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주님의 영광을 함께 누릴 교회와 성도들
설교본문 : 요한복음 17:1~26(참고, 신명기 3:12~4:14)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4년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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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이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해
모세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을 신명기 말씀으로 살펴보고,
이어서 예수께서 붙잡히시기 전에 하셨던
그의 제자들과 교회를 위한 기도를 요한복음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제 1 부 : 모세의 기도를 거절하신 하나님
1. 형제의 곤란함을 이해하는 사람들
1)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 주어진 전제조건(신 3:18~20)
18. 그때에 내가 이 땅을 받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너희의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요단강을 건너가되
19. 다만 너희에게 가축이 많은 줄 내가 아노니,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내가 너희에게 준 성읍에 머무르게 하라.
20.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처럼 너희 형제에게도 편히 쉴 땅을 주시리니
그들도 요단강 저편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얻어
기업을 삼기에 이르거든 너희는 각기 내가 준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하셨고
이스라엘이 요단강 동쪽에서 아직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가축이 많았던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목초지가 좋은 요단강 동편 땅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이들에게 한 가지 조건이 붙였습니다.
그들은 아직 정복하지 않은 요단강 서편 땅인 가나안을 정복할 때
선봉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이 가나안 땅에 무사히 안식하게 될 때
비로소 자기의 기업에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2) 다른 지파의 상황을 이해하고 서로 양보한 이스라엘
아직 요단강 서편의 가나안 땅을 단 한 평도 정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르우벳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가 요단 동편의 땅을 먼저 분배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아홉 지파 반의 사람들이 그들의 처지를 이해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파보다 이들에게 가축이 더 많았으므로,
땅이 비옥하여 목초지도 풍부한 이곳을 그들에게 양보한 것입니다.
또한 요단강 동편의 땅을 먼저 분배받은 두 지파 반도
아직 분배받지 못한 나머지 지파의 상황을 이해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요단강 서쪽 땅을 얻기 위한 전쟁에 선봉에 서기로 약속을 합니다.
이렇게 다른 지파의 상황을 이해하고 서로 양보함으로써
자칫 분열될 수 있는 위기를 이겨냅니다.
➠ 먼저 땅을 받은 자들이 가진 책임
두 지파 반이 다른 지파에 비하여 땅을 먼저 차지한 것을
오늘날에 비추어 말하면,
다른 사람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 땅이나 집을 더 많이 가진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다른 형제들을 위해 요단강 서편인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선봉에 서서 형제들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자로서의
책임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묵상 : 이처럼 공동체를 위하여 자기의 것을 양보할 줄 아는 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자들입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그 밖에 어떤 공동체이든 간에
그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자신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것을 양보한 자들을 주님은 크게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믿음 있는 자의 마땅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큰 복을 위하여
세상의 것을 양보한 자로 여김 받게 될 것입니다.
특히 교회가 건강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되게 하기 위해
물질을 사용하고 수고의 땀을 흘리는 자들을 주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교회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모세의 기도 : 자기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주실 것을 간구
1)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 :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반역 사건(신 3:23~26)
23. “그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의 행하신 일,
곧 주의 크신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강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하였으나
26.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셔서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이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께 반역한 후
광야로 되돌아가 38년 동안 방황하는 삶을 마친 후에
다시 가데스 바네아에 돌아온 때에 일어난 사건 때문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다시 물이 없는 것을 인하여 모세와 아론에게
“차라리 그때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을 때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원망하자
모세와 아론이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위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모세가 회중을 보자 갑자기 크게 화가 나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지팡이로 바위에 두 번 내리쳐서 물을 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하시며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가나안 입성 금지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민수기 20:2~13).
2) 모세의 기도 : 하나님의 능력이 충분히 나타났사오니...(24~25절)
(24~25절 성경구절 위에)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아모리 족과 바산 왕국을 진멸하고
그 성읍들을 모두 점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습니다.
그 성읍들의 성벽이 모두 돌로 된 것으로 9m가 넘는 데다
그 두께도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두 족속이 모두 거인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훈련되지 않은 오합지졸이고,
상대는 모두 훈련된 정예의 군사들입니다.
이것은 마을 농부들이
최고의 특수부대원들이 지키는 요새를 정복하겠다고 나선 것이나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나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은 거의 손실 없이 완벽하게 진멸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것으로 충분하게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졌으니,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던 소위 ‘므리바 물 사건’(민수기 20:2~13)을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한 것입니다.
