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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큐티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렘 21:8~14)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12.03|조회수252 목록 댓글 0

*오늘의 말씀 :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예레미야 21:8~14)

 

* 본문요약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셨습니다.

    이 성읍에 사는 자들은 죽을 것이고, 바벨론에 항복하는 자들은 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벨론에 넘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왕들은 정의롭게 판결하고 탈취 당한 자를 건져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분노의 불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찬 양 : 193장(새 259)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195장(새 261) 이 세상의 모든 죄를

 

 

* 본문해설

 

1. 유다 백성들 앞에 놓인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8~10절)

 

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9) 이 성읍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전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포위하고 있는 갈대아(바벨론) 군사들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같이 얻으리라(목숨만은 겨우 건짐을 받으리라).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읍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재앙 내리기)를 위함이라.

     이 성읍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 그는 이 성읍을 불로 사르리라.’”

 

- 시드기야 왕(1절) :

    시드기야의 전임 왕이었던 여호야긴 왕은

    유다 백성들은 물론 바벨론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은 합법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바벨론 사람들이 꼭두각시 왕으로 세운 왕이었으므로

    처음부터 왕으로서의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귀족들의 말에 단호하게 맞서지 못했습니다.

    귀족들은 시드기야가 끝까지 남아서

    유다 땅도 지키고 다윗 왕조의 정통성도 지켜 주기를 바랐습니다.

    이로써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마저 놓친 왕이 되었습니다.

 

- 이 성읍(10절) :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의 왕궁과 예루살렘 성읍은 예루살렘 성전 아래 남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삼면이 골짜기로 에워싸여 있었습니다.

    유다의 관리들과 예루살렘 시민들은 천혜의 요새와 같은 이런 지형지물을 믿고

    스스로 안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전하는 마지막 삶의 기회를 거부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저항하여 결국 참혹하게 심판을 당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2. 왕의 임무(11~14절)

 

11)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1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내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13)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골짜기와 평원 바위에 사는 자들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우리가 숨은 곳까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한다마는, 나는 네 대적이라(이제 내가 너희를 치리라).

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것이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묵상 point

 

1. 유다 백성들과 시드기야 왕 앞에 놓인 생명과 사망의 길

 

 1) 심판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피할 길은 바벨론에 항복하는 길뿐입니다(9절)

 

    바벨론의 침공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께 회개하였더라면

    침공하는 그 계획 자체가 취소되고

    히스기야 때처럼 극적인 기적을 통한 구원의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는 길은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각자 사는 방법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길뿐입니다.

 

 2) 바벨론 침공이 시작되었더라도 아직은 살길을 남겨두셨습니다(8~9절)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죽음의 길과 사는 길을 두셨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예루살렘 성에 남아서 끝까지 저항하는 것은 죽는 길이고,

    바벨론에 투항하면 사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바벨론에게 넘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시드기야 왕이 사는 길 : 공정하게 재판하고 압박당하는 자를 건져주라(11~12절)

 

    백성들에게 각자 사는 길을 알려주신 하나님은

    이제 예레미야 앞에 중보기도를 요청하러 왔던 시드기야 왕이 보낸 사람들에게

    이번엔 왕이 사는 길을 알려줍니다.

 

    왕이 사는 길은

    매일 아침에 그들이 재판할 때에 공평히 정의롭게 재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권력으로 탈취를 당한 연약한 자들을

    압박자의 손에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이라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 힘쓰면

    나라는 없어지더라도 그들은 살게 될 것이고,

    끝까지 권력을 자기들의 소유물로 여기면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그들을 사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그러나 거짓 안정감에만 빠져 끝까지 삶의 길을 거부하는 시드기야

 

    그러나 예루살렘 성의 지형지물이 천혜의 요새로 되어 있으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예루살렘은 안전하리라고 말하면서

    예레미야가 전하는 마지막 사는 길을 듣지 않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지막 삶의 길도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2. 생명의 길을 버리고 사망의 길을 택한 사람들

 

 1) 백성들에게 주어진 생명의 길 : 그러나 대부분 사망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바벨론에게 넘기기로 작정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백성들에게 살기 위하여 바벨론에 투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저항하다가 죽었습니다.

 

 2) 시드기야 왕에게 주어진 생명의 길 : 그러나 그 역시 사망의 길을 택합니다.

 

    또 왕의 경우엔 공평히 판결하고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져내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나그네와 객, 고아와 과부 등의 힘없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공권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려주실 뿐만 아니라

    더욱 튼튼한 권세가 되게 하십니다.

    솔로몬 왕도 시편 72:1~2에서 왕의 임무를 힘없는 자를 돕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왕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력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에 그 권력을 사용합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오히려 화가 되는 것입니다.

 

묵상 : 나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우리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나의 소유물로만 여기고 나와 나의 집을 위해서만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다시 거두십니다.

    그것이 물질이든, 지식이든, 권세든 간에

    하나님의 주신 것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3. 당신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지혜가 더 탁월함을 믿으십니까?

 

 1) 나라를 버리고 바벨론에 투항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바벨론에게 투항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백성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예레미야의 이 말은 이스라엘의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시의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예루살렘을 지키려고 하다가 대부분 비참하게 심판을 당했습니다.

 

 2) 이처럼 내 생각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완전히 다를 때

    사람들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우선 내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나에게 새로 주어진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확인하여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기드온도 두 번씩이나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를 물었고,

    모세 역시 두 번이나 확인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우리가 생각해 왔던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일을 반드시 해야만 합니다.

 

묵상 :

 

    그렇게 확인에 확인을 거쳐도 당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십시오.

    시련이나 핍박이 오더라도 변경하지 말고 지속하십시오.

 

    그러나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면

    뒤도 보지 말고 당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이 결정을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자칫하면 유다 백성들처럼 비참한 심판을 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3. 안전하다는 생각 때문에 영적으로 게을러지게 되는 것을 조심하십시오.

 

  • 평안한 안정감이 주는 영적 게으름은 가장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누구나 좋은 집에 돈 걱정 없이 사는 것을 원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얼마나 벌어서 좋은 집에 이사 갔다는 소리를 들으면

    부러워하는 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예루살렘 성의 귀족들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천혜의 요새인 예루살렘에서 궁궐같이 좋은 집을 짓고 살고 있으니 홍수가 오든지

    가뭄이 들든지, 혹은 적군이 쳐들어오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안전감 때문에 그들은 영적으로 대단히 게으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영적 게으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코앞으로 다가와도

    그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시대의 위기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무서운 유혹은 거짓 안정감이 주는 영적 게으름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볼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묵상 :

 

    그래서 이스라엘의 경건한 사람들은

    너무 많은 복을 주어 교만하거나 게으름을 피우게 되지도 말고,

    너무 없어서 세상일로 시험당하지도 말게 해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혹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당신을 영적으로 게으르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께서 그것을 다시 거두어 가시기 전에 영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십시오.

 

 

* 기도제목

 

1. 주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할 지혜와 결단력을 주옵소서.

 

2. 나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지혜가

   더 탁월함을 믿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길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3.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인하여

   교만하거나 게으른 자가 되지 말게 하시고

   더욱 부지런히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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