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약속의 자녀가 참 하나님의 자녀(로마서 9:1~24)
* 본문요약
바울은 자신의 마음에 큰 슬픔과 고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육신의 형제와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그가 그리스도에게서 저주를 받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원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실로 많은 특권을 가졌고 심지어 예수께서 그들에게서 나오기까지 하셨으나
이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된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녀들 중에서
약속의 자녀인 이삭과 야곱을 각각 선택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하신 자와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강퍅케 할 자를 강퍅케 하십니다.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을 가지고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을 만들 듯,
하나님께서 어떤 이는 귀한 그릇으로, 어떤 이는 천한 그릇으로 쓰실 권한을 갖고 계십니다.
또 진노의 그릇에 대하여도 멸하기를 오래 참으시고 관용을 베푸셨으며,
영광 받기로 예비 된 그릇에게는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그릇이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 중에서 택하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찬 양 : 214장(새 270)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434장(새 384)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 본문해설
1. 동족 유대인을 향한 바울의 아픔(1~5절)
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내가 참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노니
2) 이는 곧 내게 큰 근심이 있다는 것과,
내 마음에 그치지 않는(끊임없는) 고통이 있다는 것이라.
3) 나는 내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그들은 내 동족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과 영광과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으며,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 양자 됨(4절) :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과 언약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셨고,
하나님의 양자의 자격을 가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 언약들, 율법, 약속(4~5절)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셨고,
그 언약의 증거로 모세에게 두 돌판(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언약(약속)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메시야)가 그들에게서 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그들에게서 예수께서 나셨습니다.
2. 하나님의 선택과 기각(6~13절)
6)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파기된, 실패로 돌아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들이라고 해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8) 이것은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참 자녀)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내년 이맘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98:10)라고 하신 것이라.
10)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시려고
12) 리브가에게 이르시기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라고 하셨나니
13) 이것은 성경에 기록되기를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말 1:2,3)
라고 하신 것과 같으니라.
3.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선택(14~18절)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출 33:19)라고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기를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능력을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출 9:16)라고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14절) :
바울은 예상되는 반대 질문을 제시하고 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논증해갑니다.
당시 ‘디아트리베’라는 수사학을 빌린 교육법입니다.
여기에서는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선택받는 것과 선택받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결정하신 것에 대하여
사람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는 것이냐’
하고 질문하는 것을 예상하고 바울이 이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논증해갑니다.
- 원하는 자(16절): 투 셀론토스
‘원하는 자’에 해당하는 ‘투 셀론토스’는
‘의지하는 자, 욕망하는 자’, 또는 ‘의지하는 것, 욕망하는 것’을 뜻합니다.
새번역성경에서는 ‘사람의 의지’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이 바라고 원하는 욕망을 품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얻기 위해 인간의 의지로 스스로 계획하고 노력하여 얻으려는 것을 뜻합니다.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의지와 계획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 달음박질하는 자(16절) : 투 트레콘토스
‘달음박질하는 자’에 해당하는 ‘투 트레콘토스’는
‘열심히 노력하다, 무엇을 얻기 위해 힘을 쓰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아무리 원하고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 강퍅하게 하시느니라(18절) :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죄악의 삶을 살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는 뜻.
4. 토기장이의 비유(19~24절)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책망)하시느뇨,
누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할 수 있다는 말이뇨?”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시려고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24) 이 긍휼의 그릇은 바로 우리들이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 천히 쓸 그릇(21절) :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바로 왕을 통해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그 이름을 세상에 알리셨고,
바벨론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에게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이처럼 그 자신도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으로 멸망 받을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행하려 하시는 일의 도구로 사용되는 자를 가리켜
바울이 ‘천한 그릇’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귀히 쓸 그릇(21절) :
귀한 그릇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귀한 그릇이고,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귀한 그릇입니다.
- 진노의 그릇(22절)
진노를 당할 자의 육체, 멸하기로 준비된 자, 영원히 멸망 당하기에 합당한 자,
영원히 멸망을 받아야 할 자로 주께서 정하신 자들이 진노의 그릇입니다.
- 오래 참으심(22절) :
진노의 그릇에 대하여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
오래 관용으로 오래 참으셨다는 뜻.
- 긍휼의 그릇(23절) :
‘긍휼의 그릇’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받아 구원받게 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들입니다.
* 묵상 point
1. 유대인들이 가졌던 특권들
바울은 동족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된 것에 대하여
그 마음에 끝없는 아픔과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가졌던 특권들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지를 정리합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양자의 자격을 주셨습니다(4절)
바울은 롬 8:15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래 하나님께 양자로 인정받은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호렙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땅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양자의 자격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2)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의 영광을 주셨습니다(4절)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관계가 성립되었습니다.
그 후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것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자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 된 자로서의 직분과 영광을 가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3) 그들에게 언약들과 율법을 주셨습니다(4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렇게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영광을 주시리라고 약속하시고,
그 대신 그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규범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율법이 창세기~신명기의 모세 5경에 있습니다.
4) 그들에게 예배를 주셨습니다(4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예배를 주셨고, 그들의 죄를 위한 희생제사를 주셨습니다.
그들이 이 예배와 희생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이 그들 앞에 열렸습니다.
