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작은 차이 큰 결과
설교본문 : 베드로후서 2:12~22(열왕기하 1~2장, 전도서 10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6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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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지 못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면 과거의 비극적인 일이 반복됩니다.
일반 역사야 역사를 보는 관점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지만
열왕기의 역사에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한 평가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따라 복과 심판의 결과가 명확하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와 그 아들 아합, 아합에서 그 아들 아하시야로,
그러다 결국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망할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들이 직접 집행했으면서도
전임자와 똑같은 짓을 저질러서 멸문지화를 당하는
이런 어리석은 일이 왜 계속 반복될까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혹시 알더라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면 긴박한 순간에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선택하게 됩니다.
여호사밧은 비록 문제가 있었지만
재앙을 만나거나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가 있으면 즉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미약하더라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1 부 : 엘리야와 엘리사와 아하시야
열왕기서를 보면서 또 한 가지 느끼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악한 왕이라도
회개하여 새로운 반전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는 미리 예고하고 오는 것이 아니어서
자신 앞에 다가오는 여러 사건을 잘 살펴야만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왕기에 나오는 각 사람들을 보고,
내가 만일 그 사람이라면 나는 어땠을까를 생각하며 말씀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1.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1) 아하시야에게 찾아온 두 가지 재앙(왕하 1:1~2)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방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심한 부상을 입으니)
사자(심부름꾼)들을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내가 이 병에서 나을 수 있는지를 물어보라”하니라.
아합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자마자 두 가지 큰 재앙이 잇달아 찾아왔습니다.
하나는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왕궁의 다락방의 창들에서 기대어 있다가 창살이 부서지면서
아래로 추락하여 큰 부상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젊은 아하시야는 왕이 되자마자 잇달아 일어나는 큰 재앙에
크게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2) 에그론의 바알세붑에게 미래를 묻게 하는 아하시야
아하시야는 갑자기 닥신 시련과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에그론의 바알세붑에게 자기가 이 병에서 나을지의 여부를 물으러 보냅니다.
아하시야는 이 일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회개의 기회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바알세붑을 찾습니다.
3)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는 아하시야(3~4절)
3. 여호와의 사자(천사)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심부름꾼)들을 만나서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나 주 여호와가 이르노라.
네가 올라가 누운 그 병상에서 일어나 내려오지 못하고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아하시야가 보낸 심부름꾼들이 바알세붑에게 가는 도중에 엘리야를 만납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말하면서,
아하시야가 그 누운 병상에서 살지 못하고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하라 하며 왕에게 다시 돌려보냅니다.
4) 엘리야에게 왕의 소환 명령을 전하러 왔다가 죽은 102명의 군인들(9~12절)
9. 이에 아하시야 왕이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50명을 엘리야에게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엘리야가 산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10. 엘리야가 그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50명을 불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오십부장과 그의 부하 50명을 불살랐더라.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50명을 엘리야에게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산에서 내려오라 하셨나이다”하니
12. 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너와 너의 50명을 불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50명을 불살랐더라.
심부름꾼들이 다시 돌아와서 털이 많고 가죽 띠를 띤 사람이 돌려보내더라고 하자
아하시야는 그가 엘리야라고 하면서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의 군인들을 보내 엘리야를 데려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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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50명이 엘리야 앞으로 가자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너희들을 사를 것이라”
라는 이 말 한마디에 곧바로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그들을 불사릅니다.
아하시야는 또 다시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50명을 보내
엘리야에 대한 소환 명령을 다시 전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하나님의 불에 맞아 불살라 죽임을 당합니다.
4)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진 때에야 비로소 움직인 엘리야(13~15절)
13. 왕이 세 번째로 또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50명을 보낸지라.
그 세 번째 오십부장은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간구하며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50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4.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앞서 왔던 오십부장 두 명과 그의 부하들이
모두 불에 타 죽었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하매
15. 그때 여호와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그리하여 엘리야가 곧 일어나 그와 함께 내려와 왕에게 이르러
아하시야가 세 번째로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50명을 보내자 세 번째로 보냄을 받은 오십부장은
엘리야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와 자기의 부하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아무 염려하지 말고 그를 따라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자 엘리야가
그때에야 비로소 움직여 아하시야에게로 갑니다.
