엘리멜렉과 비슷한 나이이니 아버지 같은 사람입니다.
더구나 밤중에 보아스가 잠을 자는 현장에 와 보니
일하다가 거의 알몸으로 겉옷만 덮고 자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그 발치에 있는 겉옷을 들고
거기에 함께 누워있는 것은 젊은 여자로서 참으로 하기 힘든 일입니다.
➂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한 인애와 자비의 행동
그러나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자기의 죽은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해
시아버지인 유다를 유혹했던 것처럼,
룻은 한밤중에 잠을 자는 남자 보아스의 겉옷을 들치고
그와 함께 눕는 이 과감하고도 위험한 행동을 합니다.
그것은 죽은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한 인애와 자비의 행동이었습니다.
자칫하면 다말이 그랬던 것처럼
룻 역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후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말이 그랬던 것처럼 룻 역시 목숨을 걸고
죽은 남편인 말론의 대를 잇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2) 룻의 청혼(8~9절)
8. 한밤중이 되었을 때에 보아스가 한기를 느껴 으스스 떨면서 돌아눕다가 본즉
웬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
9.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룻이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니이다. 당신의 옷자락을 펴서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우리의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잠을 자다 한기를 느껴 몸을 뒤척이던 보아스는
자기의 발치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깹니다.
“네가 누구냐?”하고 물으니
룻은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니이다. 당신의 옷자락을 펴서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하고 말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당신의 여종”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원어에는 “당신의 여인 룻이니이다”
혹은 “당신의 아내가 될 여자 룻이니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옷자락을 펴서 나를 덮어달라는 것은
“내가 당신의 보호 아래 들어가기를 원한다”는 뜻으로,
여자가 남자에게 청혼할 때 하는 말입니다.
룻은 보아스에게 프로포즈를 한 것입니다.
3) 보아스의 칭찬 :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10절)
10. 보아스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부자이든 가난하든 간에 젊은 남자를 따라감 직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보아스는 룻을 크게 칭찬합니다.
젊은 여자가 아버지 벌 되는 남자에게 청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자칫하면 아주 음탕한 여자로 낙인찍혀
마을 사람들에게 공개 처형 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을
오직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해 하고 있으니
보아스가 룻의 이 일을 ‘인애와 자비의 일’로 여기고 크게 칭찬하는 것입니다.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이것은 룻이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삭을 주우며 시어머니 나오미를 섬긴 일보다
지금 하는 이 일이 더 인애가 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
“나보다 옳도다”라고 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창 38:26 큐티 참조).
4) 내가 네 말대로 너에게 다 행하리라(11절)
11.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네가 요구하는 대로) 너에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이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보아스는 룻이 요구하는 대로 자신이 다 행하리라고 말합니다.
기업 무를 자(고엘)의 책임을 모두 다 감당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룻과 결혼할 것이고, 룻과 결혼하여 낳은 첫 번째 아들은
자기 아들이 아니라 룻의 죽은 남편의 아들이 될 것이며,
따라서 자기의 재산 중에 많은 부분이 그 첫 번째 아들에게로 갈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보아스의 이 말로 모든 희망을 다 잃었던 나오미에게
태양처럼 밝은 희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4. 나오미의 믿음
1) 내 딸아, 어찌 되었느냐(룻 3:16)
16. 룻이 시어머니에게로 돌아오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어찌 되었느냐?”
룻이 보아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룻이 집으로 돌아가자 밤새 기다리고 있던 나오미가 룻에게 묻습니다.
“내 딸아, 어찌 되었느냐?”
룻이 어떻게 되었을지, 혹시 핀잔을 듣고 쫓겨나지는 않았을지,
보아스가 룻을 따뜻하게 맞이했을지 걱정이 돼서 밤을 꼬박 새우며 기다리다
룻을 보자마자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
2) 일의 결과를 알기까지 너는 가만히 있으라 : 진인사대천명(18절)
18.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너는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결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룻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나오미는 룻에게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너는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 했으니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실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입니다.
룻이 창피함을 무릅쓰고
한밤중에 아버지 벌 되는 보아스의 발치 이불까지 들춰가며 함께 있었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찌 처리하실지 지켜볼 뿐입니다.
3) 그 사람이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결코 쉬지 아니하리라
보아스의 성품을 잘 아는 나오미는
그가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결코 쉬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나오미와 룻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입니까?
룻과 보아스의 결혼이나, 죽은 남편의 대를 잇게 하는 일 중에서
룻과 나오미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보아스가 하는 일을 지켜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 일을 완료하기까지 절대 쉬지 않으리라는 것,
이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입니다.
● 묵상 : 우리를 위해서도 주께서 결코 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주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를 위해 결코 쉬지 않으십니다.
5.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이함
1) 보아스와 룻의 결혼(룻 4:13)
13. 이렇게 해서 보아스는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잉태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성문 앞에서 장로들과 백성들에게 자신이 기업 무를 자(고엘)의 책임을
모두 감당하겠노라고 밝힌 보아스는 곧바로 룻과 결혼합니다.
