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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탄식(애 1:1~11)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2.10.08|조회수633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탄식(예레미야애가 1:1~11)

 

* 본문요약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의하여 망한 후 적막해진 예루살렘 성을 보고 탄식합니다.

    전에는 열국 중에 으뜸이었고 뭇 나라로부터 공주 대접을 받던 성읍이었는데,

    이제는 그 성읍이 노예가 되었다며 슬퍼합니다.

 

    살아남은 자도 거처할 것을 마련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쫓기며 흩어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여호와께 거스르기만 하던 시온이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더러운 것이 자기의 치마에 묻었으나, 자기에게 닥칠 일을 깨닫지 못하고

    그 죄 속에 그냥 머물러 있다가 졸지에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비참하게 되었으니 돌보아달라고 호소합니다.

 

찬 양 : 338장(새 280) 천부여 의지 없어서

         336장(새 278)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 본문해설

 

1.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슬픔(1~4절)

 

1)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그렇게도 사람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되었는고.

   전에는 많은 나라들 가운데 으뜸이더니 이제는 과부같이 되었고,

   전에는 모든 나라 가운데 공주처럼 여김 받던 이 성읍이 이제는 노예가 되었구나.

2) 밤만 되면 서러워 목 놓아 우니, 눈물이 뺨에 마를 날이 없구나.

   사랑하던 자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신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3) 유다가 환난과 많은 고난을 겪더니 끝내 포로로 사로잡혀서 종살이하게 되었구나.

   유다가 뭇 나라에 흩어져서 쉴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유다를 뒤쫓는 모든 자들이 막다른 골목에서 그를 덮쳐 잡는구나.

   (이리저리 쫓기다가 막다른 골목에 몰려 뒷덜미를 잡힌 꼴이 되었구나)

4) 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 절기를 지키러 오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시온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성문이 황적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저도 곤고를 받았도다.

   (처녀들은 슬픔에 잠겼구나. 아, 시온이 이렇게도 처량하게 되다니.)

 

- 이제는 과부같이 되었고(1절) :

    히브리어에서는 성읍과 마을이 여성명사이므로

    예루살렘이 여성(과부, 공주, 처녀)로 묘사됩니다.

 

 

2. 대적들의 조롱거리가 된 것에 대한 슬픔(5~8절)

 

5)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저의 원수들이 번성하는 것은)

   그들이 죄가 많으므로(여호와께 거스르기만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까지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6) 처녀 시온의 모든 영광이 어디로 갔는가.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이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리는 것 같도다.

7) 예루살렘이 환난과 군박을 당하는 날에(집 없이 떠돌며 짓밟히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그 즐거움(그 모든 찬란했던 일)을 기억(추억, 회상)함이여.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돕는 자가 없고,

   대적은 그가 망하는 모습을 보고 그 황적함을 비웃기만 하는도다.

8)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 같이 되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그를 떠받들던) 모든 자들이

   그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이제 그 자신도 탄식하며 얼굴을 들지 못하는도다).

 

- 벌거벗은 모습(8절) :

    당시에는 포로들을 벌거벗긴 후 포박하여 끌고 가므로,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것을 벌거벗은 몸이 되었다고 표현했습니다.

 

 

3. 비참한 현실에 대한 탄식(9~11절)

 

9)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치마에 묻었으나(예루살렘의 더러움이 자기의 치마 속에 있었으나)

   그가 나중을(앞으로 자기에게 닥칠 일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그처럼 비참하게 되었어도) 위로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옵소서.

10) 대적들이 손을 펴서 그의 보물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을 금하여 주의 공회(주의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사오나,

     그들이 주님의 성소에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11)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이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었더니

     (목숨을 이으려고 보물, 귀중품, 패물을 먹을 것과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신세가 되었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 그들이 주님의 성소에 들어간 것을 보았나이다(10절) :

    바벨론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려고 주님의 성소에 들어간 것을 가리킵니다.

