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 노아 홍수의 각 단계별 상황
1. 홍수의 첫째 단계 : 에녹과 므두셀라를 통한 첫 번째 경고
노아 홍수가 일어나기 969년 전에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통해 장차 세상에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경고하셨습니다.
그 두 사람은 에녹과 므두셀라입니다.
1) 므두셀라(5:25~27)
에녹이 65세일 때 므두셀라를 낳았는데,
‘므두셀라’라는 이름은 ‘창 던지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고대의 근동 지방에서는
마을을 지키는 마지막 경계병을 ‘창 던지는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그 마지막 경계병이 죽으면 마을이 적군에게 함락되어 망하는 것이 되므로
‘창 던지는 사람이 죽으면 멸망을 당한다’는 것이 속담처럼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치 호세아가 그의 자녀의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를 하였던 것처럼,
에녹 역시 그의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어
그 이름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경고한 것입니다.
2)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5:21~22)
에녹이 그의 아들 므두셀라를 낳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낳을 때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이 아이가 죽는 해에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은 때부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고,
에녹의 그 믿음이 그의 증손자인 노아에게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3)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노아 홍수가 일어났습니다(창 7:11).
므두셀라는 969살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므두셀라가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이 182세에 노아를 낳았으며,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세상이 홍수로 멸망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더하면 187+182+600=969가 됩니다.
에녹의 예언대로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849살이 되었을 때부터 노아는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의 사람들은 방주가 만들어지던 120년 동안
므두셀라가 점점 죽어간다는 것과,
방주가 거의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 두 가지 일을 통해서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경고를 무시하여 심판을 당하였습니다.
2. 홍수의 둘째 단계 : 노아를 통한 120년 동안의 경고(배를 만들게 하심)
1) 그러나 너와는 내 언약을 세우리니(7:18)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노아에게만은
‘내 언약’을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노아에게는 언약을 세우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완전하게 멸하시리라는 것이
분명하고도 확실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처럼,
노아의 식구들만은 보호하시리라는 계획 역시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세우셨다는 뜻으로 ‘내 언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중간 지역은 없습니다.
노아의 때에도
방주 안에 있는 자와 방주 밖에 있는 자의 중간에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방주 밖에 있는 자는 모두 죽었고, 방주 안에 있는 자는 모두 살았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백성이든 아니든 간에 별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날이 오면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의 삶은
분명하게 차이가 납니다.
2) 너와 네 가족을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14~22절)
그러나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실 일을 노아에게 맡기십니다.
노아에게 오늘날의 농구장 20개를 2열로 쌓아야 할 정도로
큰 규모의 방주를 단단한 잣나무로 만들라고 명하십니다.
이 일을 노아의 식구들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120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8식구만으로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 모든 일을 다 행하였습니다.
➠ 120년 동안 배를 만드는 기간은 홍수 심판에 대한 둘째 경고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산꼭대기에서 배를 만들라 하신 것은
배 만드는 과정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들 배를 만드는 노아의 가족을 비웃었지만,
그래도 혹시 한 사람이라 그 경고의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자가 있을까 싶어서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노아는 온갖 조롱과 비난에도 그 과정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더욱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20년 동안에 그 경고를 받아들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3. 홍수의 셋째 단계 : 마지막 7일의 경고와 징조
1) 하나님께 믿음을 인정받은 자는 오직 노아 한 사람뿐이었습니다(7:1)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 땅에 홍수를 내리시기 7일 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 세상에서 의로운 자는 너 한 사람뿐이라”고 말씀하시고는,
노아에게 그의 아내와 아들들과 자부들을 데리고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노아에게 의롭다 하신 것은
노아가 단 하나의 흠도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노아 역시 상당 부분
그 시대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죄에 오염된 삶을 살던 그 시대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면 노아는 의로운 자가 아니라 의롭다고 인정받는 자입니다.
하나님께는 그를 찾는 자와 그 말씀에 순종하기에 힘쓰는 자를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을 찾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에 힘쓰는 자가
이 세상에 노아 한 사람뿐이었다는 것입니다.
2)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두 쌍씩,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씩(7:2)
노아는 홍수가 내리기 전 마지막 7일 동안
세상에 있는 모든 짐승을 배 안으로 들이는 작업을 합니다.
하나님의 명대로 모든 짐승이 정결한 것은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두 쌍씩 열을 지어서 배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평소에는 제멋대로 살아가는 짐승들이 그 때에는
마치 훈련된 병사들처럼 오와 열을 지어 차례대로 배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3) 이 놀라운 광경은 홍수 심판을 앞둔 마지막 징조였습니다.
이런 기가 막힌 장면을 7일 동안이나 보이신 것은
이런 장면을 보고 깨닫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이라도 살리시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7일 동안 날마다 보았음에도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이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 묵상 :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께서 많은 징조를 보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일에 분주하여 마음을 잃고 있으면,
이보다 더한 징조를 보이셔도 우리는 그것이 뜻하는 바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자가 되십시오.