5) 그들에게 많은 약속들을 주셨습니다(4절)
노아의 홍수 후에 무지개를 통해 주신 약속과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들을 포함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수없이 많은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 중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이 그들을 통해서 메시야가 나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6) 그들은 참으로 훌륭한 신앙의 조상들을 둔 자들입니다(5절)
그들은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엘리야, 예레미야 등
수없이 많은 훌륭한 선조들의 후손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참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7)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나셨습니다(5절)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바로 그들 이스라엘 백성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2. 바울의 아픔과 고통 ➠ 우리가 가져야 하는 아픔
1) 바울의 아픔과 고통(1~3절)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런 엄청난 특권을 가졌던 바울의 동족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된 것에 대하여
그는 마음에 끝없는 아픔과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난 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주께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을 때에 천국을 경험했던 그로서
그의 동족이 이제는 그 구원의 대열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큰 고통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 본래 하늘의 복을 가졌던 자들이 이제 저주의 백성이 되었다(4~5절)
본문 4~5절에 언급한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주시리라 약속하신 모든 하늘의 복이
본래 구약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이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알았고,
어떻게 해야 구원받게 되며, 구원받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은혜와 특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저주받은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3) 구원의 길을 아는 자가 겪는 고통
바울은 그의 동독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저주받은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에
그의 마음이 마치 뼈가 녹는 듯한 큰 아픔 끊임없이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그의 동족에 대하여 이런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것은
그가 구원의 기쁨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도 알고,
그 구원의 길을 걷지 않는 자가 당하게 될 멸망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도 잘 알기에
바울은 그의 동족 유대인을 위해 큰 고통을 겪습니다.
바로 이 아픔이 그로하여금 유대인들로부터 그렇게도 핍박을 받으면서도
항상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도를 하게 했습니다.
● 묵상 :
바울이 그의 동족에 견딜 수 없는 아픔을 느낀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대하여 이런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 친지, 주변 동료들을 두고 이런 깊은 고민과 아픔을 느껴야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용기와 결심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 궁핍한 자보다 믿음 없는 자를 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여기에서 복음을 증거하려는 열망이 일어나게 됩니다.
3. 참 이스라엘 : 약속의 자녀, 택하심을 받은 자
1) 하나님의 백성의 두 조건 : 약속의 자녀, 택하심을 받음(6~13절)
아브라함의 두 자녀 이삭과 이스마엘 중에서 이삭을 선택하셨고,
이삭의 두 자녀 야곱과 에서 중에서 야곱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을 선택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권세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중요한 두 가지를 요약합니다.
①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라야 한다는 것,
②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녀들이었고,
또한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2) 이제는 이스라엘의 칭호가 그리스도인에게로 옮겨졌습니다(24절)
그런데 이제 이 두 가지가 모두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로 옮겨졌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구원하시리라는 새로운 약속이 주어졌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시리라는
새로운 선택의 기준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예수님의 공동체가 참 이스라엘이 됩니다.
3) 우리도 기각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이었던 유대인이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말씀을 존중하지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싫어하며,
기도와 찬양과 예배드리는 모든 신앙의 행위들을
마음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인 것이 되게 한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4. 사람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되는 것
1)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16절)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일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자신의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구원의 문제는 결코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문제는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 계획을 할지라도 되는 것이 아니고,
달음박질하듯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의 길을 열어주셔야만 이루어집니다.
2) 종교적인 수행(修行)으로 되지 않습니다.
많은 종교들이 복잡한 마음을 정화하는 방법으로 수행(修行)을 합니다.
명상을 하거나 천천히 걸으면서 마음을 닦고, 또는 수백 수천 번 절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마음이 진정되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께로부터 만 얻을 수 있습니다.
5. 하나님의 절대 주권
1)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18절)
옛날 조선시대에도 임금이 소위 ‘권도(勸導)’로 명령하는 것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습니다.
단어의 뜻은 임금이 신하를 설득하여 이끈다는 말이지만,
실상은 왕이 자기의 권한으로 명하는 것이었기에
신하들은 왕권으로 명하는 것에 반대하지 못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긍휼히 여기를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강퍅케 할 자를 강퍅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는 자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께서 심판하리라 하는 자를 심판하십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당신이 만일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에 반항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그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절대주권을 믿는다면서 그 말씀을 존중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다면
그 고백이 모두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말씀을 경청하는 것과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2)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21절)
하나님께서 그 절대주권으로 사람을 선택하여 쓰십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진노의 그릇으로, 즉 심판하실 자로 정하신 자도 쓰실 때가 있습니다.
출애굽 때에는 바로 왕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그 이름을 온 세상에 알리셨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할 때에는
바벨론을 통해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징벌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 멸망 받은 자로 정해진 자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질 때
이를 가리켜 ‘천한 그릇’이라 했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때
이를 가리켜 ‘귀한 그릇’, 또는 ‘긍휼의 그릇’이라 했습니다.
➠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의 해석에 주의할 점
많은 사람들이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은 귀한 그릇이고,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은 천한 그릇이라 해석합니다만 잘못된 해석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성공한 듯 보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라면 천한 그릇이고,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쁨으로 섬기는 자라면 귀한 그릇인 것입니다.
3) 악한 자에 대하여 오래 참으며 관용하시는 것에 대한 주권(22~23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세상이 악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왜 악이 더 기승을 부립니까?”하고 질문합니다.
이에 대하여 본문은 이 또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해있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의 그릇에 대하여 당장 심판하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관용으로 오래 참으셔서
그들 또한 할 수만 있다면 회개하고 구원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용이 한없이 계속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관용이 끝이 나면,
그동안 참으셨던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한꺼번에 쏟아질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주님의 심판날입니다.
언젠가 우리 앞에 그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택함 받은 자들에게는 큰 영광이 부어지는 날이 됩니다.
* 기도제목
1. 우리도 주변에 믿음 없는 자들을 향하여
바울이 가진 아픔을 가지고 기도하고 전도하게 하옵소서.
2. 우리도 버림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고
늘 긴장된 마음으로
주께서 명하신 영적인 질서 안에
항상 머무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으로 세우신 구원의 길에
항상 서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4.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을 왕의 명령으로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5. 진노의 그릇이 아니라
귀히 쓰임 받는 긍휼의 그릇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