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예레미야의 두려움과 기도(예레미야 17:12~18)
* 본문요약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소망이며 찬송이신 하나님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백성들이 조롱하고 위협해도 도망하지 않고
맡기신 목자로서의 직분에 충성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재앙의 날에 자신의 피난처가 되어주시고,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에게는 수치와 치욕을 내려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찬 양 : 484장(새 365)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480장(새 361) 기도하는 이 시간
* 본문해설
1. 예레미야의 신앙고백(12~13절)
12) 영화로우신 보좌여 처음부터 높은 곳에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이니이다.
- 영화로우신 보좌여(12절) :
영화로우신 보좌는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를 드렸다면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 도성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보좌가 되었을 것입니다.
-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13절) :
흙에 기록이 된다는 것은 땅의 먼지에 기록이 되어
바람이 불면 날려가 몽땅 지워져 버리고 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여호와를 떠나는 하나님의 기억에서 지워져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이름이 영원히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과 대조됩니다(빌 4:3) .
2. 예레미야의 두려움과 기도(14~18절)
14) 여호와여, 주는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15)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냐?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어디 말씀하신 대로 지금 해보시라고 해봐라)”하나이다.
16) 그러나 너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쫓았사오며,
재앙의 날도 내가 원하지 아니하였음을(목자가 되지 않으려고 도망치지도 않았고,
재앙의 날이 오게 해달라고 간구하지도 않았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
17)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18) 나를 박해하는 자로 수욕을 당하게 하시고 나로 수욕을 당하게 마옵소서.
그들로 놀라게 하시고 나로 놀라게 마시옵소서.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 묵상 point
1.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라 고백하는 예레미야
1) 예루살렘 성전은 무조건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가 되는 것인가?
➀ 예루살렘 성전 그 건물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의 법궤가 있으므로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라 생각했습니다.
그 안에서 예배드리는 자들이 도적질을 했든 살인을 했든 상관없이
단지 그 성전의 지성소에 법궤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무조건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라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 성전을 차지한 자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라 여긴 것입니다.
➁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거절하시면 그 성전은 도리어 저주의 자리가 되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리 ➠ 그곳이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가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가 되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법궤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가 드려질 때
그 성전이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인정하시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드리는 예배의 자리,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시는 영광의 보좌입니다.
➠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실 때 예배의 자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가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의 보좌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셨기 때문이지,
그것이 성전이니 무조건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가 되지만,
우상숭배에 빠진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이 도리어 저주와 심판의 장소가 됩니다.
2) 시온(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라고 고백하는 예레미야(12절)
예레미야는 먼저 이스라엘의 유일한 소망이신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예레미야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혈육을 권력으로 삼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만 바라며 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에게는 시온이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가 됩니다.
그가 예배드리는 자리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비록 예레미야 한 사람이 드리는 예배일지라도
참되게 예배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오시기 때문입니다.
2. 신앙고백과 예배로 구별된 모습을 드러내는 예레미야
1)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께만 경배하는 예레미야(12~14a절)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동시에 우상도 숭배하지만,
예레미야는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하며 경배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세상 사람과 세상 권력을 더 의지하지만,
예레미야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예레미야는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참 소망이시라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신앙고백과 예배로
유다 백성들과는 구별된 모습을 드러냅니다.
2) 당신은 무엇으로 다른 사람과 다른 자임을 구별하려 합니까?
➀ 돈과 권력으로 구별된 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 : 이미 멸망을 사는 자들
세상 사람들이야 믿음이 없으니 당연히 돈과 권력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과 구별된 자임을 나타내려 합니다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 많은 사람이 돈과 권력으로 자신을 구별하려 합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 마음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예수님을 두지 않고
돈과 권력으로 채웠으니 이미 멸망을 사는 자들입니다.
겉으로는 교인의 모습을 가졌으나, 그 속에는 세상을 채웠기 때문입니다.
➁ 그러므로 예레미야처럼 믿음과 참된 예배로 구별된 자가 되려 하십시오.
