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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고전 15:20~34)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06.24|조회수830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고린도전서 15:20~34)

 

* 본문요약

 

    죽음이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들어왔듯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세를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유를 하나님께 바치실 때에

    맨 마지막으로 사망도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정신을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찬 양 : 84장(새 134)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416장(새 294) 하나님은 외아들을

 

 

* 본문해설

 

1.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20~24절)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들어왔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다음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넘겨드릴) 때라.

 

- 정사와 권세와 능력(24절) : 아르케, 엑수시아, 뒤나미스

    정사(아르케) : ‘권위, 통치, 영토’를 뜻하고

    권세(엑수시아) : ‘통치자의 권력’을 뜻하며

    능력(뒤나미스) : ‘힘’이나 ‘능력’을 뜻합니다.

 

    이 세 단어는 당시 로마 황제에게 사용했던 것으로

    이 땅의 통치자들의 권력을 뜻합니다.

    또한 악한 영들이 사람을 미혹할 때 사용한 사탄의 무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예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다 폐기처분 하십니다.

 

 

2. 최후의 심판 때까지 왕 노릇하실 그리스도(25~28절)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맨 마지막)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죽음)이니라.

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굴복시키셨다)’(시 8:6)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 두신 이가

     그중에 들지(그 속에 포함되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게 하심이라.

     (이는 하나님께서 만유를 지배하시는 만유의 주가 되시려는 것이라.)

 

 

3. 부활하기 위해 사는 자가 되어라(29~34절)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세례받는 자들은

     무엇을 하겠느냐(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계를 받느뇨?

     (죽은 자들이 다시 살지 못한다면서 어찌하여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만일 범인(凡人,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처럼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이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좋은 습관을 망치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 죽은 자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는 자(29절) :

    이이 죽은 자를 위해 세례를 받는 것을 바울이 지지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사는 일도 없고 부활도 없다’라고 말하면서

    죽은 자를 위해 세례를 받는 일은 무엇 때문에 하느냐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 나는 날마다 죽노라(31절) :

    날마다 자신의 자아(自我)를 죽이기 위해 힘쓴다는 뜻이 아닙니다.

    날마다 죽음의 위협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 내가 범인(凡人)처럼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32절) :

 

    ➀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

 

       당시에 중죄인들을 맹수와 싸우게 하여 이기면 석방을 시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맹수의 밥이 되어 죽었습니다.

       이 말은 31절의 “나는 날마다 죽노라”의 말을 설명한 것입니다.

 

       맹수와 싸우는 자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의 삶을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바울 역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➁ 범인(凡人)처럼 : (개역개정에서는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로 되어 있음)

 

       이 구절은 “내가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단지 인간적인 이유에서만 그렇게 죽음의 위협을 매일 당하고 살아간다면

       단지 인간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사는 것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느냐”라는 뜻입니다.

 

- 먹고 마시자(32절) :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은 먹고 마시자는 것은

    당시 무절제한 쾌락에 빠져 살았던 에피큐러스 학파의 사람들이 한 말입니다.

    이처럼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 땅의 삶만 있다고 믿으니

    세상을 죄와 향락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아담과 그리스도

 

 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21~22절)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죽음이 왔으므로

    부활 역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왔으므로

    그 죄에 속한 사람들을 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게 하려면

    죄 없는 자가 죄와 사망의 관계를 끊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을 얽매고 있는 죄와 사망의 관계를 끊고

    우리를 부활의 영광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2)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참인간으로 오신 예수님

 

    사람들이 죄를 지었으므로

    누군가 죄가 전혀 없는 사람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아야만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부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죄가 전혀 없는 참인간이라야

    그의 죽음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득이하게 예수님이

    죄가 하나도 없으신 참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3)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님(20, 23절)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서

    우리처럼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영광의 몸으로 다시 부활하신 첫 번째가 되셨으므로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첫 열매라는 것은 우리도 두 번째, 세 번째로

    예수님처럼 다시는 죽지 않는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묵상 :

 

    이렇게 주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기 위하여

    육신을 입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야만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 세상에 사는 자들 가운데는 죄가 하나도 없는 자가 아무도 없으니,

    부득이하게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죄 없는 참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고통당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2. 최후의 심판 때까지 왕 노릇하실 그리스도

 

 1) 부활의 순서(23절)

 

    ➀ 부활의 순서는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이 처음으로 부활하십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➁ 그다음에는 이미 죽어서 주님과 함께 영생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이

       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부활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주님과 함께 영생의 나라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 육신으로 부활한 상태는 아니고 영으로만 함께하고 있으나,

       주께서 오실 때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의 그 모습으로 부활의 몸을 입게 됩니다.

 

    ➂ 그리고 그다음에는 예수께서 재림하여 오실 때까지

       이 땅에 살아있던 자들 중에 주께 속한 자들이 부활하게 됩니다.

 

    -----------------

 

    몸이 화장(火葬)되어 뼛조각조차 남아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주님의 신비한 능력으로 완전한 몸으로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 다 부활하여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때에

    이 세상은 끝이 나게 됩니다.

 

 2)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24절)

 

    이렇게 해서 주께 속한 자들이 모두 영생의 나라에 들어간 후에

    주께서 이 땅에 있던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모두 폐기 처분하여 없애버리십니다.

 

    정사와 권세와 능력은 당시 로마 황제에게 사용하던 단어들입니다.

