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바울의 사도직과 그 권리의 정당성(고린도전서 9:1~12)
* 본문요약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기에게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이 주께로부터 직접 세우심을 받은 사도라는 것을 알 것이라고 말한 바울은,
자신이나 바나바도 다른 사도들처럼 아내를 데리고 다니며
교인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돈을 써 가며 일하는 군인이 없고, 포도를 심은 이가 그 포도를 먹으며,
양을 치는 자가 그 양의 젖을 먹고,
하다못해 소도 타작마당에서 일할 때 그 입에 망을 씌우지 않는데,
주를 위해 일한 자가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혹시 지장이 될까 싶어
이런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찬 양 : 519장(새 461) 십자가를 질 수 있나
351장(새 321) 날 대속하신 예수께
* 본문해설
1. 바울의 사도직의 증거(1~2절)
1)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내가 우리 주 예수님을 뵙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주 안에서 내가 일한 열매가)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印) 친 것이(보증하는 표가) 너희라.
- 내가 사도가 아니냐(1절) :
당시 사도로 인정을 받으려면
➀ 예수님께 직접 교육을 받아야 하고,
➁ 예수께서 사도로 직접 세우신 자라야 하는데,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예수께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아 사도로 세움을 받았으므로
사도가 가진 위의 두 가지 요건에 충족이 되어,
다른 열두 사도와 같이 주님의 사도로서 활동을 했습니다.
- 나의 사도 됨을 인 친 것이 너희라(2절) :
고린도는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면 도저히 복음을 전할 수 없는 타락한 도시였는데,
그런 타락한 도시 고린도에서 예수를 믿게 하였으니,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야말로
바울이 사도라는 것을 증거하는 가장 확실한 표라는 것입니다.
2. 사도로서 바울이 누릴 수 있었던 권리들(3~10절)
3)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변명, 답변)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베드로)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자기 돈으로 생활하며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신 25:4)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타작하는) 자는 함께 얻을(자기 몫을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6절) :
주를 위해 일하는 자는 성도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바울과 바나바도 고린도교회의 성도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9절) :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밟아 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은,
비록 소일지라도 자기가 일한 것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사도의 권리를 포기하는 바울(11~12절)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할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 범사에 참는 것은(12절) :
바울도 다른 사도들처럼 고린도교회 성도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었으나,
복음을 전하기가 척박한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 조금이라도 지장이 될까 싶어
바울은 그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자기가 직접 일을 하여 생활비를 벌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 묵상 point
1. 바울의 사도인 이유
1) 예수님의 사도의 조건
당시 사도로 인정을 받으려면
➀ 예수님께 직접 교육을 받아야 하고,
➁ 예수께서 사도로 직접 세우신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12 제자들은 모두 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기까지 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의 사도가 될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2) 예수께 직접 사도로 세우심을 받은 바울
물론 바울은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 정도 지낼 때에 예수께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았고,
주께로부터 직접 세우심을 받았으니
다른 열두 사도와 같이 주께 세우심을 받은 사도입니다.
3)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의 사도직을 인(印)친 자들이다(2절)
그러나 바울이 예수께로부터 직접 교육도 받고
예수께로부터 직접 사도로 세우심도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본 일이 없으니,
많은 사람이 이것을 의심했습니다.
그가 예수께 직접 교육 받은 것을 어찌 알겠으며,
예수께서 직접 그를 세우셨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바로 그가 사도임을 인(印)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예수님을 믿게 한 것이
바로 그가 사도임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는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면 도저히 복음을 전할 수 없는 타락한 도시였는데,
그런 타락한 도시 고린도에서 예수를 믿게 하였으니,
지금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야말로
바울이 예수님의 능력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사도라는 것을 증거 하는
가장 확실한 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묵상 : 나는 무엇으로 그리스도인임을 말할 수 있나?
예수님도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하는) 그 일은 믿으라”(요 10:3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역시 고린도에서 그가 한 일이
자신이 주님의 사도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들 중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고 증명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자신이 사도임을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알라고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 일을 무엇으로 말하겠습니까?
