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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에 바쳐진 고기를 먹는 문제(고전 8:1~13)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05.27|조회수612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우상에 바쳐진 고기를 먹는 문제(고린도전서 8:1~13)

 

* 본문요약

 

    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우상은 신이 아니며,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들이 그런 지식을 갖고 있으니

    우상 앞에 바쳐진 고기도 마음대로 먹겠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우상 앞에 바쳐진 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음식이 우상에 속한 것으로 생각하여 마음에 거리끼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믿음이 연약한 자를 위하여 고기 먹는 일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칫 다른 사람이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양심에 거리끼면서도 그를 따라서 고기를 먹다가

    양심이 굳어져서 더 심한 다른 죄까지 범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찬 양 : 505장(새 452)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457장(새 401) 주의 곁에 있을 때

 

 

* 본문해설

 

1. 지식과 사랑과의 관계(1~6절)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혹은, 우상 앞에 바쳐진 제물에 대하여 “우리는 다 지식이 있다”하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사랑을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면

   그는 아직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하나님께서도 그를 알아주신다, 혹은 그는 하나님께서 아시는 자이다.)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 말한다면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고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신’이라 불리는 것과 ‘주’라 불리는 것들이 많이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그로 말미암아 살아 있느니라).

 

-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1절) : 그노시스, 퓌시오이

    지식(그노시스) : ‘아는 것, 지식, 학식’이란 뜻인데,

    여기에서는 “우상이란 없으며,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는

    4절에 나와 있는 신앙의 기본 지식을 가리킵니다.

 

    교만하게 하고(퓌시오이) : ‘콧김을 흥흥 내뿜다, 교만하게 만들다’라는 뜻으로,

    여기에서의 뜻은, 우상이란 본래 없는 것인데

    그 앞에 바쳐진 음식 먹는 것이 뭐 어떠냐며

    코를 흥흥거리며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 자를 조롱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 사랑과 지식과의 관계(1절) :

    사랑이 없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지식이 없는 사랑은 사람을 타락하게 합니다.

 

- 우상 앞에 바쳐진 고기를 먹는 일(4절) :

    바울 당시에는 우상 앞에 바쳐진 제물을 다시 빼돌려서

    시장에 내다 파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시장에서 파는 고기 중 어떤 것이 우상 앞에 바쳐진 것인지 알 수 없으므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문제(7~13절)

 

7)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누구나 다 이 지식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설명 : 음식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니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해로울 것도 손해 볼 것도 없고,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이로울 것도 없으리라.)

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우상 앞에 바쳐진 고기를 가리지 않고 먹는 너희의 이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이 (네가 먹는 것을 보고) 그 양심에 담력을 얻어

     우상 앞에 바쳐진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니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일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 그 양심에 담력을 얻어(10절) : 오이코도메데세타이

    담력을 얻다(오이코도메데세타이) : ‘건설하다, 강화하다’라는 뜻으로,

    건물을 쌓아 올리는 모습을 묘사한 단어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가 양심에 담력을 얻어

    점차로 더 강한 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11절) :

    우상 앞에 바쳐진 고기를 먹는 일로 완전히 소망이 사라진 자가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일로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범하는 용기를 얻어서

    다른 일들도 용기를 가지고 죄를 범하는 자가 되면,

    결국 멸망에 이르는 자가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 묵상 point

 

1. 우상 앞에 바쳐진 고기를 먹는 문제

 

 1) 질문 : 우상 앞에 바쳐진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1절)

 

    바울은 우상 앞에 바쳐진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에 대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질문에 답합니다.

 

    고린도교회의 일부 성도들이 말하기를

   “우상은 신이 아니고,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 우상 앞에 바쳐진 음식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

    하며 아무 거리낌 없이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에 대한 문제입니다.

 

    나는 우상 앞에 바쳐진 음식이라도

    내 믿음대로 마음 놓고 먹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2) 대답 : 그러나 나의 자유로 누군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면(7~9절)

 

    이에 대하여 바울은 음식을 먹는 본인보다

    옆에서 그 사람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본인이야 자기 믿음대로 먹었으니 상관없겠지만,

    만일 그가 우상 앞에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누군가 양심에 상처를 입는다면

    그를 멸망하게 하는 일이 되는 것이라고 바울은 경고합니다.

 

    나는 내 자유로 음식을 먹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은 자칫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가 주님을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묵상 :

 

    우리의 경우에는 제사 음식과 술 문제입니다.

    제사 음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다른 것과 같이 감사함으로 먹으면 됩니다.

    제사 행위에 참여하지만 않는다면

    그 음식 먹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되지 않습니다.

 

    술에 대해서는 성경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디모데에게

    위장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마시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누군가 나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을 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로 인하여 제사 음식이나 술 마시는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2. 음식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1) 물론 음식이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마 15:11)

 

    바울은 음식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어떤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또 어떤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은 그저 음식일 뿐입니다.