    직역하면 로마 황제가 가진 막강한 권세가 모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만,

    본문의 뜻은 세상의 모든 나라의 권세가 다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사람을 미혹하여 멸망에 빠지게 했던

    사탄이 가진 모든 힘과 권세도 다 없어집니다.

 

묵상 :

 

    그러므로 영원히 멸망당하고 말 세상의 힘과 권세를 부러워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사는 자가 되십시오.

 

 

3. 최후로 사망을 멸망시키시고 만유를 하나님께 바치시는 그리스도

 

 1) 맨 마지막에 멸망할 원수는 죽음(25~26절)

 

    예수께서 이 땅의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들을 주님의 발아래 굴복시키신 후에

    맨 마지막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죽음)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이 땅에 있는 모든 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세로 사망이 멸망을 받아

    다시는 주님의 백성들이 죽음으로 두려워하거나 염려하는 일이 없게 됩니다.

 

 2) 왜 마지막에 멸망할 원수가 사탄이 아니고 죽음인가?

 

    흔히 사람을 멸망하는 자가 사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사실 사탄은 사람을 멸망에 이르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이 멸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여

    그 죄에 대한 심판으로 멸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다만 사탄은 사람이 멸망하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죄에 빠지도록 유혹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맨 마지막에 멸망할 원수는 사탄이 아니고 죽음입니다.

    이때는 사탄과 마귀는 이미 멸망하여 지옥에 빠진 뒤이기 때문입니다.

 

➠ 맨 마지막에 멸망할 원수가 죽음이라는 것은 :

 

    맨 마지막에 멸망할 원수가 죽음이라는 것은

    주님과 더불어 영생의 나라에 들어간 자들에게

    다시는 그 어떤 아픔도, 슬픔도, 죽음도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께서 모든 일을 다 마치신 후에

    그에게 속한 모든 자와 함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맨 마지막에 멸망할 원수가 죽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3) 그 후에 그 영광의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24절)

 

    그렇게 세상 모든 것들과 사망까지 모두 멸망을 시키신 후에

    예수님은 주께서 새롭게 만드신 새 하늘과 새 땅을(그 영광의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예수님이 이 땅과 하늘의 왕 노릇 하실 것입니다만,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만유를 바치신 후에는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온 세상 만물이 하나님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만물의 왕이 되실 것입니다.

 

묵상 : 그러므로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사는 자가 되십시오(33~34절)

 

    장차 우리 앞에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은혜의 자리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은

    악마와 사망이 멸망을 당할 때 함께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하고 말하며 헛되이 살지 말고,

    오직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답게 신실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앞날의 즐거움을 위해 오늘 고통을 참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영생을 믿는 자들이니 마땅히 그 영원한 즐거움을 위해

    오늘의 유혹을 이기고 참되게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나는 날마다 죽노라

 

 1) 나는 날마다 죽노라(31절)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자기의 자아(自我)을 죽이기 위해 힘쓴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물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자기를 죽이는 것도

    날마다 죽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날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욥이 탄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바울 역시 날마다 죽음의 두려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내가 범인(凡人)처럼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32절)

 

    당시에 중죄인들을 맹수와 싸우게 하여 이기면 석방을 시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맹수의 밥이 되어 죽었습니다.

    이 말은 31절의 “나는 날마다 죽노라”의 말을 설명한 것입니다.

 

    맹수와 싸우는 자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의 삶을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바울 역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소망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단지 감옥에서 석방되기 위해 맹수와 싸우다 죽은 것과 같이.

    바울이 단지 자기의 인간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것이라면

    그렇게 매일 죽음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묵상 :

 

  ➀ 오직 육신만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의 허망함을 경고

 

     이것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부활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고통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유익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정말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

     자기 시간이란 전혀 없이 평생을 그렇게 일만 하며 살다가 죽는 사람들의

     그 시련과 고통이 무슨 유익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➁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의 기쁨

 

     그러나 주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사는 자들은

     믿음을 위하여 겪는 그들의 모든 시련과 고통이

     모두 주께 기억하신 바 되어 마지막 날에 주님의 상과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울 역시 이 부활의 소망이 있으므로

     날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위기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이지만,

     부활의 소망이 있으므로

     그 고통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움으로 겪고 있는 것입니다.

 

 

5. 참고 : 죽은 자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는 것에 대한 문제(29절)

 

    참고로,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세례를 받는다고 하는 29절의 말씀을 설명합니다.

    혹자는 이 구절을 근거로 가족이나 친지 중에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세례를 받아도 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미 죽은 자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거니와,

    혹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죽은 자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려 한 것은,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어찌하여 죽은 자를 위해서는 세례를 받느냐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고린도교회의 일부 성도들이

    죽은 자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는 습관을 좇아 행하는 것을 바울이 못 마땅히 여기면서,

    부활도 믿지 않는다면서 이런 일은 무엇 때문에 하느냐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묵상 :

 

    그러므로 본문을 근거로 죽은 자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으려는

    일체의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회개도 믿음도 세례를 받는 것도 오직 살아 있을 때 해야만 합니다.

    일단 숨이 끊어지고 난 후에는 그 누구도

    죽은 자를 대신하여 기도하는 것도 세례를 받는 것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 기도제목

 

1.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주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2.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거룩하고 신실한 삶을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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