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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딤후 3:1~9)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08.05|조회수516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디모데후서 3:1~9)

 

* 본문요약

 

    마지막 때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를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여 자기를 과시하려고만 하고, 흉악한 소문을 퍼뜨리며 비방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도 감각이 없고,

    오히려 더욱 잔인하게 서로를 사납게 공격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교회들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로 채워지게 될 것이고,

    욕망을 해결하지 못하니 항상 배워도 진리를 깨닫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때가 올 것입니다.

 

찬 양 : 102장 (새 94)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104장 (새 104) 곧 오소서 임마누엘

 

 

* 본문해설

 

1.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라(1~5절)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고통 하는(어려운) 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이기주의에 빠지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잘난 척하며), 교만하며, 비방(훼방, 악담)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모함, 비방)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난폭하며(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4) 배신하여 팔며, 조급하며(무모하며, 성급하게 행동하며), 자고(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하나님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말세(1절) :

    말세는 예수께서 재림하여 오시기 직전의 때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살고 있던 때에 예수께서 오실 것이라고 알고 있었으므로

    디모데에게 경고하여 말합니다.

 

- 고통하는 때(1절) : 칼레포이

    ‘고통하는 때’에 해당하는 ‘칼레포이’는 ‘위협하는’을 뜻하는 것으로,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의 때, 견디기 힘든 때, 위험하고 끔찍한 때를 의미합니다.

 

-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2절) :

    자기의 만족과 자기 즐거움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기 사랑은 인간 타락의 근본입니다.

    자기 사랑이 외부로 나타나는 모습이 돈(물질)에 대한 사랑입니다.

    자기 사랑과 물질에 대한 쾌락이 사회 붕괴를 초래합니다.

    자기 사랑은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단절된 자입니다(눅 14:26).

 

- 자긍하며 교만하며(2절) : 알라조네스, 휘페레파노이

    ‘자긍하다’에 해당하는 ‘알라조네스’는

    ‘효과 없는 약을 선전하며 뽐내는 돌팔이’를 뜻하고,

    ‘교만하다’에 해당하는 ‘휘페레파노이’는

    그 돌팔이가 거만하게 자기를 자랑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 비방하며(2절) :

    다른 이들에게 무례하게 말하는 것,

    다른 이들이 모욕감을 느낄 만한 말을 죄의식 없이 행하는 것,

    남을 헐뜯는 말, 험담과 악의적 소문을 퍼뜨리며 즐기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 감사하지 아니하며(2절) : 아카리스토이

    남의 호의는 물론 심지어 부모에게까지 감사를 표현하지 않는 것,

    감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대적하는 것을 뜻합니다.

 

- 거룩하지 아니하며(2절) : 아노시오이

    자기 즐거움,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뜻과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말세의 특징입니다.

 

- 무정하며(3절) : 아스토르고이

    ‘무정하며’에 해당하는 ‘아스토르고이’는

    ‘동물의 어미와 새끼 사이에 있는 본능적인 애정조차도 없는 자’,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부모·자식 간의 애정’마저도 결핍된 자를 가리킵니다.

    물질(돈)만을 사랑하니 인정 없고 비인간적이며 무정한 자가 됩니다.

 

- 원통함을 풀지 않으며(3절) : 아스폰도이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 타인의 실수나 약점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의 상처 때문에 극한 원한과 분노에 가득 차 있어서

    용서할 기회가 있어도 용서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들,

    누그러질 줄 모르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 참소, 모함하며(3절) : 다이볼로이

    ‘모함한다, 참소한다’에 해당하는 ‘디아볼로이’는

    ‘사탄’이라는 단어와 어근이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과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며 그것을 즐기는 것을 뜻합니다.

 

- 절제하지 못하며(3절) : 아크라테이스

    행동과 말과 감정,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 사나우며(3절) : 아네메로이

    상대가 왜 고통을 당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고통당하는 자에게 맹수처럼 더욱 사납고 잔인하게 행동하는 자들을 뜻합니다.

 

-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3절) : 아필라가도이

    마음과 양심이 악에 오염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선한 것을 보면

    기뻐하기는커녕 도리어 참을 수 없는 증오심을 품고 경멸하는 것을 뜻합니다..