그러나 예레미야처럼 신실한 믿음으로 세상과 다른 자신을 구별하려 한다면
비록 지하 단칸방에 산다고 할지라도
세상과 다른 구별됨을 나타낼 수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미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을 가득 채웠으니
세상 것에 휩쓸리지 않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이 세상에 대하여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임을
우리의 신앙고백과 예배로 드러내십시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를 드리려 힘썼던 것과 같이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참된 예배를 드리기에 힘쓰십시오.
주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때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주께로부터 인정받게 됩니다.
3. 예레미야의 고독과 두려움
1)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를 치유하여 주시기를 간청하는 예레미야(14절)
예레미야는 비록 자기의 입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리라는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였으나,
자신이 선포했던 재앙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한 편으로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하나님께 그의 백성의 죄를 치유하여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2) 예레미야를 향한 백성들의 반응: 협박과 조롱뿐(15절)
그러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이런 마음을 알지 못하고,
예레미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이 망하기를 바란다고 오해하여
그를 조롱하고 핍박합니다.
아직은 기근과 같은 마지막 심판의 전조증상으로서의 재앙은 있었으나,
유다 전체가 멸망을 당하는 본격적인 심판은 이르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려고
잠시 심판을 멈춘 것이라고 말하지만,
유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이겼다고 생각하며(15절)
예레미야에게 이 정도를 가지고 유다가 망한다며 그 난리를 쳤느냐고 조롱합니다.
어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나라를 한 번 망하게 해보라며 호통을 칩니다.
3) 예레미야의 고독과 두려움(14~18절)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죽음과도 같은 고독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가 증거한 대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심판을 내리지 않으신다면,
저 우상을 섬긴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긴 자신이
도리어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두려움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떠난 저들이 더 단단하게 뭉친 공동체가 되고,
오직 자기 혼자만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니
홀로 백성들로부터 버림받는 그 현실에서 죽음 같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운 것도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위대한 선지자라는 그의 칭호가 무색하게도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홀로 외로운 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 탈진과 무기력에 빠진 예레미야의 호소(14, 16절)
예레미야는 때때로 이 두려움이 심해져서 죽을 것 같은 공포를 경험합니다.
탈진에 빠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집니다.
이에 자신은 백성들의 조롱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목자로서의 사명에 충성하려 힘써 왔음을 고백하면서
그가 당하고 있는 이 두려움에서
자신을 고쳐주시고 치유하여 주시며 구원하여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 묵상 :
➀ 예레미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도 때로 외로움과 두려움에 빠집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예레미야나 바울이나 엘리야 같은 사람들은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담대하게 주님의 맡기신 일을 하는 자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는 두려움도 있고 걱정도 있으니
나는 그들과는 다른 자라고 처음부터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는
하나님의 맡기신 사역을 담당하지 않는 자신을 변명합니다.
그래서 성경공부는 목사님이나 선교사가 될 자들이나 하는 것이지
자기같이 평범한 사람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➁ 위대한 사역자는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끝까지 변하지 않고 충성했느냐의 차이입니다.
위대한 사역자들과 평범한 일반 사람들과의 차이는
두려움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에 끝까지 충성을 다했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두려움이나 곤란한 일이 생기면
사역을 중지하거나, 힘들지 않은 다른 곳으로 도망을 한 것입니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역에 충성하려 하지 않고,
그저 내 마음을 편하게 할 만한 곳을 찾기에 바쁩니다.
이들이 사명을 포기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포기하십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당신에게 맡기신 일에 충성하십시오.
•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그저 이를 악물고 견디기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사명의 자리를 지키면서 견디는 것이 참된 인내입니다.
* 기도제목
1. 바른 신앙고백과 참된 예배로 구별되고,
신실한 삶으로 구별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두려움이나 시련이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도망하지 말고
맡기신 사역에 충성하게 하옵소서.
3.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절망하지 말고
기도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4. 중보기도 : 고통과 시련 중에 있는 모든 사역자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