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히스기야와 바벨론 사절단(이사야 39:1~8)
* 본문요약
히스기야가 나았다는 소식에 바벨론 왕이 글과 예물을 보냅니다.
히스기야는 기뻐하며 그 사자들에게 보물 창고와 무기고를 모두 보여줍니다.
이에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심판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의 모든 소유가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후손이 잡혀갈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찬 양 : 492장(새 435) 나의 영원하신 기업
457장(새 401) 주의 곁에 있을 때
* 본문해설
1. 병이 나은 후에 교만에 빠진 히스기야(1~4절)
1) 그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친서와 선물)을 보낸지라.
2) 히스기야가 그 사절단을 환영하며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주었으니,
히스기야가 왕궁과 나라 안에 있는 것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없는지라.
3)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에서 왕에게 왔나이까?”하니,
히스기야가 가로되 “그들이 저 먼 나라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하니라.
4) 이사야가 가로되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창고에 있는 것 가운데 그들에게 보이지 않은 보물이 하나도 없나이다”하니라.
2. 유다의 멸망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5~8절)
5)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6)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지고(바벨론에게 빼앗기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7) 또 너에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 몇 명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하니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하고는
또 가로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하니라.
* 묵상 point
1.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히스기야
1)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왕이 된 지 6년째 되던 해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을 본 히스기야는
큰 충격을 받고 온 나라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시행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하는 말을 두려움으로 들은 히스기야는
온 나라에 있는 우상을 다 부수었습니다.
심지어 모세가 만든 놋 뱀까지도
사람들이 그것을 우상처럼 섬기니 아예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띄워 버립니다.
우상숭배의 근거지가 되었던 전국에 있는 산당들도 모두 부수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 이후 그 어떤 왕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2) 앗수르가 침공했을 때의 상황
이런 상황에서 앗수르 군사들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습니다.
우리는 이사야 36:11~22의 큐티를 할 때
히스기야 때에 앗수르 군사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것과,
우리나라의 병자호란이 아주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히스기야 역시 앗수르에 항복하지 않으면
우리가 병자호란 때에 겪었던 그 비극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병자호란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었으니
그때의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었으나,
히스기야의 경우에는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믿으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3)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한 히스기야
히스기야는 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서
하나님의 큰 기적을 체험합니다.
밤사이에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18만 5천의 앗수르 군사들을 모두 죽이신 것입니다.
그 후에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리지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병을 치유하시고,
15년의 삶을 더 연장해주시기까지 합니다.
자기가 정말 15년을 더 살 수 있는지 히스기야가 의심하면서
그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자
해의 그림자를 10도 뒤로 물러가는 표징을 보여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가장 놀라운 은혜와 표징을 보고 경험한 것입니다.
2. 병이 나은 후에 자만에 빠진 히스기야
그러나 히스기야는 병이 나은 후에 자만에 빠집니다.
그가 연장받은 15년의 생명의 기간에 히스기야는 이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그 자신뿐 아니라 남왕국 유다까지 멸망에 이르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맙니다.
1) 바벨론의 사절단에게 자기를 과시한 히스기야(1~2절)
이사야는 본문 39장에서
히스기야는 이러한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고도
어떻게 파멸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기록합니다.
그의 파멸은 너무도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허망한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파멸은 히스기야가 병이 나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바벨론의 사절단을 맞이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히스기야는 바벨론의 사절단을 크게 환영하며
왕궁의 모든 보물과 무기들을 보여주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보여준 무기들은 대부분 앗수르 군사들이 버린 것들을 약탈한 것들입니다.
그전에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들은 무기라고 하기에 민망한 정도의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앗수르의 18만 5천의 군사들을 모두 죽이시니,
그들이 가지고 있던 그 최고의 무기들을 자기들의 무기 창고에 옮긴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마치 자기 능력으로 앗수르를 물리친 것처럼
바벨론의 사절단에게 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유다 멸망의 원인 제공자가 된 히스기야 (사 39:3~8)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지금 온 사람들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이며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였는지,
그들에게 보여준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바벨론에서 온 사절단이며,
그들에게 왕궁에 있는 모든 보물과 무기들을 보여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사야는 장차 때가 이르면
히스기야의 후손 중에서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자가 있을 것이며,
그날에는 그가 보여 준 모든 보물과 무기들을
모두 바벨론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하리라는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유다가 멸망하는 원인이
바로 히스기야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한 것입니다.
3) 히스기야에게 진노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은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감사하기 전에 먼저 바벨론 사절단에게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자랑했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남왕국 유다가 멸망한 첫 번째 이유가 됩니다.