3. 왜 모세의 기도를 끝내 거절하셨나?
1) 모세의 기도를 일언지하에 단호하게 거절하신 하나님(신 3:26)
(26절 성경구절 위에)
모세의 기도는 그곳에서 살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단지 그 땅을 밟고 그 아름다운 곳을 볼 수 있게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거절하시고,
다시는 이 일로 기도하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야말로 단호한 거절입니다.
2) 모세의 기도를 거절하신 이유 :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했으므로
모세에게 내려진 죄목은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올려드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38년의 광야에서의 방랑생활을 마치고,
이스라엘이 오합지졸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이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위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여
바위가 터지게 하는 극적인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보이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내리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보다 모세 개인의 권세를 더 부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된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벌을 내리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권세를 보이고자 하신 것입니다.
● 묵상 :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30)
내가 영광을 받을수록 하나님께로 올라갈 영광이 훼손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4. 카리스마의 일상화를 위하여
1) 조용히 말씀에 순종하며 권력을 여호수아에게 이양하는 모세(신 3:27~28)
27. 너는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보라. 네가 이 요단강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네 직분을 맡겨서)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힘과 용기를 주어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로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결정된 것을 안 모세는
이 일로 다시는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될
여호수아를 훈련하는 일에 전념하고,
그때부터 신명기의 말씀을 남겨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합니다.
‘카리스마의 일상화’,
이것은 사람이 바뀌어도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섬기는 신령한 질서가
그 공동체 안에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2)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도력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모든 능력과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그 공동체 내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신실한 믿음을 가졌다면,
지도자가 누구이든, 사람이 얼마나 바뀌든 상관없이
그 공동체의 신앙의 질서는 변함없이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만일 자기의 영광과 권세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가 사라지고 난 후에 그 공동체는 급격하게 몰락하고 말 것입니다.
연개소문이 죽은 후 고구려가 망한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3) 카리스마의 일상화 : 사람이 달라져도 영적 지도력은 변함없이 흘러가는 것
훌륭한 지도자는 자신이 그 공동체를 떠나도
변함없이 그 공동체의 영적 질서가 흘러가도록 훈련하는 자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성도들로 하여금 자기를 주목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을 주목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내가 주목받을수록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영광이 훼손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 묵상 :
당신이 속한 교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가 누구입니까?
만일 주목 받는 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사람이라면
가령 어떤 목사나 당회나 어떤 조직이 특별한 능력의 종처럼 특별하게 주목받고 있다면
그 교회는 이미 심각한 병에 걸린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5.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1)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들이 사는 땅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 가나안은 사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닙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가 조금만 오지 않아도 사막이 되는 건조한 땅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규례와 법도를 잘 지키며 하나님을 섬기며 살면
그 광야와 같은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됩니다.
그러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하나님의 사랑받는 복된 백성들이 사는 땅이라는 뜻입니다.
2) 규례와 법도는 내가 사는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게 합니다.
당신의 땅과 집이 당신의 이름으로 되어 있을지라도 그 땅의 원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게 하시고,
또 저주의 땅이 되게도 하십니다.
처음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자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땅도 함께 저주받았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마찬가지로 그 땅에 사는 자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으면
그 땅도 함께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가 되면
당신이 거하는 땅도 함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것입니다.
● 묵상 :
당신이 변하면 땅도 함께 변합니다.
그러므로 주변 환경을 변화시켜 주실 것을 구하기보다
당신 자신이 먼저 변하려 하십시오.
7.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이루어야 할 나라 : 큰 나라(신 4:6~8)
6.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열국(여러 민족들)이
너희가 지혜와 지식을 가진 (슬기로운) 백성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위대한) 나라 백성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슬기로운) 백성이로다’하고 말할 것이라.
7.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이
그 신의 가까이함을 얻은 나라가 또 어디에 있느냐?
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공의로운 그 규례와 법도를 가진 큰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
1) 큰 나라는 부유한 강대국이 아니라 ➠ 하나님을 모신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이
그 신의 가까이함을 얻은 나라가 또 어디에 있느냐?(7~8절)
여기에서 모세가 말하는 큰 나라는
단순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강대국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계셔주시는
하나님을 모신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을 모신 나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규례와 법도를 가진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2) 진정한 큰 나라는 ➠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나라
하지만 이 세상 역사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모세가 언급한 대로의 큰 나라는 볼 수 없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탐욕을 부려 나라를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와 법도로 다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요시야 왕처럼 어쩌다 그런 왕이 나왔더라도
죄에 오염된 백성들이 왕의 선한 다스림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말하는 큰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에서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의로 그의 백성을 다스리시는 선한 왕이십니다.