2. 왜 102명의 군사들을 죽게 하셨을까?
이렇게 아무런 까닭도 없이 102명의 사람들을 죽게 한 것에 대하여
지나친 처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 말씀 안에 담긴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102명을 죽이신 이유 : 엘리야의 불안감
왜 102명을 죽이셨을까요?
본문에 그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으나
여호와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와서 두려워하지 말고
그를 따라가라고 한 말(15절)로 미루어 볼 때
엘리야가 두려워하니 하나님께서 102명을 죽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그만큼 하나님의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뜻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단지 엘리가 두려워한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무려 102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이시는 분이십니까?
그렇습니다. 102명뿐 아니라
엘리야 한 사람을 위하여 한 국가, 한 민족이라도 버리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이토록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3) 하나님의 지독한 편애(偏愛)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엘리야를 사랑하듯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기회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만,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여 주님을 믿기로 고백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자가 된다면
당연히 그들도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엘리야가 왕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왕이 엘리야의 말을 들어야
엘리야 앞에서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그 오십부장처럼
아하시야도 엘리야에게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해야 합니다.
그를 지옥에 보낼 수도 있고 천국에 보낼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신 이가
바로 엘리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세 번째의 오십부장은 다행히 그에게 심판이 오기 전에 그것을 깨닫고
엘리야 앞에 부복하고 빌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끝까지 엘리야의 하나님 앞에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고집부리다가
결국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죽고 맙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이 없어 동생이 대신 왕위를 이어받습니다.
● 묵상 : 엘리야가 왕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왕이 엘리야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권력자들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실 것을 구하십시오.
4. 엘리야와 엘리사
1) 엘리야의 마지막 길을 동행하는 엘리사(왕하 2:1~8)
1.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들어 올리려(하늘로 데리고 가시려)
하실 때가 되자 엘리야가 엘리사를 데리고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러 있어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던 선지자의 생도들(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당신에게서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또한 알고 있으니 너희는 잠잠하라”하니라.
4. 그러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너는 여기에 머물러 있어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던 선지자의 생도(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당신에게서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 줄을) 아시나이까?”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알고 있으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너는 여기 머물러 있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강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7. 선지자의 생도(수련생) 50명이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강 가에 서 있더니
8. 엘리야가 자기 겉옷을 벗어서 둘둘 말아 강물을 내리치매
강물이 양쪽으로 이리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더라.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여기 머물라고 한 이유 : 멈추고 싶은 충동을 조심하라는 것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여기 머물라고 한 것을 네 번이나 반복한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려는 일을
잠시라도 멈추고 싶은 충동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던 사람도 어느 순간 이젠 지쳤다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세상일이 분주하여 잠시 신앙을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 묵상 :
이젠 힘들어서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든지,
혹은 내 앞에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 일을 이루기까지 잠시 주님 섬기는 일을 중단해야겠다고 생각할 때를 조심하십시오.
5.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그것을 보면 네 소원대로 이루리라
1) 엘리사의 요구 : 엘리야의 뒤를 이은 수석 제자가 되게 해 달라는 것(왕하 2:9)
9. 강을 건너간 후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여호와께서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하는지라.
요단강을 건너기까지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가자 엘리야가 묻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면 좋겠느냐?”
그랬더니 엘리사는 “당신의 영감을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능력을 두 배나 달라는 것이 아니라
두 몫을 달라는 것으로 자신을 엘리야의 맏아들(수석제자)로 받아달라는 것입니다.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으로 전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2) 여호와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10절)
10. 엘리야가 이르되 “네가 참으로 어려운 것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않으면(네가 그 광경을 보지 못하면)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하고
3)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간 엘리야(11~14절)
11. 이렇게 그들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걸어가고 있는데,
홀연히(갑자기) 불수레와 불말들이 나타나더니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들려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가더라.
12. 엘리사가 이 광경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더니
엘리야가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집어 들고 돌아와 요단강 가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잡아 요단강물을 내리치며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지금 어디에 계시나이까?”하고
또다시 강물을 치매 강물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엘리사가 강을 건너니라.
엘리야의 말대로 엘리사는 불말과 불수레를 보았고,
엘리야의 뒤를 이은 능력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겉옷을 들어 요단강을 쳤을 때 엘리야와 똑같은 기적이 일어나서
물이 갈라진 그 사이로 마른 땅으로 요단강을 건너갑니다.
