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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큐티(수정)

수넴 여인의 아들이 살아나다(왕하 4:18~37)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2.10.10|조회수1,238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수넴 여인의 아들이 살아나다(열왕기하 4:18~37)

 

* 본문요약

 

    수넴 여인의 아들이 뜨거운 태양 볕에 아버지를 따라 밭에 갔다가 갑자기 죽자

    수넴 여인은 급히 엘리사에게로 달려가 그의 발을 껴안고 괴로워합니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자기 지팡이를 가지고 아이의 얼굴 위에 놓으라고 하지만

    아이의 어머니는 엘리사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하는 수없이 엘리사가 그 아이가 있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두 번 그 아이 위에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며 살아납니다.

 

찬 양 : 482장(새 364) 내 기도하는 그 시간

         172장(새 183)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 본문해설

 

1. 수넴 여인의 아이의 죽음(18~21절)

 

28) 그 아이가 자란 후 어느 날입니다.

     그 아이는 밭에서 일꾼들과 추수를 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에게 갔다가

29) 그의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머리야!”

     아버지가 종에게 말했습니다. “아이를 그의 어머니에게 데려가라.”

20) 종이 아이를 업고 그의 어머니에게로 데리고 갔습니다.

     아이는 정오까지 자기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21) 그러자 그 여인은 옥상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사람이 눕던 침대에 아이를 눕히고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 아이가 죽었다(20절) :

    태양이 뜨거운 낮에 밭에 있다 머리가 아프다 했으니 일사병으로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2. 엘리사에게 간청하는 수넴 여인(22~30절)

 

22) 그리고 나서 자기 남편을 불러 말했습니다.

    “청컨대 사환 한 사람과 나귀 한 마리를 내개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23) 그가 물었습니다. “오늘은 월삭(초하루)도 아니고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 어찌하여 그에게 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평안이니이다(별일 아닙니다).”

24) 여인은 나귀에 안장을 얹고 종에게 말했습니다.

    “나귀를 몰고 가되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속도를 늦추지 말고 힘껏 달려가라.”

25) 그리고는 길을 떠나 갈멜산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멀리서 그 여인이 오는 것을 보고 자기의 시종 게하시에게 말했습니다.

    “저기 수넴 여인이 오고 있도다.

26) 너는 달려가서 저 여인을 맞이하여라. 그리고 남편은 안녕하신지, 아이는 건강한지

     물어보아라.”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모두들 잘 있나이다.”

27) 여인은 산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 그의 발을 꼭 껴안았습니다.

     게하시가 그 여인을 떼어 놓으려 하자 하나님의 사람이 말했습니다. “가만두어라.

     그의 마음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도다.”

28) 여인이 말했습니다. “주여, 내가 언제 내 주께 아들을 달라고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29)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말했습니다.

    “네 허리를 묶고(떠날 채비를 하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지 말고 누가 네게 인사하더라도 대답하지 말라.

     그리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 위에 놓으라.”

30) 그러나 아이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이에 엘리사가 하는 수 없이 일어나서 그 여인을 따라나섰습니다.

 

- 길을 떠나 갈멜 산까지 갔습니다(25절) :

    수넴에서 갈멜산까지는 약 40km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수넴 여인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하루 만에 무려 80km나 되는 먼 거리를 여행한 것입니다.

 

 

3. 엘리사의 기도로 살아난 아이(31~37절)

 

31) 게하시가 그들보다 먼저 그 아이의 얼굴에 지팡이를 올려놓아 보았으나,

     아무런 소리로 아무런 기척도 없었습니다.

     게하시가 돌아와서 엘리사를 만나 아이가 깨어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는 죽은 채 자기의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33) 그가 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습니다.

     방 안에는 엘리사와 그 죽은 아이 둘 뿐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34) 그는 침대에 올라가 아이 위에 몸을 포개어 엎드렸습니다.

     자기 입을 그 아이의 입에, 자기의 눈을 그 아이의 눈에,

     자기의 손을 그 아이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해지기 시작했습니다.

35) 엘리사가 잠시 내려앉았다가 집안 이곳저곳을 한 번 거닌 뒤에

     다시 올라가서 그 아이의 몸 위에 몸을 포개어 엎드리니

     마침내 그 아이가 재채기를 일곱 번 하더니 눈을 떴습니다.

36)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수넴 여인을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게하시가 여인을 불렀습니다.

     그 여인이 들어오니 엘리사가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하고 말했습니다.

37) 그 여인이 들어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갔습니다.

 

 

* 묵상 point

 

1. 여인의 아픔의 이유 : 왜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나(18~21절)

 

 1) 여인의 아픔의 이유 1 :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16절)

 

    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잘 섬기고 있던 수넴 여인에게

    아들이 죽는 큰 슬픔의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 이유는 엘리사가 수넴 여인에게

    내년 이맘때쯤에 아들을 품에 안게 될 것이라고 했을 때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말라”고 말한 16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속이지 말라’는 말은 ‘헛된 꿈을 품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자기 남편이 저렇게 늙었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요”하는 정도의 말로,

    가당치도 않은 말로 헛된 꿈을 꾸게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2) 여인의 아픔의 이유 2 :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

 

    그 시대가 아합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므로

    아직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사악한 아합의 시대를 벗지 못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악한 시대를 이겨내려면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섬기는 정도의 믿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정도의 믿음으로는 그 악한 시대를 여겨낼 수 없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수넴 여인이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아들이 죽는 아픔을 갖게 하셨습니다.

