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주여, 뉘시오니이까?
설교본문 : 사도행전 9:1~22)
참 고 : 사도행전 8장, 시편 63편, 신명기 30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2024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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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막 전해지던 때에 있었던 빌립 집사의 일과
사울이 주님을 만나던 일을 사도행전 8~9장을 통해 살펴보고,
이어서 시편 63편을 통해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명기 30장을 통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제 1 부 : 빌립 집사의 사마리아 전도
1. 핍박이 도리어 복음이 전해지는 계기가 됨
1) 교회를 핍박하는 사울(행 8:1~3)
1.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한 것을 마땅한 일로 여기더라.
그날에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나
사도들 외에는 모두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뿔뿔이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장례를 치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울더라.
3. 그러나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려고 집집마다 찾아 들어가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끌어내 감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져 간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할새
스데반이 순교하던 바로 그날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이 핍박을 주도한 인물은 장차 바울이 될 사울입니다.
그는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예수님을 믿는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사울은 교회의 세력을 아예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이때 사울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습니다.
2) 흩어져 가면서 복음을 전하는 초대교회 성도들(1, 4절)
(1, 4절 성경구절 위에)
그러나 상황은 사울의 뜻과는 정반대로 흘러갑니다.
사울은 교회를 박멸하기 위해 핍박했는데,
핍박을 받은 성도들이 흩어져 갈 때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교회가 박멸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흩어져 가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3) 교회에 핍박을 내리신 하나님의 뜻 :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➀ 예루살렘에 머무르며 자기들끼리만 지내려 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사도행전 2장과 4장에서 보여준 초대교회의 모습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신령하고 아름다운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만의 공동체였다는 것이 한계였습니다.
➁ 예수님은 복음이 세상에 전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좋은 공동체를 만든 복음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이방 땅에도 전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움직이려 들지 않으니
핍박을 통해서 강제로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당장 이 핍박으로 빌립은 사마리아로 갔고,
그때 벌써 일부의 사람들은 나중에 바울의 선교의 중심지가 될
수리아의 안디옥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회의 중심지인 로마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계기가 됩니다.
4)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5~8절)
5.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을 듣고 또 그가 행하는 기적을 보고는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들이 고침을 받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흩어져 나가면서
복음을 전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스데반과 같이 집사가 된 빌립입니다.
그는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에서 전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민족적인 반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모든 일이 한꺼번에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게 하셔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5)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자 사마리아 사람에게도 성령이 임하심(행 8:14~17)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내매
15.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빌립이 말씀을 전할 때는 성령이 임하시지 않다가
나중에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하며 기도하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십니다.
2.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 천사와 성령까지 함께 하십니다.
1) 성령께서 빌립 집사를 광야에 있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로 인도함(행 8:26~28)
26. 그때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나타나서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나아가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 하니
그 길은 인적이 드문 광야 길이라.
27. 빌립이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재정을(혹은 국고를) 맡은
큰 권세를 가진 내시라. 그가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 길에 마차(병거)에 앉아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전도를 마치자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고 명합니다.
그 길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광야 길이라 조금 이상한 명령이라 생각되지만
빌립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광야 길로 나갔더니
그곳에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빌립에게 그 사람이 탄 마차에 가까이 가라고 명하셔서
마차에 가까이 갔더니 그가 이사야의 한 구절을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그가 읽은 말씀을 기초로 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합니다.
2)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 천사와 성령께서 함께 빌립을 인도함
참으로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빌립에게 천사가 명하였고, 또 성령께서 명하셨습니다.
에디오피아 사람 한 명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명하시고 성령을 친히 동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천사가 직접 전하지 않고 빌립 집사에게 가라고 명했을까요?
신약 시대에는 오직 사람이 복음을 전합니다.
사람이 복음을 전하면 천사와 성령께서 함께 동원하여
그를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오직 사람에게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움직여야 천사도 성령도 함께 움직입니다.
3. 말씀을 깨닫기를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께서 알게 하십니다.
1) 말씀 깨닫기를 사모한 에데오피아 내시(행 8:29~31)
29. 성령이 빌립에게 이르시되 “그 마차(병거)에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마차로 달려가서 그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지금 읽는 것을 깨닫느뇨?”
31. 그가 대답하되 “나를 지도하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하고,
빌립에게 청하여 “마차(병거)에 올라와서 자기 곁에 앉으라” 하니라.
