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먹고 눈멀고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사 42:18~25)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2.12.04|조회수112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귀먹고 눈멀고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이사야 42:18~25)

 

* 본문요약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요 종인 이스라엘을 못 듣는 자와 소경이라 부르십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존귀하게 하려 하셨으나,

    그들이 순종하지 않고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약탈자에게 넘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그들 위에 쏟아부으셔도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하고, 마음에 두지도 않습니다.

 

찬 양 : 332장(새 274) 나 행한 것 죄뿐이니

           325장(새 535) 주 예수 대문 밖에

 

 

* 본문해설

 

1.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18~25절)

 

18)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눈을 떠서 밝히(주목하여) 보라.

19)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나의 사자(使者)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의 친한(충성된) 자 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

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마음에 새기지) 아니하며,

     귀가 밝을지라도(귀가 열려 있었으나) 귀담아듣지 아니하는도다.”

21)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하게(백성이 율법과 교훈을 존중하도록) 하려 하였으나

22) 이 백성이 다 도적맞으며 탈취(약탈)를 당하며,

     다 굴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되돌려 주라”할 자가 없도다.

23)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장차 다가올 일을 삼가(주의하여) 듣겠느냐?

24) 야곱으로 탈취를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약탈자에게 넘겨준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의 길로 행치 아니하며(주님의 길로 걸으려 하지 않았으며),

     그의 교훈(가르침)에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부으시매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분노가 그들의 몸을 불태우고 있으나)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는도다.

 

- 누가 나의 충성된 자 같이 소경이겠느냐(19절) :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수행해야 할 종이 영적 소경이었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가리켜 하나님의 충성된 자라고 말하는 이스라엘이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보지도 않으려 하는 배반자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한 말입니다.

 

-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20절) :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많은 이적과 구원을 보았고 직접 체험하였으나

    그가 주신 말씀과 교훈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하게 하려 하였으나(21절) : 야그딜

    크게 하며(야그딜) : ‘확장하다, 넓히다’라는 뜻으로,

    ‘영역을 넓히는 것, 위대함을 자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세계만방에 전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이 일을 감당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1) 소경이며 귀머거리가 된 이스라엘(18~19절)

 

    세상 만민을 구원할 여호와의 종의 책임을 완벽하게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놀라운 예언을 하던 이사야는

    갑자기 말을 바꾸어 여호와의 종을 소경과 귀머거리에 비유하며 조롱합니다.

 

    앞서 말했던 여호와의 종은 예수님을 가리키지만,

    여기에서의 여호와의 종은 바벨론에 포로 된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본래 여호와의 종의 책임을 맡은 자들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책임 맡기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소경과 귀머거리가 누구냐?

    나의 사자, 나의 충성된 자, 스스로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는 작자들이 아니냐?”

    하며 역설적으로 조롱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2)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20절)

 

    이 땅에 있던 모든 사람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많이 체험한 자들도 없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때의 기적도 직접 체험했고,

    광야 40년 동안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도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수도 없이 보고 듣고 체험했습니다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셨으나(21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의 근원’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먼저 복을 내리신 후에

    그들에게 주신 복이 세상에 전달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치 물이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그들에게 주신 복이 주변 사람들에게로 전파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자기들만 홀로 독점하려고만 했습니다.

 

 4) 그들이 듣지 않았으므로 이 백성이 다 도적맞으며~(22절)

 

    이렇게 그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도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싫어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약탈자인 바벨론에게 넘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포로 백성이 되었습니다.

    굴에 피하여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힌 자와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2. 본래 여호와의 종이었던 이스라엘

 

 1) 예수께서 맡으신 여호와의 종의 자리는 본래 이스라엘이었습니다(21절)

 

    이사야 42:1~9에 나온 여호와의 종의 책임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담당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맡으신 여호와의 종의 책임은 본래 이스라엘이 담당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불러내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그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의 백성 삼으셨습니다.

 

 2)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거부했습니다(23절)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며

    세상 만민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지금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예수께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구원하는 복음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 지키기를 거부했습니다.

    남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훼방하면서

    자기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는 고약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3)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약탈자에게 넘기셨습니다(24절)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탈자에게 넘기셨다는 말씀을

    22절에 이어서 다시 반복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진노의 불을 쏟아부으셨습니다.

 

 4) 자기의 몸이 불타고 있어도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25절)

 

    하나님께서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 위에 쏟아부으시니

    이스라엘이 불타고 있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그들의 몸이 불타고 있으나,

    정작 그들이 자기의 일을 마음에 두지도 않습니다.

 

    몸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불에 타는 것처럼 고통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그들은 이 땅에서부터 이미 지옥의 백성으로,

    영원히 불에 타는 저주의 형벌을 받을 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벌을 받고 있는 그들 자신이

    자기들이 받을 벌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다 자기들에게 일어날 일인데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장차 다가올 엄청난 일에 대하여 묻는 자도 없고,

    혹 누가 말해주어도 귀담아듣지도 않습니다.

 

묵상 : 심판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가 되십시오.

 

    ‘경외(敬畏)’라는 말은 ‘공경하면서 두려워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 이것이 경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그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자가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일단 심판을 받은 후에는 다시는 회복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영원한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을 어찌해야 합니까?

 

    회개는 두려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 두려움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심판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함께 가지십시오.

 

 

* 기도제목

 

1. 우리가 담당해야 할 사명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2. 우리가 먼저 주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도

   구원받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3.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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