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고린도교회의 잘못된 성만찬에 대한 책망(고린도전서 11:17~34)
* 본문요약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주의 만찬(성찬식)을 강하게 책망합니다.
그들은 성찬식을 할 때 성도들이 각자 가져온 것을 한데 모아
함께 식사를 하는 식으로 진행했는데, 음식을 가져온 부자들이 먼저 먹어서
뒤늦게 온 가난한 자와 노예들은 먼저 온 자들이 술에 만취한 모습만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들을 강하게 책망하며,
그들이 예식을 갖춰 성찬식을 행하였더라도
그것은 결코 주님의 만찬이 될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주님의 빵과 포도주를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면
주님의 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을 할 때에는 먼저 성찬식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신을 살피고,
주님의 몸에 대한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찬 양 : 284장(새 198) 주 예수 해변서
147장(새 149) 주 달려 죽은 십자가
* 본문해설
1. 잘못된 주의 만찬에 대한 책망(17~22절)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그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믿고 있나니),
19)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혹은,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드러나려면 분열도 있어야 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혹은, 너희가 분열되어 있어서 너희가 함께 모인다 해도
함께 주님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너희가 먹는 것은 결코 주님의 만찬이 될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자기가 가져온 음식)을 먼저 가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굶주리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라?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이 일만은 정말 칭찬할 수 없노라).
-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들이 드러나려면 분열도 있어야 할 것(19절) :
분열이나 분쟁이 있으면 그 분열을 일으킨 자가 누구이고,
어려움을 당한 자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분쟁을 일으킨 자들은
스스로 자기들이 거짓 믿음을 가진 것임을 나타낸 것과 같습니다.
- 주의 만찬(20절) :
주의 만찬은 성찬식을 가리킵니다.
초대교회의 성찬식은 성찬식과 공동식사를 합한 개념으로 실시되었습니다.
먼저 떡을 떼며 감사의 기도를 한 후에 배를 채울 만큼 충분히 식사를 합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 다시 잔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에 잔을 나눕니다.
- 각각 자기가 가져온 음식을 먼저 먹으므로(21절) :
초대교회의 성찬식은 성도들이 각자 가져온 음식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먼저 온 부자들이 자기들이 준비해 온 것을 다 먹어서,
가난한 자들이나 노예들은 부자들이 음식을 다 먹고
술에 만취하여 쓰러진 모습만 보아야 했습니다.
-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20절) :
교회의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과 노예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만 먼저 먹었으니
그들이 아무리 기도하며 성찬식의 예를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주님의 만찬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22절) :
이에 바울은 그들이 먹고 마실 집이 없어서
이렇게 교회에서 만취하도록 먹고 마시는 것이냐며 크게 진노합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고,
가난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고 책망합니다.
2. 주의 만찬(성찬식)의 바른 의미(23~26절)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빵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후에)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빵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선포하는) 것이니라.
-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24,25절) : 아남네시스
기념(아남네시스) : ‘생각나게 하는 것, 기억, 기념’
주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기억하고,
주의 다시 오실 때의 그 영광의 소망을 고백하며 감사의 예식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 내 몸이니 …,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24, 25절) :
성찬식을 할 때 빵은 주님의 몸을, 포도주는 주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냥 상징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냥 빵과 포도주지만,
그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을 할 때마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때의 능력과 권세가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합당치 않은 주의 만찬에 대한 경고(27~34절)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주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가 있느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스스로 분별하면) 판단(심판)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심판)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심판)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집에서 미리 먹고 나올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
(그 밖의 다른 문제들은 내가 가서 바로잡으리라, 내가 가서 말하리라).
