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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큐티(수정)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5~42)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2.05.28|조회수2,488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누가복음 10:25~42)

 

* 본문요약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율법에는 무엇이라 하였느냐고 물으시자

    그는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대답을 칭찬하시며 그와 같이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또다시 자기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냐고 묻자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으시며 강도 만난 자에게 누가 이웃이냐고 물으십니다.

    그가 자비를 베푼 자라고 말하니 가서 이처럼 자비를 베풀라고 명하십니다.

 

    이어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들르신 예수님은

    많은 일로 분주하여 늘 걱정과 근심이 많은 마르다에게

    마리아처럼 제일 좋은 것 하나를 택하고 그 일을 빼앗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241장(새 202)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483장(새 539)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 본문해설

 

1. 율법사의 질문(25~29절)

 

25) 어떤 율법사(율법학자)가 일어나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어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27)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그대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하시니

29) 그 율법사(율법학자)가 자신이 옳다는 것을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27,28절) :

    27절의 율법사의 대답은 구약성경을 한 구절로 요약한 것으로

    아주 훌륭한 대답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의 대답이 잘 되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 요약하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알고 있는 대로 실천해야만 그가 죽지 않고 살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29절) :

    이 율법사는 자기 주변에 있는 자들과는 서로 사랑을 나누며 잘 지내고 있었으니

    마땅히 주께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이라 기대하고 이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으로부터 버림받고 있는 사마리아인을 주제로 비유하여

    사랑에 대한 관점을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2.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30~37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려두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그 길을 지나다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다가가서 그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그 상처를 싸맨 후에,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여관)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30절) :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의 거리는 약 27km이고,

    예루살렘은 해발 762m, 여리고는 해수면 아래 해발 -250m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바위가 많은 유대 광야를 지나가야 하는데, 강도들이 자주 바위 뒤에 매복했다가

    여행자들을 강탈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피의 도로라고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 강도 만난 사람(30절) :

    강도 만난 자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사람이므로,

    이 사람은 유대인의 땅에서 유대인 강도에게 당한 유대인입니다.

    강도도 유대인이고, 그 땅도 유대인의 땅이며, 강도를 만난 사람도 유대인입니다.

 

- 제사장과 레위인(31,32절) :

    제사장과 레위인은 여리고에 사는 자들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임무를 마치고 여리고로 내려가던 중입니다.

    그러므로 강도 만난 자를 돕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시체를 만지면 7일간 부정해져서(민 19:11)

    그동안 성전의 모든 의식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제사장과 레위인은 자신의 성전에서의 임무에 장애가 될 것을 염려해

    강도 만난 자를 피하여 간 것입니다.

 

- 사마리아인(33절) :

    평소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상종도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땅에서 유대인에게 강도를 만난 유대인을 사마리아인이 돕습니다.

 

- 데나리온 둘(35절) :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이며, 초대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그때 로마의 하루 숙박비가 1/32 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이 여관 주인에게 준 두 데나리온은

    약 2개월 동안의 숙박비에 해당합니다.

    여기에 음식을 제공하고 치료까지 하는 것을 감안하면

    약 두 주간의 숙박비 정도에 해당할 것입니다.

 

 

3. 마르다와 마리아(38~42절)

 

38)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 여자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발 앞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주님을 접대하는 일로)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다가와서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이 모든 일을 하도록

    아무 것도 거들지 않고 있는 것을 보시고도 그냥 내버려 두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것을 선택했으니 결단코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혹은, 결단코 그 좋은 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하시니라.

 

- 한 마을에(38절) :

    이 마을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고향으로 베다니를 의미합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쪽으로 약 3km 정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아주 가까운 곳까지 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마르다의 잘못된 분주함(40~41절) :

    마르다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을 돕지 않는 동생 마리아를 원망합니다.

    이것은 마르다가 주님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접하고 있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을 힘든 일로 여깁니다. 그래서 불평과 원망이 나왔습니다.