 

 2) 그러나 누군가 이 일로 믿음을 잃게 된다면 그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11~12절)

 

    어떤 음식이든 그저 음식에 불과한 것은 분명 맞는 말입니다만,

    누군가 내가 먹는 어떤 음식으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어 믿음을 잃게 되든지 죄에 빠지게 된다면,

    우리는 그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

 

 

3. 지식과 사랑과의 관계

 

 1) 먹기 전에 먼저 옆에 있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생각하라(7, 9절)

 

    여기에서 말한 믿음이 연약한 자는

    과거에 우상숭배를 했던 습관이 아직 남아있어서

    우상 앞에 바쳐졌던 음식에

    여전히 그 우상의 능력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 음식을 먹으면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이 우상 앞에 바쳐졌던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식이란 어디에서 무엇을 먹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감사함으로 먹으면 되는 것이지만,

    만일 주변에 이와 같이 믿음이 연약하여

    우상 앞에 바쳐진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믿음을 위하여 조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음식을 먹어도 되는 믿음의 지식을 가졌으니 먹어도 상관없지만,

    내가 우상 앞에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양심에 상처를 입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내 먹는 자유보다 믿음을 세우는 자가 되십시오(13절)

 

    그러므로 성도들은 내가 무엇을 할 자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절제하는 것이 더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지식과 사랑과의 관계를 봅니다.

    나는 이것을 먹어도 된다는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그 지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사랑이 없는 자는 그에게

    그런 지식이 없는 것을 비난하고 조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자는 그를 위하여 조심합니다.

 

    어떤 음식을 먹는다든지, 먹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신 바 된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평생 먹지 않는 자라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아시는 자가 되지 못하고,

    무엇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었다면

    그가 하나님께서 아시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묵상 : 지식과 사랑과의 관계(1절)

 

    사랑이 없는 지식은 나를 교만하게 하고,

    지식이 없는 사랑은 사람을 타락하게 합니다.

    사랑은 지식을 가진 자로 하여금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고,

    지식은 사랑을 가진 자로 하여금 바르게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바로 아는 참된 지식을 갖기에 힘쓰고,

    또 한 편으로 우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채워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4. 양심을 범하는 담력을 얻는 것이 위험한 이유

 

 1) 내가 음식을 먹는 것이 왜 상대를 멸망하게 합니까(11절)

 

    나는 그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믿고 있으므로

    음식을 먹을 자유에 따라 나는 먹었다고 말하겠지만,

    그것을 보고 누군가 양심에 상처를 입는다면

    그를 멸망하게 하는 일이라고 바울은 경고합니다.

 

    바울은 이미 음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음식을 먹는 것이 왜 상대를 멸망하게 하는 것이 됩니까?

 

 2) 양심을 범하는 담력 때문입니다(10절)

 

    바울은 이것을‘양심을 범하는 담력’으로 표현합니다.

    그 사람은 우상 앞에 바쳐진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어떤 사람이

    우상의 신당 앞에서 우상 앞에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그것을 보고 양심에 거리끼면서도 자기도 그를 따라 음식을 먹는다면,

    그는 양심을 범하는 담력을 얻어

    다른 허물과 죄를 범하는 일도 더욱 용기를 얻어 범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멸망하는 자가 된다면

    그가 보는 앞에서 거리끼지 않고 음식을 먹은 자에게

    그 책임을 묻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겨우 먹는 음식 문제 때문에 지옥에 가겠느냐며

    경솔히 행동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묵상 :

 

    내 자유가 다른 사람의 양심에 상처를 주어

    그로 하여금 죄를 범하는 담력과 용기를 갖게 했다면,

    결국 내 자유가 그를 멸망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기에 앞서

    이 일이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인지를

    살피는 버릇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5. 형제를 위하여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13절)

 

    그러므로 바울은 만일 자기가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실족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위하여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내가 고기를 먹을 자유보다

    다른 사람을 실족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주님의 명령이 우선되기 때문입니다.

 

묵상 : 나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게

 

    한국의 경우 성도들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교리처럼 된 것은,

    한국 사람들이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 것을 보고

    선교사들이 아예 술 마시는 것을 금지한 것에 기인합니다.

    (로마서 14:1~12의 묵상포인트 2번 참조)

 

    의사들도 매일 술 한 잔을 마시는 사람은

    알콜 중독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하고 있고,

    술로 건강을 해친 사람들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일부러라도 술을 마시지 않도록 힘써야 할 상황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의식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남아있는데

    그것을 굳이 바꾸어 술 마시자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아직 믿는 자들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되,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하게 말씀을 적용하여,

    술 문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기도제목

 

1.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지식을 얻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2. 그 지식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더하여 주옵소서.

 

3. 누군가를 판단할 때

   나에게는 엄격하되

   다른 이에게는 관대한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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