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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큐티

유다의 며느리 다말(창 38:1~11)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11.26|조회수252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유다의 며느리 다말(창세기 38:1~11)

 

* 본문요약

 

    요셉이 미디안 상인에게 팔리는 일이 있는 후

    유다는 형제들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아둘람 사람과 함께 기거합니다.

    그곳에서 가나안 여자 수아와 동침하여 엘, 오난, 셀라의 세 아들을 낳습니다.

    유다는 맏아들 엘을 위하여 아내를 맞아 주었는데 그가 다말입니다.

 

    그런데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죽는 일이 일어나자

    유다는 오난에게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형의 후손을 잇게 하라고 명합니다.

    오난은 형의 후손을 낳지 않으려고 땅에 설정합니다.

    이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그 역시 죽게 됩니다.

 

    그러자 유다는 막내인 셀라마저 죽을까 염려하여

    다말을 그의 아버지의 집인 친정으로 보냅니다.

 

찬 양 : 186장(새 254) 내 주의 보혈은

         212장(새 420) 너 성결키 위해

 

 

* 본문해설

 

1. 유다의 결혼과 유다의 며느리 다말(1~6절)

 

1) 그 후(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넘긴 후)에

   유다는 자기 형제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히라’라고 불리는 아둘람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히라’라고 부르는 아둘람 사람에게 가서 그와 함께 거하니라.)

2) 유다는 거기에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는 사람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와서 동침하니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셀라라고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6) 유다는 맏아들 엘을 위하여 아내를 맞아들이니,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

 

- 아둘람(1절) :

    아둘람은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있는 헤브론에서

    북서쪽으로 약 25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 보고, 데리고 와서, 동침하였다(2절) :

    유다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보고, 데리고 와서, 동침하였다는 것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와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유다는 그의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 한 것에 충격을 받고,

    가나안으로 홀로 떨어져 나와 파괴적인 타락의 모습을 보입니다.

 

 

2. 유다의 두 아들의 죽음(7~10절)

 

7) 유다의 맏아들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 그러자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시동생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네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으라).”

9) 그러나 오난은 아들을 낳아도

   그 아이가 자기의 아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형수와 동침할 때마다 형의 아들을 낳지 않으려고

   땅에 설정하매(정액을 바닥에 흘려버리매).

10)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시동생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여라(8절) :

    형이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은 형수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아 주어야 합니다.

    이때 낳은 첫아들은 죽은 형의 자녀가 되어 형의 이름을 잇는 후손이 됩니다.

    이를‘레브리트’법이라고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자손이 대를 잇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여인이 결혼을 하면 어떻게 해서든 남편의 대를 잇게 해야 했습니다.

 

- 그가 이렇게 한 짓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으므로(10절) :

    오난이 땅에 설정한 것이 악했다는 것이 아니라,

    동생으로서 형의 아들을 낳아 주어야 하는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려 한 것이 악했다는 뜻입니다.

 

 

3.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보냄(11절)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내 아들 셀라가 자랄 때까지 너는 네 친정에 가서 수절하고 기다리고 있어라” 하니

     유다는 셀라마저도 그의 형들처럼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은 그의 아버지의 집(친정)에 있으니라.

 

- 유다는 셀라마저도 그의 형들처럼 죽을까 염려함이라(11절) :

    유다는 자녀들의 죽음이

    그가 가나안 여자와 결혼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며느리 다말로 인한 죽음인 것처럼 다말의 탓으로 몰아갑니다.

    그래서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고는 셀라가 자라도 통보를 하지 않습니다.

 

 

* 묵상 point

 

1. 형제들과 홀로 떨어져 나와 가나안 여자와 결혼한 유다

 

 1)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긴 후에 형제들과 따로 떨어져 지내는 유다(1절)

 

    요셉이 그의 형들로부터 미디안 상인에게 팔려 간 후에

    유다는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그곳에서 약 25km쯤 떨어진 가나안의 아둘람으로 가서 지냅니다.