에디오피아 내시는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사야의 한 구절을 도무지 모르겠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께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같이 끌려가서 죽게 되리라는
이사야 53:7~8의 예언의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 말씀을 깨닫기를 간절히 사모하니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명하여 빌립을 그 사람에게로 인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씀 깨닫기를 간절히 사모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말씀을 깨닫도록 도우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묵상 :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에디오피아 내시처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말씀 깨닫기를 구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2) 빌립에게 세례를 받는 에디오피아 내시(행 8:36~38)
36. 그들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자 내시가 말하되
“보라, 여기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는데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37. (없음. 어떤 사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빌립이 이르되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는다면 세례를 받을 수 있노라.”
내시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노라.”
38. 이에 내시가 명하여 마차(병거)를 멈추게 하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그에게 세례를 베풀고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에디오피아 내시는 즉시 세례를 받겠노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깨달았고, 세례받을 물이 있는데 더 지체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던 길을 즉시 멈추었고, 빌립은 내시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제 2 부 : 주여, 뉘시오니이까?
바울이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만,
사울은 히브리식 발음이고 바울은 헬라식 발음으로 같은 이름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히브리식으로 아람어 사울로 불렸고,
예수님을 알고부터는 헬라식 발음인 바울로 불렸으므로
자연스럽게 바울이 예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사울에서 바울로 변하는 과정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1. 여전히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
1) 여전히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는 사울(행 9:1~2)
1. 사울이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다마스커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낼 공문을 써달라고 청하니
이는 만일 이 도(예수님의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사도행전 7장 뒷부분에는 초대교회 최초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스데반 집사를 처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사울(바울)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처형을 주도했던 사울은 여전히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로 갑니다.
핍박을 피하여 다메섹으로 피신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다메섹에 있는 회당으로 보내는 공문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2) 이 일은 누구의 명령도 없는 사울이 단독으로 행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이 일은 대제사장이 사울에게 명한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사울에게 이 일을 부탁한 일이 없습니다.
오직 사울 혼자서 스스로 자원하여 행한 일입니다.
사울은 그만큼 기독교인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이 땅에서 기독교인들을 아예 박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파괴적인 열정을 가지고 사울이 다메섹으로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 묵상 : 잘못된 신념, 잘못된 열정은 게으른 사람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랑하지 말고
그 신념이 바른 것인지를 늘 살피는 사람이 되십시오.
2. 예수님 앞에 엎드러진 사울
1) 예수님 앞에 엎드러진 사울(행 9:3~5)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메섹(다마스커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홀연히(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사울이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무려 242km나 떨어져 있는
다메섹에 거의 이르렀을 때입니다.
갑자기 아주 환한 빛이 사울을 비추더니 하늘로부터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두 번이나 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울은 그만 그 자리에 엎드러져서 하늘을 향해 외쳤습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2) 사울의 혼란 : 어느 하나님이 진짜입니까?
사울도 신앙을 가진 사람이니
하늘로부터 오는 소리는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리인 줄 알았을 텐데
어찌하여 하늘을 향해 누구시냐고 물었을까요?
일반적으로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하늘에서 소리가 날 경우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말씀하옵소서”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아는 바울이 “주여 뉘시오니이까?”하고 묻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죽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고 하면서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스데반 집사가 죽는 것을 마땅히 여긴다고 했지만
사울 역시 속으로는 조금 혼란을 느낀 것입니다.
더구나 하늘에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하고 물으시니
사울이 엄청난 혼란을 느꼈습니다.
지금껏 기독교인을 없애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그 일을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걸었는데,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누구십니까?
스데반 집사가 믿는 하나님이 맞습니까?
기독교인들을 박멸하려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 맞습니까?”
이것을 질문하기 위해 사울은 “주여 뉘시오니이까?”하고 물은 것입니다.
3.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울
1)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5)
(5절 성경구절 위에)
“주여 뉘시오니이까?”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하고 말씀하시고는 곧바로 다메섹으로 들어가면
장차 사울에게 할 일을 이를 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울에게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만 말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이미 사울에게는 하나님께 충성하고자 하는 충성심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사울이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생각을
너무나도 확신하고 있었고, 그 확신에 따라 믿음의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까지 하니
예수께서 직접 자신이 누구신지를 밝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만 알게 해 주면 누구보다 주를 위해 일할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 묵상 :
“주여 나의 믿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사울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바른길로 인도하십니다.
2) 큰 충격에 빠져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는 사울(6~9절)
6. 너는 일어나서 성안으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사울과 함께 가던 사람들은 소리(그 음성)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그 음성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어안이 벙벙하여 그저 멍하니) 서 있기만 하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다마스커스)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예수께서 자신을 밝히시니 사울은 곧 그 말씀에 복종합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다메섹 도성으로 들어가려는데 앞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 도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도성에 들어가서도 사울은 사흘 동안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잘못 믿어 왔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 후에도 사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 반 동안 예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3)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난 후부터는 오직 예수께 충성하는 사울(바울)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 사울을 봅니다.