 

- 배반하여 팔며(4절) : 프로도타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까지도 죽음에 팔아넘기는 것을 뜻합니다.

 

- 조급하며(4절) : 프로페테이스

    말과 행동이 경솔하여 분별력이 없이 서두르는 행위를 뜻합니다.

 

- 자만하며(4절) : 테퓌포메노이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것, 자기중심적인 것, 허풍선이, 허세쟁이를 뜻합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4절) :

    위에 나열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5절) :

    기도와 예배와 말씀에 참여하는 등 경건의 모양과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실제로는 세상의 힘이나 물질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권세로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를 뜻합니다.

 

 

2. 진리를 깨닫는 데 이르지 못하는 자들(6~9절)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서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런 여자들은 여러 가지 욕심(정욕)에 이끌려 죄를 중히(무겁게) 지고

7) 항상 배우기는 하지만 결코 진리를 깨닫는 데까지는 이르지는 못하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니라.

9)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 얀네와 얌브레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어리석음도 모든 사람 앞에서 환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라.

 

-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6절) :

    말씀에 깊이가 없어 영적인 분별력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

    살며시 접근하여 거짓 교리를 전하는 사람들,

    혹은 교활한 말로 현혹하여 자신의 죄의 쾌락에 함께 참여하게 하는 자들을 뜻합니다.

 

- 어리석은 여자(6절) : 귀나이카리아

    어리석은 여자에 해당하는 ‘귀나이카리아’는

    ‘도덕성이 결여된 여자,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여자’를 뜻합니다.

 

- 그런 여자들은 여러 가지 정욕에 이끌려(6절) :

    자기 정욕을 해결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자들은

    살며시 접근하여 오는 교활한 자들이 미혹하는 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 죄를 무겁게 지고(6절) : 세소류메나

    ‘죄를 무겁게 지고’에 해당하는 ‘세소류메나’는 ‘쌓아올리다’의 완료 수동분사로

    ‘죄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쌓아 올려져서 축적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 항상 배우기는 하지만 결코 진리를 깨닫는 데까지 이를 수 없다(7절) :

    우리를 살리는 복음의 말씀보다는 교활하고 거짓된 것에만 귀를 기울이니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항상 열심히 말씀을 배우는 것 같지만 진리를 깨닫는 데까지 이를 수 없게 된다는 것.

 

- 얀네, 얌브레(8,9절) : 모세의 기적을 흉내 낸 애굽의 마술사들(출 7:11~12)

 

 

* 묵상 point

 

1. 마지막 때의 특징 : 고통하는 때

 

    주께서 다시 오시기 직전의 마지막 때에는 고통 하는 때가 이를 것입니다.

    고통 하는 때란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의 때, 견디기 힘든 때,

    위험하고 끔찍한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너무 힘들어 차라리 산에게 자신을 덮어달라고 말할 정도로

    괴로운 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23:30).

 

 1)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1~2절)

 

    마지막 때의 고통은 사람들이 모두가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데서 옵니다.

    사람들이 다 자기 즐거움만을 위해 살아가니,

    서로가 자기를 즐겁게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만 불만을 품게 될 것입니다.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느냐며 서로 공격하니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를 더욱 고통스럽게 합니다.

 

➠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돈입니다.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일수록 돈에 집착합니다.

    돈이 있으면 자기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당장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만족을 위해 사라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사람보다 돈이 우선이 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든, 사람이야 고통을 받든 말든

    내 주머니에 돈만 들어오면 되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향하여 고통을 주는 세상,

    이것이 마지막 때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2) 교만하고, 자랑하고, 비방(모함)하며(2절)

 

    또한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 잘난 멋에 살게 될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일은 인간 역사에 언제나 있었던 일입니다만,

    말세에는 이런 일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할 정도로 자기 자랑이 과도하게 나타나는 것,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서라도 나를 드러내려 하는 것,

    이것이 교만입니다.

 

    나를 드러내고 과시하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무례하게 말하고,

    다른 이들이 모욕감을 느낄 만한 말을 죄의식 없이 행하게 되며,

    남을 헐뜯는 말과 험담과 악의적 소문을 퍼뜨리며 즐기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이지만,

    그 일로 나만 즐거우면 그만입니다.