6. 엘리사의 저주(왕하 2:23~24)
23. 엘리사는 그곳에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벧엘로 올라가는 길에
젊은 아이들 몇 명이 성에서 나와 엘리사를 조롱하며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 엘리사가 뒤돌아서서 조롱하는 아이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하매
곧 숲속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 젊은 아이들 가운데 42명을 찢어 죽였더라.
엘리사는 여리고에서 나와 벧엘로 가는 도중에 젊은 아이들 몇 명이 엘리사를 향하여 조롱하며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하고 놀려댔습니다.
엘리사가 뒤로 돌아서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하자
곧바로 숲속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 그 젊은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였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젊은 아이들이 조롱했기로서니
어쩌면 이렇게 끔찍하게 죽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읽는 많은 사람을 당황하게 합니다.
1) 하나님을 조롱한 벧엘 사람들에게 대한 경고
벧엘 사람들은 여로보암 시대에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왕상 12:28~29).
28. 이에 여로보암이 궁리한 끝에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고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니라”하고
29. 그리고는 금송아지를 하나는 벧엘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둔지라.(왕상 12:28~29)
그리고 지금 벧엘의 젊은이들이 엘리사를 따라가면서
“네가 하나님의 선지자라면
어디 너의 스승인 엘리야처럼 한 번 하늘로 올라가보라”면서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아주 끔찍한 방법으로 심판하신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조롱하는 벧엘 성읍 사람들에게 대한 심판의 경고입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을 알리는 것
그리고 이것은 장차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엘리사가 단지 몇 마디 저주했을 뿐인데도
암곰 두 마리가 나타나 42명을 순식간에 찢어 죽였는데,
장차 주께서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는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날을 두렵게 여기며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묵상 : 하나님의 일을 내 생각대로 함부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어떤 이들은 이 일을 보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일은 참으로 유치한 이야기다”(Grey)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유치한 일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내 생각대로 함부로 평가하지 말고,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에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가하고 심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제 2 부 : 지혜의 유익
1. 예상치 못한 불의의 사고들
1) 예상치 못한 불의의 사고들(전 10:8~9)
8.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돌담을 허무는 자는 뱀에게 물릴 것이라.
9. 돌을 떠내는 자(채석장에서 일하는 자)는 그 돌로 인하여 상할 것이요,
나무를 쪼개는 자는 그 나무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
솔로몬은 네 가지의 불의의 사고를 나열합니다.
첫째는, 남을 빠뜨리기 위해 함정을 팠는데
도리어 그 함정을 판 자가 그곳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사고입니다.
둘째는, 돌담을 허물다 뱀에게 물리는 것입니다.
돌담사이에숨어있던뱀이느닷없이달려들어피할사이도없이물리는것입니다.
셋째는, 채석장에서 돌을 깨다가 자기가 깬 돌에 다치는 일이고,
넷째는, 나무를 쪼개다가 자기가 쪼갠 나무에 위험한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2) 도끼날을 갈지 않으면 힘이 더 든다(10절)
10. 철 연장(도끼날)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않으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위의 8~9절에서 언급한 불의의 사고들은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어쩔 수 없는 재앙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으면
삶이 더욱 고단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세상이 나를 돕지 않는다며 도끼날도 갈지 않고 있으면
그나마 나무를 찍을 때 더 힘이 드는 것입니다.
세상 탓하면서 게으른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3)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다(10절)
도끼날을 가는 것과 지혜가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무를 찍을 자가 평소에 도끼날을 갈듯
우리도 평소에 지혜를 구하고 찾는 자가 되면,
생각지도 못한 재앙을 만나더라도 그것을 피할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지혜가 우리를 더욱 존귀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4) 그러나 방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린다면(11절)
11. 방술을 베풀기 전에(주문을 걸기도 전에) 뱀에게 물린다면,
술객(마술사)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혜가 성공하기에 유익하다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마술사가 방술을 하기도 전에 먼저 뱀에게 물린다면
그 마술사의 능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그 지혜를 써보기도 전에 먼저 재앙을 만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갑자기 지혜도 소용없다고 말하는 것은,
지혜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우리에게 유익함을 준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놀라운 기술이나 능력을 가졌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셔야 그 기술과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제 3 부 : 우리를 기쁨과 행복으로 이끄는 참된 자유
1. 이단이란 무엇인가?
