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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받을 때의 그리스도인의 자세(벧전 3:12~22)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02.12|조회수313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고난받을 때의 그리스도인의 자세(베드로전서 3:12~22)

 

* 본문요약

 

    그리스도인들은 의를 행하다가 고난을 받을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소망에 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항상 대답할 것을 준비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선을 행하다가 고난받는 것이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육은 죽으셨으나

    영은 살아서 노아 홍수 때에 죽어 지옥에 갇혀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물에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세례를 받을 때의 물 역시 우리의 구원과 부활의 표입니다.

 

찬 양 : 377장(새 449) 예수 따라가며

          507장(새 455)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 본문해설

 

1. 고난 받을 때의 그리스도인의 자세(12~17절)

 

12) 주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너희는 복 있는 자이니,

     그러므로 그들의 두려워함을 두려워하지 말며, 소동하지(근심하지, 불안해하지) 말고

     (혹은, 그들의 두려운 모습이나 그들의 협박에 두려워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오직 그리스도만 거룩한 주님으로 모시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부드럽고 공손하게)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너희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하다가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악한 일을 행하다가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13절) :

    열심히 주의 말씀에 순종하면 육체에 박해를 가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해(영혼의 멸망)을 끼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14절) :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구든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고 했으

    하지만 세상이 악할 때에는

    의를 위하여 힘써 일하는 그리스도인이 육체의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저희의 두려워함을, 그들의 위협을(14절) :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온갖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온다고 할지라도’의 뜻

 

-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14절) :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 그들의 두려운 공갈과 협박에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나운 모습으로 협박하고 공격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하고(15절) :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거나 조롱하는 자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소망에 대하여 물을 때 똑같이 흥분하여 말하지 말고,

    최대한 신사적이고 정중하게 우리가 믿는 소망이 무엇인지를 말하라는 것.

 

- 선한 양심을 가지라(16절) : 쉬네이데신

    ‘선한 양심’에 해당하는 ‘쉬네이데신’은

    ‘하나님과 함께 본다, 하나님과 함께 안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과 생명이 연결된 거듭난 자로서,

    하나님과 함께 알고 함께 바라보는 것이 선한 양심입니다.

 

    극형의 고난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고난을 피하기 위해 술수를 부리지 말고,

    끝까지 주님의 백성다운 신실함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2.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신 그리스도(18~22절)

 

18)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의하여 죽으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전파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가 방주를 준비하는 동안에,

     곧 하나님께서 아직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않던 자들이라.

     물로 심판하실 때 그 방주에 들어가 구원받은 사람은 적으니 겨우 8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제하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응답하는(찾아가는, 간구하는) 것이라.

22)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 저가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19절) :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다시 부활하실 때까지의 기간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께서 영으로 옥(지옥, 하데스, 스올)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때 주께서 찾아가셨던 영은 노아 때에 죽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가지고 ‘연옥설’을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 영으로 있을 때에

    단 한 번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 물은 …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21절) :

    베드로는 노아의 가족들이 물에서 구원함을 받은 것을

    세례와 연결 지어서 설명합니다.

    사실 노아는 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실 때 방주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그 물이 이제는 우리의 영을 구원하는 구원의 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21절) :

    물로 세례를 받은 자들은 육체의 더러움이 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심령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노래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고난과 핍박을 받을 때 두려워하거나 소동하지 말라

 

 1) 우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우리를 해치겠습니까(13절)

 

    우리가 열심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육체로는 핍박을 받을 수 있으나 우리의 영은 해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육신과 우리의 재물은 빼앗아 갈 수 있지만,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빼앗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삼겹줄보다 더 강하여

    이 땅과 하늘의 모든 권세가 동원이 될지라도 결코 끊을 수 없습니다.

 

 2) 의를 의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입니다(14절)

 

    선한 사람이 세상을 다스린다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열심히 선을 행하며 사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악할 때에는

    선을 행하는 자들이 도리어 고난과 핍박을 더욱 심하게 받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의를 위해 힘써 일하다가 고난을 받는 자들에게

    그들이 복 있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고난과 핍박 중에서도 주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그들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마십시오(14절)

 

    주께서 이렇게 고난 중에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을 더 기뻐하시니

    모든 믿는 사람들은 핍박자들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공갈과 협박을 한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소동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협박에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더욱 담대하게 선한 양심을 가지고 의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

 

  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이미 천국을 소유한 자입니다.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착한 일을 하면서 살면 누가 우리를 해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선하고 아름답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우리를 거짓으로 조롱하며 핍박한다면 우리는 복 있는 자입니다.

     이미 천국의 복을 소유하며 사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➁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이미 영생을 가진 자라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았음에도 조롱과 핍박을 받았다면,

     핍박하는 자는 멸망의 증거요,

     핍박을 받는 자는 영생의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주께로부터 받을 상이 큽니다.

