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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 다스리실 왕(사 32:1~8)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2.09.24|조회수217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의로 다스리실 왕(이사야 32:1~8)

 

* 본문요약

 

    장차 한 위대한 왕이 공의로 통치하고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입니다.

    그는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고 , 피난처 같으며, 마른 땅에 냇물 같습니다.

    또 그는 백성에게 바른 지혜와 지식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악한 자는 끊임없이 악한 계획을 세워 악을 행하지만,

    고명한 자는 항상 고명한 일을 도모하고 항상 고명한 일에 설 것입니다.

 

찬 양 : 446장(새 391) 오 놀라운 구세주

         441장(새 388) 비바람이 칠 때와

 

 

* 본문해설

 

1. 장차 임할 의의 나라(1~8절)

 

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3)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요,

4) 조급한 자(경솔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5)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궤휼한(우둔한) 를 다시 정대하다(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6)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악한 것을 생각하여)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굶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밥그릇을 쏟아버리며),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목마른 자에게서 물을 빼앗아 버리며)

7) 궤휼한(악한, 못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힘없는)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어니와(파멸시키기를 서슴지 않거니와),

8)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4절) : 님하람

    ‘조급한 자’에 해당하는 ‘님하람’은

    ‘급하게 서두르며 초조하고 분주하여 헛된 일에 집착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사물의 본성을 파악하는 참된 지식과 통찰력을 갖게 됩니다.

 

- 어눌한 자의 혀가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4절) : 일김

    ‘어눌한 자’에 해당하는 ‘일김’은 ‘혀를 잘 놀리지 못하는 자들’을 뜻하는 것으로,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무지하여 신령한 일을 조롱하고 경멸하는 자를 빗댄 말입니다.

    이런 자들이 신앙의 통찰력을 가진 세련되고 적절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됩니다.

 

- 어리석은 자, 우둔한 자(6절) : 나발, 킬라이

    ‘어리석은 자’에 해당하는 ‘나발’은 ‘고의로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하며

    신앙의 규범을 조롱하며 무시하는 자’를 가리키고,

    ‘우둔한 자(궤휼한 자)’로 번역된 ‘킬라이’는 ‘악한, 무뢰한, 파렴치한’으로,

    다른 사람들을 속여 이득을 취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 여기에서는 ‘어리석은 자’와 ‘우둔한 자’ 이 두 단어가 합하여

    참과 거짓이 뒤바뀌어 악덕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자들은 끊임없이 악한 계략을 도모하며 살아갑니다.

 

- 고명한 자(8절) : 나디브

    ‘고명한 자’에 해당하는 ‘나디브’는 외부적인 요인에서가 아니라

    그 내면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동기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힘쓰는,

    천성적으로 성품이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입니다.

 

- 고명한 일에 서리라 (8절 ) : 쿰

    ‘서리라’에 해당하는 ‘쿰’은 ‘자라나다, 견고히 서다’입니다.

    이런 자들은 항상 고귀하고 덕스러운 일을 생각하고, 어떤 장애가 가로막을지라도

    중단하지 않고 그 아름다운 생각을 계속 실천하려 애씁니다.

 

 

* 묵상 point

 

1. 장차 임할 주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

 

    이사야는 장차 한 왕이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고,

    그의 방백들은 정의로 다스리는 때가 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사야가 본문에서 말하는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는 왕”을

    히스기야로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만,

    이사야 39장에서 남왕국 유다를 멸망에 이르게 자가

    바로 히스기야 왕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므로,

    그가 말한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는 왕은 히스기야는 분명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여기에서 말한 공의로 다스리는 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1) 공의로 통치하는 왕과 정의로 다스리는 방백(1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는 장차 메시야(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며,

    그의 방백들은 정의로 다스릴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 그대로 예수님은 공의와 평강으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그의 일꾼들은 주님의 의로 주님의 나라를 이끌어갑니다.