 

    동생을 노예로 팔아넘겼다는 것에 마음에 큰 부담을 느끼고

    형제들과 떨어져 혼자 있기로 한 것입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형제들이 요셉을 정말로 죽일 것만 같아

    어쩔 수 없이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넘기자고 말하기는 했으나,

    어쨌든 동생 요셉을 팔아넘기자고 말한 자가 바로 자신이었으니

    무슨 변명을 하겠습니까?

 

    이런 이유로 마음이 불편해진 유다는

    도저히 형제들과 함께 있을 수가 없어 가나안의 아둘람으로 홀로 떠난 것입니다.

 

 2) 가나안에 홀로 떨어져 자신을 파괴하며 타락한 삶을 살았던 유다(2절)

 

    마음이 울적하고 불편할 때 홀로 떨어져서 조용한 시간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묵상하는 것을 피정(避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묵상하기 위해 따로 홀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의 타락한 도시에서

    자기를 잊어버릴 만큼 타락한 삶에 빠지기 위해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유다는 가나안의 한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합니다.
    에서가 가나안 여인과 결혼한 것과 같은 일을 행한 것입니다.

 

 

2. 실망했을 때 자기 파괴적인 타락을 조심하십시오.

 

 1) 그런데 유다가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는 과정이 참으로 보기 민망합니다(2절)

 

    유다는 가나안에서 어떤 여자를 보고,

    다짜고짜 그 여자를 데리고 와서 곧바로 동침을 합니다.

 

    유다의 결혼은 이렇게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따서, 먹었다고 하는 것과 같이

    유다 역시 보고, 데리고 와서, 곧바로 동침한 것입니다.

 

 2) 그저 보기에 마음에 드니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곧바로 결혼한 유다

 

    유다는 그 여자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이 가나안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지 합당하지 않은지의 여부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니 따져 볼 것도 없이 당장 데리고 와서

    곧바로 동침하여 결혼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 마음이 무너져 타락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조심하십시오.

 

    우리도 믿었던 신앙 공동체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아픔이나 실망을 느꼈을 때

    유다와 같이 파괴적인 타락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나 혼자 깨끗하게 살아서 뭐하나 싶고,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나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무너졌을 때나 실망했을 때

    나를 파괴시킬 만큼 세상에 빠지고 싶은 충동에 조심하십시오.

 

    그렇게 마치 정신을 잃은 것처럼 내 본능적인 욕구가 일어나는 대로 살아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가인이 그랬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그랬습니다.

 

묵상 :

 

    우리도 살아가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실망을 주기도 하고,

    또 누군가로부터 실망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간에 우리는 나를 무너뜨리려는 욕망으로부터 이겨야 할 것입니다.

 

 

3. 유다의 두 아들의 죽음

 

 1) 유다의 아들 엘의 죽음(7절)

 

    유다는 가나안 여인을 통해 엘과 오난과 셀라의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맏아들 엘을 위하여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그의 이름은 다말입니다.

 

    그러나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짓을 하니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엘이 구체적으로 어떤 악한 일을 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엘의 죽음은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짓을 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2)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의 죽음(8~10절)

 

    그러자 유다는 엘의 동생 오난에게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형의 후손을 잇게 하라고 명합니다.

 

    당시에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은 형을 위하여

    동생이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아들을 낳게 해야 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레비리트법이라고 합니다.

 

    이 경우에 동생과 형수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아들은

    죽은 형의 아들이 됩니다.

 

    오난은 아들을 낳아봐야 자기 아들이 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고는

    형수에게로 들어갈 때마다 바닥에 설정하여 아이를 갖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오난 역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죽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오난을 죽이신 이유는

    그가 사람의 몸밖에 설정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형의 후손을 잇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고의로 이런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3) 유다의 두 아들 엘과 오난의 죽음의 이유

 

    유다의 맏아들 엘의 죽음은 그가 가나안 사람들처럼 타락했기 때문이었고,

    둘째 아들 오난의 죽음은 형의 후손을 이어주는

    동생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묵상 : 우리도 가정에서 각자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부모로서의 책임, 자녀로서의 책임, 형제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의 이런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 것도 죄로 여기시고

    오난을 죽이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내가 맡은 책임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하는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입니다.