5. 홍수의 다섯째 단계 : 모든 것이 다 끝나고
1) 파도만이 가득한 바다 위에 홀로 서 있는 노아의 방주
마지막으로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자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밖에서 잠그신 후 곧바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40일 동안은 하늘의 창이 열려 궁창 위에 있던 물이 쏟아지고,
땅속 깊은 곳에 있던 깊음의 샘물이 터져 땅 위로 솟구쳐 올라오며,
이런 상황에서 폭우까지 계속해서 내렸습니다.
40일이 지나자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꼭대기 위로 7미터나 더 범람한 상태가 됩니다.
세상은 온통 물이고, 방주를 삼킬 듯한 파도만이 있을 뿐입니다.
2) 그들을 기억하셔서 : 바람을 일으켜 물이 줄어들게 하신 하나님(8:1)
그때 하나님께서 방주 안에 있는 자들을 기억하셨습니다.
노아를 기억하셨고, 노아의 가족과 심지어 그 방주 안에 있는 짐승들을 기억하셨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는 구절이 나오면
그 기억하신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사건이 이어서 나옵니다.
여기에서는 방주 안에 있는 자들을 기억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땅에 바람을 일으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바람으로 물이 점점 줄어듭니다.
● 묵상 :
애굽에서 노예로 고통받는 자들을 기억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죄로 고통받는 우리를 기억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내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홀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연약함을 기억하시고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3)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멸망하지 않으리라(8:21)
노아의 제물과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이 땅의 생물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일을
결단코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십니다.
● 묵상 :
그러나 주께서 다시 오시는 때에는 사람은 물론
이 땅도, 우주도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분명히 일어낫던 것처럼, 그날도 우리 앞에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날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하리라(22절)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은 노아 홍수 이전에는 없던 단어들입니다.
궁창 위의 물, 즉 대기권에 있던 물 층으로 인하여
적도와 극지방의 온도 차이가 1°C도 되지 않았으므로(한국 창조과학회),
홍수 이전에는 낮과 밤의 단어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기권에 있던 물들이 모두 쏟아져 내렸으므로,
이불처럼 지구를 따뜻하게 했던 일들이 사라져서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이 생긴 것입니다.
● 묵상 : 하나님께서 처음에 만드신 세상은 사람에게 가장 좋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더욱 좋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사람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후에 죄를 범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때에도
세상은 여전히 사람이 살기에 좋았습니다.
그래서 거의 1,000살 가깝게 살고,
아이를 낳는 기간만 800년이나 되는 삶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다시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니
이제 잘 살아야 100살이 될 정도로 수명이 줄어들고,
삶의 환경도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로 더욱 힘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수록 사람이 더 행복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불행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바로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 묵상 : 이 단계들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봅시다.
➀ 첫째 단계 : 말씀을 통한 경고
성경에 주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경고의 말씀이 가득합니다.
➁ 둘째 단계 : 주의 종들을 통하여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
둘째 단계는 노아가 배를 만든 것처럼 주의 종들이 세상의 복음을 전하여
마지막 때의 방주이신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➂ 셋째 단계 : 최후의 징조
노아 홍수 때 마지막 7일간의 징조처럼 분명하고 확실한 징조가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때의 징조에 관해서
그 시나리오를 정확하게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모든 일은 주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지막 때의 징조는
누가 보더라도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할만큼
아주 놀라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곧 우리는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어떤 사건이나 재앙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면
주께서 오실 날이 진짜로 가까이 왔다는 것을 기억하고
주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➃ 최후의 심판
노아의 홍수는 노아가 맨 마지막에 방주 안에 들어간 후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시면서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때는 예수께서 미가엘, 가브리엘 두 천사장에서 신호를 보내시면
두 천사장이 나팔을 불면서 동시에 진행될 것입니다.
노아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신 후에는
다시는 방주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일단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들린 후에는
회개의 기회도 닫히고 구원의 문도 모두 닫히게 됩니다.
6. 마지막 때의 방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
➠ 이 방주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길입니다.
이 방주가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➀ 첫째, 노아의 방주
첫째 방주는 노아의 방주입니다.
노아 때의 방주는 노아의 8식구와 배 안에 탄 모든 짐승들을 살렸습니다.
➁ 둘째, 모세의 방주
둘째 방주는 모세가 나일강에 버려졌을 때 모세를 태운 갈대 상자를 가리킵니다.
모세를 구한 그 갈대 상자 역시 방주였습니다.
그때의 방주는 모세를 나일강물에서부터 구하였습니다.
➂ 셋째, 마지막 때의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셋째 방주는 마지막 때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의 교회가 방주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 방주 역할을 할 교회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지역교회가 아니라
그 교회 안에 있는 참믿음의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교회 건물이 방주가 아닙니다.
또 단순히 교회의 성도로 등록되거나, 교회에서 직분을 받는 것도 방주가 아닙니다.
주님을 참되게 믿어 그의 은혜 안에 머물러 있는 것,
주님과 교제하는 신실한 성도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방주 안에 있는 것입니다.
● 묵상 :
방주의 성격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구하려 하시는 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섬기며 그날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