1)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 이단의 뜻(벧후 2:1)
1. 그러나 전에 민간(이스라엘 백성 중)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나타날 것이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값 주고 사신 주님을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세상에는 여러 사상과 학파들이 존재합니다.
그 다양한 많은 사상과 학파들을
기독교가 멸망에 이르게 할 이단이라고 규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상과 학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수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을 왜곡하고 훼손한다면 멸망에 이르게 할 이단이 됩니다.
본문에서 베드로가 말하는 ‘멸망에 이르게 할 이단’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➀ 개인적인 생각을 고집하여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것을 택하는 것도 이단입니다.
‘이단’이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택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것 또한 이단에 해당합니다.
사실 사교집단보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이단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우리의 고집입니다.
사교 집단에 속한 것은 누구나 이단인 줄 알고 있으므로 조심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고집은 잘못인 줄 모르고 있다가 멸망을 당하니
우리 안에 이런 것이 생기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일들이
우리를 영원한 파멸로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➁ 복음의 말씀을 왜곡하여 다른 사상체계를 만든 것 역시 이단입니다.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텍스트는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순종합니다.
때로 우리도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해석할 수 있지만
계속 성경을 묵상하면서 그 잘못을 바로잡고 주님의 뜻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만일 성경의 뜻을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한 어떤 사람이
성경과는 다른 별도의 사상과 학파를 만들어낸다면
이것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멸망에 이르게 할 이단입니다.
루터, 칼뱅, 쯔빙글리, 바르트 …,
이 사람들이 현대 신학에 큰 발전을 이룬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이들의 연구 업적을 참고 자료로만 보는 것을 넘어서
성경을 그들이 보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 또한 멸망에 이르는 이단이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 정리 :
이단 :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자
거짓 교사 : 자기의 고집 된 생각을 남에게 전하고 가르치는 자
2) 멸망에 이를 거짓 교사들(1절)
(1절 성경구절 위에)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다른 자기 생각을 고집하며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방해하는 자들이므로
장차 사탄과 마귀들이 들어가는 영원한 형벌의 자리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시는 자들이 바로 이런 자들입니다.
3) 신실한 주의 백성을 함부로 훼방하고 비난하는 거만한 자들(10~11절)
➠ 그들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에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주의 권세)를
멸시(무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을 내리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당돌하고, 대담하고) 자긍하여(고집하여, 거만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비방)하거니와
11. 그러나 그들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주님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훼방(비방)하는 송사를
(그들을 헐뜯고 고발하는 일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우리가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신실한 주의 백성을 훼방하고 비난하는 일을
두려움 없이 떨지 않고 행하는 거만한 자들 역시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스르는 이단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베드로는 그들보다 훨씬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하늘의 천사들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주의 백성을 함부로 헐뜯고 고발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천사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천사장 미가엘이나 가브리엘 천사들조차 하지 않는 일을
아무 두려움 없이 떨지 않고 행하였으니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라 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지켜보시고 반드시 특별한 형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 정리 :
➀ 이단의 위험 : 거듭남이 취소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다른 말씀을 가진 자는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으니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생명도 없어졌고,
그러므로 새로운 생명을 가리키는 것인 거듭남도 취소된 것입니다.
➁ 이단의 위험 : 성화, 의인의 과정도 모두 중단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다르면
날마다 주 안에서 자라가는 성화의 과정과 의로 인정받는 의인(義認)도
모두 중단되거나 취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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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할 때
그 본문에서 주께서 주시는 말씀을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묵상하십시오.
2. 거짓 선생들의 특징
1) 거짓 선생들의 특징(벧후 2:1~2)
1. 그러나 전에 민간(이스라엘 백성 중)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나타날 것이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값 주고 사신 주님을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많은 사람이) 그들의 호색하는(방탕한) 것을 따를 것이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훼방(비방)을 받을 것이요,
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율법에 자유를 얻었으니,
방종과 방탕의 삶을 살아도 상관없다며 죄의 쾌락에 따라 살기를 부추기는 자.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었으니
그 자유를 누리자며 방탕과 방종의 삶을 조장하였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거룩하심을 닮은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새로운 의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 오늘날에도 교회 부흥을 명목으로
그동안 교회가 소중하게 여겼던 성결의 삶을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가
교회 안팎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거짓된 교리이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은 거짓된 교사입니다.
