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고질적이고 체질화된 죄악의 무서움(예레미야 13:15~27)
* 본문요약
그러므로 심판의 재앙이 이르기 전에 서둘러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이제 곧 유다 백성들은 물론 왕과 왕비까지 폐위되고 사로잡혀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방에서 침략군이 쳐들어올 때 유다는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구스인이 피부를 변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유다 백성들이 선을 행할 수 없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람에 흩어지는 검불처럼 흩으실 것입니다.
찬 양 : 417장(새 295) 큰 죄에 빠진 나를
391장(새 353) 십자가 군병 되어서
* 본문해설
1. 심판의 어두움이 임하기 전에(15~17절)
15)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16) 그가 흑암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기(걸려 넘어지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흑암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17)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은밀한 곳에 숨어서) 곡할 것이며,
여호와의 양무리가 사로잡힘을 인하여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리라.
2. 임박한 심판(18~19절)
18) “너는 저 왕과 왕후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네 머리에서) 내려졌다’하라.
19) 남방(유다 남쪽 네게브 지방)의 성읍들이 봉쇄되고
그 성읍들을 열어줄 자가 없고,
온 유다가 다 포로로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가도다.
3.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심판에 대한 충격(20~22절)
20)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가 받았던(돌보던) 양 떼, 네 아름다운 양 떼가 어디 있느뇨?
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의 수령으로(우두머리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희가 고통에 사로잡힘이 해산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22)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는고’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
- 네가 돌보던 네 아름다운 양 떼가 어디 있느뇨(20절) :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간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22절) :
당시에는 포로가 될 때 몸을 벗기우고 포박이 되고 맨발로 끌려갔으므로
포로가 된다는 것을
치마를 들어 올리고 발뒤꿈치가 상하게 된다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4. 확정된 판결 : 극도의 수치를 당하리라(23~27절)
23) 구스(에디오피아) 사람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뇨?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검불, 겨)같이 흩으리로다.
2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는 네 응득(네 몫)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네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까닭이라.
26) 그러므로 네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어 올려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27)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한(역겨운, 가능스러운)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
- 악에 익숙한(23절) : 림무데
‘익숙한’에 해당하는 ‘림무데’는 ‘가르침을 받은’라는 뜻으로,
스스로 교훈을 받아 깨닫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향하여
나가서 스스로 악을 배우고 깨닫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악을 배우려는 열망에 사로잡힐 정도로 악의 굴레에 빠져
자기의 힘으로는 결단코 악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 이는 네 응득, 내가 헤아려 네게 준 네 분깃(25절) :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당할 그 모든 참담한 일은
어쩌다 우연히 발생한 재앙이 아니라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보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정하여 준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 사특한 소리(27절) : 짐마트, 미츠할라
‘사특한, 사악한’에 해당하는 ‘짐마트’는 ‘계획, 방책, 악함’이라는 뜻입니다.
‘소리’에 해당하는 ‘미츠할라’는 ‘발정기이 이른 짐승의 소리’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이 발정기에 있는 짐승처럼 죄악의 욕망이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최고의 권력자 왕과 왕후에게 외쳐라
1) 저 왕과 왕후에게 이르기를 …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18~19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왕과 왕후에게 가서
그들이 곧 당하게 될 일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파괴할 적들은 북쪽에서 몰려올 것이고,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달아나는 길은 모두 막혀 버렸습니다.
유다의 성읍들이 이미 적들의 손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백성들은 물론 왕과 왕비도 폐위되어 사로잡혀 갈 것입니다.
유다가 완전히 멸망할 주전 587년의 꼭 10년 전인 주전 597년에
여호야긴 왕과 왕비 느후스다가 사로잡혀 간 것을
예레미야가 미리 예언하고 있습니다.
2) 임박한 심판 : 너희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기 전에(15~16절)
예레미야는 심판의 어두움이 밀려오기 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합니다.
