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레위를 부르심, 새 포도주와 새 부대(누가복음 5:27~39)
* 본문요약
예수께서 레위라 하는 세리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자 많은 세리들이 함께 먹고 마십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다며 비난합니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금식을 하지 않는다며 비난하자
예수님은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을 하지 않으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때는 금식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417장(새 295) 큰 죄에 빠진 나를
204장(새 288)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 본문해설
1. 세리 레위를 부르심(27~28절)
27) 그 후(문둥병자를 고치신 일이 있은 후)에 밖으로 나가셔서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하시니
28) 레위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르니라.
- 세리(27절) : 로마에 고용되어 유대인들의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들
- 레위(27절) :
마가는 레위가 알패오의 아들이라고 하고,
마태는 레위가 예수님의 제자인 마태라고 증거합니다(마태복음 9:9)
2. 죄인들과의 식사에 대한 논쟁(29~32절)
29) 레위가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자
많은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함께 앉았는지라(기대어 누워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 앉았는지라(29절) :
서로 옆 사람의 허벅지를 베고 옆으로 누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음식을 먹을 때 항상 이런 방식으로 먹었습니다.
- 함께 먹고 마시느냐(30절) :
당시에는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친구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니
죄인들과 친구로 지내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금식에 대한 논쟁(33~35절)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그리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까?”
34)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 잔치에 초대된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는 그 초대받은 손님들을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이니, 그날이 되면 그들도 금식할 것이니라.”
- 금식(33절) :
금식은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만 금식하는 것으로,
구약시대에는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만 금식하고,
바벨론 포로 후에는 1년에 4번 금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인은
자기들의 신앙을 자랑하기 위해 1주일에 두 번 금식했습니다.
4.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36~39절)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낡은 옷을 깁기(꿰매기) 위해 새 옷을 찢어서
그 조각을 떼어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만 찢어 못쓰게 할 뿐이고,
또 새 옷에서 잘라낸 조각이 낡은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낡은 가죽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가죽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새 포도주를 찾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포도주를 마신 사람은 ‘묵은 것이 더 좋다’하고 여기기 때문이라.”
-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37절) :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새 포도주가 발효하여 낡은 가죽 부대를 터뜨리게 됩니다.
그러면 포도주는 쏟아지고 가죽 부대도 못 쓰게 되므로
반드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발효를 이기고 터지지 않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새 포도주를 찾는 자가 없나니(39절) :
묵은 포도주에 길들여진 사람은 항상 묵은 포도주만 찾듯
예수께서 주신 복음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은
과거의 질서인 율법에만 얽매여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묵은 것이 더 좋다고 여긴다(39절) :
옛것에 집착하며 새로운 것을 배척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기쁨과 감사의 식탁 공동체와 예배
1) 세리 레위를 부르신 예수님(27절)
세리는 로마 정부로부터 세금을 걷는 권한을 위탁받은 관리를 가리킵니다.
로마 정부는 이들에게 급료를 주는 대신에
로마가 요구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액수를 징수하여 차액을 생활비로 사용하도록 했는데,
일부 세리들이 그것을 과도하게 징수하여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창기보다 못한 자로 취급받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세리인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가 비록 창기보다 못한 죄인 세리였으나,
그의 마음속에 주님을 향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을 즉시 따라간 레위(28절)
예수께서 부르시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세리였으므로 많은 돈이 있었겠지만
레위는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이 땅의 것이 아무리 많아도 주께서 주시는 복이 더 크다는 것을
레위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는데, 그깟 돈 때문에 그 영원한 복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3)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베푼 레위(29절)
세리인 레위(마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 예수님을 위하여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때 모인 사람들은 레위 마태의 동료인 세리들과 죄인들이었습니다.
이 잔치는 우리가 흔히 참여하는 그런 잔치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잔치를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4) 레위의 잔치가 메시야 잔치가 되었습니다.