 

- 이 좋은 것을 선택했으니 결단코 빼앗기지 아니하리라(42절) :

    마르다가 많은 일로 분주하여 그 마음이 불평과 원망으로 채워진 것에 비하여,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 말씀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똑바로 보고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좋은 것을 선택했다고 하시며,
    그 누구도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일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 묵상 point

 

1. 너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읽느냐?

 

 1) 말씀을 잘 이해한 율법사를 칭찬하신 예수님(26~28절)

 

    한 율법사가 자기가 옳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예수께 나아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여쭈었습니다.

 

    그의 질문을 듣고 주께서 그에게 질문하십니다.

   “율법에는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느냐? 너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읽느냐”

    예상했던 질문이어서 그 율법교사는 자신 있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의 대답은 구약 전체를 요약한 것으로 참으로 탁월한 대답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그의 대답이 옳다고 칭찬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질문 : 너는 율법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26절)

 

    우리는 예수께서 이 율법사에게 하신 질문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너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읽느냐”

    이 말씀을 무엇이라 여기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로 보느냐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람의 말로 본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취사선택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다면 우리는 그 말씀에 충성해야 합니다.

 

 3) 예수님의 칭찬 : 그가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임에 대하여(28절)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았고,

    구약성경의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핵심인

    신명기 6:5의 말씀과 레위기 19:18의 말씀을 정확히 말하였습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며 살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을 사랑하는 그의 태도를 칭찬하시고,

    그것이 옳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묵상 :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고 항상 그 말씀을 묵상하며 사는 것은

    주께 크게 칭찬 받을 일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2.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1) 이를 그대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28절)

 

    예수님은 그 율법사가 말씀을 존귀히 여기고

    그 말씀을 항상 묵상하며 사는 태도를 보인 것에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한 가지를 더해야 합니다.

    그가 말씀을 파악한 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께 칭찬받을 만큼 잘 파악한 그 핵심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네가 살리라”

    그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면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2)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은 대로 행하십시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말씀의 핵심을 파악하는 기술만 배우려 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졌음을 과시하여

    자신이 지성을 가진 수준 높은 그리스도인임을 자랑하려 합니다.

 

    그렇게 말씀의 핵심을 파악한 후에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 한껏 자랑하고는

    거기에서 멈추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님은 핵심을 잘 파악하는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알고 있는 말씀대로 실천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게으른 신학자보다, 부지런한 시골 촌부가 더 하나님 말씀에 합당한 자입니다.

 

묵상 :

 

    오늘 묵상하여 깨달은 말씀대로 행하십시오.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이런 습관은 생명을 얻게 하는 좋은 습관입니다.

 

 

3.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

 

    칭찬에 고무된 율법사는 한 번 더 칭찬받을 요량으로

    누가 자기의 이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잘 섬겨왔음을 스스로 자부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틀림없이 이번에도 칭찬받으리라 생각하며 던진 질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한 가지 비유로 그의 질문을 완전히 바꾸십니다.

 

 1)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30~36절)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 사람을 거반 죽을 만큼 때리고는 길가에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그 후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제사장이 그를 발견하였으나 피하여 그냥 지나쳤고,

    레위인 역시 그를 보았으나 피하여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한 사마리아인이 여행 중에 그를 발견하고는 불쌍히 여겨

    그의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상처를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우고는 여관에 데려다가 밤새도록 극진히 보살펴주고

    이튿날 아침에 데나리온 둘을 주며 여관 주인에게 계속 돌봐주기를 부탁하며,

    돈이 부족하면 돌아오는 길에 더 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율법사에게 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2) 제사장과 레위인이 피하여 간 이유(31~32절)

 

    제사장과 레위인은 왜 이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까요?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이었다고 했으니

    오늘이나 내일 당장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을 도울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냥 지나친 이유는, 민수기 19:11을 보면

    사람이 시체를 만지면 7일간 부정하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로

    ‘부정 탄다’하는 말과 유사한 말입니다.

    시체를 만지면 그 기간 동안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을 만큼 부정 타는 일이 되기 때문에

    혹시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질 수는 없다며 그냥 지나친 것입니다.