2)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 노년의 봉양자 오벳(14~15절)
14. 여자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는 며느리, 일곱 아들보다 더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룻이 아들을 낳자, 이웃 여자들이 이 일을 더 좋아하며 기뻐합니다.
여자들은 이 아이가 나오미의 생명을 회복한 자라고 말합니다.
모든 희망을 잃은 나오미에게 생명의 활력을 준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큰 슬픔에 빠진 나오미에게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을 갖게 한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4)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안고 그 아이의 양육자가 되니(16~17절)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안고 그 아이의 양육자가 되니
17. 이웃 여자들이 그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하며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룻은 아이가 젖을 떼자 나오미의 품에 안겨 줍니다.
나오미는 그 아이를 자신이 친히 양육합니다.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이지만,
기업 무를 자의 제도에 따라 나오미의 손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가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입니다.
6. 룻기에 담긴 메시지
1) 모든 복은 선택의 결과
모든 복은 선택의 결과입니다.
세상의 기쁨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떠난 오르바는 세상을 얻은 대신 영생을 잃었고,
하나님을 택하는 대신 세상을 포기한 룻은
영생을 얻고 그가 버린 세상도 함께 얻었습니다.
• 완벽한 절망의 상황임에도 하나님을 택한 룻
완벽한 절망의 상황임에도 하나님을 선택한 룻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택하는 자는 잠시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그 어려움 후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2) 하나님은 나의 오늘로 나의 내일을 만드신다.
하나님은 나의 오늘로 나의 내일을 만드십니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갈 때는 완전한 절망이었지만,
하루하루 주님의 뜻대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섬기는 삶을 살자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과 섬김의 날들을 지켜보시고 그에게 큰 기쁨을 주셨습니다.
• 계속 헌신하는 룻에게 보아스를 보내신 하나님
시어머니 나오미를 극진히 섬기는 룻에게
하나님께서 룻과 나오미에게 복을 전달할 보아스를 보내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됩시다.
그러면 내가 오늘 한 그 일로 하나님께서 나의 복된 내일을 만드십니다.
• 복된 내일이 계속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룻이 날마다 헌신하며 신실하게 살아가자
하나님께서 그의 오늘로 복된 내일을 만드셨고,
그 복된 내일이 계속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가문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3) 기업 무를 자(고엘)의 책임을 감당한 룻과 보아스에게 내려진 복과 은혜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기업 무를 자(고엘)의 책임을 가진 자였습니다.
룻이 자기에게 맡겨진 고엘의 책임을 감당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또 다른 기업 무를 자(고엘)의 사명을 가진 자를 붙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룻과 보아스와의 만남은 고엘과 고엘과의 만남입니다.
이 두 자비의 사람, 두 은혜의 사람이 만나 오벳이라는 기적을 이룹니다.
4)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업 무를 자(고엘)로 오신 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업 무를 자로 오셨습니다.
보아스가 나오미와 룻에게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감당하여
그 두 사람이 절망의 자리에서 기쁨을 얻게 된 것처럼,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죄의 책임을 대신 감당하심으로
우리가 영생의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기업 무를 자(고엘)이십니다.
제 2 부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우리의 기업 무를 자, 고엘로 오신 예수께서
가장 중요한 일인 십자가를 앞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곧 떠난다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며 근심합니다.
그러자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말씀하시면서,
이 일은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일이지 근심하거나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1. 예수께서 떠나시는 목적(요 14:1~3)
1) 주께서 예비하실 거할 곳과 처소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후로,
십자가에 달리시기 불과 며칠 전(또는 잡히시기 전)에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장차 그들이 영원히 거할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처소’에 해당하는‘토포스’는 ‘머물러 있는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고,
‘거할 곳’에 해당하는 ‘모나이’는 ‘집, 저택(맨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와 함께 머물러 있을 장소인 하늘의 집, 하늘의 저택을 마련하기 위해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우리가 영원히 머물 처소인 하늘의 집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십자가는 또한 주께서 마련하신 처소인 하늘의 집으로
우리를 영접하시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허물과 죄로 가득하여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자격이 전혀 없는 자인 우리가
주께서 십자가를 지셔서 그 죄를 용서받고 거룩한 영생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 14:1)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마음이라고 번역된 ‘카르디아’는 ‘심장, 목숨’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삶과 죽음의 문제로 인하여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집이 있고,
그 집에는 우리가 거할 곳이 많으니 염려하지도 걱정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➀ 주님의 십자가로 죄와 허물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으므로
➁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으므로
2.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요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 내가 곧 길이요
‘내가 곧 길이요’ 이 말씀은
오직 예수님만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만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이외에 다른 어떤 길도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예수님도 믿고, 다른 신(神)도 겸하여 섬기는 혼합주의자들도
역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직 다른 신도 겸하여 섬기는 혼합주의가 아니라,
예수님 한 분만을 믿고 섬기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진리요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만,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할 진짜 참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구원할 모든 것이 주께서 주신 그 복음의 말씀에 다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내리신 완전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이 외에 또 다른 말씀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꿈으로 보았다거나
환상이나 어떤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믿지 마십시오.
