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열두 제자를 부르심, 네 가지 복과 화(누가복음 6:12~26)
* 본문요약
예수께서 산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후
제자들 중에 열두 제자를 택하여 사도라 칭하십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서시니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기 위해 수많은 무리가 예수께로 몰려옵니다.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주님을 인하여 미움과 욕을 받는 자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는 화가 있습니다.
찬 양 : 505장(새 452)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507장(새 455)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 본문해설
1. 열두 제자를 부르심(12~19절)
12) 그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올라가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가운데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열심당원)으로 불리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장차 예수님을 파는 배반자가 될 가룟 유다라.
1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시니
거기에 제자들의 큰 무리가 있었고, 또 온 유대와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사람들로 인하여 큰 무리를 이루었더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또 자기들의 병을 고치고자 하여 몰려온 자들이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통을 당하던 자들도 고침을 받았고,
19) 온 무리가 예수님을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2. 네 가지 복(20~23절)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너희 지금 굶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너희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이 악하다 하며 너희를 내치고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기뻐하고 뛰놀라(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도 선지자들에게 이같이 하였느니라.
-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20절) : 프토코스
‘가난’에 해당하는 ‘프토코스’는 구걸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절대적인 빈곤상태에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20절) :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지금 임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 땅에서부터 이미 천국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 굶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21절) : 페이논테스
‘굶주린’에 해당하는 ‘페이논테스’는 현재분사로,
일시적인 굶주림이 아니라 항상 굶주리고 있는 지속적인 상태를 나타냅니다.
영적인 것에 항상 주려 있어서
항상 주님의 자비와 용서와 은혜를 갈망하며 사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 배부름을 얻을 것이요(21절) :
이 땅에서의 배부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배부름과 충만함을 얻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21절) :
자신이 주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슬퍼하며 주님 앞에서 우는 자를 가리킵니다.
- 웃을 것임이요(21절) :
마태는 위로를 받을 것이라(마 5:4)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웃음이나 위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웃음으로,
지금부터 영원히 주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 가운데 있게 될 것임을 뜻합니다.
- 그날에는 기뻐하고 뛰놀라(23절) : 스키르테사테
‘뛰놀라’에 해당하는 ‘스키르테사테’는
여기저기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최상의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23절) :
이 땅에서 주님을 인하여 빼앗기고 욕을 먹고 버림을 당하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세세히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들에게는 큰 상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4. 네 가지 화(24~26절)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굶주리게 되리라.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며 너희를 좋게 말할 때에는 너희에게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 화 있을진저(24절) :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재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뜻이나,
여기에서의 뜻은 이런 자들은 이미 지옥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 애통하며 울리로다(25절) :
몹시 애달프고 슬퍼하게 되리라, 아주 비극적인 일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
- 배부른 자(25절) : 엠페플레스메노이
‘배부른 자’에 해당하는 ‘엠페플레스메노이’는
‘만족하다’는 뜻으로, 세상의 것으로 이미 만족한 상태가 되어
주님의 은혜를 찾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 웃는 자(25절) :
여기서 웃는 자의 웃음은 세상에 속한 것과
육신의 쾌락을 즐기기는 데서 오는 죄인의 웃음입니다.
오직 육신의 만족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자,
이 세상 것을 얻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26절) :
세상 사람들의 달콤한 말에 비위를 맞추며 사는 자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듣기 위해 살아가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 묵상 point
1. 열두 제자를 사도로 세우신 예수님(12~16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택하시기에 앞서 산에 올라서 밤새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그 제자들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함께 참여할 자로서
그 중심에 서게 될 사도들을 예수님 제자들의 무리 중에서 택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만,
그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제자들을 택하신 일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으로 이루신 그 귀한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알려야 할 사명을 가진 자들이
바로 그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로 택하심을 받은 이들은
장차 그 사역을 담당하며 그에 합당한 어려움과 고난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당하는 그 모든 어려움과 고난은
그들이 받게 될 영광이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 묵상 : 우리도 모두 주님의 일꾼으로 세움 받은 자들입니다.