 

-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었더니(11절) :

    평안할 때는 보물이 가치가 있지만,

    식량이 부족할 때에는 먹을 것이 가장 가치가 있으므로

    귀금속을 팔아서 먹을 것을 구한다는 것.

 

 

* 묵상 point

 

1. 예레미야 애가 소개

 

 1) 예루살렘이 망하는 모습을 보고 슬퍼하는 예례미야의 슬픈 노래

 

    예레미야 애가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망한 후

    그 비참한 모습을 보며 예레미야가 지은 애가(哀歌, 슬픔의 노래)입니다.

 

    예레미야는 무려 40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씀을 귓전으로도 듣지 않았고,

    도리어 자기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만 한다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지는 등 여러 가지로 핍박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심지어 친척과 친구들로부터도 살해 위협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이렇게 비참하게 망하게 되자,

    그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픔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2) 예레미야 애가 본문에는 저자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원어에는 그저 ‘애가’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하는 모습을 보며 슬퍼하는 모습이

    예레미야 9:1, 10에도 나와 있으므로 대부분의 구약학자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망하는 모습을 보고 예레미야가 지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묵상 : 선지자는 시대의 아픔을 보고 슬퍼할 줄 아는 자

 

    예레미야는 망해가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보고 평생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으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레미야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습니다.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눈으로 역사를 볼 줄 아는 자가 선지자입니다.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죄악에 빠진 이 시대를 보고

    슬픔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바벨론에 멸망당한 예루살렘의 모습을 슬퍼함

 

 1)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되었는고(1절)

 

    예루살렘은 열국(많은 나라들) 가운데 큰 자였습니다.

    많은 나라가 예루살렘에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바벨론에 망하여 모든 것이 다 파괴되었고,

    사람들이 살지 않는 황폐한 곳이 되었습니다.

    뭇 나라로부터 공주같이 대접받던 예루살렘이 이제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2) 기쁨의 성읍이 슬픔의 성읍이 됨(2, 4절)

 

    예루살렘은 기쁨의 성읍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주 앞에서 기뻐하기 위하여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절기를 지키러 오는 자도 없으니 그 거리가 슬픔에 잠겼습니다.

 

 3) 여호와께 거스르기만 하던 시온이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도다(4~6절)

 

    예레미야가 그렇게도 주께로 돌아와 회개하라고 말씀을 전했으나 귓전으로도 듣지 않더니

    그 영광스러운 성읍이었던 시온이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시온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문에는 인적이 끊어지고,

    대적들이 시온의 주인이 되었으며,

    그의 원수들이 번성하여 이제는 어린 자녀들까지 닥치는 대로 끌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마음 놓고 슬퍼하지도 못하는 비참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4) 그 더러운 것이 치마에 묻었으나 그가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9절)

 

    그들은 나라가 힘이 없어서 바벨론에 망하게 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노하실만한 것이 그들에게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더러운 곳이 그들의 치마에 묻어 있었으나 그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실만한 더러운 것이 자기들의 삶 속에 있었으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군사력이나 외교력으로만 해결하려다 망하고 만 것입니다.

 

묵상 : 먼저 내 안에 있는 더러움을 씻어내십시오.

 

    많은 사람이 내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 있으면 내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모두 쏟아부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를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내 안에 있습니다.

    주께서 싫어하실 만한 것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이 내게로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나 권세 등 세상의 어떤 것을 채우려 하기보다

    먼저 내 안에 있는 더러움을 주께 고하여 씻어내는 자가 되기에 힘쓰십시오.

 

 

3. 대적에 조롱받는 유다 백성들을 슬퍼함(7~8절)

 

    예루살렘의 거민들이 나라를 잃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며 헤매다가

    지난날의 그 찬란했던 시절을 추억합니다.

 

    아, 하나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눈물을 흘리며 한탄을 하지만

    이제 그들을 도울 자는커녕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주변에는 온통 그들을 짓밟는 자들이 아니면

    그저 그들의 비참한 꼴을 보고 손가락질하며 조롱하는 자들뿐입니다.

