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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큐티(수정)

교회와 성도에 대한 네 가지 비유(눅 6:39~49)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2.02.28|조회수192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교회와 성도에 대한 네 가지 비유(누가복음 6:39~49)

 

* 본문요약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고, 제자가 그 스승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스승이신 예수님을 통해 온전하여진 자는

    그 스승인 주님처럼 온전한 자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남의 눈에 티를 빼기 전에 먼저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빼내어야 합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듯,

    그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이 나고 그 마음에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이 납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처럼 망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찬 양 : 379장(새 204) 주의 말씀 듣고서

         382장(새 347) 허락하신 새 땅에

 

 

* 본문해설

 

1. 소경과 소경의 비유(39~40절)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그러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가 그 스승보다 더 나을 수 없으나

     온전케 되면 그 스승과 같이 되리라.

 

-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39절) :

    교회에 직분만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

    세상의 지혜를 가졌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뜻까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하나님 앞에 교만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결코 바르게 인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자기도 지옥의 자식이면서 어찌 남을 천국 백성이 되게 하겠느냐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 온전케 되면(40절) : 카테르티스메노스

    온전케 된다는 것의 헬라어 ‘카테르티스메노스’는 수동태 완료시제로,

    ‘수리되다, 회복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리되고 회복되어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2. 들보와 티의 비유(41~42절)

 

41)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겠느냐.

     외식하는 자여(위선자여)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정확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낼 수 있으리라.

 

- 티(42절) :

    조각, 파편, 대패밥 등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는 예배 의식에서의 실수처럼 구원의 문제와는 상관없는 작은 잘못을 의미.

 

- 들보(42절) :

    건물의 건축에 사용되는 큰 통나무 대들보를 뜻하는 것으로,

    여기에서는 우상숭배나 배교와 같이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할 만한 큰 죄를 의미합니다.

 

 

3. 나무와 열매의 비유(43~45절)

 

43) 못된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를 보면 그것이 좋은 나무인지 못된 나무인지 알게 되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그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마음의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 좋은 나무(43절) :

    무화과, 포도나무와 같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내는 나무

    구원에 이르는 길을 걷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 못된 나무(43절) :

    썩은 나무가 아니라 먹을 수 없는 열매를 내는 야생나무를 뜻하는 것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알지 못하고

    오직 이 세상의 일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4.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46~49절)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그는 집을 짓되 땅을 깊이 파고, 주초(기초)를 반석 위에 단단히 세운 사람과 같으니,

     홍수가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덮쳐도

     그 집이 잘 지어졌으므로 능히 흔들리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 없이 흙 위에(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그 집을 덮치매 집이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 홍수, 탁류(48절) :

    팔레스틴에는 여름에는 비가 없으므로 개울이 전부 모래로 되어 있으나

    9월에 비가 오면 그동안 말랐던 개울은 급류로 변하는 와디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은 마치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와디의

    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묵상 point

 

1. 첫째 비유 : 소경과 소경의 비유

 

 1)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39절)

 

    첫 번째 비유는 소경과 소경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소경이란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하는 자가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있다면

    그를 따르는 성도들도 함께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의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덕목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깨닫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옷차림새를 얼마나 깔끔하게 하고 다니느냐,

    말솜씨가 얼마나 좋으냐 하는 것은 그다음 일입니다.

    설교자가 말투가 거칠고 듣기 거북할지라도

    구원의 길을 바로 알고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설교자라 할지라도

    구원의 길이 바르게 증거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구원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바로 알고,

    또한 그 구원의 길에서 우리는 지금 어느 정도에 있는 사람들인지를 바로 알고 있어야

    그를 따르는 성도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목회자들을 향한 경고 :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이것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인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차치하고

    말씀과 예배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갖고 있으면서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바르게 인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엄중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이들은 자기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백성들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날의 경우에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에 백성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그 교회에서 나오는 엄청난 돈과 권세를 자랑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교회들이 부흥된 교회가 되기 위해 온 힘을 다 쏟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성도들의 심령은 악한 영에 억눌려

    심한 갈등과 혼란 속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신천지 같은 엉터리 사교 집단들이 교회를 만만하게 보는 것도

    바로 현재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의 토양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 묵상 :

 

       아무리 능력 있는 설교자라 할지라도

       구원의 길이 바르게 증거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목회자 자신이 여전히 거듭나지 않은 육의 생명만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전하는 설교가 아무리 화려한 언변과 지식을 자랑한다고 할지라도

       그의 설교를 듣는 성도들을 영의 세계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3) 성도들을 향한 경고 : 그러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이 말씀은 목자들을 위한 경고일 뿐만 아니라 일반 평신도를 위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구원의 길을 잘 알지 못하는 소경과 같은 자를 따라가는 자들도

    함께 구덩이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같은 헛되고 교만한 자들이

    자신이 능력 있는 자라며 자랑을 할지라도

    주께서 주신 구원의 길을 바르게 인도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그 사람뿐 아니라,

