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구하는 이사야의 기도(이사야 64:1~12)
* 본문요약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그를 앙망하는 자들을 위해 강림하셔서
이방 나라들로 두려워 떨며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죄를 범했기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그들로 소멸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토기장이가 되시니,
황폐함과 심한 괴로움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찬 양 : 487장(새 369)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440장(새 387) 멀리 멀리 갔더니
* 본문해설
1. 이사야의 회개의 기도와 간구(1~7절)
1) 원컨대 주께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면(이 땅에 내려오시면)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두려워 떨기를)
2) 불이 섶(마른 나뭇가지들)을 사르며 불이 물을 펄펄 끓게 하듯 하셔서,
주의 대적으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3)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예측하지) 못했던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때에
산들이 주의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두려워 떨었사오니),
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5) 주께서는 기쁨으로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기뻐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리 오래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 알게 하시며(2절) : 레호디아
‘알게 하시며’에 해당하는 ‘레호디아’는 ‘레’와 ‘야다’의 결합 형태입니다.
직역하면 ‘알게 하기 위하여’로, 주의 대적들에 대한 심판이
하나님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기 위한 것임을 나타냅니다.
‘알다’로 번역된 ‘야다’는 단순한 지적인 앎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교제하며 아는 경험적인 앎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체험하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 귀로 깨달은 자, 눈으로 본 자(4절) :
‘귀로 깨달은 자’와 ‘눈으로 본 자’는 직접 듣고 직접 본 자를 가리킵니다.
이방 신의 구원의 역사를 직접 듣고 직접 본 자는 없다는 뜻입니다.
- 더러운 옷(6절) : 이딤
‘더러운 옷’에 해당하는 ‘이딤’의 문자적인 뜻은 ‘더러운 걸레’입니다.
‘사용한 생리대’를 뜻하기도 합니다(레 15:33, 20:18).
- 스스로 분발하여(7절) : 미트오레르
‘스스로 분발하여’에 해당하는 ‘미트오레르’의 문자적인 뜻은
‘깨어나다, 일어나다’입니다.
눌려 있던 영적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2. 주의 구원을 간구하는 탄원의 기도(8~12절)
8)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이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9) 여호와여 과히 분노하시 마옵시며, 죄악을 영영히 기억하지 마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10)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11) 우리 열조가(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의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무하였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오히려 스스로 억제하시리이까
(형편이 이러한데도 주께서는 그저 가만히 계시기만 하시려나이까)?
주께서는 오히려 잠잠하시고 우리로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리이까?
* 묵상 point
1. 이스라엘을 위한 이사야의 회개와 간구
1) 이 땅에 강림하셔서 주의 대적으로 두려워 떨며 주의 이름을 알게 하옵소서(1~2절)
➀ 주의 대적을 심판해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시면
마치 화산이 터질 때 산이 진동하고 물이 펄펄 끓는 것처럼
열방(이방 나라들)이 크게 두려워하며 떨게 될 것이니
그 옛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하여 내실 때에
이스라엘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주변 나라들에 크게 두려워 떨게 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그 은혜를 내려주셔서
주변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보고 두려워 떨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➁ 그 심판의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해 달라는 기도
그러나 이사야는 단순히 주의 대적인 이방 나라들을
멸망시켜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심판의 일들을 통해 이방 나라들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안다’로 번역된 ‘야다’는
날마다 깊은 교제를 함으로 알게 되는 체험적인 앎을 뜻합니다.
이방 나라 백성들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2) 주 외에는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3~4절)
이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앙망하며 섬길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능력으로 대적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셨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온종일 해가 지지 않도록 하셨으며,
이스라엘이 공격하기도 전에 상대 진영에 큰 우박과 우레로
스스로 무너지도록 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예로부터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렇게 큰 권능과 기적으로 도운 신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자도 없고 본 자도 없다고 고백합니다.
오직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렇게 큰 권능으로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3) 이사야의 회개
➀ 주께서는 기쁨으로 의를 행하는 자와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5절)
주께서는 기쁨으로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면서 주님을 늘 묵상하며 그 이름을 기억하며 사는 자를
주께서 기뻐하십니다.
➁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6절)
그런데 이스라엘은 다 부정한 자 같아서 하나님을 떠나 살았습니다.
말씀을 듣기를 싫어했고,
어쩌다 말씀을 깨달아도 그 말씀대로 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의는 더러운 걸레처럼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이 잎사귀처럼 쇠하여졌고, 바람같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➂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도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 없사오니(7절)
이사야 64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시지만,
이스라엘은 자기 고집대로 살아간다며 한탄하시는 말씀입니다.
그중에 특히 7절의 말씀은 그들이 고통을 받는 중에도
주님을 찾는 자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이
바로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눌려 있던 영적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애쓰는 것을 뜻합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처럼 넘어졌다가 다시 주께로 나와 부르짖고,
또 미혹되었다가 다시 주님 앞에 부르짖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➃ 우리 죄악을 위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7절)
이렇게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소멸되게 하셨다고 이사야가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소멸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절하고 스스로 죄에 빠졌으니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소멸되게 한 것입니다.
2. 이사야의 탄원의 기도
1)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오니 과히 분노하지 마옵소서(8~9절)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그동안 한 짓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버림받아 소멸되게 되었더라도 할 말이 없다고 고백했으나,
그래도 의지할 곳은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오니 과히 분노하지 말아주옵소서”하고 간구합니다.
우리는 진흙이고 하나님은 토기장이시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멸망시키실 수도 있고 구원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인자와 긍휼을 다시 한번 보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이스라엘이 잘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것만 강조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돌봐달라는 것 외에는
달리 간구할 기도 제목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나마 이 기도도 이스라엘 백성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 이사야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드리는 중보의 기도입니다.
정작 이 기도를 해야 할 이스라엘은
이사야가 이 기도를 하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주의 거룩한 성전과 성읍이 황폐되었는데 가만히 지켜보고만 계시리이까(10~12절)
그러나 어찌합니까?
이스라엘이 이렇게 망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답답한 심정으로,
이스라엘이 이렇게 망해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지켜보고만 계실 것이냐며 탄원합니다.
자기도 답답한데 하나님께서는 답답하지 않으시냐고 묻습니다.
이사야 입장에서 하나님께 드리기에는 조금 당돌한 기도처럼 보이지만,
답답한 심정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 묵상 : 이사야처럼 믿지 않는 자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십시오.
이사야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대신 회개의 기도를 하고, 대신 간구의 기도를 한 것처럼,
우리도 주변에 있는 믿지 않는 자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합시다.
이렇게 믿지 않는 자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서부터 전도는 시작됩니다.
* 기도제목
1. 이사야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간절한 마음을 가진 것처럼
우리도 주변의 믿지 않는 자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2. 이사야처럼 우리도
그들이 주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간절히 간구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