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1~11)
* 본문요약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니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미 이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 있으며,
또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합니다.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데,
이는 환난이 인내를 낳고, 인내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경건치 않은 죄인 되었을 때에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주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는데,
지금 우리가 주님과 화목한 자가 되었을 때에는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찬 양 : 270장(새 508)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82장(새 95)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 본문해설
1.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1~4절)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우리는 환난을 자랑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1절) : 다키아오덴테스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에 해당하는 ‘디카이오덴테스’는 단순 과거 수동태 분사로,
점진적이거나 반복적이지 않고 과거 어느 때 1회적으로 일어난 사건임을 나타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디카이오덴테스)’는 것은 법정 용어로
하나님의 법정에서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우리들 죄인들을
죄 없다고 무죄 선고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 화평을 누리자(1절) : 에이레네
현재 시제로, 지금 현재 있는 하나님과 화평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평화는 ‘에이레네’로 인간 감정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신비로운 황홀경에 도취 된 엑스타시 상태의 평온도 아닙니다.
주께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은 자가 누리는 양심의 평안한 휴식을 뜻합니다.
‘양심의 즐거운 휴식’(칼벵), ‘조용한 양심과 하나님께 대한 신뢰’(루터)
-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2절) :
그 은혜 안에 들어가 머물고 있다, 그 은혜 안에 거주하고 있다는 뜻.
-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2절) :
자랑한다, 기뻐 날뛴다, 영광으로 여긴다,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들어온 지금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것을 뜻합니다.
- 환난(3절) : 들리보
‘환난’으로 번역된 ‘들리보’는
포도즙 틀에서 포도즙을 짜내듯이 피와 땀과 눈물과 고통을 짜낸다는 뜻으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고통들을 의미합니다.
- 인내(3절) : 휘포모네
‘인내’로 번역된 ‘휘포모네’는 ‘최후까지 남는다, 참는다, 계속하다, 기다린다’로
이런 환난의 압력에 최후까지 참고 견디는 것을 뜻합니다.
- 연단(4절) : 도키메
‘연단’으로 번역된 ‘도키메’는 ‘증명하다, 시험하다, 분별하다, 택하다’로
혹독한 시련을 통과한 후에 얻은 자격을 뜻합니다.
여기에서는 풍파를 겪는 과정에서 쉬 실패하지 않는 인격으로 변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2. 우리가 환난 중에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5~8절)
5) 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우리를 실망시키지) 아니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기 때문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해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우리가 연약할 때에(6절) :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피폐 된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반역하고 있을 때.
- 의인(7절) : 법규를 충실히 준수하는 정의로운 사람
- 선인(7절) : 사랑과 덕을 베푸는 자애롭고 관대한 사람
3.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즐거워함(9~11절)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도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은즉(10절) : 카탈랏소
‘화목하다’로 번역된 ‘카탈랏소’는
‘교환하거나 맞바꾸어서 균형을 맞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인하여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인들의 죄값을 교환하거나 맞바꾸어서
하나님과 죄인 간에 균형을 맞추었다는 뜻입니다.
- 즐거워하느니라(11절) : 카우코메노이
‘즐거워한다’로 번역된 ‘카우코메노이’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뜻입니다.
* 묵상 point
1.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니(1절)
1)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니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디카이오덴테스)’는 것은 법정 용어로
하나님의 법정에서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우리들 죄인들을
죄 없다고 무죄 선고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무죄 석방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세례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의 재판관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죄가 없다는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미 우리는 지옥에서 석방된 자들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 ‘이미’와 ‘아직 아니’
그러나 우리가 그때 무죄판결을 받고 지옥에서 석방된 자유인으로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죄와 허물을 범하는 연약한 육신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무죄판결을 받은 상태로 살아가지만
아직 최종적인 판결을 받아 천국에 들어간 상태는 아닙니다.
아직 우리는 다시 죄를 범할 수 있는
‘이미’와 ‘아직 아니’의 가변적인 상태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고 무죄판결을 받아서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호소합니다.
계속해서 주님과 교제하여 하나님과 화평한 자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2.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1절)
1) 하나님과의 화해와 화평을 이루었다는 뜻은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① 첫째, 방탕한 아들을 아버지가 용납한 후에 오는 화해와 화평입니다.
② 둘째, 정죄에서의 구원 : 사형수가 무죄 선언을 받은 후에 누리는 화평입니다.