    그를 따르는 자들도 함께 멸망의 구덩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에만 갇혀 있는 목회자를 따라가는 성도들 역시

    땅에 속한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도 감동이 있고, 나름 은혜받았다는 느낌도 가질 수 있겠지만

    그 안에 영의 생명이 있느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4) 그러나 온전케 되면 그 스승과 같이 되리라(40절)

 

    영의 생명을 주목하며 사는 자, 그래서 이 땅에서부터 천국 백성으로 인정을 받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누리며 살아가는 자는

    그 스승과 같이 온전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의 생명에 담긴 주님의 신령한 생명이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서

    주님처럼 온전한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주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2. 둘째 비유 : 들보와 티의 비유(41~42절)

 

 1) 들보와 티

 

    둘째 비유는 들보와 티의 비유입니다.

    여기에서 들보는 경복궁에 있는 커다란 통나무 기둥 같은 것을 말하고,

    티는 각목에서 조금 삐져나온 나무 조각이나 대패밥과 같은 것입니다.

 

    들보는 구원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죄를 의미합니다.

    위의 소경과 소경의 비유에서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하는 지도자가

    우상숭배나 살인과 같이 지옥에 떨어질 만한 무서운 죄를 범한 것이 들보이고,

    티는 예배 의식에서 순서를 빼먹은 것과 같이 구원과 관계없는 작은 잘못을 의미합니다.

 

 2) 구원의 길을 잃어버린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경고

 

    들보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 뜰에 환전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장사터가 되게 하여

    예배의 자리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야말로 구원의 길을 잃어버린 들보의 죄를 범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갈릴리 백성들이 사소한 교회의 규칙을 범했다며

    그들을 비난하고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은 구원의 길을 망가뜨리는 들보와 같은 훨씬 큰 죄를 저지르고 있으면서,

    갈릴리의 가난한 자들이 자기들이 정해 놓은 정결 예식의 사소한 것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을 빗대어 들보와 티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 묵상 : 영을 알지 못하니 엉뚱한 것에만 집착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Z

 

       교회가 신령한 영의 세계를 알지 못하면

       이렇게 엉뚱한 것만 집착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됩니다.

       내용은 없고 겉만 번지르르한 속 빈 강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면 

       영의 세계에 있는 자들을 도리어 핍박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 네가 밝히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42절)

 

    이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남을 다스리기 이전에

    자신이 먼저 거듭난 자라 되라는 것입니다.

    먼저 주 앞에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자신이 먼저 주님의 백성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영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바르게 파악하여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묵상 :

 

    가령 교회 안에 각 그룹 간에 사소한 감정대립 때문에

    서로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께 바른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다면,

    서로를 향하여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놔둔 채

    서로의 눈에 있는 티를 빼지 않았다고 싸움을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 예배당 앞의 꽃꽂이가 잘못되었다든지, 화분 위치가 어떻다든지,

    예배 순서가 잘못되었다든지 하는 것 때문에 기분 나빠 예배를 망쳤다면,

    이 역시 자기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티를 빼지 않았다고 시비를 거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일들이 교회를 마귀의 도구가 되게 합니다.

 

    혹 내가 나의 사소한 감정싸움이나 대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망가뜨리는 일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삶의 자리를 살펴보십시오.

 

 

3. 셋째 비유 :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의 비유

 

    들보와 티의 비유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은 외면하고,

    예배의 순서나 교회의 전통과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만 빠져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책망하신 예수님은,

    이어서 좋은 나무와 좋은 열매의 비유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참된 신앙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1) 못된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좋은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43절).

 

    셋째 비유는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의 비유입니다.

    여기에서 나무는 사람을 가리키고,

    열매는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구원의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기만 하면

    천하의 못된 자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로 말하자면 못된 나무라 하더라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기만 하면 좋은 열매가 맺어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이 허락한 자들만 예배를 드리도록 하여

    그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이란

    그 사람이 좋은 나무가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서 주께로부터 정결한 사람이라 인정을 받아야만

    구원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아 좋은 나무가 되어야 구원이라는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좋은 열매 : 주께서 주신 새로운 생명,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거룩한 본성

 

    좋은 열매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생명을 뜻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후로 우리가 천국에 가야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을

    이 땅에서부터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생명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거룩한 본성이 생깁니다.

    이 거룩한 본성을 가진 자는 거룩한 말씀을 들을 때에는 기쁨이 일어나고,

    말씀에 어긋나게 살면 갈등과 번민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이 거룩한 본성이 없는 자는 그저 세상의 일로 기쁨을 느낄 뿐입니다.

    돈이 생긴다면 좋을까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려줘도 좋은 걸 모릅니다.