그리고 그를 왕으로 믿고 섬기는 주님의 백성들 또한
성령으로 인도를 받는 선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큰 나라의 백성들이 됩니다.
➠ 어떤 나라를 큰 나라로 볼 것인가 : 이스라엘 역사의 두 축
군사력과 경제가 튼튼한 나라를 큰 나라로 볼 것인가,
하나님을 그 중심에 모신 공의로운 규례와 법도를 가진 나라를 큰 나라로 볼 것인가,
이 두 가지 역사 인식이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역사의 두 축입니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지하는 자들은 이 일을 위해 주변 나라와의 외교를 위하여 그 나라의 우상을 받아들이고,
주로 왕과 귀족들이 이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에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그 일이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외교를 위해 우상숭배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거세게 저항합니다.
이들이 바로 선지자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내 선지자들을 통해 전하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에 각각 멸망합니다.
제 2 부 : 받았고 알았고 믿었고 지키었다
모세는 가나안 땅 문턱에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더 크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지금 살펴볼 요한복음 17장은
예수께서 붙잡히시기 전에 제자들과 교회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에는 예수께서 지시는 십자가가
우리에게 어떤 이미가 있는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예수께 사람들을 맡기셨습니다
➠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사람을 맡기셨습니다(요 17:1~2)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성부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을
예수께 맡기셨다는 것으로부터 기도를 시작합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 일로 인하여
세상 만민을 구원하는 모든 일을 예수께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불리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예수께 세상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가진 자는 구원을 받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2. 영생은 예수님을 아는 것(요 17:3)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단순히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고린도후서 5:17).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3절)
여기에서 ‘안다’는 말은 예수님과 계속해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영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에게는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이 그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과 계속해서 관계를 맺는 삶을 살아야만 그 영원한 생명이 유지됩니다.
아들과의 단절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3. 주었고 받았고 알았고 믿었고 지키었다(요 17:6~8)
6. 이 세상 사람 중에서 택하셔서(뽑으셔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6절과 8절은 제자들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되는 과정을 다섯 개의 동사로 표현합니다.
➀ 예수께서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고(6, 8절)
➁ 그가 전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고(8절)
➂ 그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알았고)(7절)
➃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었으며(8절)
➄ 그 말씀을 지켰습니다(6절)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그 말씀대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그 안에 살려 힘썼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증거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과 같이
받았고, 알았고, 믿었고, 그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그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는 그 능력의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 묵상 :
우리는 이 말씀을 세상에 증거하여 그들도 받고, 알고, 믿고, 지켜서
그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하십시오.
주께서 기회를 주실 때마다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십시오.
제 3 부 : 제자들과 교회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
1.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 주시기를
1) 주의 백성들이 악에 빠지지 않도록 구하시는 예수님(요 17:11, 15)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보호해 주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주님은 이 땅에 남아 있는 그의 백성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그들의 믿음과 거룩함을 보전하게 해 주실 것을 간구하십니다.
우리가 진리의 영역 안에 머물러 있으면
악한 영은 결단코 우리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악한 영이 우리에게 세상의 가치관을 집어넣어서
우리의 영을 오염시켜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런 악한 영의 유혹과 핍박에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2) 핍박과 박해로부터 보전해 주시기를(11, 14절)
(11절 성경구절 위에)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더라도
이에 굴복하지 않고 주님의 백성으로서의 신실함을 잃지 않게
그들을 보전하여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시련과 핍박 속에 있을지라도
그에 굴하지 않고 믿음을 바로 지킬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2. 거룩함을 위한 기도 :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요 17:17)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 그의 제자들도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공간, 하나님의 질서,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그 영역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이미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백성, 천국의 백성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이미 하나님의 백성,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들이 진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그들은 하나님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3. 기쁨을 위한 기도 : 그들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요 17:13)
13. 이제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백성답게 신령하고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를 속박하고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께서 가지신 신령하고 참된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 것과 같지 않습니다.