그가 비록 처음에 기독교인들을 박멸하는 데 앞장서기는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가 핍박했던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하시니
그는 어두웠던 지난날을 회개하며 주님 앞에 참된 사람이 되는 아픔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 충격이 너무 커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고 마시지도 못한 것입니다.
4. 사울의 변화를 돕는 협력자 아나니아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난 후 눈이 보이지 않아
사람의 손에 이끌려 주께서 명하신 대로
다메섹의 ‘직가’라 하는 거리에 있는 유다의 집으로 갈 바로 그때에
주께서 다멕섹의 직가에 있는 아나니아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주께서 아나니아에게 사울에게 가라고 명하심(행 9:10~12)
10. 그때 다메섹(다마스커스)에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가운데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아나니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고 부르는 거리로 가서
그곳에 있는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지금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환상 가운데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으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는 주님의 70명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그 역시 스데반 집사가 순교 당할 때 예루살렘 교회에 임했던 핍박을 피하여
이곳 다메섹까지 피신하여 온 사람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당할 때 아나니아는 예루살렘에 있었으므로
사울이 어떻게 주님을 믿는 성도들을 박해했는지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곳 다메섹에 와서도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결박하여 끌고 가기 위해
대제사장에게 권한을 가지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는 터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울을 두려워하는 아나니아에게
그가 두려워하는 바로 그 사람 사울에게 찾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자 아가리에 머리를 넣는 격이 아니겠습니까?
2)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아나니아(13~17절)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로부터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그리하여 아나니아가 떠나서 그 집을 찾아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를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대하여 그가 들은 말을 주께 말씀드렸습니다.
더구나 그가 지금 대제사장으로부터
주의 성도들을 잡아들일 권한을 가지고 오고 있는데,
제 발로 그 사람을 찾아가라고 하시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두려워 떠는 아나니아에게
그저 주의 일꾼으로 들어 쓰시기로 하셨다는 말씀만 하시고는 가라고 명하십니다.
아나니아는 주께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직가의 거리에 있는 유다라는 사람의 집에 있는 사울을 찾아갑니다.
3)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세례를 줌(행 9:17~18)
(17~18절 성경구절 위에)
아나니야가 다메섹의 중심지에 있는 좁고 긴 거리에 유다라는 사람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곳에 가보니 과연 사울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를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그리고는 사울에게 안수하니
즉시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면서 그가 다시 보게 되었고,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세례를 베풀자 사울이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4) 아나니아의 순종으로 사울이 바울이 되었습니다.
아나니아는 가면 분명히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주님의 명령이니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종으로 그는 사울이 바울이 되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묵상 :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질문을 할 수 있지만
일단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우리는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순종의 책임만 있을 뿐입니다.
5. 회복하자마자 곧바로 회당에 나가 복음을 증거하는 사울
1) 나의 택한 나의 그릇,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 받을 자(행 9:15~16)
(15~16절 성경구절 위에)
예수님은 바울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사도로 진즉부터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이방인과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지역인 다소에서 나서 자랐고,
이방인의 학문도 많이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방인과 소통이 잘될 뿐만 아니라 복음의 말씀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방인에게 복음을 잘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유대 사회에서 크게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에게 율법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 자였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학문에 밝을 뿐 아니라 그 당시 율법에 가장 뛰어난 자였던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자 곧바로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
아나니아로부터 안수와 세례를 받은 후에
눈도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또 성령충만까지 받게 되자,
사울은 주께서 자신을 받아주셨음을 확신하고, 음식을 먹기 시작합니다.
몸이 회복되자 사울은 곧바로 인근에 있는 회당으로 나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의 이런 열정을 보신 것입니다.
그가 전에 그리스도인을 잡아 가두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여기고
그 일을 열심히 했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으니
주저할 것 없이 즉시 이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3) 사울(바울)은 유대인을 위해서도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가장 핍박했던 사울을 바로 이때 주님을 믿도록 하신 이유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사울을 조금 일찍 만나셨다면 스데반 집사는 죽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울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얼마나 기독교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이었는지를 사람들이 알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극도로 증오했던 사람인 사울을 변화시키심으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증거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눈앞에 보는 이 분명한 증거도 무시하고
믿음을 갖기를 거부하고 사울을 핍박합니다.
제 3 부 : 광야에서 하나님을 갈망하는 다윗(시편 63편)
시편 63편의 표제어에는 ‘다윗이 광야에 있을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광야에 있을 때는 사울에게 10년간 쫓길 때이거나
또는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둘 중에 어느 때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으나,
둘 중 어느 때이든 간에
다윗이 마음을 다 잃을 정도로 피곤하고 힘들 때라는 것을 뜻합니다.