 

 

2.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1) 더 강한 고난이 닥쳐올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며(14절)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떤 핍박이나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더욱 담대히 선한 양심을 가지고 의에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지만 핍박이 왔는데도 그 일을 계속한다는 것이

    그 핍박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에게 더욱 도전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때때로 더욱 강한 고난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앞으로 더 강한 고난이 예고되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2)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15절)

 

    그러나 때때로 우리에게 비난과 조롱을 하던 자들이

    우리 마음속에 담긴 소망이 무엇인지를 물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질문은 많은 경우 우리를 더욱 비난하기 위한 것입니다만,

    그렇더라도 그들처럼 같이 흥분하여 싸울 듯이 말하지 말고

    더욱 신사적으로 정중하게

    그들에게 내가 가진 믿음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상하여

    항상 이런 질문에 대답할 것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먼저 질문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전도의 기회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내가 미리 준비하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했다면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3) 선한 양심을 가지라(16절)

 

    선한 양심은 ‘하나님과 함께 바라본다, 하나님과 함께 안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생명이 연결된 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선한 양심을 가진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처럼 극한 고난이 다가올지라도

    주님의 백성다운 신실함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3. 항상 대답할 것을 준비하고(15절)

 

    이렇게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당신은 어떻게 당신에게 악하게 하는 사람에게까지

    그렇게 선하게 대할 수 있느냐?”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우리의 소망에 대하여 묻는다면

    항상 대답할 수 있도록 말씀의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전도를 하면 상대의 마음이 닫힐 수 있지만,

    그가 먼저 질문하였다면 우리가 전하는 말에 귀를 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선한 삶을 살되, 소망에 대하여 물을 때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영생의 소망을 온유하고 겸손하게 대답하여야 합니다.

 

묵상 :

 

    누가 언제 어떤 질문을 하다라도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십시오.

    또 예수님을 믿는 나의 신앙이 온전한 것인지를

    늘 자신의 믿음을 분별하고 확인하십시오.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항상 예수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이 무엇인지,

    주님의 백성들이 가져야 할 소망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소망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깨닫고 믿기 위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4. 주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주님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십니다(12절)

 

    주님은 이렇게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에 힘쓰는 자들을 주목하십니다.

    주께서 그들의 형편을 살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간구하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목소리만 높인다고 능력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에 힘쓰는 자들은

    조용히 속삭이는 기도를 해도 주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묵상 :

 

    능력 있는 기도는 기도의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 있는 기도는 기도하는 자의 마음과 자세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을 가진 기도,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새해에는 이런 기도를 드리는 성도가 됩시다.

 

 

5. 주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에 대하여

 

    베드로전서 3:19~20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난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씀을 하다가

    갑자기 생뚱맞게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는 말씀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 이외의 다른 구절에서는 일단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다시는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이미 죽어서 그 영이 옥(음부, 하데스, 스올)에 갇혀 있는 자들을

    주께서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으니

    혼란을 느낍니다.

 

 1) 주께서 영으로 계실 때에 단 한 번 찾아가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부활하시기까지 영으로 계실 때에

    영으로 음부(지옥)에 갇혀 있는 자들을 한 번 찾아가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영들은 전에 노아 때에 죽었던 자들이라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2) 그 후에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지옥에 찾아가셨던 일은

    영으로 계실 때 단 한 번 있었던 일이므로,

    이 말씀을 소위 말하는 ‘연옥설’을 증명하는 말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3) 노아의 홍수 때에 멸망을 당했던 자들을 위해

 

    예수께서는 그 때 노아의 가족 8명 외에

    이 땅에 있던 모든 자들이 다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것을

    못내 가슴 아파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부활하시기까지 만 3일이 못 되는 그 시간에

    그들이 갇혀 있는 음부로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시기 위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일은 사도신경에도 나옵니다.

    사도신경의 원어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하여 (지옥에 내려 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로 되어 있습니다.

 

 4)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 사도신경에 빠져 있는 이유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이 말씀이 베드로전서 3:19에도 있고,

    사도신경의 원어에도 있는 말씀입니다만,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을 번역할 때

    이 말씀이 천주교의 연옥설을 연상하게 한다고 해서 빼버렸습니다.

 

    그러나 최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대로 임의로 넣거나 뺄 수 없으므로

    사도신경에 이 말씀을 다시 회복하여 고백하고 있습니다.

 

 5) 그러나 이 말씀은 주의 죽으심과 부활을 더욱 확실하게 언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 말을 이 부분에서 언급한 것은

    예수께서 영으로 노아 때에 죽었던 자들을

    찾아가셨다는 것을 말하려 한 것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확실히 죽으셨다는 점을 말하려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잠시 기절하셨다가 깨어나신 것이 아니라 확실히 죽으셨고,

    예수님의 영이 죽은 자들이 갇혀 있는

    그 영의 옥(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확실하게 죽으셨던 예수께서 다시 몸으로 부활하셨으니

    우리도 그의 부활하심을 따라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을 베드로가 증거한 것 이상으로 확대해석하여

    ‘연옥설’을 주장하는 것으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묵상 :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육신이 생명을 갖고 있을 때뿐입니다.

    내 생명이 육신에서 떠나는 순간,

    그의 회개도, 그의 믿음의 고백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오직 육신에 생명이 있을 때의 회개와 고백만이

    우리를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6.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

 

    베드로는 노아 시대의 물과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의 물을 서로 연관 지어 설명합니다.

    노아가 물에서 구원함을 받았듯,

    우리도 세례 때의 물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받을 때의 물이 마치 어떤 주술적인 능력이 있어서

    무조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물은 우리의 육의 더러움을 씻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선한 양심을 주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신 새 양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묵상 :

 

    날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의 질서 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섬기는 삶을

    육신으로 있는 동안 계속 반복해서 하십시오.

    이것이 당신을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합니다.

 

 

* 기도제목

 

1. 고난과 핍박과 역경 속에 있을지라도

   주님을 섬기는 일을 멈추지 말게 하옵소서.

 

2.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의 말씀을

   전할 준비를 항상 하고 살게 하옵소서.

 

3. 육신으로 있는 동안 주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일을

   중단하지 말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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