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주의 영광을 보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고(고후 3:12~18)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07.09|조회수355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주의 영광을 보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고(고린도후서 3:12~18)

 

* 본문요약

 

    모세가 자기 얼굴의 광채를 가리기 위해 얼굴에 수건을 썼던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유대인들)은 오늘까지도

    구약의 말씀을 읽을 때 마음에 덮인 수건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집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형상으로 변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찬 양 : 427장(새 191) 내가 매일 기쁘게

         184장(새 252) 나의 죄를 씻기는

 

 

* 본문해설

 

1. 마음에 수건이 덮인 이스라엘 백성들(12~15절)

 

12) 우리가 이같이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사라져가는 것)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과 같은 일을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13절) : 아테니사이

    주목하다(아테니사이) : ‘열렬히 골똘히 바라보다, 직접 보고 확인하다’는 뜻.

 

- 모세는 ~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13절) :

    출애굽기 34:25~39을 보면 모세의 얼굴의 광채가 너무 심하여

    백성들이 두려워하므로 백성들 앞에서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광채가 곧 사라지게 될 것이므로,

    그것을 감추기 위해 가렸다고 말합니다.

 

- 완고하여(14절) : 에포로데

    완고하다(에포로데) : ‘굳다, 무감각하다’라는 뜻으로,

    너무 단단해서 웬만한 자극에도 끄떡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에서는 웬만한 은혜에도 도무지 반응하지 않는 굳은 마음을 가리킵니다.

 

 

2. 수건을 벗어버리고 주의 영광을 보매(16~18절)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니

     저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혹은,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이르게 되니,

              이 일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

 

-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17절) : 엘류데리아

    자유(엘류데리아) : 헬라어의 자유에는 다음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➀ 소극적 의미 : 죄, 율법, 노예,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자가 누리는 자유

    ➁ 적극적 의미 : 은혜와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누리는 기쁨의 자유

 

    소극적인 의미의 자유는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는 자가 누리는 자유이고,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누리는 기쁨의 자유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처럼 기쁨으로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유의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두려움의 공포가 아니라 자유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 거울을 보듯이 주님의 영광을 보니(18절) : 카토프트리조메노이

    ‘거울로 보듯이 보니’에 해당하는 ‘카토프트리조메노이’는

    ‘매일 거울을 보는 것처럼 지속해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일을 통해서

    우리가 주께서 가지신 그 영광의 모습으로 날마다 변화되어 갑니다.

 

- 변화하여(18절) : 메타모르푸메다

    ‘변화하다’에 해당하는 ‘메타모르푸메다’는

    ‘변화하다, 변형하다, 바꾸다’라는 뜻의 현재 수동태 직설법입니다.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의 변화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리킵니다.

    이것의 시제가 현재 수동태이니, 날마다 계속해서 변화되어 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니(18절) :

    점진적으로 조금씩 지속해서 변화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모든 일이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 묵상 point

 

1. 마음에 수건을 덮고 있는 사람들

 

 1) 곧 사라지게 될 영광을 감추기 위해 얼굴을 수건으로 가린 모세(12~13절)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 40일을 지내고 내려오니

    모세의 얼굴에서 밝은 광채가 났습니다.

 

    그때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의 광채가 너무 심하여 백성들이 두려워하므로

    백성들 앞에서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그 수건을 벗었습니다(출 34:25~39).

 

    그러나 바울은 그 광채가 곧 사라지게 될 것이므로

    그것을 감추기 위해 가렸다고 말합니다.

    곧 없어질 영광이지만 그나마 백성들이 두려워하니 가려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2) 오늘까지도 그 수건을 벗지 못한 유대인들(14~15절)

 

    바울은 모세의 얼굴에 가려진 수건을 다시 비유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수건이 덮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님을 눈앞에서 보고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묵상 : 마음이 완고하여 그 수건이 마음을 덮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마음에 수건이 덮여있으면

    말씀을 보고도 주님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마음에 수건이 덮여있으므로 이 세상의 것만 보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십자가에까지 달리시면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셨던

    그 하늘의 영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모르고

    오직 이 땅의 것을 구하는 데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덮인 수건을 벗겨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2. 사라지고 말 영광에도 두려워하는 사람들(13절)

 

    모세의 얼굴에 있는 광채는

    그가 율법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만나 뵌 후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곧 사라지고 말 영광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하여 감히 그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얼굴에 수건을 써야만 했습니다.

 

    천로역정을 보면 주인공 크리스챤이

    사자 두 마리가 길을 막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 사자의 목에 사슬이 매여있습니다.

 

    이처럼 세상 것들은 우리를 잠시 위협만 할 뿐입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영광의 삶을 빼앗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쇠사슬을 보지 못하고 사자들만 보고 두려워합니다.

    이처럼 마음에 수건이 덮인 사람들은 사라지고 말 것을 보고도 두려워합니다.