    예배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돕지 않고 그냥 지나진 것입니다.

 

 3) 사마리아 사람의 행동(33~35절)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민수기 19:11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 사람을 돕기로 작정합니다.

    그는 그를 돕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니다.

    가지고 있는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씻고 천으로 상처를 싸맨 후,

    짐승에 태워 인근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밤새도록 그를 돌봐줍니다.

 

    이튿날 자기 일을 위해 떠나면서 데나리온 둘을 여관 주인에게 주고는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필요하면 돈을 더 주겠노라고 말하고 떠납니다.

 

 4) 질문의 전환 :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이냐(36절)

 

    예수께서 그 율법사에서 물으십니다.

   “이 세 사람 중에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이냐?”

 

    처음에 율법사가 예수께 던진 질문은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였습니다.

    이 질문의 중심은 자신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이웃이 누구냐를 물으니

    가족, 친구와 같이 자기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한정합니다.

    이 사람은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왔다고 자부하며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 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물으십니다.

    질문의 중심이 도움이 필요한 자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이웃이 되고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5) 무엇이 사람을 부정하게 하나?

 

    율법교사는 강도 만난 자에게 자비를 베푼 자가 그의 이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합니다.

    ‘무엇이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죽은 시체를 만지면 부정한 사람이 되니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려면 그냥 지나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움이 필요한 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친 그들의 행위가

    오히려 더 부정한 행위라고 경고하십니다.

 

묵상 :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도움이 필요한 자를 오히려 왕따 시키는 세상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사람들에게 더욱 살기 힘들게 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때에 교회와 성도들은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이웃이 되고 있는지

    자신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독교 사랑은 행동하고 움직이는 사랑입니다.

    ‘당신을 보니 내 마음도 아프다’하면서

    그저 안타까움을 느낀다는 감상적인 사랑이 결코 아닙니다.

    연약한 자를 돕는 것이고 필요한 자에게 필요를 채우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선 교회 안의 성도들을 먼저 살펴보십시오.

    연약한 자, 시험에 든 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자는 없습니까?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그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행하십시오.

 

 

4. 가장 좋은 것을 택한 마리아

 

    길 가시던 중에 한 마을에 들어갑니다.

    그러자 그 마을에 사는 마르다라 이름하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합니다.

    그 집에서 일어난 한 가지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주께서 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합니다.

 

 1) 분주함 속에서 염려가 많은 마르다 : 불평과 원망이 가득함(40절)

 

    예수님의 일행은 제자들만 해도 12명이니

    그들을 대접하려는 마르다의 움직임은 대단히 분주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눈을 똑바로 뜨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말씀만 듣습니다.

 

    마르다는 이런 동생을 불평하며

    예수께 동생도 자기를 돕도록 말씀 좀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마르다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핀잔하셨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그녀가 하는 일은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가 될까요?

 

    사람이 많으니 당연히 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섬기는데 감사와 기쁨이 없다는 것, 바로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분주함 속에 감사가 없습니다. 주님을 모시는 일에 기쁨이 없습니다.

    주님을 대접하는 일을 일로 여기니 불평이 나오고 원망이 나옵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일지라도 불평과 원망으로 하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경청하여 듣는 마리아(39절)

 

    반면에 예수님과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예수님과 가까이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여 듣고 있던 마리아에게는

    그녀가 좋은 것을 택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 중에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좋은 일(말씀을 듣는 일)을 결단코 빼앗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묵상 :

 

    말씀을 듣는 일,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결단코 빼앗기지 마십시오.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권세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러므로 바쁜 일이든, 내 마음을 사로잡는 다른 어떤 일이든 간에

    그 일로 인하여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일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 기도제목

 

1.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일이

   가장 좋은 일이라 여기고

   이 좋은 것을 결코 빼앗기지 않게 하옵소서.

 

2. 말씀을 깨달을 때마다

   그 말씀대로 행하게 하옵소서.

 

3.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시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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