-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30절) :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성찬식의 의미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함부로 참여하여
그 징계로 몸이 약한 자와 병든 자와 죽는 자들이 많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판단 받는 것은 ~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32절) :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몸이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죽는 자도 많아지게 된 것은
육신에 징계를 주어
영원한 저주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 먹으려고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33절) :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고린도교회는 성찬식과 공동식사를 함께 하므로
교회에서 식사를 할 때에는 가난한 자와 노예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 배가 고프면 집에서 먹을지니(34절) :
배가 고프면 다른 성도들을 기다리기가 어려우므로 집에서 미리 식사를 하고 와서
다른 성도들이 올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는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 묵상 point
1. 고린도교회의 주의 만찬(성찬식)을 책망하는 바울
바울은 주의 만찬(성찬식) 문제를 거론하면서
고린도전서에서 지금까지 고린도교회를 책망한 것 중에서 가장 강한 어조로 책망합니다.
헬라어로 된 원어에는 우리말 성경보다 훨씬 강력한 어조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은 “너희가 이러고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식으로
거의 조롱하는 듯한 말로 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성찬식 문제에서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다른 죄는 아무리 커도 성찬식의 자리에서 그 죄를 용서받고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데,
그 성찬식이 망가지면 용서받을 수 있는 그 마지막 기회까지 사라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1) 고린도 교회의 성찬식의 모습 : 공동식사
초대교회의 성찬식은 성찬식과 공동식사를 합한 개념으로 실시되었습니다.
먼저 떡을 떼며 감사의 기도를 한 후에 배를 채울 만큼 충분히 식사를 합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 다시 잔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에 잔을 나눕니다.
이렇게 성찬식과 공동식사가 같이 이루어졌으나,
후일 이것이 서로 분리되어
오늘날처럼 성찬식은 조그마한 빵조각과 작은 포도주잔으로
그 상징성만 남게 되었습니다.
2) 망가진 주님의 만찬의 흉측한 모습(21절)
그런데 가난한 자들이나 노예들은
주님의 만찬을 위한 음식을 준비해 올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맞춰 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먼저 온 부자들이 자기들이 준비해 온 것을 다 먹어서
가난한 자들이나 노예들은 부자들이 음식을 다 먹고
술에 만취하여 쓰러진 모습만 보아야 했습니다.
3) 진노하는 바울(22절)
당시 그리이스와 로마의 사회에서는
만찬 시에 만찬을 여는 주인이 상류 계층의 사람들을
‘트리클리니움’이라 불리는 가장 좋은 방에 앉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 방에서 잘 보이는
‘아트리움’(약 4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큰 방)에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아트리움에 배정된 손님들에게는 질이 떨어지는 음식과 포도주를 대접했는데,
로마 이런 사회적인 문제가 고린도교회 안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먼저 먹은 부유한 자들을 향하여
그들이 먹고 마실 집이 없어서 이렇게 교회에서 만취하도록 먹고 마시는 것이냐며
크게 진노합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고,
가난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고 책망합니다.
4) 너희가 먹은 것은 결코 주님의 만찬이 될 수 없다(20, 27절)
교회의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과 노예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만 먼저 먹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념해야 할 주의 만찬(성찬식)까지
자기들의 부유함을 과시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성찬식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기념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부유함을 기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기도하며 성찬식의 예를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주님의 만찬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 묵상 :
성찬식이 아주 거룩하고 경건하게 예를 잘 갖추어서 진행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예식에 참여한 자들이 주님의 십자가를 기념하지 않고,
자기들의 부유함을 기념했다면, 그것은 성찬식이 아니고
자기들끼리 음식을 먹은 것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매 주일 드리는 예배도
아무리 예를 잘 갖추어 드리는 예배라 할지라도
그 예배에 참여한 성도들이 주께 참되게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교회에 다녀간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2.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들이 드러나려면 분열도 있어야 할 것이다(19절)
바울은 “하기야 이런 분열도 있어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듯 말합니다.
마치 추수할 때 곡식과 가라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듯,
그 분열에 참여하지 않고 끝까지 참된 믿음에 선 자들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분노를 넘어선 표현입니다.
예수께서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극도의 분노를 표현하신 적이 있습니다.
● 묵상 : 분열과 분쟁에 참가하지 마십시오. 성령을 훼방하는 일입니다.
