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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큐티(수정)

돌아온 탕자의 비유(눅 15:11~32)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2.06.19|조회수2,877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돌아온 탕자의 비유(누가복음 15:11~32)

 

* 본문요약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고 음식을 함께 먹는 이유를 설명하는 비유 세 번째로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요청하고는

    그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고 갔다가 허랑방탕하여 모두 탕진합니다.

 

    그때 그 나라에 큰 기근이 있어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 먹을 수 없는 처지가 되자

    아들은 아버지께 다시 돌아가서 품꾼으로 써달라고 요청하기로 마음먹고 아버지께로 갑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가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뻐하여 잔치를 베풉니다.

    맏아들은 이러한 아버지의 행동에 크게 분노하고

    아버지가 베푼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합니다.

 

찬 양 : 331장(새 273) 나 주를 멀리 떠났다

         338장(새 280) 천부여 의지 없어서

 

 

* 본문해설

 

1. 아버지를 떠난 아들의 비참한 상황(11~16절)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소서’하는지라.

     이에 아버지가 그 살림을 두 아들에게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자기 재물을 다 챙겨서 먼 나라로 가서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그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한 후에 그 나라 전역에 아주 심한 흉년이 들어

     그가 아주 궁핍하게 되었는지라.

15) 이에 그가 하는 수 없이 그 나라 백성 중의 한 사람에게 찾아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더라. 그 집 주인이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좀 먹어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하였으나,

     그마저도 주는 사람이 없는지라.

 

- 쥐엄 열매(16절) :

    지중해 주변에 분포하는 구주콩나무를 가리킵니다.

    콩과의 교목으로 크기가 10m까지 자라며,

    25cm나 되는 깍지 속에 8~9개의 콩 모양의 알갱이가 들어 있습니다.

    약간 단맛이 나는 이 나무 열매는 돼지나 소 등의 동물사료로 사용되었고,

    가난한 사람들도 그것을 먹었습니다.

 

 

2.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감(17~20a절)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와서) 이르되,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부해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서 이렇게 말하리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아버지의 아들

     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옵소서하고 말하리라’ 하고

20a)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니라. …

 

 

3.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20b~24절)

 

20b) … 아들이 아직도 멀리 있는데, 그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서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이제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어서 제일 좋은 (예복)을 꺼내어 그에게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그의 발에 을 신겨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함께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하니

     그들이 함께 잔치를 벌이며 즐거워하더라.

 

- 옷, 가락지, 신(22절) :

    옷은 일반 겉옷이 아니라 고귀함을 상징하는 왕족이 입는 예복을 말하고,

    인장 반지는 그의 권위가 모두 회복되었음을 뜻하는 권위를 상징하며,

    신발은 당시 종들은 맨발로 다녔으므로

    그의 신분이 모두 회복되었음을 뜻하는 상징을 갖고 있습니다.

 

 

4. 아버지가 베푼 잔치에 참여를 거부하는 큰아들(25~32절)

 

25) 밭에 나가 있던 맏아들이 돌아오다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류(음악 소리)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종 하나를 불러서 ‘이것이 무슨 일인가?’하고 물으니

27) 종이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나이다. 이에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온 것을 기뻐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맏아들이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래며 권하니

29) 맏아들이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당신을) 섬기며 무슨 말씀이든 한 번도 어긴 일이 없거늘,

     내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며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더니,

30)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당신)의 재산을 모두 다 삼켜버린 당신의 이 아들이 돌아오니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상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며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우리가 잔치를 벌이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 아버지, 당신(29~30절) :

    맏아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우리말 성경에는 “아버지”라고 번역되어 있으나

    29절의 첫 부분에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라고 한 부분 다음에 기록된

    큰아들의 말에서는 아버지를 ‘당신’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을 섬기며’, ‘당신의 이 아들’

    이렇게 큰아들은 아버지를 ‘당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당신의 이 아들(30절) :

    맏아들은 집으로 다시 돌아온 동생을 동생이라 부르기를 거절하고,

    ‘당신의 이 아들’이라는 말로, 단지 아버지의 아들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나마 아버지도 ‘당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묵상 point

 

    누가복음 15장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세 비유가 나오는데

    그중에서 3~10절에 나온 두 비유의 주제는 ‘간절함’입니다.

 

    3~7절에 나온 잃은 양의 비유는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애태우시는 예수님의 간절함을 나타낸 것이고,

    8~10절에 나온 잃은 은전(열 드라크마)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는 간절히 구하고 찾는 자의 것임을 나타낸 비유입니다.

 

    이 두 비유는

    우리만 천국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구하고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만큼, 아니 우리보다 더 주께서 우리를 애타게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32절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이 두 가지 비유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찾고 구하는 자를 말씀하셨고,

    그 탕자를 다시 아들로 받아주는 아버지를 통해서는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주님의 모습을 나타내셨습니다.

 

 

1. 죄의 본질과 그 비참함 : 아버지를 떠난 탕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의 몫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나 받을 수 있는 유산을

    아버지가 살아계신 상황에서 미리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후에 그가 자기의 돈을 모두 챙겨서 먼 타국으로 떠나서 허랑방탕하다

    그 돈을 모두 탕진하였습니다.

 

 1) 죄의 본질 : 하나님을 떠나 독립하려는 것(11~13절)

 

    이 비유의 핵심은 죄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유산을 받아 가지고 떠나는 것이 잘못인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떨어져 있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도 않고 그 명령에 따르지도 않으며,

    자기 생각과 자기 방식대로 자기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죄입니다.