③ 셋째, 종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된 자가 누리는 화평입니다.
④ 넷째, 분리와 이탈에서 해방된 자가 누리는 화평입니다.
⑤ 다섯째, 진노에서의해방되어
하나님의사랑과은혜안으로 들어온 자가 누리는 화평입니다.
2)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10절).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교환하거나 맞바꾸어서 균형을 맞추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친교를 맺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과 균형이 맞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처럼 죄가 전혀 없고,
그 의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의를 가진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예수께서 죽으심과 우리의 죄를 서로 교환하셨습니다.
주님의 피와 우리의 더러운 죄를 맞바꾸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친교를 맺을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균형을 이루는 자가 된 것입니다.
화목 :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가 되어
예수님과 균형을 이룬 자가 되었습니다.
3) 이 평화는 인간 감정의 평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예수 안에서 화평을 누린다는데
내 마음에는 왜 이렇게 고민과 갈등이 가득하냐고 묻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직 연약한 육신을 입은 사람이기에 당연히 고민도 갈등도 합니다.
믿음의 사람도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육신의 일로 고민하고 갈등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겪는 갈등은 죽을병에 걸린 자가 치유된 후에
오늘 저녁을 무엇으로 먹을까 갈등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4) 이 평화는 황홀경에 빠진 자의 평온도 아닙니다.
또 이 평화는 엑스타시 상태의 평온도 아닙니다.
은혜를 마치 무당이 굿을 하다가
신비로운 황홀경에 도취 된 것과 같은 상태의 평온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아무리 기도해도 그런 신비로운 평온의 상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평화는 이런 무아지경의 평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5) 무죄 선언을 받은 자가 누리는 평온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죄 선언을 받고,
그 죄의 결과로 오는 모든 심판과 진노에서 해방되는 것을 말합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번뇌의 양심으로부터 해방되는 평온을 말합니다.
● 묵상 : 죄 용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주님처럼 완전한 자가 된 것입니다.
단지 죄를 용서받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주님처럼 완전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믿은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허물과 죄의 습관들을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말하면 완전한 자가 된 것이 아니라
허물과 죄가 있음에도 전혀 없는 완전한 자로 여김 받는 것입니다.
의인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주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교환하고 맞바꾸셨기 때문입니다.
3. 말씀을 통한 성장 :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것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우리에게 이 선물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까지 달려 죽으신 것입니까?
그것을 본문은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설명합니다.
1)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과거부터 현재) : 1절
• 칭의(稱義), 의인(義認)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믿어 하나님께로부터 그 믿음을 인정받은 것을
‘칭의’, 혹은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때 우리는 주께로부터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주께로부터 의로 인정받고(의인),
의로운 자로 여김 받습니다(칭의).
‘의로 인정을 받는다’는 말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저 사람보다 더 낫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가 하나도 없고 그 의도 100% 완벽한 순도의 의를 가지신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가 된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과 같은 완벽한 의를 가진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1만 년을 산다고 할지라도 결단코 그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 대가로 우리가 값없이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로 인정받은 자, 그래서 칭의요 의인입니다.
2)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날마다 거룩해져 가는 현재의 삶) : 2절
• 성화(聖化) : 생명이 이어가는 것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로 인정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막 태어난 갓난아이에 불과합니다.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자기 힘으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갓난아이처럼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이렇게 믿음이 자라나는 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날마다 거룩해져 간다는 뜻입니다.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서 계속 그 은혜에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은혜의 세계가 나의 거주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은혜 속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우리의 믿음이 생명처럼 자라납니다.
마치 화분에 물을 주면 그 화분의 나무나 꽃이 자라듯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동안
주께서 주신 신령한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우리의 믿음이 자라납니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점점 주님을 닮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성화’라고 합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미래) : 2, 11절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합니다.
• 영화(榮化)
‘영화’는 미래의 어느 날 우리가 천국에 완전히 들어간 상태를 뜻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신실한 믿음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자는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부터 그날을 바라보며 즐거워합니다.
그날의 일을 마치 지금 내 눈에 사진처럼 보이는 것처럼 분명하고 확실하게 믿는 자는
그날의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메시야 잔치’라고 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바로 그날의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메시야 잔치가 되어야 합니다.
