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70인의 제자를 파송하심(누가복음 10:1~16)
* 본문요약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은 세 사람에 대해 말씀하신 후
따로 70명의 제자를 세워 각 마을로 둘씩 짝지어 보내십니다.
70명의 제자들 역사 전에 12제자가 그러했던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고 가서
영접하는 곳에 머물며 병자를 고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라고 명하십니다.
만일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곳이 있으면
그 마을을 떠날 때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하시면서,
그날에 소돔이 그 마을 사람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가버나움, 고라신, 벳새다 사람들에 대하여 크게 진노하시면서
그날에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그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날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으면서도 주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찬 양 : 268장(새 505) 온 세상 위하여
275장(새 498)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 본문해설
1. 70인의 제자를 파송하심(1~12절)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70인을 뽑아 둘씩 짝지어서,
친히 가려 하셨던 각 마을과 각 지역으로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하라.
3) 이제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도다.
4) 전대나 주머니(지갑이나 자루)나 신발도 가져가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인사)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고 말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평안의 아들)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 너희는 한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집에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주는 음식을 먹고
9) 그곳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하고 말하라.
10) 그러나 어느 마을로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우리 발에 붙은 너희 마을의 먼지를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라’하고 말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날에 소돔이 그 마을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 주께서 따로 70인을 뽑아, 70인의 제자(1절) :
예수님의 12제자 이외에 따로 세우신 70인의 제자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12사도와 함께 초대교회를 일으킨 핵심 멤버가 됩니다.
- 문안하지 말며(4절) :
이것은 누가복음을 읽는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70명의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파송하시면서
길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조차 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은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가 가까이 왔으니
때가 급하므로 복음 전하는 데 집중하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다.
-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5절) :
여기에서의 집은 복음을 믿고 제자들을 영접하는 가정을 의미합니다.
2. 갈릴리의 세 도시에 대한 심판 선언(13~16절)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기적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지옥에까지 떨어지리라)
16) 누구든지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배척하는 자는 곧 나를 배척하는 것이요,
나를 배척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배척하는 것이라” 하시니라.
- 화 있을진저(13절) :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재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뜻이나,
여기에서의 뜻은 이런 자들은 이미 지옥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 고라신(13절) :
가버나움 북쪽으로 약 3.2km 떨어진 현무암 구릉지대의 마을.
이곳에서 주후 4세기 것으로 보이는
회당과 ‘모세의 자리’로 보이는 돌의자가 발굴되었습니다.
-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13, 15절) :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머무시던 집이 가버나움에 있었고,
고라신과 벳새다는 가버나움 인근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 도시는 예수님의 기적을 날마다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니
마지막 때에 그 어느 곳보다도 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 두로와 시돈(14절) :
두로와 시돈은 갈릴리 북쪽 페니키아에 있는 항구도시로,
무역이 번창했고, 매우 부유했습니다.
다윗 시대에 두로는 이스라엘과 우호적인 관계였으나(삼하 5:11).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은 매우 교만하고 포악하고 사악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과 같은 교만하고 포악한 자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말씀을 들었다면 회개하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가버나움 사람들은 이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70명의 제자들을 훈련시키시는 예수님
1) 따로 70명의 제자들을 세우시고 보내시는 예수님(1~12절)
예수께서 12명의 제자를 세상에 보내셨던 것에 이어,
이번엔 12제자 이외에 또 다른 70명의 제자를 세우시고 세상에 보내십니다.
보내실 때의 과정은 12제자를 보냈을 때와 비슷하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어느 마을이든지 그들을 영접하는 집에서 머물면서 병든 자를 고쳐 주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2) 친히 가려 하셨던 곳을 앞서 보내시며(1절)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께서 친히 가실 마을과 장소에 이들을 미리 보내셨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가실 곳에 미리 제자들을 보내셨다는 것은,
그들이 복음의 말씀을 들고 가는 곳에 예수께서 함께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르치거나 전도할 때 듣는 자가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과 함께 주께서 이루신 구원의 능력도
함께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 묵상 :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 그들을 구원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과 함께 주님의 능력이 전달되니 그들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 자가 있다면
만사를 온 힘을 다해 주님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당신이 전한 말씀으로 그가 구원을 얻습니다.
2. 먼저 그 집의 평안을 빌어 주라(5~6절)
1) 주님의 평안을 전하는 자들
예수님은 70명의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어느 집이든지 그 집에 들어가면
먼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하고 평안을 빌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 70명의 제자를 주님의 평안을 전달하는 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님의 평안을 전하라 명하신 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주님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한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가르치거나 전할 때 그 말씀을 경청하여 들으면
말씀의 능력과 함께 주님의 평안이 그에게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2) 그 집에 평안의 아들이 있으면(6절)
만일 그 집이 주님의 평안을 받기에 합당하다면 그 평안이 그 집에 머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평안이 평안을 빌어준 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평안의 아들’이라는 단어입니다.