 

 3) 여인의 아픔의 이유 3 :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만일 아들이 심한 감기 정도를 앓았을 때 엘리사의 기도로 나았다면

    그 병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았다고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에서는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하며 찬양할 정도의 감격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이 여인이 악한 시대를 이길 믿음을 가지려면 그보다 더 큰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들이 죽는 엄청난 경험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통해

    이 여인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여인에게 아들이 죽는

    극도의 슬픔을 경험하게 하신 이유입니다.

 

묵상 :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아픔이나 슬픔도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아픔과 슬픔을 당하고 있는 지금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고 믿고 억지로라도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곧 주께서 나에게 왜 이런 아픔과 슬픔을 주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2. 곧바로 엘리사를 향해 달려간 수넴 여인

 

 1) 엘리사를 만나기 위해 갈멜산까지 한숨에 달려간 수넴 여인(22~25절)

 

    아들이 죽자 수넴 여인은 곧바로 종과 함께 나귀를 타고

    엘리사가 있는 갈멜산까지 달려갑니다.

    수넴에서 갈멜산까지는 약 40km로 왕복 80km를 달려가야 합니다.

 

    나귀 한 마리에 안장을 지우고 갔다면

    여인은 종을 안고 종의 뒤에서 함께 나귀를 탄 상태에서 가야만 했을 것입니다.

 

    나귀의 속도가 오늘날 자전거의 속도쯤 된다고 하니,

    포장도 되지 않은 도로에서 종의 뒤에서 함께

    나귀를 탄 상태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면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죽은 마당에 자기의 힘든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2) 여인은 엘리사를 찾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이가 이미 죽었지만 엘리사의 하나님이시라면 어떤 도움을 주실 것이라 믿고

    온 힘을 다해 달려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엘리사의 하나님께 믿음이 있으니

    자기가 믿는 그곳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묵상 1 : 율법주의와 믿음의 차이

 

    ➀ 율법주의

 

       가령 여인이 그저 나귀를 타고 가야만 한다는 규칙을 듣고

       아무런 열정이나 감동도 없이 그렇게 달려갔다면 그것은 율법주의입니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하라고 하니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생각 없이 그저 예배에 참여했다 오기만 하는 것, 이것이 율법주의입니다.

 

    ➁ 믿음

 

       그러나 그분에게 가면 아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온 힘을 다해 달려갔다면 이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나를 움직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나를 역동적인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런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수넴 여인처럼 마음과 몸이 함께 움직이는 참된 믿음을 갖는 성도가 되십시오.

 

묵상 2 : 갈등과 아픔 없는 거룩은 없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려면

    반드시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깨닫는 것도 쉽지 않지만,

    죄를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몇십 년 동안 그 죄의 습관을 따라 살아왔던 자가

    하루 아침에 죄의 습관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마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나

    몸은 죄를 좋아하는 이중적인 삶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우리는 갈등과 아픔을 겪습니다.

 

    이 갈등의 과정을 지나서 죄가 치유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우리 안에 채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신령한 것을 더욱 기뻐하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가 이런 갈등과 아픔 없이

    교회 분위기로 거룩한 느낌을 경험하게 하려 합니다.

    한두 시간 동안 계속 뛰면서 찬양하는 동안 거룩한 자가 된 듯한 경험을 합니다.

    그 시간 동안 뛰면서 찬양하는 동안 감정의 정화작용을 느끼며

    거룩한 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진정한 거룩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감정놀음에 불과합니다.

 

 

3. 여인의 아들이 다시 살아나게 된 과정

 

 1) 게하시에게 지팡이를 들고 아이의 얼굴 위에 놓으라고 함(29절)

 

    수넴 여인은 그저 엘리사의 발을 끌어안고 있기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주여, 내가 언제 내 주께 아들을 달라고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하고 하소연을 하기만 했습니다.

 

    이때 엘리사는 아이가 아직 죽지는 않았고 그저 중한 병에 들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세도 지팡이로 홍해를 갈라지게 했으니 아이가 아직 죽지 않았다면

    게하시가 지팡이를 들고 아이의 얼굴에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능히 병을 고치고 아이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2) 기도한 후에 아이 위에 몸을 포갠 엘리사(31~35절)

 

    그러나 게하시가 도착해보니 아이는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당연히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올려놓아도 아이가 움직임도 기척도 없습니다.

    그 정도로 죽은 아이가 살아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방에서 모두 나가게 한 후에 하나님께 기도하고는

    아이의 몸 위에 포개어 엎드립니다. 그러자 아이의 몸이 따뜻해집니다.

 

    엘리사가 내려와 방 안을 이리저리 거닌 후에 다시 아이 위에 포개어 엎드리자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한 후에 눈을 뜹니다.

 

 3) 믿음의 사람 엘리사

 

    엘리사는 자기가 그렇게 기도하면 아이가 살아나게 되리라는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아무런 언질도 받지 않았습니다.

    엘리사 자신도 아이가 살아날지의 여부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그의 스승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그런 방식으로 살렸으니,

    엘리야의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도 들어주실 것이라 믿고 그리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도 들어주셨습니다.

 

 

* 기도제목

 

1.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시련과 아픔도 감사할 수 있게 하옵소서.

 

2. 우리를 주님의 선하신

   의의 길로 인도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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