심판이 대단히 임박했으므로 이 일을 서둘러야 한다며 애절하게 외칩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히스기야 시대의 은혜를 다시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 예레미야가 이제 곧 일어날 일을 미리 예언하는 이유 :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예레미야가 예언활동을 하던 초기에는
장차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나타나 유다가 의지하는 앗시리아를 멸망시키고
이어서 유다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언을 했었는데
그때 바벨론은 앗시리아에 비해 작은 나라였고,
더구나 느부갓네살은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때였습니다.
그러다 예레미야가 예언 활동을 시작한지 23년 쯤 되었을 때
느부갓네살이 등장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때 예레미야의 말을 주의 깊게 살폈어야 했습니다.
혹시 그때 예레미야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은 사람을 위해
이번에는 여호야긴 왕과 왕비 느후스다가 사로잡히기 얼마 전에
왕과 왕비가 폐위되고 사로잡혀 갈 것임을 예언합니다.
이번 일도 예레미야가 한 말 그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졌지만
죄에 깊이 빠진 유다 백성들은 관심조차 없습니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그 당시 세계의 역사를 예레미야가 말한 대로 이루게 하셨지만
온통 세상의 즐거움에만 마음을 빼앗긴 유다 백성들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2. 고질적이고 체질화된 죄악의 무서움
1) 악의 굴레에 깊이 빠져버린 유다와 예루살렘(23, 27절)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작은 산 위에서의 가나안의 풍요제에 참여하여 행하는
온갖 악한 일들을 다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27절).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어느 누구도 이것을 죄로 여기는 자가 없습니다.
이미 오랫동안 그들 모두가 다 해왔던 일로 일종의 문화현상이 되어버렸으므로
그것을 죄로 여기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이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묻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구스(에디오피아) 사람들이 검은 피부를 변하게 할 수 없고,
표범이 그 반점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선을 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죄가 습관이 되어 더 이상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풍토가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2) 죄가 문화가 되면(악에 익숙한) : 수치심도 없이 죄에 빠지게 됩니다(23절)
유다 백성들은 죄를 짓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죄가 그 사회의 문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죄가 습관이 되어서 죄를 더 이상 죄로 여기지 않는 풍토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우습게 보는 이러한 그들의 삶의 태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더 이상 회개가 불가능한 자들이라는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살아 있으나 사실상의 최종적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3) 그들이 검불처럼 흩어지고, 수치가 드러나며, 발뒤꿈치가 상하리라(21~22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람에 날리는 검불(초개)처럼 흩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치마를 얼굴에까지 들려 수치를 온 천하게 드러내고
그들의 발뒤꿈치도 상하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에게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 그러므로 죄가 습관화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혹 우리 사회에서 습관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일 중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또 이 정도는 상관없을 것이라며 생각 없이 행하는 일 중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죄가 작은 욕망으로 싹을 트려 할 때에는 말씀과 기도로 쉽게 잘라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습관이 되고, 죄가 고질적인 체질화가 되면
중독증 환자처럼 고치기가 대단히 어려워집니다.
● 묵상 :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됩니다.
유다 백성들처럼 심각한 죄도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워하는 것도 살인한 것으로 여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 묵상과 기도로
죄를 씻어내고 거룩한 것을 채우는 일을 행하여 늘 건강한 영을 유지하기 바랍니다.
3. 어서 돌아오라 : 다급하게 외치는 예레미야
1) 네 아름다운 양 떼가 어디 있느뇨(20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왕과 관리들에게 북방에서
바벨론의 침략군들이 쳐들어오는 모습을 보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주셨던 아름다운 양 떼, 유다의 백성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해산하는 여인처럼 침략군들로부터 고통을 받을 때에
유다의 왕과 관리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했던 그들에게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 친한 친구였던 바벨론 사람들에게 당하는 참담한 고통(21절)
유다 백성들이 침략을 받아 망했다는 것보다 더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친구처럼 여겼던 바벨론 사람들에게
이런 참혹한 일을 당했다는 데 있습니다.
바벨론은 유다의 친구였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에는 왕이 병이 들었을 때
병문안 사절단을 보낼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습니다(이사야 39: 1~3).
그러나 이제 그들이 믿었던 자들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포로가 될 것입니다.