➁ 종교를 돈을 버는 도구로 사용하여
말씀을 상품처럼 사고 팔려 하는 종교 사기꾼(3절)
(3절 성경구절 아래)
자기들의 이익을 얻기 위해 말씀의 일부를 고의적으로 훼손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령 중세의 ‘면죄부(면벌부)’처럼
성경에 없는 말로 사람을 현혹하여 헌금을 강요한다든지,
종말론을 더욱 무섭게 포장하여 자기들 말을 듣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공갈을 한다든지 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라 말씀을 상품처럼 사고파는
종교 사기꾼에 불과합니다.
➂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부인하는 자
무엇보다도 조심해야 할 거짓 선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가령 종교 간의 대화나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해
기독교가 가진 가장 핵심 진리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부인하려 한다면,
그것은 가장 위험한 거짓 선생이 됩니다.
2) 거짓 선생들의 표적(2~3절)
2. 여럿이(많은 사람이) 그들의 호색하는(방탕한) 것을 따를 것이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훼방(비방)을 받을 것이요,
3. 또한 그들이 탐심을 인하여(자기의 욕망을 채우려고)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너희의 호주머니를 털어갈 것이니),
그들이 받을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된 적이 없으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그들의 멸망은 반드시 닥쳐오고야 말 것이라).
거짓 선생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표적으로 삼습니다.
그들이 아직 믿음으로 훈련된 자들이 아니라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므로,
그들을 현혹하여 자기들과 함께 호색하며 방탕한 삶을 살게 합니다.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부인하며
적당히 인간답게 살면 되는 것이라고 여기도록 만듭니다.
그러므로 굳건한 믿음을 갖기 위해 때때로 영적인 훈련에 참여하십시오.
3) 거짓 선생들에 임할 심판(4~8절)
4. 하나님께서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져서 사슬로 묶어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하나님께서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살려주시고) 경건치 않은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또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잿더미가 되게 하셔서
후세에 경건하지 않은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인하여 고통을 받던 의로운 롯은 건지셨으니
8. (그 의인은 그들 가운데서 살면서 날마다 그 무법한 자들의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의 의로운 영혼(심령)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느니라.)
베드로는 이들을 잡혀 죽기 위해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자들이라고 규정합니다.
전에 하나님께서 범죄한 천사들과, 노아 시대의 사람들과,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에게 심판을 내리셨던 것과 같이
이들 역시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4)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15~17절)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발람은 불의의 삯을(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을) 사랑하다가
16. 자신이 저지른 범죄로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음성으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이니
그들에게는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 되어 있나니,
그들이 비록 세상에서 성공한 자라 할지라도
그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처럼 곧 사라지고 말 자들입니다.
물 없는 샘이니 그들에게 생명이 없다는 말이고,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이니
그들의 부흥은 곧 깨어져 버리고 말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5) 그들이 바로 점과 흠이라(12~13절)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서 죽기 위해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그러다가 짐승들이 멸망하는 것같이 멸망 당하며),
13. 자기들이 저지른 불의의 값으로(불의의 대가로) 불의를 당하며,
대낮부터 연락(흥청거리며 즐기고 노는 것)을
큰 낙(큰 기쁨)으로 여기는 자들이니, (그들이 바로) 점과 흠이라.
그들은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도(너희와 함께 음식을 나눌 때에도)
그들의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베드로는 이들이 바로 점과 흠이라고 지적합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점과 흠들,
교회를 파멸로 인도하는 악령의 자식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이미 ‘저주의 자식들’, ‘멸망의 종들’이 되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영원한 파멸의 지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묵상 : 말씀이 다르다면 새로운 영의 생명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화려한 겉모습만 보지 말고
그 속에 담긴 신령한 영을 볼 줄 아는 성도가 되십시오.
더 도덕적으로 보일지라도, 더 순수하고 더 착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이 주께서 주신 말씀과 다르다면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영의 생명이 생기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왜곡하여 거짓으로 성도들을 이끄는 거짓 교사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교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라 그 어떠한 이단보다도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영을 잘 분별하여야 합니다.