사도는 아니지만, 주께서 우리에게도
하나님 나라 구원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어린이 교회학교 교사, 성가대원들, 제직들, 구역이나 셀 모임의 인도자들,
전도와 선교의 사역에 참여하는 이들, …
모두들 그 사역에 참여하는 동안 이런저런 어려움을 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받게 될 영광에 비하면 이들이 받는 어려움은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신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그 일에 충성된 일꾼이 되십시오.
2.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
1)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임합니다(17~19절)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과 함께 임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나타납니다.
주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죄 사함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그 능력으로 자신의 병이 나을 줄 믿은 자들에게서
질병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문둥병이 치유되고, 손 마른 자의 손이 펴졌으며,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중한 열병이 고쳐졌습니다.
2) 언제나 동일하신 주님
그때 이러한 역사를 이루신 주님이 오늘날에도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같은 역사가
우리에게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존귀히 여기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 내 안에 있는 죄의 습관들이 고쳐집니다.
악한 영에게 억압되었던 죄의 중독증들이 치유됩니다.
● 묵상 :
말씀을 묵상할 때 주께서 나는 다스리고 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주께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경험합니다.
**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저주 **
주께서 내리시는 모든 복과 저주는 결국 우리의 마음의 열망과 시선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은 마음의 품은 열망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이 열망하는 것을 계속 바라보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서 신령한 새 생명을 가진 자는
반드시 그 열망이 인도하는 곳을 바라보고 그곳을 향해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의 본문에서 이것을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저주로 말씀하십니다.
3. 네 가지 복 :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마태복음에서는 팔복을 말하지만,
누가복음의 본문에서는 가난하고 주리고 울고 미움을 받는 자,
이렇게 네 가지 복을 말합니다.
‘복이 있나니’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와 연결됩니다.
이런 자들은 이 땅에서부터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니 복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이미 하나님의 돌보심과 위로하심을 받고 살아가니 복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영원히 하나님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니 복이 있습니다.
1) 너희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20절)
마태복음에서는 가난하다는 것에 ‘심령’을 붙여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라고 했는데
여기 누가복음에서는 구걸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절대적인 가난 상태에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마태복음은 여기에 ‘심령’을 붙여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한 것은
가난한 자가 절박한 마음으로 구걸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주님을 간절하게 찾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그냥 단순하게 ‘구걸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지독한 가난에 처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를 위해 일하다가 가난해진 자들에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도저히 부자가 될 수 없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하나님 대신 로마 황제를 섬기게 했습니다.
장사를 하려면 로마 황제의 우상 앞에 절을 해야만 합니다.
이런 시대였으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가는 가난한 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믿기 위해 구걸을 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상태가 되는 것을 각오하는 자들,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주님을 믿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2) 너희 지금 굶주린 자(항상 굶주린 상태에 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21절)
가난하면 당연히 굶주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굶주린 자’는 ‘가난한 자’와 같은 의미입니다만,
누가는 여기에서 ‘굶주림’이란 단어를 현재분사로 사용하여
계속해서 굶주린 상태 있는 자들,
항상 굶주린 상태에 머물러 있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믿기 위해 부자가 되는 길을 포기한 사람들,
주님을 믿기 위해 웃을 일을 포기한 사람들,
주님을 위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길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들은 주님을 위해 세상에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주님을 믿는 일을 포기하고
황제숭배의 자리에 나아가면 돈벌이를 얼마든지 할 수 있으나,
주님을 믿기 위해 끝까지 굶주린 상태를 고집하는 자들, 이런 자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을 내리십니다.
3) 너희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21절)
여기에서 우는 것은 자기의 죄로 인해 우는 자를 뜻합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를 범한 자인지를 깨닫고,
자기의 죄를 아파하며 슬피 우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구걸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굶주린 상태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죄의 문제를 더 슬퍼하는 자,
이렇게 자기 죄를 아파하며 애통해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주님 앞에 자기 죄를 슬퍼하며 고백하는 자는
그 죄를 용서받고 이 땅에서부터 천국 백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는 주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웃는 자가 됩니다.
4) 인자로 말미암아 따돌림과 욕을 당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22절)
주님을 믿는 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악한 자라는 욕을 먹으며, 버림과 배척을 당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내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인하여 박해를 받는 것은 가장 확실한 천국 시민의 증거입니다.