주께서 주시는 기쁨은 부족함이 없는 충만한 기쁨이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기쁨입니다.
우리에게 이 기쁨을 주시기 위해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4. 하나 되게 하옵소서
1) 공동체로서의 교회(요 17:11, 22)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2.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주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시므로
각각 다른 위치에 계시지만 하나가 되신 것처럼
주님을 믿는 그의 백성들도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하나하나 개별적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공동체로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의 모임을 사도신경에서는 ‘거룩한 공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인정하신 신령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들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들로서
세상을 향하여 사명을 가진,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
2)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교회(18절)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주님은 아버지께서 주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그의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다고 기도합니다.
아버지께서 주님께 아버지의 모든 권한을 주시고
세상 사람들을 구하도록 이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주께서도 그의 제자들을
주님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주께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 사명과 직책을 맡겨 보내신
주님의 일꾼들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5.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한 기도
1) 교회를 위한 기도 : 그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 17:20)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주님의 제자들)만 위한 것이 아니요,
또 그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예수님은 제자들뿐 아니라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제자들과 동일한 복을 내려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제자들의 말을 듣고 주님을 믿는 자들이란
신약 시대의 예수님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이로써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는
이제부터는 더 이상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을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2) 주 안에서의 하나 :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21절)
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아들이 있고 아들 안에 아버지가 있는 것 같이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있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있는 것과 같이)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➀ 이것은 교회의 하나 됨, 교회의 일치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교회는 하나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교파가 감리교이든 장로교이든 예수님을 믿는 교회는 모두 하나입니다.
모두가 다 교회의 몸 되신 예수께 붙어 있는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기도하신 바와 같이 교회는
서로 분열되지 말고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➁ 그러나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21절)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주님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 우상숭배를 하거나 죄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오직 주님만을 믿고 섬기는 신령한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6. 교회에 주시는 영광
1) 완전하게 된 상태에서의 하나 :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요 17:23)
23. 곧 내가 이 사람들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 사람들이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은”
이 말씀은 성도들 하나하나가
그 믿음과 의(義)에서 완전하게 완성이 된 상태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도들 각자가 주님 안에서 거듭난 자가 되어,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신령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완전한 주님의 백성이 된 상태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과 서로 연결되어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렇게 주님과 연결된 상태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세상 사람들처럼 죄와 악으로의 하나가 되는 길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힘 있는 자가 자기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도
역시 막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누군가 힘 있는 자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성도들이 각자 주님과 연결된 상태에서 전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2) 아버지께서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알게 하려고(23절)
예수께서 이렇게 주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실 것을 아버지께 간구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이신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처럼
주님을 믿는 성도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주님과 서로 연결된 상태에서 하나가 될 때
주님과 그 연결된 생명의 통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교회의 하나 되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주님과 연결된 생명의 끈으로 전달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끼리 모여 하나의 교회를 이루었다고 소리 지른다고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3) 주님의 영광을 함께 누릴 교회 :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옵소서(24절)
24.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해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이렇게 주님과 서로 연결된 신령한 성도로 살아간다면
장차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 후에 주님과 함께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서
주께서 받으신 그 영광을 함께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영광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교회는 하늘에 있는 그 영광을 소망 가운데 바라보며
이 땅에서 주께 사랑하며 섬기며 헌신하는 것입니다.
결 론 : 종말론적인 시간을 사는 그리스도인
본래 ‘종말’이란 말은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세상 만민을 심판하시는 때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주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가지고 그날 판결을 하는 것이니,
그날은 판결하기만 할 뿐이고
사실상 그날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 종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이 심판을 받는 날인 것처럼 긴장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종말론적인 삶’, 혹은 ‘종말론적인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심판은 종말의 때에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주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이미 심판이 이루어지니
지금 이 시간이 종말론적인 시간이 된 것입니다.
이제 이 시간(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시간)이 지나가면
이 세상의 시간은 종말론적인 시간으로 바뀝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때부터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 멸망을 당할 자들이 되느냐가 결정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이 종말론적인 시간이 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미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소유한 자들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영광이 그의 백성들에게 함께하는 영광의 때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거듭난 성도가 되어
주님 안에서 주와 하나가 되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장차 주님의 영광을 보고 함께 누릴 자로서
이 세상을 강하고 담대하게 살게 하옵소서.
장차 우리가 받을 이 영광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온전히 믿고 섬겨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주님의 큰 나라의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