(요셉처럼 때로 꿈이나 환상으로 주께서 말씀을 주기도 하십니다만,
그런 경우에도 반드시 말씀에 합당한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혹 그가 어떤 기적을 행하거나
당신의 과거를 신비하게 맞춘다고 하더라도 믿지 마십시오.
그 어떤 사람도 주께서 주신 말씀 이외의 것을 전하면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입니다.
3) 생명이니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마치 태아가 탯줄을 통해 어머니로부터 그 생명을 공급받는 것처럼
주님과 우리 사이에 이어진 생명줄을 통해 주님의 생명을 공급받아서
우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나라로 가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의 길을 걸으며(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되며)
하나님 나라로 가는 완벽한 말씀인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는 자에게
이 생명줄이 주님과 연결되어 주께서 주시는 이 영원한 생명이 공급됩니다.
➠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할 힘과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며,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천국에까지 인도하시는 진리의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서의 그 영광스러운 생명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시는 영원한 생명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 섬기는 자가 되십시오.
3.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
1)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요 14:16, 18)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제 곧 그들 곁을 떠나신다고 하니 걱정이 태산입니다.
지난 3년여 동안 주님과 떨어져서 지낸 적이 없었고,
주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그들은 항상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이제 곧 죽으셔서
그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혜사(保惠師)는 ‘우리를 보호하시는 자,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자,
우리를 인도하시는 자’라는 뜻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를 결코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주께서는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십니다.
2) 그는 진리의 영이라(17절)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리라).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너희가 알게 되리라).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진리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권능을 주셔서(12~14절)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도우십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이제 막 성령을 모셔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성령을 구하고 또 구해야 합니다.
3) 성령을 통한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연합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도
보이지 않고 우리의 감각으로 경험되지도 않는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신비로운 연합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단지 주님의 성령을 우리 안에 모시는 일로 이루어집니다.
4.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요, 너희는 가지라
예수님은 예수님과 하나님과 우리를
포도나무와 농부와 가지로 각각 비유하셨습니다.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 15:1, 4)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4. 내 안에 거하라(내 안에 머물러 있으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예수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사람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예수께서 맡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입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양분을 받아서 그 생명을 이어가고 열매도 맺습니다.
가지는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결단코 생명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나무가 양분을 주어야만 생명을 이어갑니다.
2) 내 아버지는 농부요
예수님은 하나님을 해마다 포도원에서 가지치기하는 농부에 비유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농부로 비유하신 것은
어떤 가지를 잘라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포도나무는 가지들이 많아 그대로 두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으므로
열매 맺는 가지는 더 잘 맺도록 가지를 잘 보호하고
열매 맺지 않거나 병든 자기는 잘라버리는 가지치기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있는 사람 중
주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가진 자는 지키시고 보호하시지만
주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없는 자는 가지치기하듯 그렇게 잘라버리십니다.
3)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5, 6절)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이니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학교에도 가고 직장에도 가니 무엇인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일들은 장차 심판을 받을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힘과 능력이 되는 일들은
오직 포도나무이신 주께 붙어 있어야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주께 붙어 있지 않으면
마치 나무에서 잘라진 가지와 같이 점점 말라지게 될 것입니다.
영의 생명이 점점 죽어간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생명도 양식을 먹지 않으면 머지않아 죽게 되는 것처럼,
영의 생명도 주께로부터 영의 생명을 계속 공급받지 않으면 결국 죽게 됩니다.
그러면 마른 가지들을 모아 불에 사르는 것처럼,
영이 죽은 자들을 모아 영원한 불 못인 지옥에 던져 넣는 것입니다.
결 론 : 예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요 15:4~8)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이 모든 일을 주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나무를 떠난 가지를 생각할 수 없듯
예수님을 떠난 그리스도인 역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신앙은 행위의 문제(Doing)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Being)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너는 누구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을 위해 무엇을 하기를 원하기보다
먼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기를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 행위의 문제와 존재의 문제의 차이
가령 내 마음은 온통 죄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교회에 나와 거룩한 척 예배에 참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세상의 돈과 권세만 가득했으나
그들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거룩한 자처럼 보였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는 아주 거룩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위와 존재의 차이입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나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존재의 변화 : 거듭남, 새로운 피조물
내가 하나님 보시게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 그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함께하시는 것,
그래서 내가 이미 영생을 소유한 자가 되었고,
내가 이 땅에서부터 이미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것입니다.
이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3) 이것이 바로 주께서 말씀하시는 열매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주께서 말씀하시는 열매입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을 즐거워하며 사랑하는 것이 열매입니다.
이 열매를 가진 자들은 주를 기뻐하며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이런 열매를 가진 자들은 하루라도 주님과 사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이런 일에서 떠나지 않고 항상 이런 은혜 속에 사는 자,
그들이 바로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기업 무를 자(고엘)의
책임을 감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주와 영원히 함께 거할 처소인
하늘의 거할 곳, 하늘 집과 저택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께 경배하며 찬양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도 보아스나 룻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의 책임을 감당하며 사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가치관의 혼란은 물론
신앙의 길에서조차 무질서와 혼란이 가득한 때에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그 길을 바르게 걷는
신실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참과 거짓, 진리와 멸망의 길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그 길을 향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