    나의 교만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즐겁게 하는 것을 더 원하므로

    나만 즐거우면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는 것쯤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3)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 않으며, 원통함을 풀지 않고, 사납고, 무정하고(2~3절)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나를 즐겁게 힘이 없다고 여겨지면

    부모에게 감사하지도 않을 뿐더러, 고의로 거역하며 대적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도 감사한 마음을 갖기는커녕 당연한 일로 여기고,

    오히려 으름장을 놓으며 사납게 대할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공경도, 친구 간의 우정도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돈이 중요할 뿐입니다.

 

➠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무정한 자들이 됩니다.

 

    내 즐거움을 빼앗아 간 자들에 대하여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한 번 미움이 생기면 그 분노의 감정이 누그러질 줄 모릅니다.

    용서할 기회가 주어져도 용서하기를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욕망이든 미움이든 분노이든 증오심이든 간에

    마음에 일어나는 충동을 절제하지 못합니다.

    조금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일단 내 감정을 풀고 보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행동과 말과 감정,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감정만 중요하니

    그 일로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상대가 왜 고통을 당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고통당하는 자에게 오히려 더욱 사납고 잔인하게 행동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4) 거룩하지 않으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3~4절)

 

    세상의 이런 분위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마음보다

    자기를 즐겁게 하려는 마음이 강하니,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낍니다.

 

    오직 자기를 칭찬하는 말에만 관심이 있을 뿐,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나오지만,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으나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음과 양심이 악에 오염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선한 것을 보면

    참을 수 없는 증오심을 품고 경멸하는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세상의 전형적인 특징이지만,

    어느 사이에 교회의 특징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와 성도들에게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5) 배신, 조급, 자만 ➠ 승냥이처럼 달려들어 고통을 주는 세상(4절)

 

    오직 나의 기분, 나의 즐거움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배신하기를 밥 먹듯 하고,

    어떤 것이든 마음에 충동이 일어나면 빨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급증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다른 사람에게 나를 과시하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특징은 자기들도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누군가 흠 잡힐 만한 일이 드러나게 되면 승냥이나 피라냐들처럼 달려들어

    만신창이를 만들고 맙니다.

 

    마녀사냥식으로 내 감정을 쏟아부을 대상을 찾다가

    누군가 걸려들면 내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갖가지 모욕적인 말을 쏟아부어 가며 그가 죽을 때까지 공격합니다.

 

묵상 :

 

    우리는 이미 이런 고통의 때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위기의 때를 이길 수 있는 영적인 체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홍수처럼 거세게 밀려오는 악한 시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2.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

 

 1)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포기한 교회와 성도들

 

    마지막 때에 세상 사람들이 이런 끔찍한 고통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와 성도들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예배와 말씀에 참여하는 등 경건의 모양과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실제로는 세상의 힘이나 물질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권세로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2)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잃어버린 자들(5절)

 

    경건의 능력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경건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망으로 기뻐하며 사는 것이 경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성도들이 더 이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복과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도

    내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만큼 영이 훼손되어 있을지라도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세상이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아우성 처도

    교회와 성도들의 귀에 그들의 고통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나만 행복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와 성도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타락입니다.

 

 

3. 유혹에 넘어지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1)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유혹하는 자들(6절)

 

    바울은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인하는

    교활한 자들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당시 에베소 교회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마지막 때에는 전 교회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교활한 자들이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와

    믿음을 바르게 갖지 못한 자들을 유혹하여 넘어지게 할 것입니다.

 

 2) 어리석은 자 : 유혹을 이길 힘이 없는 자(6절)

 

    유혹에 넘어지는 어리석은 여자들은

    마음에 품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들을 뜻합니다.

    욕망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에는 그런 유혹을 이기라고 절제하라고만 하니

    말씀이 부담이 됩니다.

    말씀에서는 그 욕망을 멀리하라 하는데 그 욕망을 이길 힘이 없으니

    아예 말씀을 가까이하려 하지 않습니다.

 

 3) 영적인 악순환

 

    말씀을 멀리하니 영적인 힘이 더욱 약해집니다.

    영적인 힘이 약해지니 유혹을 더욱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다 결국 말씀을 아예 끊는 자들이 됩니다.

    그냥 예배에만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가 됩니다.

 

    얼마나 편리합니까?