    혹시 감동은 받을지 몰라도 간절한 갈망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이런 간절한 갈망이나 거룩한 본성이 있는지의 여부로

    내가 좋은 열매를 가진 천국 백성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바른 신앙을 가진 자인지,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를 알려면

    내 안에 좋은 열매가 있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3) 선택 이전에 믿음의 문제 : 나무는 각각 그 열매를 보면 아나니(44절).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본성을 갖지 못한 자는

    결단코 구원에 이르는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가려면

    내가 전에 가졌던 목표나 인생의 방향이 다 바뀌고 수정되어야 하는데,

    참된 믿음이 없는 자라면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손에 다이아몬드를 가진 자가 것을 버리고 500원짜리 동전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위기에 있는 자가 그 500원짜리 동전을 가져야만 살아날 수 있다면

    그 비싼 다이아몬드라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순서가 절차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새롭고 거룩한 본성이 채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나도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고 선택하는 자가 되어야만

    천국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묵상 1 : 좋은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기 위하여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마음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신령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변했다면

    그 신령한 마음에서 끊임없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나옵니다.

    본성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가 교회에서 직분도 주고 이런저런 봉사도 합니다만,

    예수님을 믿기 전에 내 마음에 쌓인 악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면

    겉모습은 교인다운 풍채를 가진 듯하지만,

    그 사람의 소속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마귀의 나라인 것입니다.

 

묵상 2 : 그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45절)

 

    그러므로 마음의 자리에 하나님의 선한 것을 쌓으며 사는 자가 되십시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하고,

    주님을 섬기는 등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그 마음에 쌓으며 사는 동안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본성이 생깁니다.

 

    육에 속한 자는 그 본성이 오직 이 땅의 것에만 반응하여 멸망에 이르게 되지만,

    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찾고 구하는 자가 되어,

    육은 이 땅에 있으나 그의 영은 이 땅에서부터

    이미 하나님 나라에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바로 이 비유에서 말하는 좋은 나무입니다.

    이런 자가 되기 위해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여

    그 마음에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쌓으며 사는 자가 되십시오.

 

 

4. 넷째 비유 :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46~49절)

 

 1) 건기에는 사막이 되는 개울 ‘와디’를 두고 비유하신 말씀

 

    넷째 비유는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대한 비유입니다.

    팔레스틴은 여름에는 비가 없으므로 개울이 전부 모래로 되어 있으나

    9월에 비가 오면 그동안 말랐던 개울은 급류로 변합니다. 

    이렇게 건기에는 마른 사막이었다가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개울을 ‘와디’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건기에 그곳이 개울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그 모래 위의 맨땅에 집을 짓는다면

    비가 와서 급류가 흐르면 곧 무너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2) 홍수와 탁류(급류) : 인생의 길에서 닥치는 시련과 위기의 때

 

    여기에서 홍수와 탁류는 인생의 길에서 삶을 포기하게 할 정도로

    강하게 닥쳐오는 시련과 위기의 때를 비유한 말입니다.

    마지막 때 주께서 오시기 전에 최후의 심판 때에 있을 큰 환난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기에는 급류가 흐르는 아주 위험한 개울이라도 건기에는 사막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비만 오지 않는다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도 훌륭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비가 오면 그 집이 얼마나 허술하게 지은 집인지 곧 들통나게 됩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가짜 믿음이라도 시련이나 환난이 없으면

    그것이 참된 믿음인지 표가 나지 않아 가짜 믿음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시련이나 환난을 만나면 가짜 믿음인 것이 곧 드러나게 됩니다.

 

    평소에는 그 믿음이 거짓인 것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하여 시련과 박해를 당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면

    참믿음을 가지지 않은 자들, 여전히 이 땅의 것을 주목하며 사는 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길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때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신 것 역시

    마지막 때 참된 믿음을 가려내시기 위한 것임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5. 네 비유의 요약

 

 1) 믿음은 행동하게 하는 에너지입니다.

 

    믿음은 행동하게 하는 에너지를 가졌습니다.

    내가 어떤 것을 믿는다면 그것을 믿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길이 더 안전하다고 믿는다면 그 믿음대로 그 길을 향하여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그 길이 더 안전하다고 믿는 믿음이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그가 믿는다고 고백한 말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지은 집입니다(47절)

 

    그러나 참믿음을 가진 자들은 믿음으로 인하여 시련이 오든 박해가 오든

    항상 그 믿음을 잃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믿음의 자리를 지킵니다.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손해를 보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주께서 명하신 대로 살아가려는 자,

    그렇게 살게 해주실 것을 간절히 갈망하는 자가 반석 위에 세운 집이요,

    이런 자가 좋은 나무입니다.

 

묵상 : 오직 주님의 성령을 통해서만 이 일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일은 훈련을 통해 잘못된 습관이나 고치려는

    고행이나 수행의 방법으로는 결단코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성령을 통해서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빼고 내 심령이 고쳐지고 치료되어야만

    선한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와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나무요 반석 위에 세운 집이 되도록 주님의 성령을 구하고 찾는 자가 됩시다.

    그리고 늘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선한 것을 쌓는

    건강하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 기도제목

 

1. 사소한 감정싸움 때문에

   구원의 길을 망가뜨리는 일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2. 구원에 이르는 좋은 열매를 맺는

   신령하고 좋은 나무,

   좋은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3. 항상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여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은

   건강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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