4. 환난을 통한 성장 :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1) 환난은 인내를(3절)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은혜의 세계 속에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여전히 불신과 반역과 음모와 타락이 만연합니다.
그 속에서 그리스도인들도 필연적으로 이런저런 고통과 시련에 빠집니다.
마치 포도알이 포도즙 틀에서 짓밟히듯 시련과 고통 속에서 압박을 느낍니다.
그러나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신실한 믿음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할 때
환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죄의 독소들이 빠져나갑니다.
그동안 내가 죄를 짓는 동안 마귀가 내 안에 집어넣은 죄의 독소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신앙의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인내는 이런 환난의 압력에 최후까지 참고 견디는 능력을 뜻합니다.
2) 인내는 연단(자격)을(4절)
마치 욥이 경험하는 것과 같은 환난과 고통의 압력 속에서도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가운데 우리는 연단(자격)을 얻습니다.
‘연단’은 혹독한 시련을 통과한 후에 얻은 자격이나 신앙의 인격 뜻합니다.
환난과 인내의 반복적인 과정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신실한 것임을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훈련생이 그 훈련이 잘 되었음을 인정받아 합격증을 받고 훈련장을 나오는 것처럼
환난과 인내를 거치면서 연단을 얻습니다.
자격을 가진 자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격이란,
어지간한 어려움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건실한 신앙의 인격을 말합니다.
이 신앙의 인격을 가진 자는 마지막 때의 대혼란을 이길 수 있습니다.
3) 연단은 소망을 이룰 줄을 아느니라(4절)
환난과 인내의 과정에서 연단, 즉 신앙을 가진 자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게 되면
장차 주님의 나라에서 누릴 소망을 이루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환난은 내 믿음을 훈련하는 장이면서,
동시에 내 믿음이 진실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시험장이 됩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중에도(3절)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중에도 기뻐 날뜁니다.
그리고 환난을 영광으로 여기며 자랑합니다.
그 환난과 압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 없는 자는 지금 느끼는 환난만 생각하고 고민에 빠져 있으나,
믿음이 있는 자는 지금 느끼는 이 환난으로
장차 영광을 얻을 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5.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5~8절)
예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과 은총이신지를,
세상 사람들의 죽음과 비교합니다.
세상 사람 중에 법을 잘 지키는 보통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죽는 자는 거의 없고,
특별히 자애롭고 관대한 선한 사람을 위해 죽는 자는 간혹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향하여 적대행위를 한 원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의 상태가
바로 예수님을 향하여 적대행위를 한 주님의 원수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겠다고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것입니다.
● 묵상 :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그 선물에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이 담긴 선물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정표입니다.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신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6.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교환하거나 맞바꾸어서 균형을 맞추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친교를 맺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과 균형이 맞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처럼 죄가 전혀 없고, 그 의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의를 가진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예수께서 죽으심과 우리의 죄를 서로 교환하셨습니다.
주님의 피와 우리의 더러운 죄를 맞바꾸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친교를 맺을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균형을 이루는 자가 된 것입니다.
● 묵상 : 죄 용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주님처럼 완전한 자가 된 것입니다.
단지 죄를 용서받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주님처럼 완전한 자가 된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자가 된 것은 아니지요.
주님을 믿은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허물과 죄의 습관들을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말하면 허물과 죄가 있음에도 전혀 없는 완전한 자로 여김 받는 것입니다.
의인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주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교환하고 맞바꾸셨기 때문입니다.
7. 그의 살아나심으로 구원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10절).
주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완전한 의를 가진 자로 여김 받았으니,
주의 다시 살아나심으로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 사랑을 가지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으니,
주님을 찾고 부르는 자들을 얼마나 더 간절하게 살리려 하시겠습니까?
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도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데,
우리가 주님과 화목 된 자로서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갖고 누리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마땅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 묵상 :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그 영광의 소망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 영광의 소망을 가진 자를 주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내가 진실로 그 소망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말로는 천국의 소망을 가졌다면서 사는 것은
이 땅의 것을 얻기 위해서만 살아간다면 천국의 소망을 가졌다는 말이 거짓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을 통해
당신이 주님을 사랑하며 소망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 기도제목
1.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건강하고 신실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이루어
영광의 소망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3. 장차 영광을 누릴 그 약속을 바라보며
환난 중에도기뻐하며 즐거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4.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이 은혜 속에서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