2. 복음을 위하여 권리를 포기한 바울
1) 일꾼이 마땅히 받을 먹고 마실 권리(3~7절)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운 자신과 바나바도
다른 사도들처럼 아내를 데리고 다니고
성도들로부터 생활비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 돈으로 생활하며 군 복무를 하는 자가 없고,
포도를 심은 자가 그 포도를 따 먹으며,
양을 친 자도 자기가 친 양의 젖을 먹는데,
하나님을 위해 일한 자는 더욱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경우만이 아니라 율법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신25:4을 보면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밟아 떠는(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소도 일했으면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에게까지도 그 삯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고린도교회를 세운 바울과 바나바는
그 교회의 성도들로부터 생활비를 받는 것이 더욱 마땅한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2) 복음을 위하여 이 권리를 모두 포기한 바울과 바나바
그러나 고린도는 복음을 전하기 아주 힘든 도시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그들이 생활비를 받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을까 싶어
바울과 바나바는 생활비를 받는 것을 포기하고
자기들이 직접 일을 하여 생활비를 조달하였습니다.
● 묵상 :
① 오늘날 목회자들도 바울처럼 자비량해야 하나?
어떤 사람들은 바울도 생활비를 포기했으니
지금 교회의 목회자들도 바울처럼 생활비 받지 말고
자비량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자였으니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전적으로 목회에만 전념하지 않으면
성도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없는 복잡한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 레위인의 생활을 다른 지파 사람들이 책임졌듯,
성도들이 그 교회의 목회자의 생활을 담당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도저히 생활비를 줄 형편이 안 되는 곳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형편이 충분히 되는데도 불구하고 본문을 근거로
목회자에게 생활비를 주지 않으려는 것은
말씀을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잘못된 일입니다.
② 그러나 목회자 입장에서 반성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목회자들은 이런 말들을 가슴 아프게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사역지를 정할 때에
그 교회의 성도들이 얼마인지, 한 달에 받는 생활비는 얼마인지를 보고 정합니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가정까지 가진 목회자들이
생활비를 포기한 바울처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내 생활은 주께서 책임지시리라는 믿음으로
오직 복음을 위해 충성하는 바울을 본받는 목회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목회자들은 사역지를 정할 때 생활비가 얼마인지를 보고 정하지 말고
그 교회가 나를 필요로 하는지를 보고 정해야 할 것입니다.
3. 포기했기에 더 어려워진 바울
바울이 이렇게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전하기에
온 힘을 다하기 위해서 생활비 받는 것까지 포기하고 자비량하여 복음을 전했으면,
마땅히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이를 본받아
더욱 열심히 주님을 섬겨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비량하여 복음을 전하자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이 다른 사도들보다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 오해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에 대하여 이런저런 뒷말들을 하고,
바울을 능력 없는 자 취급을 하였습니다.
● 묵상 : 겸손한 자를 업신여긴 고린도교회
바울은 키도 작았고 말주변도 없었으며,
게다가 간질병 같은 고질병까지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사도입네 하고 왔는데, 생활비도 안 받고 자비량하여 섬긴다고 하니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를 가볍게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의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 가장 뛰어난 사도였습니다.
세상은 겸손한 자를 업신여깁니다.
세상은 성실한 사람을 바보 취급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을까 봐 염려하는 사람을 새가슴이라고 놀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사람을 더 큰 자로 여기십니다.
내 편견으로 하나님께서 훌륭한 자로 여기시는 자를
형편없는 자 취급한 적이 없었는지 자신을 살펴봅시다.
4. 복음을 위해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는 바울
이렇게 자신에 대하여 뒷말이 많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바울은 어떻게 대하여야 할까요?
저 같았으면 그리 다정다감하게 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한 번 더 낮추어 겸손하게
자신을 향한 모든 뒷말들을 일일이 적어가며 그것이 아니라고 변명(해명)을 합니다.
자신을 잘 봐달라는 변명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 변명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변명이 아닙니다.
그가 전한 복음의 말씀이 참된 것임을 증거하기 위한 변명입니다.
● 묵상 :
복음을 위하여 한 번만 더 자존심을 내려놓으십시오.
복음을 위하여 한 번만 더 겸손해지십시오.
복음을 위하여 한 번만 더 충성된 자가 되십시오.
주께서 기뻐하십니다.
* 기도제목
1. 주께로부터 인정받는
참된 믿음을 가진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내 편견으로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게 하옵소서.
3. 오직 복음을 위하여
더욱 겸손하고 충성된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