    말씀을 가까이할 때에는 날마다 마음의 부담감 때문에 힘들었는데,

    말씀을 끊으니 1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만으로도 감동을 받고,

    운 좋으면 은혜까지 받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회개 없는 은혜는 거짓 은혜입니다.

    말씀을 끊었으니 자기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이런 자는 주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였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4) 거짓 경건 : 회개 없는 은혜

 

    주님의 성도들을 넘어뜨리는 교활한 자들은 바로 이런 자들을 노립니다.

    욕망을 이기지 못하는 자들,

    말씀을 대하기 싫어하거나 말씀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자들에게 살며시 접근하여

    그렇게 힘든 경건의 삶을 살지 않고도 은혜를 받는 방법이 있다고 속삭입니다.

 

    회개하지 않고도 충만한 기쁨을 얻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속삭입니다.

    그저 그 집회에 참여하기만 하면 거룩한 경험을 갖게 해주겠다고 속삭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거짓 경건에 넘어갈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그러므로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말씀에 깊이가 없어 영적인 분별력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

    살며시 접근하여 거짓 교리를 전하는 사람들,

    혹은 교활한 말로 현혹하여 자신의 죄의 쾌락에 함께 참여하게 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5) 거짓 경건의 위험 : 죄를 쌓아가기만 하는 것(6절)

 

    ‘죄를 무겁게 지고’(6절)는

    ‘죄를 계속해서 쌓아 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마음에 부담이 되더라도 지금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말씀을 통해 분석하고 찾아내어 회개를 하면

    죄를 그때그때 처리하여 정결한 자가 될 수 있는데,

    이 일이 부담된다고 하여 죄를 짓고도 그냥 넘어가기만 하니 죄가 쌓이기만 하는 것입니다.

 

    죄는 해결하지 않고 그저 내 마음에 감동만 주는 거짓 경건은 그래서 위험합니다.

    회개 없는 경건은 거짓 경건이라는 것,

    이것은 독약을 먹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묵상 :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욕망 때문에 넘어집니다.

 

    사람은 자기 욕망과 관계된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마련입니다.

    돈에 욕망을 품고 있는 자는 돈에 대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건강에 관심이 있는 자는 건강에 대한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마음속에 품은 욕망입니다.

    이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니 욕망에 대한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그 겉모양이 아무리 거룩하게 포장했을지라도

    경건의 능력은 없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오늘날 사교 집단들이 이렇게 교인들을 접근합니다.

    또는 죄의 즐거움에 빠진 자들이 교활한 수법으로 성도들을 죄에 함께 빠지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도 말고, 그런 것에 미혹되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4. 항상 배우나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

 

 1) 정욕에 이끌려 죄를 무겁게 지는 자들(6절)

 

    이런 교활한 자들에게 넘어가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을 잘 몰라서 그런 경우도 있으나,

    알면서도 넘어지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정욕에 이끌려 알면서도 넘어지는 것입니다.

 

    자기 정욕을 해결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자들은 살며시 접근하여 오는

    교활한 자들이 미혹하는 것을 이기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미혹을 받아 죄 속에 빠져

    죄책감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죄가 계속해서 쌓여서 더욱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자기가 자기를 공격하며

    죄의 갈등 속에서 헤매다가 죽게 될 것입니다.

 

 2) 항상 배우나 진리를 깨닫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는 자들(7절)

 

    이런 자들은 항상 배우기는 하지만 결코 진리를 깨닫는 데까지 이를 수 없습니다.

    죄의 정욕을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살리는 복음의 말씀보다는 교활하고 거짓된 것에만 귀를 기울이니

    항상 열심히 말씀을 배우는 것 같지만

    진리를 깨닫는 데까지 이를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복음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나의 육신을 즐겁게 할 만한 말에만 귀를 열기 때문입니다.

 

묵상 :

 

    그러므로 여러 가지 정욕에 이끌릴 만한 요소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면

    나의 연약함을 주께 고하고, 도와주실 것을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항상 주의 은혜 속에서 살기에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래야 그 말씀이 나에게 힘이 되어 나를 살리는 자가 됩니다.

 

 

* 기도제목

 

1. 고통과 혼란의 때를 이길

   건강한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2. 나를 즐겁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3.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4.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여

   진리를 깨닫는 데까지 이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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