 

    생명과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데 하나님을 떠나 홀로 독립하겠다는 것은

    꽃이 줄기를 떠나 자기만의 삶을 살겠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묵상 :

 

       범죄행위가 죄가 아닙니다.

       범죄행위는 죄가 있는(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자에게서 나타나는

       죄의 증상들일 뿐입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을 떠난 삶, 그 자체가 죄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죄의 현실 : 아버지를 떠난 탕자의 비참함(14절)

 

    둘째 아들은 그것이 바로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아주 먼 나라고 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그의 재산은 모두 사라지고,

    큰 흉년이 들어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고자 했으나

    그마저도 구하지 못하는 처지가 됩니다.

 

    줄기를 떠난 꽃이 시간이 지나면

    꽃의 아름다움이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구약의 율법에서 가장 부정한 동물인 돼지를 치고 있고,

    그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고자 해도 구할 수가 없었다는 것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큰 죄에 빠진 사람을 뜻합니다.

 

묵상 :

 

    하나님을 떠나 무분별한 자기만의 인생을 사는 사람의 최대 희생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께서 손해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내가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영원히 멸망 당하는 것보다 더 큰 손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 안에 살려 힘써야 합니다.

 

 

2. 탕자의 회개

 

 1) 스스로 돌이켜(15~17)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갔다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 먹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되자 둘째 아들은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에게로 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여기에서 ‘스스로 돌이켜’의 원어의 뜻은 ‘제정신을 차리다’입니다.

    그렇게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음을 깨닫고,

    아버지에게 가서 품꾼 중의 하나로 써달라고 요청하기로 마음먹습니다.

 

 2) 회개 :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18~20a)

 

    이렇게 자기 방식대로 살던 데서 스스로 돌이켜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저 자신의 죄를 후회하는 연민의 감정을 갖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이제까지 내가 잘못된 삶을 살았음을 고백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묵상 :

 

    세례를 받을 때 우리 인생의 잘못을 전반적으로 돌아보는 큰 회개를 하였으나,

    날마다 짓는 작은 죄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끊임 없이 회개를 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회개하는 일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중단하지 마십시오.

 

 

3. 은혜 : 돌아온 자를 기쁨으로 맞아주시는 아버지

 

 1)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서(20절)

 

    둘째 아들은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겨우겨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데,

    아버지는 저 멀리서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한걸음에 달려와서는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그 아들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묻지도 않습니다.

    그저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또 기쁩니다.

 

 2) 은혜 :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것(21절)

 

    하나님 앞에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데서부터 은혜는 시작됩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달았다면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처럼 가서 품꾼으로라도 써 달라고 요청할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쁨으로 맞아주십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이미 앞의 두 비유에서도 언급하였으나,

    여기 아버지가 아들을 맞이하는 장면을 통해서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3) 회복 : 예복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22~24절)

 

    아들은 품꾼으로 여김만 받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왕족이 입는 예복을 말합니다. 그에게 인장 반지를 끼웠습니다.

    아들로서의 권위와 영광을 회복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신을 신겼습니다.

 

    예복과 인장 반지와 신은 그 사람의 신분을 뜻합니다.

    신분이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것만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만으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권세와 영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묵상 :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을 하나님은 가장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아버지’를 부르고 찾으십시오. 주께서 기뻐하십니다.

 

 

4. 돌아오지 않은 탕자 : 아버지의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자들

 

 1) 아버지의 베푸신 잔치를 거부하는 맏아들(25~28절)

 

    본문의 이야기는 마지막 부분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집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다

    패륜아인 둘째 아들이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와

    아버지의 은혜로 모든 것을 회복한 미담에 박수를 보내고 있을 때,

    이 모든 상황에 반기를 들고 크게 진노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맏아들입니다.

 

    맏아들이 밭에서 돌아오다가 집에서 음악 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는

    한 종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종이 동생이 왔다는 것, 그래서 아버지가 크게 기뻐하며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맏아들은 크게 진노하며 그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합니다.

 

 2) 아버지의 아들임을 거부하는 맏아들(29~30절)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나와 맏아들을 달랬지만

    맏아들은 끝내 잔치에 참여하지 않고 이 비유의 말씀은 끝이 납니다.

 

    한 가지 기가 막힌 사실은,

    이 일 이후에 맏아들은 아버지를 향하여 한 번도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계속해서 ‘당신’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불분명하게 되어있으나

    헬라어 원어에는, ‘내가 당신의 명령을 어긴 일이 없는데’, ‘당신의 이 아들’,

    이렇게 아버지를 ‘당신’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이로써 맏아들은 아버지가 베푼 잔치에 참여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아버지라 인정하지도 않는 패륜아가 되고 맙니다.

 

 3) 진짜 탕자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유대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 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음으로

    스스로 멸망의 백성이 되는 것을 걷는 자가 되었다고 경고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은

    바리새인들처럼 돌아오지 않는 탕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묵상 : 주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을 나도 함께 기뻐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하려 하시는 일을 나도 함께 힘써 일하는 사람이 됩시다.

 

   “주님 내가 무슨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지금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보십시오.

 

 

* 기도제목

 

1.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나만의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큰 죄인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2.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신실한 삶을 살기에 힘쓰게 하옵소서.

 

3. 주님 내가

   무슨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지혜를 주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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