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4:1~14)
* 본문요약
예수께서 어느 바리새인의 집에서 음식 잡수실 때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엿보니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합당한지 아닌지를 물으신 후
고창병(수종병) 든 자를 고치십니다.
이어 청함을 받은 자들이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는 것을 보시고
자신을 낮추는 자가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되갚을 능력이 없는 가난한 자에게 베풀면 주께서 갚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347장(새 212) 겸손히 주를 섬길 때
508장(새 454) 주와 같이 되기를
* 본문해설
1. 안식일에 고창병 든 자를 고치심(1~6절)
1)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음식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예수님을 엿보고 있더라.
2) 그때 예수님 앞에 몸이 잔뜩 부어오른 고창병(수종병) 환자가 한 사람 있는지라.
3) 예수께서 율법사(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이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하시니
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 엿보고 있더라(1절) : 에산 파라테루메노이
‘엿보고 있더라’에 해당하는 ‘에산 파라테루메노이’에서
‘에산’은 미완료 과거, ‘파라테루메노이’는 현재분사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더라’의 뜻입니다.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예수님의 행동을 주의 깊게 지속해서 살펴보고 있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 고창병, 수종병(2절) : 전신부종
고창병(drospy)은 심장에 결함이 있거나 신장이 병들었을 때 신체의 세포조직이나
강막(腔膜)에 혈장액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축적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병은 얼굴은 물론 팔과 다리도 크게 부어오르는 전신부종으로,
전문 의학 용어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누가복음의 저자가 의사였음을 알게 합니다.
2.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7~11절)
7) 예수께서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상좌(上座,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자리를 고르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어떤 사람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상좌(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혹시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분에게 이 자리를 내어주라’ 하리니,
그때 네가 부끄러워 가장 낮은 끝자리로 내려가 앉게 되리라.
10) 그러므로 초대를 받거든 차라리 끝자리 말석으로 가서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벗이여 윗자리로 올라 앉으라’하리니,
그 때에 너는 너와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상좌, 높은 자리(7절) :
신약시대에는 로마의 영향을 받은 식사법이 도입되어서
식탁을 ‘ㄷ’자형으로 배치하고
한쪽 면은 비워두어 종들이 음식을 나를 수 있게 합니다.
주인은 좌석의 중앙에 앉고, 가장 높은 자리는 주인의 오른쪽 자리입니다.
3. 갚을 것이 없는 자들을 청하라(12~14절)
12) 또 예수께서 자신을 초대한 주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 놓고 사람을 초대할 때는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데 그들이 너를 도로 초대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 잔치를 베풀려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자들과
걷지 못하는 자들과 다리를 저는 자들과 눈먼 자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이 부활할 때 (주께로부터)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하시니라.
- 이웃(12절) :
예수님 당시 랍비들은 이웃의 범위를 제한했습니다.
그들에게 이웃이란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만을 의미했습니다.
* 묵상 point
1. 엿보는 자와 돕는 자
1) 예수님을 엿보는 바리새인들(1절)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의 지도자의 집에 점심 식사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음식 잡수시러 그 집에 들어가실 때
그 집에 먼저 들어와 있던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무엇을 하실지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 무리 중에 몸이 퉁퉁 부어 고생하던 고창병(수종병) 환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이라도 서둘러 빼내면서
안식일에 병으로 고생하는 자를 고치는 것이 어찌 합당하지 않으냐고 물으신 후
그 고창병 환자를 고쳐서 돌려보내십니다.
2) 바리새인들에게 고창병(수종병) 환자는 한낱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고창병 환자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바리새인의 집에서 벌어지는 식사 자리의 중앙에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고창병(수종병)이
심장이나 신장의 이상으로 생기는 전신부종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 당시에는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한 자가 그 벌로 생기는 병이라 알려졌으므로,
평소 같으면 바리새인의 집에 얼씬도 하지 못할 일인데,
더구나 안식일에 바리새인의 식사 모임에 떡하니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집에서 벌어진 이 식사 자리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베풀어진 모임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식사 자리를 만들어 놓고 예수님을 초대하고는
고창병 환자를 일부러 그들의 모임의 한 가운데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환자가 그 모임의 한 가운데 있었으니 예수님이 보시지 못할 이유가 없고,
그러면 반드시 그 환자를 고칠 터이니 그때 안식일 법을 위반한 죄를 물겠다는 것입니다.
3) 긍휼과 자비는 버리고 이기심만 채운 바리새인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몸이 퉁퉁 부운 채 생활을 해야 했던 고창병 환자의 고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오직 자기들이 미워하는 예수님이
안식일 법을 어기는지의 여부를 가만히 엿보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러한 태도를 보시고
그들은 이미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자들이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눅 13:35).
● 묵상 : 엿보는 자가 아니라 돕는 자가 되십시오.
교회가 힘들고 어려운 자들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할까,
아니면 자기들이 미워하는 자들의 약점을 잡으려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걸려들면 고발하는 역할을 해야 할까?
본문은 우리에게 이 점을 질문합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교파는 분열되고,
같은 교단 안에서도 서로 파당으로 나뉘어 다투고 갈등하기에 바빴습니다.
서로 고소하고 고발하며 싸우는 동안 교회가 사회를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가만히 엿보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가만히 엿보다 싸울 구실만 찾는다면
바리새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모두 주님께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엿보는 자가 아니라 서로 돕고 서로 세우는 자가 됩시다.
2. 자신을 높이는 자와 낮추는 자
1)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1절)
가만히 엿보는 것과 함께 본문에서 지적하는 바리새인들의 또 다른 치명적인 약점은,
항상 자신을 높이려 한다는 점입니다.
의자에 앉는 것조차 높은 사람이 앉는 의자에 앉아야만 마음이 놓일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려 애를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초대를 받아 들어오던 다른 바리새인들이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자리를 찾는 장면을 보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지 말고
차라리 제일 말석에 앉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을 높이려 하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갚을 것이 없는 자를 청하라(12~13절)
자기를 높이려는 자, 자기를 과시하려는 자는
항상 자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자들과만 어울리려 합니다.
고을 수령과 같은 높은 관직에 있는 자와 어울리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방 유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잔치를 벌일 때면
항상 높은 지위에 있는 자나 명성이 있는 자들을 초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면
친구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초대하지 말고,
가난한 자, 병든 자, 다리를 저는 자, 앞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누구를 초대하는 것에 대한 문제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돕는 일, 구제하고 섬기는 일을 포함합니다.
내가 누구를 돕고 섬겼는데 그 역시 나를 돕고 섬긴다면,
서로 주고받았으니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나, 연약한 자를 돕고 섬겼다면
그는 나에게 되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
그 복을 하나님께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 묵상 :
①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 11:1)
갚을 길 없는 자를 돕는 일은 흘러가는 물에 식물을 던지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갚으십니다.
② 겸손한 자가 되기에 힘쓰십시오.
무엇을 하든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사람,
무엇을 하든 자기 생각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예수님의 미움을 받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 싶다면 겸손한 사람이 되기에 힘쓰십시오.
내 생각을 주장하더라도 일단 공동체에서 결정을 하면
그 결정에 순복하고 함께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겸손하고 서로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 기도제목
1. 엿보는 자가 아니라
서로 돕고 세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겸손하고
서로 협력할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연약한 자를 돕기에
힘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