아마도 본문의 말씀을 읽는 사람 중에
이 일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에게 왕궁 보물을 보여준 것이
히스기야의 자손을 환관이 되게 하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만큼
하나님께서 진노하실만한 일인가, 하나님께서 너무 오버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혹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성경을 읽으면
이런 정도의 일로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온 세상 만민을 심판하신 심판주께서 하신 일이라 여기고 이 말씀을 보면
두려움으로 이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히스기야의 잘못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4)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이사야에게조차 자기를 과시하는 히스기야(사 39:4)
히스기야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들고 오는 이사야를 향하여
바벨론 사절단에게 무엇을 보여주었는지를 자신 있게 말합니다.
히스기야는 그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깨닫지 못하고
이사야에게조차 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유다 멸망의 원인이 된 히스기야
1)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이 일에 그토록 진노하시는 이유(6~7절)
➀ 모든 영광을 자기 자신에게 돌렸으므로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진노하신 첫 번째 이유는
히스기야가 마치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앗수르 군사들을 물리친 것처럼
자신의 능력을 자랑했다는 점입니다.
히스기야가 무기들을 보여준 것은,
자기가 앗수르 진영에서 빼앗은 무기들이라고 자랑하기 위해 보여준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기에게로 돌린 것입니다.
앗수르 군사들이 죽는데 히스기야가 칼 한 번 사용한 적 없고,
화살 한 번 쏜 일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절단에게
이 모든 일을 이루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히스기야는 마치 자기가 이 일을 모두 다 한 것처럼
바벨론 사절단에게 자랑한 것입니다.
➁ 하나님보다 돈과 권력을 더 의지했으므로
히스기야는 왕이 가진 두 가지 권세인 돈과 무기를 자랑했습니다.
히스기야는 38:10에서 자신의 삶의 절정기에 죽게 된 것을 크게 한탄했었습니다.
39살의 나이에 그를 두렵게 했던 앗수르의 군사들도 모두 죽었으니
이제 왕의 권력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보려 했는데 죽게 되었다며 한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앗수륵 군사도 물리쳐주셨고,
자기의 삶도 15년을 더 연장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앗수르 군사들이 남기고 간 보물과 무기들을 봅니다.
이 보물과 무기들이 자기의 왕권을 훨씬 강하게 할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그것이 너무나도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돈과 권력을 더 사랑한 히스기야에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➂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진노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신 것은 권력을 사유화한 히스기야의 타락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도 역시 권력의 사유화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력으로
그의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책임을 가진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왕입니다.
그러나 권력의 사유화는
하나님마저 자기의 종으로 삼는 절대 권력자로서의 왕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왕은 선지자들의 말에 복종하지만,
절대 권력자로서의 왕은 선지자들을 죽입니다.
2)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히스기야의 대답(8절)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로 말미암아 유다가 멸망하고
그의 자손 중에 환관이 될 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히스기야는 자기 시대에는 평안할 것이니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투로 말합니다.
말로는 “당신이 전한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하고 겸손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대단히 이기적인 대답입니다.
어쨌든 자기는 15년 삶을 더 연장받았으니 이제 왕권을 마음껏 누려보겠다는 것입니다.
4. 삶을 15년 더 연장받은 기간 중에 히스기야가 한 일
1) 15년 연장받은 기간 중에 태어난 아들 므낫세(열왕기하 21:1~2)
삶을 15년 더 연장받은 기간에 히스기야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경이 침묵하고 있으므로 그 내막을 자세히 확인하기 어렵습니다만,
그 15년 기간 중에 태어난 그의 아들 므낫세를 보면
히스기야가 그 기간 중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21:1을 보면 유다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인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12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불과 12살밖에 안 된 므낫세가 왕이 되자마자
온 나라를 우상과 향락으로 가득하게 하였고,
선지자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천하에 둘도 없는 폭군이 된 것은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배후에 그를 조종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15년 삶을 연장받은 후 3년째 되던 해에 태어나서,
삶을 더 연장받은 히스기야를 보며 자랐습니다.
성경에서는 그 15년 동안에 히스기야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침묵하고 있으나,
우리는 그의 아들 므낫세가 불과 12살에 왕이 되자마자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간 폭군이 되었다는 것을 통해서
히스기야가 말할 수 없이 타락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도 39장에서 바로 이 점을 증거합니다.
2) 15년 삶을 연장받은 기간에 히스야가 한 것 : 땅속에 수로를 건설함(열왕기하 20:20)
이사야 선지자가 장차 바벨론에게 망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히스기야는 기껏 한다는 것이 예루살렘이 적군으로부터 포위 되었을 때에도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땅속에 물길(수로,水路)를 건설합니다.