 

묵상 : 마음에 덮인 수건을 벗겨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염려 걱정 근심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마음에 수건이 덮여있어서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토끼를 보고도 놀라는 개구리처럼

    세상의 별것 아닌 것 가지고도 좌절감에 빠지고

    우울증에 공황장애까지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덮인 수건을 벗겨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3.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고(16절)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내 마음에 덮인 수건이 벗겨집니다.

    마음에 덮인 수건은 오직 주께서만 벗겨 주실 수 있습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주님을 부르십시오.

    주님의 성령을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내 마음에 덮인 수건이 벗겨지고

    내가 두려워하고 걱정하던 일들이 별것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를 집어삼킬 듯이 덤벼드는 사자처럼 보였으나

    쇠사슬에 매여 나를 공격할 힘이 없는 것들임을 알게 됩니다.

 

 

4.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17절)

 

    ‘자유’로 번역된 ‘엘류데리아’에는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소극적 자유’와 ‘거룩한 일을 기쁨으로 행하는 적극적 자유’,

    이렇게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1) 소극적 자유 : 죄와 율법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자가 누리는 자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주님의 보호하심이 있으니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해방된 자유의 기쁨이 있습니다.

 

    ➀ 죄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자기도 그 일로 인하여 결국은 망하게 되리라는 것도 아는데

       그 일을 중단할 수 없는 죄의 중독증이 죄의 억압입니다.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두려움에 눌려서 사는 것입니다.

 

       이 일로 장차 심판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두려움이 죄의 억압입니다.

 

       그러나 주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내 안에 있는 죄의 중독증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도저히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주님의 은혜로 그 죄를 짓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저주받은 죄의 중독증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➁ 죄를 용서받은 자가 누리는 자유

 

       죄의 중독증을 해결하여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게 되더라도

       여전히 마음에 남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은 죄는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되돌려 그 이전으로 가서 죄를 짓지 않는 삶으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날 우리가 지은 그 모든 죄도 예수님의 은혜로 다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우리는 죄를 용서받은 자가 누리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➂ 날마다 용서를 받으며 사는 자가 누리는 자유

 

       세례를 받을 때 그 이전에 지은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고,

       또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죄의 중독증도 치료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남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산다는 점입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 중

       단 하루라도 죄를 전혀 짓지 않고 사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일 역시 주님과 교제하는 일을 통하여

       날마다 그 죄를 씻으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매일 몸을 씻고 잠자리에 들듯

       날마다 주님과 교제함으로 그날 지은 죄를 날마다 씻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적극적 자유 : 은혜와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누리는 기쁨의 자유

 

    그러나 이런 소극적 자유는 주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진짜 자유는 주님의 일을 기쁨으로 행하는 자유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내 마음을 변화시켜주셔서

    주님의 거룩한 일을 기쁨으로 행하게 하니 자유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자유의 기쁨을 느낍니다.

    하기 싫은 일은 10분을 해도 지겹지만,

    하고 싶은 일은 24시간을 꼬박해도 지겨운 것을 모릅니다.

 

    내 마음에 수건이 덮였을 때는 성경 한 구절 읽는 것도 지겨웠으나,

    주님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1년 365일을 매일 성경을 읽어도 즐겁습니다.

    내가 즐거운 일 하고도 주께 복을 받으니 자유의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묵상 :

 

    물론 세상에서도 자유의 기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유라고 할 수 없는 것은 그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그 끝에 멸망이 있습니다.

    자유의 기쁨을 느끼지만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짧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의 영이 계신 곳에서만 참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5.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고

 

 1)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듯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18절)

 

    마음에 덮인 수건이 벗겨지면 말씀에서 주님을 봅니다.

    전에는 그냥 성경에 쓰인 글의 내용만 보였는데,

    마음에 덮인 수건이 벗겨지고 내 안에 주님의 성령이 오시면

    성경말씀 안에 계신 주님이 보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묵상을 통해 날마다 주님을 봅니다.

    주님의 은혜를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니(18절)

 

    이렇게 날마다 주의 영광을 보는 중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합니다.

 

    물론 우리가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보지 못합니다.

    그들의 마음에 수건이 덮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우리가 날마다 주님을 보는 중에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하였음을 알게 됩니다.

 

묵상 :

 

  ➀ 조금씩 점진적으로 변화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형상으로 변하는 것은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조금씩 점진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단지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여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➁ 그 첫 출발점에서부터 이미 완성된 자로 여김 받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날마다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중에

     어느 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땅의 시간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변화된 상태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될까요?

     우리가 100년이 아니라 1만 년의 시간을 산다고 할지라도

     결코 주께서 원하시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영광으로 변화되기 시작하는

     그 첫 출발점에서부터 완성된 자로 여기십니다.

 

     날마다 주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서 변화되는 그 시간 속에 살아가기만 한다면

     많이 부족한 채로 삶을 마감하게 될지라도 우리는 완전한 자로 여김을 받습니다.

     그러니 복음이고, 그러니 은혜입니다.

 

 

* 기도제목

 

1. 우리 마음에 덮인 수건을 벗겨주셔서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를 알게 하옵소서.

 

2.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아

   우리도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게 하옵소서.

 

3. 그래서 우리도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러

   영원한 자유를 누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