3)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의 돈과 권력만 믿고 안전하다고 외치는 권력층들
그러나 유다와 예루살렘의 권력을 잡은 자들은 교만하여 자기들은 안전하다는 생각에
빠져 예레미야가 전하는 간절한 호소를 귓전으로도 듣지 않습니다.
➠ 멸망으로 치달아 가는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슬퍼하는 예레미야(17절)
그들이 끝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제 곧 멸망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심판의 길로만 향하여 가는 것을 보고
슬픔에 빠져 은근히(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물러가서 슬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자기 말을 듣지 않으니 외로움에 울고,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그들이 당하게 될 일을 생각하며 안타까움에 웁니다.
● 묵상 :
➀ 우리를 가장 심각하게 파괴하는 가장 두려운 죄인 교만
나를 교만에 빠뜨리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날마다 살펴야 합니다.
교만이 일단 내 안에 그 싹이 트면 좀처럼 그것을 없애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지옥문 앞에 이를 때까지도 자신이 신실한 자인 줄 알게 합니다.
이처럼 교만은 회개의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 어떤 죄보다도 무섭고 두려운 죄입니다.
➁ 그러나 많은 경우에 ‘교만’의 죄를 가볍게 여깁니다.
교만을 두렵게 여기고 있을지라도
자기의 일에 빠져 날마다 자신을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게 된다면
교만을 가볍게 여긴 자와 같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제일 좋은 것은 교만의 싹이 막 내 마음에 심어지려 할 때
교만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얼른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날마다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일을 하십시오.
4. 하나님보다 바알을 더 신뢰한 사람들(25절)
1)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바알을 더 신뢰한 이유
25절의 ‘거짓을 신뢰하였다’는 말이 성경의 원어에는
‘그 거짓’처럼 거짓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보다 바벨론 사람들을 더 신뢰하고,
하나님보다 바알을 더 신뢰하고 있으면서
스스로 자기들을 가리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 거짓’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보다 바알을 더 신뢰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➀ 바알을 섬기는 나라들이 더 잘살고 있으므로
그들이 하나님보다 바알을 더 신뢰한 것은
바알을 섬기는 나라들이 이스라엘보다
더 잘살고 더 강력한 나라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유다의 통치자들과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바알이 더 힘이 센 신이라 여기고,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➁ 유다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들과 협력관계를 이루기 위해
바알을 섬기는 나라들이 유다보다 더 강력한 나라이므로,
이들 나라들과 좋은 협력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나라들이 섬기는 제사 의식에 참여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다른 나라를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것인데,
유다 백성들은 단순히 외교적 제스처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우상을 국가의 종교로 받아들여
거리마다 우상으로 가득한 나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➂ 바알의 제의(祭儀, 제사 의식)에 음란한 행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바알을 섬기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알의 제의에 음란한 행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 간음을 하는 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있어서
욕망이 있어도 해결할 방법이 없었는데,
바알의 제의에는 아예 예배 순서 안에 음란한 행위를 하는 순서가 있으니,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 경우 간음보다 더 무서운 죄인 우상숭배의 죄에 걸리게 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우상숭배를 죄로 여기지 않는 사회 풍조가 형성되어 있으니
통치자와 백성들,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 모두 바알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2) 그러나 바알도, 친구 나라도 모두 유다를 배반했습니다(21, 25절)
그러나 그들이 신뢰하는 바알은 그들을 도울 힘이 없고,
그들이 신뢰하여 친구처럼 여겼던 바벨론은
그들을 극도의 수치를 드러내게 하면서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보다 그 거짓을 더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 묵상 : 당신이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보다 더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의 문제보다 당신에게 더 염려와 걱정이 되게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을 계속 내 마음에 채우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는다면
세상의 일이 잘 안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염려와 걱정을 떨쳐 버리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면서 계속 염려하고 걱정한다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는 것으로 여기십니다.
* 기도제목
1. 내 안에 교만이 자라지 않게 하시고,
늘 겸손하여 주께 충성되게 하옵소서.
2.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하옵소서.
3. 죄가 고질적인 습관으로 자리 잡기 전에
회개하여 영적인 건강함을 유지하게 하옵소서.
4. 중보기도 : 염려와 걱정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도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