무려 길이 580미터나 되는 이 수로를 양쪽에서 파들어 갔는데
그 오차가 불과 1,5미터 정도였다니 놀랄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만든 수로도 바벨론의 침략을 막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수로를 만들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내가 죄를 범하였나이다”하고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만일 아담이 자기가 선악과를 따먹었노라고 회개하였더라면,
만일 가인이 자기 동생을 죽였노라고 잘못했노라고 회개했더라면,
만일 사울 왕이 자기가 교만했었노라고 용서해달라고 기도했더라면,
만일 히스기야가 이때 자기가 엉뚱한 생각을 품었었노라고
간절히 회개하며 용서를 구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 묵상 : 만일 히스기야가 삶을 연장받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더라면
만일 히스기야가 삶을 더 연장받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더라면
성경은 그를 다윗 다음으로 훌륭한 왕으로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구약에 나온 모든 사람 중에
몇 안 되는 훌륭한 믿음을 가진 자로 인정하고 그를 인정하고 높였을 것입니다.
➀ 만일 히스기야가 15년 기간 동안 다윗처럼 믿음의 삶을 살았더라면
만일 히스기야가 15년 기간 동안 다윗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그가 그 연장 받은 기간 동안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그렇게 신실한 삶을 보냈더라면 유다 역사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히스기야의 후손으로 오셨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➁ 시련과 고통 속에 있을 때보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가 더 위험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15년 삶을 연장받은 기간에
왕권과 세상 향락의 기쁨에만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파멸로 만든 히스기야,
그를 통해 우리는 항상 변함없는 믿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고통과 시련 속에 있을 때보다도
내가 원하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가 더 위험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5. 히스기야의 마지막은 어떠하였을까?
1) 히스기야의 그 후의 삶을 침묵하는 이사야
➠ 그 후에 히스기야가 회개하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모든 왕 중에서 다윗 다음으로 하나님께 그 신실함을 인정받은 자,
시편과 잠언을 포함해서 구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편집한 자,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
히스기야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비록 인생의 마지막에 큰 실수를 범하였더라도
그의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끝내 회개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하나님께 그 신실함을 인정받았고
그가 아무리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고 할지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열왕기하 20:20에서 보는 바와 같이 히스기야는 그 기간 중에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39:8을 끝으로 히스기야에 대하여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히스기야의 일을 안타까워하면서 기도했던 이사야는 물론 열왕기서까지도
히스기야로 말미암아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리라는 말을 끝으로 일절 침묵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회개를 끝내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2) 그의 아들 므낫세가 유다 왕 중 가장 사악한 왕이 된 책임과
그 결과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게 된 책임은 면할 수 없습니다.
히스기야가 회개했는지의 여부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서 확인해보아야 알 수 있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그의 아들 므낫세가 유다 왕 중에서 가장 사악한 왕이 되었고,
그 결과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게 된 책임은 면할 수 없습니다.
● 묵상 : 히스기야, 무엇이 문제였나?
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두려워했던 것
열왕기하 11~12장을 보면 성전을 수리하는 등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유다 왕 요아스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왕하 12:2).
그러나 요아스는 그의 생명의 은인이며 영적인 멘토인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하나님을 섬기던 모든 일을 즉각 중단하고 우상인 아세라 목상을 섬겼고,
이 일을 중단하라고 외치던 선지자 스가랴를 돌로 쳐 죽입니다(역대하 24:20~21).
성전을 수리할 때 이 일에 열심을 내지 않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책망하기까지 했던 요아스가 이렇게 갑자기 변했던 것은
그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신앙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제사장 여호야다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두려워하던 여호야다가 죽자 곧바로 우상숭배에 들어간 것입니다.
히스기야도 15년 삶을 연장받는 징조로
해의 그림자가 10도 물러가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변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큼 많은 업적도 남기고 신실한 삶도 살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한 것임을 나타냅니다.
➁ 다윗과 히스기야의 차이를 기억하십시오.
다윗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므로
그가 사울에게 쫓길 때에도, 그가 두려울 것 없는 강력한 왕이 되었을 때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가 밧세바를 취하고 나단 선지자에게 책망을 들을 때에도,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던 중 시므온에게 조롱을 받을 때에도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이사야 39:8)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바란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그저 사는 동안 평안하고 안전하면 그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부터 15년 동안은 평안하리라는 안전보장을 받으니
그의 자손이 환관이 되든, 그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다윗과 요아스, 다윗과 히스기야의 차이점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 바로 이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 기도제목
1. 고통 속에 있을 때에나
기쁜 일이 있을 때에나
변함없이 주를 섬기는 자 되게 하옵소서.
2. 세상의 즐거움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3.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