바울이 비아냥거리듯 한 말이지만
이 말은 우리를 향한 경고의 말이기도 합니다.
분열이 일어났다면 그 분열을 일으킨 자와
그 분열로 피해를 본 자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10절에서 바울은 이런 모습을 천사들이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모여 있을 때나 예배드릴 때
천사들이 와서 그 장면을 지켜본다는 것입니다.
누가 분열을 일으켰는지, 그 악한 사람들로 인하여 피해를 본 자들이 누구인지를
천사들이 지켜보고 하나님께 보고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과 대화를 할 때나 예배를 드릴 때, 성찬식을 할 때
주께서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그 분쟁을 일으키는 일을 통해서 스스로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3. 주의 만찬(성찬식)의 의미
여기에서 주의 만찬(성찬식)의 의미를 정리하여 보겠습니다.
1) 성찬식은 주의 죽으심의 기념이다(24절)
성찬식은 주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기억하고,
주의 다시 오실 때의 그 영광의 소망을 고백하며 감사하는 예식입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과거 2,000년에 일어난 일이지만,
오늘 이 시간에 일어난 일처럼 여기고
주의 죽으심을 묵상하며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기뻐하는 예식입니다.
2) 성찬식은 주의 죽으심의 선포이다(26절)
성찬식이 이렇게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성찬식을 할 때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니 어떤 죄를 지은 자라도
그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용서받고 구원받게 될 것임을
전하고 선포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3) 성찬식에서 주님과 새 계약이 맺어진다(25절)
주께서 잔을 드시고 축사하신 후에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찬식에서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주께서 우리와 새롭게 언약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찬식을 할 때마다 이전의 죄가 모두 용서되고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회복되는 것입니다.
성찬식을 통하여
우리는 주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새로운 피조물인 영광의 몸이 됩니다.
4) 성찬식에서 주님과의 진정한 사귐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십니다.
이런 방식으로 주께서 우리 안에 들어가시고
우리도 주님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서 주님과의
이러한 신비로운 연합 속으로 들어갑니다.
성찬식을 통하여 주님과 진정한 친교를 이루게 됩니다.
5) 성찬식에서 성도들과의 진정한 사귐이 이루어진다.
성찬식을 통해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는 그 순간,
내 옆에 또 다른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것을 봅니다.
성찬식을 통하여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듯,
옆의 사람과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은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반드시 교회의 공중 예배 때 해야 하는 것입니다.
6) 성찬식은 주의 다시 오심을 기다라는 소망과 기대의 식사이다.
성찬식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이
주의 오심을 소망하며 행하는 예식입니다.
주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는 자들이
매 주일 이 예식을 행하면서 주님 오심을 기다립니다.
7) 그러나 잘못된 성찬식은 구원을 보증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함께 성찬식을 하는 성도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찬식의 경건한 절차를 다 지켰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주의 만찬(성찬식)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성찬식이 우리를 다시 회복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지만,
주께서 받지 못할 잘못된 성찬식은
결코 우리의 구원을 보증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을 할 때마다 경건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행하십시오.
● 묵상 : 합당하지 않은 성찬식에 대한 경고(27~30절)
주님의 만찬(성찬식)은 주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주님의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십자가를 가볍게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내가 보는 앞에서 그 선물을 버린다면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성찬식을 가볍게 보는 것이 바로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만찬에 합당하지 않게 참여하는 자들은
오히려 주님의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것임을 기억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주님의 만찬(성찬식)에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4. 주께서 받으실만한 바른 성찬식을 위하여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받으실만한 바른 성찬식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미리 준비하여야 합니다.
1) 먼저 자신을 살피고(28절)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는 주님의 살과 피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에 참여하는 자는 마지 주님을 직접 뵙는 것과 같은 자세로
몸과 마음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니
구약의 정결법을 보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정결법에는 어떤 부정한 음식을 먹었거나,
부정한 것을 만졌거나 하여 몸이 부정하여졌을 때
며칠 동안 부정하니, 몸을 정결케 한 후에 성전에 나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며칠 전부터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며
주님의 만찬인 성찬식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혹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은지,
누군가를 실족하게 할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하나님께서 싫어하실만한 생각을 품거나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살펴서 주께 회개함으로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합니다.