잔치를 처음 베푼 사람은 레위 마태입니다만, 예수께서 그 잔치에 함께하시는 순간
그 잔치는 구원 받은 백성들이 함께 누리는 천국의 잔치(메시야 잔치)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죄인들과 더불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 온 친구들처럼
서로 허벅지를 베고 옆으로 누워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잔치는 더 이상 레위가 베푼 잔치가 아닙니다.
예수께로부터 죄를 용서받은 자들이
그 기쁨과 감사를 함께 나누는 천국의 잔치, 메시야 잔치인 것입니다.
5)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바로 이 잔치입니다 : 메시야 잔치
메시야 잔치는 마지막 때에 심판을 통과한 자들이 주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잔치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왕의 혼인잔치로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시고, 그 왕의 신부들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마지막 잔치를 왕의 혼인잔치에 비유하신 이유는
인간 세상에서 이보다 더 크고 즐거운 잔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드릴 때마다 마지막 날 하나님 나라에서 경험하게 될
‘메시야 잔치’를 미리 앞당겨서 경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우리는 장차 누리게 될 이 기쁨의 일을 마치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확실한 것으로 여깁니다.
죄 많은 우리가 천국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께 기뻐하며 노래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 묵상 :
이 기쁨의 잔치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성도들의 성만찬과 공동식사를 통해서 계속됩니다.
우리가 하는 성만찬과 예배 후에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공동식사도
이들이 했던 것과 같은 기쁨과 감사의 잔치입니다.
이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주님의 나라에서도 함께 그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만찬과, 예배 후의 공동식사를 기쁨으로 참여하십시오.
(지금은 잠시 코로나 사태로 예배 후 공동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코로나 사태가 해결되면 다시 성찬식과 예배 후 공동식사에 참여하십시오.)
그리고 예배드릴 때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뻐하며 주께 감사하십시오.
2.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1) 바리새인들의 비난(30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어찌하여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하느냐고 비난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를 가리켜
스스로 의인이라 여기는 자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남들보다 내가 조금 나은 의인이라 여기는 자들은
그 작은 의를 자랑하고 과시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깁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2) 본래는 굳은 믿음을 가졌던 바리새인들
하지만 바리새인의 의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약 167년 전에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상을 세우고 돼지고기로 제물을 바치게 했으며,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어기도록 강요하고는,
이 명령을 어기면 아주 참혹하게 처형을 했습니다.
이때 광야로 도망하여 믿음을 지킨 자들이 쿰란파이고,
그 죽음과 당당하게 맞서며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자들이 바리새인입니다.
3) 변질된 바리새인들의 거짓된 의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가 되면서
백성들을 탄압하는 악의 집단으로 변질이 됐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였으므로
바리새인들 역시 로마는 식민지 백성에 속합니다만,
로마는 식민지 백성 중에서 존경받는 자들에게 일정부분의 권력을 주어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바리새인들이
로마로부터 권력을 받게 되면서부터 바리새인들이 변질됩니다.
권력의 맛을 본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새롭게 만들거나 강화시키고는
자기들이 말하는 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죄인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율법을 구원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멸망의 도구가 되게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새롭게 만들거나 강화시킨 율법에 대하여는
예수께로부터도 인정받을 정도로 철저하게 지켰으나,
그 율법이 자기들이 권력을 위해 임의로 만든 것이었으므로 거짓된 것이었습니다.
3) 죄인을 불러 의인 삼으시는 예수님(31~32절)
그러나 바리새인이 자랑하고 과시하는 의는
예수께서 정하신 기준에는 형편없이 모자라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거짓된 율법인데다,
하나님만큼 완전한 의를 가진 자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자기들의 의를 자랑해도 하나님의 기준에는 형편없이 모자랍니다.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의를 이루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걸어서 달에 가겠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하신 의를 얻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의에 이를 수 없으나,
주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자신의 완전하신 의를 선물로 주시니
우리가 하나님의 수준의 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죄인을 불러 의인 삼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 묵상 : 회개하고 주를 믿는 자들에게 주님의 의를 선물로 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겠다고 고백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의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요 3:16).