1) 곤핍한 땅에서 주를 갈망하며 앙모하는 다윗(시 63:1)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주의 성소에서 주를 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내 평생에(내가 살아 있는 동안)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쫓기는 다윗은
곤핍하고 황폐한 땅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하며 찾는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도망하여 피한 광야가 본래 물이 없고 마른 땅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쫓기는 그의 처지가 곤핍한 땅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고달픈 인생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찾고 또 찾습니다.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 것처럼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을 찾습니다.
2) 주의 성소에서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았던 과거를 추억(2절)
(2절 성경구절 위에)
그 곤핍한 땅에서 다윗은
과거 그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았던 일을 추억합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동안
그가 날마다 경험했던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로우신 일들을 추억합니다.
3)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생명보다 나으므로 평생 주를 송축하리라(3~4절)
(3~4절 성경구절 위에)
그때 그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이 얼마나 큰지,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자기의 생명보다 낫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자기 생명보다 낫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이 너무 커서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바친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 간절함과 그 사랑으로 이 평생 주님을 찬양하고 송축하리라고 노래합니다.
● 묵상 : 믿는다는 것은 원하는 것과 붙잡는 것과 지키는 것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주님에 대하여 알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➀ 믿는다는 것은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기들이 더 낫다고 믿는 것을 간절히 구합니다.
더 나은 학교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더 좋은 사람과 사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 땅의 모든 것 중에서 주님이 가장 좋으신 분이라고 믿는다면
주님을 간절히 갈망하며 원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➁ 믿는다는 것은 간절히 붙잡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을 간절히 붙잡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이 가장 좋으신 분이라고 믿고 있으니 당연히 그를 붙잡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이 그를 붙잡는 것입니다.
주께 예배드리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주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➂ 믿는다는 것은 지키는 것, 잃지 않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의 질서를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과 만나는 자리를 잃지 않는 것이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일을 항상 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다윗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결 론 : 우리 앞에 있는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재앙)
1. 우리의 삶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1) 이 명령은 너무 어려운 것도 아니요(신 30:11~13)
11.“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은
너희에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니, 너희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받아다가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주어 우리로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너희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받아다가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주어 우리로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사실 배우기 어렵고 지키기 어려운 것은 가나안의 우상숭배였습니다.
그 우상들 중에는 자기 몸을 칼로 상하게 하거나
심지어 자기 자녀를 불에 살라야만 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자들처럼 아주 고통스러운 고행의 삶을 요구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조금 조심스럽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2) 먼 것도 아니라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는 선사시대의 영웅들이 하늘로 올라갔다든지,
혹은 바다 건너 먼 나라로 여행하여 신들을 만나 죽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메소포타미아의 이 전설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주시는 생명을 얻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바다 건너 저 먼 나라로 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3) 너희 입에 있으며 너희 마음에 있은즉(14절)
14. 오직 그 말씀이 너희에게 심히 가까워서 너희 입에 있으며 너희 마음에 있은즉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주님의 명령은 우리가 언제든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으며,
그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에 담아둘 수 있을 정도로
읽기도 쉽고 마음에 담아두기도 쉬운 평이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산속에서 몇 년간 수도를 해야만 지킬 수 있는 어려운 말씀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읽고 깨달을 수 있으며,
그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쉬운 말씀입니다.
● 묵상 :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자 하는 간절함을 가지고 믿음 갖기를 구하면
그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마음을 주시고,
그 명령을 지킬 힘과 능력을 주기까지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2.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재앙)
1) 생명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 있습니다.(신 30:15)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너희 앞에 두었나니,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저 멀리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의 모든 것이
우리의 삶 속에, 우리의 생활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 두셨습니다.
2)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 ➠ 선택의 결과(16~20절)
16. 곧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너희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너희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그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 신들을 섬기면(경배하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지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서 너희 앞에 증인을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었은즉,
너희와 너희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생명이시요 너희의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너희가 거주하리라.”
오늘도 당신은 이런저런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말씀대로 선택하며 사는 자는 생명과 복의 길로 걷는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과는 상관없이 오직 자기의 욕심대로 선택하는 자는
사망과 화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주님이 주신 말씀 속에서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십시오.
• 그 말씀대로 행하기에 힘쓰십시오.
• 주님이 주신 말씀 속에서 주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십시오.
그리고 그런 일들 중에 내가 행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그 말씀과 나를 비교하고 적용하여 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내가 행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면
즉시 그 일을 중지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회개한 후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건강한 영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생명과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 묵상 :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사망과 화를 택하지 말고,
생명과 복을 택하는 자가 되십시오.
주님
우리의 믿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혹 우리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바르게 깨닫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리고 깨닫게 되었을 때
바울처럼 즉시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아나니아처럼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크신 역사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