➠ 그날에는 기뻐하고 뛰놀라(23절)
‘뛰놀라’에 해당하는 ‘스키르테사테’는
여기저기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최상의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거나, 욕을 먹거나,
버림을 당할 때에는 기뻐하고 뛰놀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기까지 주님을 믿고 섬겼으므로
이미 천국 백성으로서의 증거를 가진 자입니다.
믿음을 버리면 편안할 줄 알면서도 편안함을 버리고 주님을 택하였으니
이미 천국 백성인 것입니다. 그러니 기뻐하고 뛰놀라는 것입니다.
● 묵상 : 더 큰 상을 사모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23절).
순교를 당한 자와 겨우 주일 출석만 하는 자가 같은 상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는 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은혜이겠지만,
천국에서 받는 상은 분명히 다릅니다.
같은 별이라도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같은 짐승이라도 쥐새끼의 영광이 다르고 사자의 영광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더 큰 상을 사모하는 자가 되십시오. 이 땅의 상은 금방 사라지고 없어지지만,
하늘나라에서 받는 상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4. 네 가지 저주 : 세상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버린 자들에게 저주가 있다.
그러나 세상을 얻기 위해 주님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저주가 있습니다.
주께 순종하기를 택하기보다 부유하게 되는 길을 택한 자들,
주께 순종하기보다 그들을 배부르게 할 만한 일을 택한 사람들,
주를 멀리한 대신 웃고 즐길만한 일을 택한 자들에게 저주가 있습니다.
➠ 화 있을진저
여기에 속한 자들은 이미 화가 그 사람 안에 임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미 지옥의 고통과 재앙이 이런 자와 함께합니다.
위의 네 복에 속한 자가 이미 이 땅에서 천국의 기쁨이 함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 네 화(禍)에 속한 자는 이미 지옥의 재앙에 속한 자입니다.
1)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부요한 자여(6:24절)
위의 가난한 자가 믿음을 위해 부요하게 되는 것을 포기한 자들인 것과는 반대로,
세상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 주님을 믿는 것을 포기한 자들입니다.
장차 누릴 천국의 기쁨 대신에
지금 이 땅에서 부자로 사는 것을 선택한 자는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즐거움을 위해 영원한 즐거움을 포기한 자들입니다.
두 생명 중에 오직 이 땅의 일에만 열망을 품고 있는 자, 이 땅의 것만 바라보는 자에게 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풍족하다고 만족해하며 하늘을 구하지 않는 자에게 더욱 화가 있습니다.
2)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6:25절)
배부른 자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며 사는 자를 뜻합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주님의 은혜를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주께 은혜를 달라고 구하지도 않고,
혹시 구한다고 해도 의례적인 기도일 뿐입니다.
갈급하지 않습니다. 지금이 배부르고 좋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여 주께 갈급한 마음을 잃어버린 자에게
화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러 자들은 마음에 열망하는 것과 시선이 땅에 있는 자들입니다.
3)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25절)
지금 웃는다는 것은 위의 배부른 자와 같은 의미입니다.
지금 만족하여 웃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주님 앞에 애통하며 회개해야 할 죄인이라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지금 애통하며 울어야 사는데, 웃고 있으니 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4) 화 있을진저, 너희 세상에서 칭찬 듣기만을 바라는 자들이여(26절)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며 좋게 말할 때에는 너희에게 화가 있도다”
이런 자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기만을 바라는 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서만 늘 신경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당장 세상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주께서 심판하신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먼 미래의 일이니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내 앞에 있는 자가 나를 어떻게 볼지가 더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자는 주께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주께서 싫어하실 만한 일이라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들은 주저 없이 행합니다.
그들이 듣고 싶은 소리는 세상 사람들의 칭찬하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는 이미 저주 속에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 묵상 :
주님을 택하기 위해 세상을 포기할 것인가, 세상을 얻기 위해 주님을 포기할 것인가,
이 두 길 중에 어느 길을 걸을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그 선택의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든지, 저주받은 자들이 되든지 할 것입니다.
당신은 어느 길을 가기를 원하십니까?
* 기도제목
1. 하나님 나라 능력이
말씀과 함께 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주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게 하옵소서.
2. 세상을 얻기 위해
주님을 포기하는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을 얻기 위해 세상을 포기할 수 있는
믿음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주께서 주시는 복이 가장 귀한 것임을 믿고
주의 복을 항상 구하고 찾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