    이에 유다 백성들이 스스로도 자기들의 비참한 모습에 탄식하며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4. 여호와께 거스르기만 하던 시온이 결국 이렇게 되고야 말았도다(5절)

 

    이 모든 일이 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던 때만 해도 그들은 아직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니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리고 쳐들어오기

    직전에만 회개했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 곁에서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하나님께 회개하며 도움을 청하라고 호소를 했건만

    그는 끝내 듣지 않고 도망갈 생각만 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하고야 말았습니다.

 

묵상 :

 

    예레미야애가는 마치 주님의 마지막 심판이 끝난 후

    멸망 당한 이 세상을 보고 탄식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이미 멸망하여 황폐하여진 예루살렘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는 예레미야와 같은 심정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날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그날에 기쁨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5. 우리에게 대한 적용 : 끝까지 간직하고 지켜야 할 것

 

    예레미야의 이 탄식의 노래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봅시다.

 

 1) 신앙의 기쁨을 잃지 않게 하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후 제일 먼저 잃어버린 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입니다.

    신앙이 무너지기 전에, 시험 들기 전에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즐거움입니다.

 

    신앙의 기쁨이 사라지면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넘어지고 시험에 들게 됩니다.

    시험 드는 첫 번째 신호가 바로 신앙의 기쁨이 사라지는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그러므로 마음이 공허하고 주님을 믿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위기를 느끼고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십시오.

    이때를 놓치면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2) 신앙의 능력

 

    신앙의 기쁨을 잃어버렸으니 신앙과 관계된 일을 하기가 힘이 듭니다.

    말씀을 보기가 힘들고 찬양하는 일도 예배를 드리는 일도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세상일은 재미있습니다.

    세상의 죄의 쾌락이 전에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이라 생각하며 두려워했는데,

    점점 두려움은 사라지고 재미있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은 힘들고 세상은 재미있으니 점점 더 죄의 깊은 늪에 빠져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즐거움에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더 깊은 죄의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악마가 내 육신 안에 넣은 죄의 독이 점점 더 깊은 죄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과 기도와 찬양의 능력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 복이 되는 것은 모두 싫어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 묵상 :

 

       이렇게 말씀을 보는 것도 싫고 찬양도 기도하는 것도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는

       이미 상당히 영적인 병이 진전되어 돌아오기 힘들기는 하지만,

       그때에라도 만일 본인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중보의 기도라도 해줄 것을 요청하여 서둘러 빠져나온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미 나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줄 만한 것은 싫어하고,

       지옥으로 빠지게 할 만한 것만 좋아하는 자가 되어버렸으므로 참으로 어렵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며 섬기는 신앙의 능력을 상실하면

       지옥과 가까운 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3) 신앙의 생명력

 

    신앙과 관계된 일을 하기가 힘들어졌을 때 위기를 느끼고

    얼른 주께 도움을 청하여 신앙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 바쁘다 하면서 머뭇거리면 어느 사이엔가 내 마음이 굳어집니다.

    요한계시록이 아니라 그 어떤 말씀으로 심판의 두려움을 경고해도

    하나도 두렵지 않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상태를 가리켜 양심에 화인 맞은 자라고 했습니다.

    육신은 살아있으나 사실상 이미 심판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 그대로 두면 점점 죄가 나를 삼킵니다.

 

    처음에는 나의 영의 상태를 자각하고 두려움을 느끼지만

    서서히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들어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나하고 상관없는 말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예레미야가 아무리 강한 말로 경고해도 그들은 오히려 그를 조롱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러다 졸지에 모두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묵상 :

 

    그러므로 이렇게 졸지에 멸망을 당하는 자가 되지 말고

    항상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머물러 있는 자가 되십시오.

 

 

* 기도제목

 

1.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2. 그래서 혹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달았으면

   미루지 말고 즉시 회개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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