그래서 지금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 백성 되기를 원하는 이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그들의 죄를 용서받은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잔치를 베풀고 계신 것입니다.
● 부록 : 인터넷 논란, 죄인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
2013년경에 어느 교회의 홈페이지에서 동성애자들 까페를 개설했는데
교회가 이를 삭제한 일을 두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서울대 종교학과를 나온 어떤 학생이, 자신이 성경을 볼 때 예수님은
오히려 동성애자들과 함께하며 피킷을 들고 데모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고,
인터넷상에서 그를 지지하는 수많은 댓글이 올라왔습니다.
1)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예수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32절)
만일 예수님이 오늘날 이 땅에 다시 오신다면 물론
그의 말처럼 동성애자들과도 친구로 지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본 바와 같이 그들 역시 주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주께 자신의 죄의 질병을 치료해주시기를 간구하는 자들이라야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회개시켜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으면
주께서 그들과 함께 기쁨의 잔치에 함께하십니다.
2) 그러나 계속 죄 가운데 있기를 원한다면 주님과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성애를 계속 진행하면서, 죄를 계속 범하면서 주님과 친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바로 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죄가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주님과 친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과 친구가 되기를 원하는 자들은
주님 앞에 와서 “내가 죄인이로소이다”하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그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구하여야 합니다.
● 묵상 :
자기의 죄를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결단코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없으나,
주님 앞에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들은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기쁨으로 맞으십니다.
3.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1) 예수께서 새롭게 여신 새 시대 : 성령을 통한 기쁨의 시대
예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새 시대는 은혜의 시대입니다.
억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로 스스로 자원하여 말씀을 지키는 시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는 기쁨을 이 땅에서부터 누리도록 하는
새로운 기쁨의 시대를 열기 위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기쁨은 죄 사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주께 주님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주께서 주님의 의와 함께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을 내려주십니다.
2)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37~38절)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담으면 포도주가 발효하여 낡은 부대가 터지고 맙니다.
그러면 포도주도 버리고 낡은 부대도 못쓰게 됩니다.
또 낡은 옷을 깁기 위해 새 옷을 잘라 조각을 떼어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새 옷 조각이 낡은 옷을 당겨 낡은 옷도 버리고 새 옷도 버리게 됩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다는 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새로운 은혜의 질서는
결코 과거의 낡은 율법주의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없이 서로 자기들의 의를 자랑하고 과시하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멸시하는 율법주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사랑은 오직 예수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예수께로부터 새로운 의를 얻는 것으로만 주어집니다.
3)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새 포도주를 찾는 자가 없나니(39절)
그러나 묵은 포도주를 마신 자들은 새로운 포도주를 찾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묵은 포도주는 주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세상의 질서만 찾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낡은 질서인 율법주의를 통해 이미 자신들의 자리를 확보한 자들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돈과 권세를 가졌습니다.
이들이 이러한 기득권을 유지하려면 율법주의라는 낡은 질서가 계속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그것이 비록 메시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질서가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 합니다.
세상의 기쁨을 먼저 맛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먼저 회개를 하고 주의 영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세상의 기쁨은 회개 없이도 곧바로 주어지니 참으로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기쁨을 얻은 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묵은 포도주를 맛본 자는
새 포도주를 찾지 않는다는 것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 묵상 :
하늘의 생명, 하늘의 기쁨을 얻는 데에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므로
시간도 걸리고 갈등과 아픔도 겪어야 합니다.
또 눈에 보이는 육의 세계의 도전을 이겨야만 하는 숙제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거듭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계속 말씀 묵상과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와 신령한 생명을 공급받아야만 합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 이 세상의 일을 크게 느끼게 만들어서
우리를 그 은혜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하려 합니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런 은혜의 삶을 잃지 마십시오.
* 기도제목
1.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
주님의 의를 선물로 받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2. 주께서 죄인은 사랑하시되
죄는 미워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여
날마다 묵상과 기도로
죄의 때를 씻어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3.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말씀을 거부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4. 우리는 오직 주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을 얻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