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예수님, 성전정화(누가복음 19:41~48)
* 본문요약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고 우시며
그들에게 평화에 관한 일들이 가려져 있다며 한탄하십니다.
이제 날이 이르면 원수들이 예루살렘에 토성을 쌓고 포위할 것이며,
온 백성들을 메어치고 짓밟을 것이고, 모든 건물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그곳에서 날마다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지만,
백성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열심히 듣고 있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합니다.
찬 양 : 246장(새 208) 너 주의 나라와
212장(새 420) 너 성결키 위해
* 본문해설
1.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는 예수님(41~44절)
41)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예수께서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가라사대 “오늘 네가 평화에 관한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이것이 가려져 있도다.
43) 그날이 너에게 닥치리니,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너와 네 안에 있는 제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내동댕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게 모든 것이 무너지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을 받는 날을(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 우시며(41절) : 에클라우센
‘우시며’에 해당하는 ‘에클라우센’은
‘비탄에 빠져 몹시 슬퍼하며 우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감람산에서부터 내려오실 때에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시며
소리 내어 흐느껴 우시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2. 성전 정화(45~48절)
45)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성경에 기록되기를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이사야56:7)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예레미야 7:11)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열심히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 장사하는 자들(45절) :
당시 예루살렘 성전의 이방인의 뜰에서는 상인들과 환전상들이
하나님께 드릴 제사에 사용될 동물을 팔고, 성전세로 바꿔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는 미명 아래
성전의 신성함을 더럽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만민이 기도하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질책하셨습니다.
* 묵상 point
1.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예수님(41절)
1) 예수님도 때때로 눈물을 흘리며 우셨습니다.
가버나움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이르는 길로 내려오시던 예수께서
예루살렘 도성을 내려다보시며 우십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세 번 우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사가 죽었을 때로(요 11:35)
이때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셨고,
두 번째는 예루살렘 도성을 바라보시면서 우시던 때로(본문으로 눅19:41),
이때는 소리를 내서 흐느껴 우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로(히 5:7),
이때는 통곡하여 우셨습니다.
2)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비탄에 빠져 흐느껴 우신 예수님(41~44절)
본문은 그 두 번째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지 약 40년쯤 후에 있을
엄청난 비극을 미리 바라보시며 우십니다.
예수님을 그토록 핍박하고 조롱했던 유대인들이지만
마치 자녀가 핍박을 당하는 것을 보고 우시는 것처럼,
예루살렘 성의 주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흐느껴 우십니다.
이 애끓는 사랑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2. 네가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42절)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보고 우시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길을 알지 못해 비극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에서 본래 주께서 주려 하셨던 복의 길이 무엇인지,
그들이 그 길을 알지 못했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도 그들처럼 복의 길을 알지 못하면
우리도 비극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네가 보살핌을 받는 날,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때(19:44)
권고받는 날(보살핌을 받는 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침략을 당할 때의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➀ 첫 번째 권고받는 날 :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전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침략을 당하기 전으로,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포위가 되기 전까지는
예레미야는 회개하면 바벨론에 침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전,
바로 그때가 남왕국 유다의 첫 번째 권고 받는 날이었습니다.
만일 이때 회개하였다면
그들은 히스기야 왕 때처럼 아무에게도 침략을 받지 않고 평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➁ 두 번째 권고받는 날 :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침략하기 전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 바벨론이 예루살렘 주위를 포위하자,
이제 바벨론에 침략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제는 바벨론에 항복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침략당하기 하루 전까지
시드기야 왕에게 제발 항복하여 왕과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라고
애원하듯 호소했습니다.
➂ 두 가지 권고받는 날을 모두 날려버린 예루살렘의 비극
그러나 시드기야 왕이 주저하는 사이에
바벨론 군사가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리고 쳐들어왔습니다.
바벨론의 첫 번째 군사가 예루살렘 성벽을 넘어 들어오는 바로 그 순간에
시드기야 왕과 예루살렘 백성들의 권고 받는 날은 끝이 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셨던 그 예언의 말씀보다도
훨씬 더 가혹한 형벌을 받습니다.
➠ 권고받는 날은 심판을 복과 은혜로 바꿀 수 있는 기회의 때를 뜻합니다.
권고받는 날(보살핌을 받는 날)은 이렇게 주께서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심판을 받도록 한 그 죄와 허물을 완전히 씻어낼 수 있는 시간을 가리킵니다.
주께서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그 심판을 복과 은혜로 바꿀 수 있는 시간입니다.
