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누가복음 13:10~21)
* 본문요약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다가
18년 동안 병마에 시달려 허리를 조금도 펴지 못하던 여인을 고쳐주십니다.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며 분노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이 안식일에 소와 나귀에게도 물을 먹이면서,
18년 동안 악한 영에 시달린 여인을 고쳐준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으로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찬 양 : 209장(새 285)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490장(새 433)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 본문해설
1.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예수님(10~17절)
10) 예수께서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병마에 시달려)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그 여자를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보고 분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하거늘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이 위선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18년 동안이나 사탄에서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이라도 이 매임에서 풀어주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예수님을 반대하던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그 외의 모든 무리는 예수께서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2.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18~21절)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꼬?
19)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둥지를 틀고 깃들였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21)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약 22ℓ) 속에 가져다 넣은 누룩이
그 가루를 전부 부풀게 한 것과 같으니라”하셨더라.
- 겨자씨(19절) :
겨자씨는 기름이나 양념의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재배하는 1년생 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겨자씨가 새가 깃드는 나무가 되었다고 비유하셨습니다.
이것은 겨자씨가 좁쌀보다도 작은 씨여서,
이 작은 씨가 큰 나무가 되었다는 것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 가루 서 말(21절) :
가루 서 말은 약 21~23ℓ로,
이것으로 빵을 만들면 100명 이상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이므로
일반 가정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분량입니다.
이 엄청난 양의 가루가 작은 누룩으로 전부 부풀게 된다는 것.
* 묵상 point
1. 예수님과 회당장과의 안식일 논쟁
1)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예수님(11~12절)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8년 동안 악한 영에게 눌려 허리를 한 번도 펴지 못한 여인이 들어왔습니다.
예수께서 이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하고 말씀하시고는 그 여인에게 안수하시니
지난 18년 동안 단 한 번도 허리를 펴지 못한 여인이 허리를 곧게 폈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안식일에 병 고치신 일로 분노하는 회당장(13절)
그런데 이 기쁜 광경을 보고 회당장은 크게 진노하며 화를 냈습니다.
회당장이 크게 화를 낸 것은 왜 일할 수 있는 6일 동안 와서 고치지 않고,
꼭 일하지 말라고 하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병이 죽을병도 아니니 내일 고쳐도 좋은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안식일에 소나 나귀에게도 물을 주면서
18년 동안 사탄에게 매여 고통받는 여인을
안식일에 풀어주었다고 화를 내는 것이 합당한 일이냐고 물으십니다.
유대인의 엄격한 안식일 규정에도 불구하고
소나 나귀에게 풀을 뜯어 먹이거나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있었습니다.
안식을 규정을 더욱 엄격하게 지켰던 쿰란종파의 경우에도
안식일에 가축들을 이천 규빗(약 950미터)까지는 끌고 갈 수 있었는데,
이 규정도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독 사람에게만은 조금의 융통성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순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3) 회당장을 책망하신 예수님(15~16절)
예수님은 회당장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여!”하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이 말은 위선자라는 말로 예수께서 제일 진노하시는 사람들을 향하여 외치는 소리입니다.
어찌하여 18년 동안 병으로 고생을 한 자가 고침 받은 것은 생각지 않고
사소한 규칙만 따지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소방차나 앰블런스가 긴급 싸이렌을 울리며 가려는데
어찌하여 신호등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습니다.
● 묵상 :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가볍게 보는 자들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특히 종교적인 규칙 운운하며 사람의 생명을 뒷전으로 미루는 자들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규칙 운운하며 사람을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 역시 언제나 사람을 구하고 살리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2.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 작은 씨에 담긴 놀라운 생명력
1) 겨자씨의 비유(18~19절)
본래 겨자씨는 크기가 1~3미터 정도 자라는 1년생 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겨자씨가 새가 깃드는 나무가 되었다고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겨자씨가 풀이라는 것을 몰라서 이렇게 비유하신 것이 아닙니다.
씨 중에서 가장 작은 씨가 겨자씨여서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었다고 비유하신 것입니다.
특히 겨자씨가 채소밭에 뿌려졌으므로
다른 채소에 비하면 겨자는 큰 나무에 비교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겨자씨는 채소의 씨들보다 더욱 작은 씨인데
이것이 심어지면 다른 채소들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 땅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아주 미약하고 초라하게 보이지만
장차 온 우주를 집어삼킬 엄청난 것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2) 누룩의 비유(20~21절)
누룩의 비유는 성인 100명 이상이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 수 있는 가루 서 말을
아주 조그마한 누룩이 전부 부풀게 한다는 것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보이지 않을 만큼의 적은 양의 누룩이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했습니다.
비유의 형식은 겨자씨와 비슷한 듯 보이지만,
누룩의 비유의 핵심은 아주 적은 누룩이 가루 전부를 부풀게 했다는 데 있습니다.
12명의 제자들로부터 시작된 작은 집단이 로마 제국 전체를 변화시키고,
나아가서 이 세상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3) 작은 것에 담긴 생명의 힘
겨자씨나 적은 누룩은 그 시작이 아주 미약하고 초라한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고 초라한 것에 생명이 있으면 큰 열매를 맺습니다.
의자나 책상이나 건물 같은 것은 씨보다 훨씬 큰 것들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낡고 썩고 부패하여지지만,
씨는 보이지 않을 만큼 적은 것이나 심어지면 새가 깃들 정도로 큰 나무가 되고,
가루 서 말도 모두 부풀게 합니다.
● 묵상 :
① 가짜 그리스도인, 이름뿐인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영이 생명을 가진 자만이 참 그리스도인이고,
속은 비었고 겉만 그럴듯한 그리스도인은
가짜 그리스도인, 이름뿐인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② 크냐 작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크냐 작으냐보다
그 교회 안에 영적인 생명이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주의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라면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그 생명이 스스로 자라도록 되어 있지만,
아무리 큰 교회라도 주의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마치 생명이 없는 마른 나무처럼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교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➂ 살아있는 생명을 가진 성도와 교회가 됩시다.
살아 있는 영적 생명력을 가진 교회는
그 사회와 그 시대의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과거 3.1 운동 당시 한국교회는
전국에 신도를 모두 합하여 3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3만 명의 힘으로 3.1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1,000만을 헤아리지만,
많은 경우에 교회가 오히려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신령한 생명을 잃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영의 생명을 가진 성도만이 참 하나님의 백성이고, 참된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 모든 힘과 능력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주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시도록 항상 구합시다.
그래서 주께서 주시는 신령한 생명을 회복하는 성도와 교회가 됩시다.
* 기도제목
1.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구하는
건강한 믿음의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2. 이 세상을 변화시킬 힘과 능력이 회복된
신령한 교회와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