 

 2)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곤비한 땅의 바위 그늘 같은 곳(2절)

 

    예수님은 광풍이나 폭풍처럼 공격해오는 악한 영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연약한 자들,

    죄와 허물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마음에 곤비한 땅처럼 괴로움이 있는 자들을 구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찾는 자에게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시고,

    폭우를 가리우는 곳이 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찾으면 마른 땅에

    냇물이나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이 상쾌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3) 보는 자의 눈이 떠지고, 듣는 자의 귀가 열리는 곳(3절)

 

    예수님은 그를 찾는 자의 죄를 용서해주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주시기 위해서도 오셨습니다.

 

    주님의 성령을 공급받으면 하나님의 신령한 일을 볼 수 있는 영의 눈이 떠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신령한 귀가 열립니다.

 

 4) 조급한 자가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가 말을 분명히 하겠고(4절)

 

    세상일에 초조한 마음을 갖게 되면

    헛된 일에 집착하고 허망한 일에 분주한 자가 됩니다.

 

    눈앞의 일에만 마음을 빼앗겨 살다가

    장차 자신이 영원토록 살아가야 할 미래의 일을 전혀 준비하지 못하는 자가 됩니다.

    어린아이로부터 나이가 많은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걱정스러운 일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지식이 없어 영생의 일을 알지 못하고

    이렇게 눈앞에서 벌어지는 세상의 일만 보고 조급해하며

    초조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는 자들을 돕기 위해 오셨습니다.

 

    평생 분주하게 살아왔으나

    정작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을 위해서는 단 한 가지도 준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돕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렇게 조급하고 영적인 일에 어눌한 자들일지라도 주께로 나오면

    주께서 조급한 자가 지식을 깨달아 바른 분별력을 갖게 되고,

    주님의 일에 대하여 어눌한 자가

    주께서 기뻐하시는 말을 분명하게 할 수 있는 지혜롭고 신령한 자가 됩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깨닫는 지혜를 주시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셔서 건강한 믿음을 갖게 하십니다.

 

 5) 어리석은 자와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하지 아니하리니(5절)

 

    주님의 뜻을 잘 모르거나 연약한 자라고 해서 다 주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믿음이 연약하니 힘과 능력을 주셔서

    건강한 믿음 갖게 해달라고 구하는 자라야 주님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주님의 뜻을 모르니 그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해야 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주께 그 지혜를 구하지도 않고, 건강한 믿음을 갖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듣기를 싫어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를 거역하며

    도리어 그 말씀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자들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자기의 권세를 악용하여 다른 사람의 것을 강제로 빼앗거나

    남을 속여 자기의 이득을 취하는 악한 자들 역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2. 어리석은 자와 고명한 자

 

    이사야는 본문에서

    예수님이 오신 후에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구분하여 말합니다.

    이사야가 한 이 말은 마치 신약의 복음서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다음 두 가지 중에서 각자 자신은 어디에 속한 자인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1)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6~7절)

 

    그 마음에 어리석음이 가득 채워진 자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 마음의 본성에 악한 것이 자리 잡고 있어서

    항상 어리석은 일만 생각합니다.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하나님을 거스리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빼앗는 일만 생각합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만 한다면 거짓말로 힘없는 자를 멸하고,

    가난한 자가 바르게 말할지라도 그를 파멸시키기에 서슴지 않는 자들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구원을 받지 못할 자들은

    그 마음에 어리석음이 채워졌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어리석음이 채워졌더라도 주께 나와 어리석음을 고쳐달라고 간구하면

    구원을 받는 자가 됩니다만, 그 어리석음을 도리어 자랑하고 있으므로

    주의 거룩한 것을 채워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쳐달라고 간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치관이 다릅니다.

    이런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2)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8절)

 

    이사야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자를 한 마디로 ‘고명한 자’로 표현합니다.

    고명한 자란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넣어주신 신령한 것이 채워진 자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본성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본성에 아름다운 것이 채워졌으니

    판단도 그 아름다운 것으로 판단하고, 행동도 아름다운 것으로 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에 가든지 그 고명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자는 이 땅에서부터 이미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 기도제목

 

1. 하나님을 거스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항상 말씀 안에 사는

   고명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그래서 항상 주의 평안 가운데 사는

   주의 신실한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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