노아 홍수 때에도 노아가 배를 만드는 기간에 그들은 회개할 수 있었고,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에도 롯의 두 사위는
그 직전에 심판을 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 구원과 은혜의 때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예수께서 오시기 전,
혹은 내가 이 땅에서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 기간에는 우리가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더라도
그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 구원의 날이 지나가기 전에 주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 은혜의 때가 지나가기 전에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내 안에 채워야 합니다.
➠ 그러나 한동안 관성의 법칙에 적용받습니다.
그러나 내가 오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곧바로 내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리학의 관성의 법칙처럼 한동안 내 몸에 남아 있는 죄의 습관들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려 힘쓰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새로운 관성이 내 안에서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과 사귀는 삶을 지속하는 동안에 주께서 변화된 나를 지켜보시다가
주께서 정하신 날이 되면 주께서 정하신 복과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그것을 본문에서 예수님은
‘보살핌을 받는 날’,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때’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재앙의 날’,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 묵상 :
어떤 사람은 복을 쌓아가고,
어떤 사람은 저주를 쌓아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나는 오늘 복을 쌓는 삶을 살았는지 나의 삶을 점검하여봅시다.
3) 그날이 너에게 닥치리니 : 크고 두려운 재앙의 날(43~44절)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을 벌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강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에게 보살핌을 받는 날이 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실 때가 바로 그들에게 주어진 권고받는 날이었으나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도 40년이나 더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그 기회를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예루살렘이 파괴될 때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비극을 만나게 됩니다.
주께서 친히 오셔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음에도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였으므로
이들에게 그날은 저주의 날, 재앙의 날이 되었습니다.
4) 네가 보살핌을 받는 날,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44절)
예수님은 이 비극이 예루살렘에 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평화에 이르는 길을 알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거부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야 할 때가 왔고,
더 이상은 그들에게 평화에 이르는 길을 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성을 바라보시면서
“네가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하고 한탄하십니다.
● 묵상 :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를 도우시는 보살핌을 받는 날을 나 스스로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일을 귀찮아하지 마십시오.
3. 주님의 보살핌을 받는 자와 거부하는 자
1)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는 자들(48절)
한쪽에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고 있을 때
백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경청하여 들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세례요한을 통해 회개의 세례를 받았던 자들입니다.
세례요한을 통해 세례를 받을 때 죄를 용서받은 순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볼 수 있는 영적인 눈에 떠졌습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귀한 복음의 말씀인지 듣는 귀가 열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세례요한에게서 예수님께로 옮겨져 왔고,
주님의 성령을 통해 초대교회를 일으키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들이 됩니다.
2) 예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한 자들(48절)
그러나 지금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열심히 듣던 자들 중에
일부는 불과 며칠이 되지 않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치는 성난 군중들이 됩니다.
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말씀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원수들이 됩니다.
3)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까지 방해한 사람들(45~47절)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처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거나 예물을 바칠 때
자기들이 직접 농사지은 것 중에서 흠과 티가 없는 것이나,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먼 곳에서 오는 순례객들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성전 주변에서 돈을 주고 사서 바치도록 허용하였는데,
당시 예루살렘 성전의 지도자들이 이를 악용하여
성전의 이방인의 뜰에 장사치들의 터전을 만들어놓고는
요즈음으로 환산하여 1년에 수십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이익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방인의 뜰은 유대교로 귀의한 이방인들이 기도하는 곳으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유일한 기도처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처가 짐승을 팔고, 세상의 돈을 성전 세겔로 바꿔주는
환전상들의 고함치는 소리로 가득 찬 시장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이방인의 기도처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크게 진노하시고 그들을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며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4) 교회를 장사터로 만든 사람들
오늘날에는 이들처럼 교회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부흥과 성장에만 집중하거나
혹은 노회나 총회에서의 자리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또 이런 일에 마음을 빼앗겨서
그보다 더 중요한 성도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일을 등한히 한다면
역시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질책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 묵상 :
이처럼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린 자들은 그 말씀을 들어 영생의 길을 걷는 자가 되지만,
이 땅의 일에 마음을 빼앗겨 말씀을 듣는 귀가 닫힌 사람들은
영생의 말씀이 들려와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후일
자기들이 거부한 말씀이 얼마나 귀한 말씀이었는지 깨닫고
영원히 가슴을 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우리가 당할 일을 생각하며 우시다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2.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3. 끝까지 믿음을 지켜
“잘하였다 착한 종아”하는
칭찬을 듣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