평안의 아들이 그 집에 있으면 그들이 빌어준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고,
평안의 아들이 없으면 그 집에 머물지 않고 기도한 자에게로 되돌아가리라는 것입니다.
3) ‘평안의 아들’과 ‘악마의 아들’
평안의 아들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옥토와 같은 자를 말하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길가의 씨나 돌밭이나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와 같은 자들은 악마의 아들이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평안의 아들과 악마의 아들,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역을 말하지 않습니다.
평안의 아들이 아니라면 그는 곧 악마의 아들이고,
천국 백성이 아니라면 그는 곳 지옥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 백성이 되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 묵상 :
내가 누구를 위해 기도할 때
그 사람이 평안의 아들이 아니라면 그 기도가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므로,
나를 훼방하고 핍박한 자라고 할지라도
그가 잘되도록 그의 복을 비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➀ 일단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일은 원수 갚는 일을 주께 맡기는 일이 되니
주께서 기뻐하는 일이요,
➁ 둘째로 주님의 명령대로 사랑하기에 힘썼으니 복을 받는 자가 될 것이며,
➂ 그가 평안을 받기에 합당치 않으면
내가 빈 평안이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 가는 대로 미워하면 일단 내 마음이 시원할지 모르나
그 결과로 하나님의 저주가 오지만,
그에게 평안을 비는 기도를 함으로 세 가지 복이 나에게로 오니
우리는 힘써서 복을 빌어주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움과 원망이 생기려 할 때
먼저 그의 평안을 빌고 그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시기를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에게 더욱 큰 복이 임합니다.
3. 그 집에서 주는 것을 먹으라(7절)
예수님은 주를 위해 일하는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시면서
어느 마을이든 사람이 있으면 영접하는 집에 들어가
그 집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먹으며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도 12명의 제자의 경우에서와 같이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고 한 집에 머물면서
그 집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주변 환경에 영향받지 말고 오직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집이 더 좋은 반찬이 나오는지
어느 집이 지내기가 더 좋은지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오직 말씀 전하는 일에만 전념하라는 것입니다.
● 묵상 :
전에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목사님들이나 사역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연말이 되면 다음 해 목사님들의 생활비를 책정할 때
묘한 긴장 관계가 흐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교회가 얼마를 책정하든
목사님들이나 사역자들은 그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많든 적은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할 뿐입니다.
내가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치 않게 생활비를 책정했다면
그것은 그렇게 부족하게 책정한 그 사람들이 당할 일입니다.
모든 것을 주께서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사역의 일에만 충성하는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를 위해 일하는 자들은 나의 생활 문제는 주께 맡기고
오직 주님이 맡기신 일에만 충성하는 자들이 됩시다.
목사님들이나 사역자들이 먼저 내 생활비가 부족하니 어쩌니 하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주께서 주신 것을 감사히 받고 우리는 주의 일에만 충성합시다.
4. 고라신아, 벳새다야, 가버나움아...
● 화 있을진저 ●
여기에 속한 자들은 이미 화가 그 사람 안에 임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미 지옥의 고통과 재앙이 이런 자와 함께합니다.
위의 네 복에 속한 자가 이미 이 땅에서 천국의 기쁨이 함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 화(禍)에 속한 자는 이미 지옥의 재앙에 속한 자입니다.
1)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에 대한 심판의 선언(13절)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셨으나,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에는 가버나움에 처소를 마련하시고
그곳에서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버나움과 그곳에서 가까운 고라신과 벳새다,
이 세 도시에서 예수님은 가장 많은 능력과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세 도시의 사람들은 거의 매일 주님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주께서 이들이 마지막 날에 소돔과 두로와 시돈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 더 많은 복을 받은 자는 그만큼 책임도 큽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들은 그 복과 함께 책임이 주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왕의 자리를 주셨다면 그에 합당하게 책임도 무거워집니다.
물질을 주셨다면 그 물질을 나눌 책임이 있고
지식과 재능을 주셨다면 그것으로 하나님과 성도들을 섬겨야 합니다.
이들처럼 예수님의 기적을 더 많이 체험했다면
그만큼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책임이 더 무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나 오늘날 많은 경우에 복을 받기만을 바랍니다.
교회가 부흥되기를 바라지만 부흥하고 나서 무엇을 할지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집이 부흥되고 내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지만
그 복을 받은 후에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이 얼마가 생기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강남에 빌딩을 짓고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만 합니다.
이렇게 하면 복을 받은 것으로 인하여
오히려 더 무서운 심판을 받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복과 함께 사랑과 섬김의 마음도 함께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 기도제목
1.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힘쓰게 하옵소서.
2. 주께서 주신 복에 만족하며
항상 감사하며 살게 하옵소서.
3.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복과 함께
사랑과 섬김의 마음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