3. 우리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
1) 범죄한 천사들을 심판 때까지 지옥에 가두어두신 하나님(벧후 2:4)
4. 하나님께서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져서 사슬로 묶어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주께서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지옥의 어두운 구덩이에 던져 심판 때까지 가두어두게 하셨습니다(4절).
천사들에 대하여는 단 한 번의 범죄로 인하여
회개할 기회도 없이 곧바로 영원한 형벌의 판결을 내리셨는데,
우리에게는 평생 죄를 반복해서 짓고 있음에도
아직도 우리가 회개하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2) 어찌하여 우리에게는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가?
어찌하여 천사들에게는 단 한 번의 회개의 기회도 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는 이 세상을 사는 평생 동안 계속해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4. 주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를 누리는 자가 되십시오.
1) 주께서 주신 참된 자유
주께서 주신 참된 자유는 거짓 선생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방종의 자유가 아닙니다.
주께서 주신 자유는 주께서 내게 주신 신령한 능력으로
죄에서 벗어나서 주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자유를 말합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자는 지금도 그 은혜로 말미암아 기쁘고 즐거운데,
앞으로도 영원히 그 기쁨이 가득한 소망을 갖고 있으니 참된 자유입니다.
그러나 방종의 자유는 지금은 즐거움인데
앞으로는 영원히 멸망하는 고통만 있으니 참된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2) 참된 자유를 위해 죄의 늪에서 벗어나십시오.
전에는 죄의 본능과 죄의 습관에 사로잡혀
죄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해 마치 죄의 노예가 된 것처럼 고통 속에 있었는데,
이제 주께서 주신 성령을 통해 거룩한 성품을 받아
죄를 이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신령한 자가 될 수 있게 된 것이 참 자유인 것입니다.
가령 물건을 훔치는 충동을 이기지 못해 지를 지을까 봐
두려움에 밖을 나가지 못했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새롭게 변화를 받아 더 이상 그 충동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남을 도우려는 새로운 충동에 사로잡혔다면
그는 아무런 걱정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인 것입니다.
● 묵상 :
참된 자유는 오직 주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 안에서 신실한 삶을 사는 자가 되기를 사모하십시오.
결 론 :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게 되리니(20절)
20. 만일 그들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
을 피한(더러움에서 벗어난) 후에 다시 그 더러운 것들에 얽매이고 지면
그들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훨씬 더 나빠질 것이니),
우리는 때때로 과거에 교회에 다녔으나
이제는 다니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이들을 회심시키기는
교회에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는 사람들을 회심시키기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말씀을 알고 있다며 처음부터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더 악한 마귀가 그들에게 들어가
그들의 육체 속에 아주 강력한 죄의 독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기 전보다 더 악한 자가 되어
죄 속에서 빠져나오기 몹시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베드로는 이들의 비참한 상태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는 속담에 비유합니다.
● 묵상 1 :
이처럼 예수님을 믿다가 중간에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고 믿음마저 잃게 되면,
그의 형편은 이전에 예수님을 믿기 전보다 더 형편이 나빠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유혹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
늘 긴장된 마음으로 말씀 안에 살기에 힘쓰는 자들이 됩시다.
● 묵상 2 : 작은 차이 큰 결과
더 거룩해 보이지만 멸망의 사람이 있고,
더 문제가 많아 보이지만 주님의 생명 안에 있는 자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거룩해 보였으나 주께서 극도로 미워하는 자들이었고,
세리와 창기들은 문제가 많아 보였으나
주께서 친히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룩해 보이지만 그 중심에 사람이나 어느 집단이 있으면 가짜 거룩이고,
문제가 많아 보이지만 그 안에 그리스도가 있으면 생명을 얻는 참된 거룩입니다.
주님을 간절히 원하고 찾는 것,
누구나 할 수 있고 아주 작은 차이이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천국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주님
하나님께서 신호를 보내실 때
그 메시지를 잘 분별하고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이처럼 아끼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우리도 힘써 하나님을 섬겨서
엘리야처럼 그 믿음을 인정받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가 누구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래서 거짓으로 인도하는 악한 자를 지도자로 선택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