이렇게 한 후에 참여해야
주께서 우리가 먹는 빵과 포도주에 주님의 능력을 실어 주시는 것입니다.
2) 주님의 몸을 분별하고 1 :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에 대하여(29절)
그다음 두 번째로 우리는
주님의 몸을 분별하는 마음으로 성찬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주님의 몸이란, 성찬식에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빵과 포도주를 말합니다.
우리 눈에는 그저 빵조각과 포도주 조금이지만,
그 빵과 포도주가 바로 주님의 살과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통 빵을 집어 먹듯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진짜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듯
감사한 마음과 존귀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일반 빵조각 집어먹듯 가벼운 마음으로 성찬식에 참여하면
오히려 우리에게 내려질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 됩니다.
3) 주님의 몸을 분별하고 2 : 주님의 몸 되신 교회에 대하여(29절)
또 교회를 가리켜 주님의 몸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을 분별하라는 것의 또 다른 의미는,
지금 교회의 상황이 어떤지를 분별하고 성찬식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처럼 부자 교인들이 가난한 자들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참여하는 것 역시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됩니다.
교회를 분열시키고, 다투고 싸우는 마음을 갖고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도
성찬식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5. 바른 성찬식을 위한 제언 : 성도들을 기다리라. 성도들을 섬기고 사랑하라(33~34절)
1) 성도들을 기다리라. 성도들을 섬기고 사랑하라(33~34절)
성도들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 고린도교회의 문제였으므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른 성찬식을 위하여 가난한 성도들이 오기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만일 배가 고파 기다리기 어려우면
미리 집에서 식사를 하고 와서 교회에서는 기다릴 수 있는 자가 되면
주께서 그 성찬식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할 때 성도들이
각자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를 준비해오는 것이 아니므로,
이 말씀을 우리는 성도들을 서로 사랑하고 섬기라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 묵상 :
우리는 흔히 성찬식이 엄숙하고 거룩하게 드려지는 것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성찬식에 참여하는 성도들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주께서 그 예식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만일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서로 분열하고 싸우는 자들이라면
그들이 아무리 엄숙하고 거룩한 자세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셨더라도,
그것은 성찬식이 아니라 죄를 먹고 마신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성찬식은 주께서 명하신 예식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모든 순서들 중에
오직 성찬식 하나만이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고,
성찬식 하나만이 주께서 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성찬식을 1년에 몇 번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성찬식은 우리의 기분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3) 그래서 이 일로 고린도교회에 징계를 내리셨습니다(30절)
그러므로 이 예식을 합당치 않은 마음으로 참여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징계를 내리셔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약한 자들과 병든 자가 많았고,
죽는 자도 많았다고 바울은 경고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이 징계를 받아 육신에 병을 얻어 죽기까지 한 것은,
마지막 날에 이 세상과 함께 영원한 저주의 심판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주께서 내리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잘못된 것을 회개하게 함으로 영원한 저주를 면하게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묵상 : 사람이 늙고 병드는 이유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질병을 내리신 것은
그들이 성찬식을 엉망으로 했던 것을 깨닫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사람들이 늙고 병들어 죽게 된 것에 대한 바울의 새로운 해석을 봅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늙고 병들어 죽게 함으로써
회개하여 하나님을 다시 만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늙지 않고 젊고 건강한 채로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면
사는 동안에는 좋을지 몰라도 인생을 돌아볼 기회도 회개할 기회도 없으니
모두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늙고 병들어 죽게 되는 것조차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달아 이것까지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성찬식의 의미를 바로 알고
존귀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하게 하옵소서.
2. 성찬식을 행하기에 앞서서
우리들 자신을 정결케 하며
그 예식을 준비하게 하옵소서.
3. 주께서 받으실만한
거룩하고 참된 예배를 드리기에
힘쓰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