 

 

4. 하나님의 징계를 며느리 다말의 탓으로 돌리는 유다

 

    두 아들의 죽음은 가나안 여자와 결혼한 유다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 모든 일을 며느리 다말의 탓으로 돌립니다.

 

    여기에서 유다는 치명적인 잘못 두 가지를 범합니다.

 

 1) 회개를 거부하고, 자포자기하며 타락의 길로 들어간 유다

 

    ➀ 엘과 오난의 죽음은 유다의 타락의 결과물

 

      “세상에 내가 동생을 노예로 팔아먹다니~”

       형제들에게 실망하고, 자기 자신에게 실망한 유다는

       한동안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가나안의 타락한 문화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결과 유다의 세 아들 엘과 오난과 셀라 역시

       유다처럼 가나안의 타락한 문화에 빠졌습니다.

       아버지가 타락한 삶을 살았는데 그 아들이 바르고 건실하게 살아갈 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두 아들의 죽음은

       자신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자책감을 핑계로

       가나안의 쾌락에 빠진 유다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➁ 회개를 거부하고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유다

 

       유다는 맏아들 엘이 죽었을 때 하나님께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신 차리지 않고 가나안의 타락한 도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 오난이 죽게 된 것입니다.

 

       둘째 아들 오난이 죽은 후에도 유다는 여전히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두 아들이 죽은 책임을 아무 잘못도 없는 며느리 다말의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

 

    ➂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죄에 머물러 있기를 고집하는 유다

 

       첫째와 둘째 아들이 모두 하나님의 징계로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죄의 현장을 떠나지 않습니다.

       둘째에 이어 셋째 셀라까지 잃게 될 것을 염려하면서도

       유다는 그 죄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 묵상 :

 

       회개를 거부하고 고집을 부릴수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깊은 고통의 삶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하나님과 씨름하여 사람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가정을 일으키는 모든 책임을 다말에게만 지우는 유다

 

    ➀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내는 유다(11절)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그의 아버지 집인 친정에 가서 막내 셀라가 자랄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셀라가 자라도 셀라를 다말의 처소에 보낼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다말을 풀어주어 다른 사람에게 결혼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다는 다말에게 친정으로 가서 수절하고 있으라고 말합니다.

 

       아들 셀라에게는 형의 후손을 잇게 하는 동생의 책임을 감당하게 하지 않으면서,

       며느리인 다말에게는 수절하며 모든 책임을 감당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도 못하게 하고, 남은 세월 수절하며 홀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➁ 아버지의 권한을 남용하는 유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의 축복권을 가진 아버지로서의 권한을

       함부로 사용한 이삭의 잘못(권력 남용)이,

       열두 아들들 중에서 오직 요셉만 사랑하는 야곱에게

       그대로 이어진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삭과 야곱, 둘 다 아버지의 권한을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가 유다에게로 그대로 이어진 것을 봅니다.

       유다 역시 시아버지가 가진 권한을 함부로 사용하여,

       모든 책임을 며느리 다말에게만 지우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 혹시 나는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책임을 감당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권세를 가진 자가 자기 책임은 감당하지 않으면서

    백성들에게만 책임을 강요하는 일이라든지,

    남편이 아내에게만, 아내가 남편에게만,

    부모가 자녀에게만 책임을 질 것을 강요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기도제목

 

1. 마음을 잃을 정도로 실망했을 때

   파괴적인 타락의 유혹으로부터 이기게 하옵소서.

 

2. 회개를 거부하고 핑계를 대며 고집을 부릴수록

   더 큰 고통만 겪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3.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미루지 말고

   각자 맡은 책임과 사명에 충성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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