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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큐티

어려울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렘 2:26~37)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09.16|조회수220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어려울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예레미아 2:26~37)

 

* 본문요약

 

    이스라엘은 나무와 돌로 새긴 우상을 향하여 절을 하다가

    환난을 당하면 하나님께 구원을 청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찾던 신들에게나 가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해도 징계인 줄 알지 못합니다.

    사람을 죽이고도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그들이 의지하는 애굽과 앗수르를 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도움받을 곳을 잃고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찬 양 : 357장(새 322)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512장(새 315) 내 주 되신 주를 참사랑하고

 

 

* 본문해설

 

1. 재앙의 원인(26~32절)

 

26) 도둑이 붙잡히면 수치를 당하듯이

     이스라엘 집 곧 그 왕들과 족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

27) 그들이 나무를 보고 ‘나의 아버지’라고 하며,

     돌을 보고 ‘너는 나를 낳았다(돌을 보고 나의 어머니)’라고 하고,

     그 등은 나에게로 돌리면서 그 얼굴은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하고 말하리라.

28) 네가 만든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힘이 있다면 너를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느뇨?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의 수와 같도다.

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런데도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가 다 내게 범죄하였느니라.

30) 내가 너희 자녀들을 때렸으나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은

     그들도 징계를 받아들이지 아니함이라.

     너희의 칼이 사나운 사자처럼 너희 선지자들을 죽였느니라.

31) 너희 이 세대여(이 세대의 사람들이여)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을 들어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깊은 어둠의)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연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하느냐?

32)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결혼식에 입을 그 고운 예복을 잊겠느냐?

     그런데도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가 얼마나 되는지(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셀 수조차 없거늘

 

- 도둑이 붙잡히면 수치를 당하듯이(26절) :

    도둑도 붙들리면 수치심을 느끼는데,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자들이

    우상숭배와 음란한 행위로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으면서도

    수치심조차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을 예레미야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 나무를 보고, 돌을 보고(27절) :

    나무는 아세라 목상이나 가나안의 여신을 상징하는 나무 막대기이고,

    돌은 가나안의 남신을 상징하는 돌기둥을 가리킵니다.

 

- 사나운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죽였느니라(30절) :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그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므낫세는 이사야를 포함한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였고,

    여호야김 역시 선지자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31절) :

    이스라엘의 남부 네게브 지역은 비가 며칠만 오지 않아도 사막이 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는

    그 불모의 땅에도 항상 비를 적절하게 내리셔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눈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불모의 땅이 사막이 되도록 방치해 두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땅이 광야가(사막이)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하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죄와 심판(33~37절)

 

33)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설명 : 사랑을 찾는(남자를 호리는) 네 행위가 얼마나 익숙한지,

               악한 여자(경험이 많은 창녀)도 너희에게 와서 배워야 할 것이며,]

34) 또 네 옷단에는 죄 없는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고 들어온 것을 인함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로 너희를 책망함을 인함이니라.

     [설명 : 네 옷단에는 죄 없는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을 뚫고 넘어오다가 너에게 붙잡힌 것도 아닌데

              너희가 그들을 죽였느니라(듣기 싫은 소리 한다고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뜻).]

35)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나는 죄가 없으니

     그의(하나님의)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라고 말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36)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며 부지런히(이리저리)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한 것같이 애굽으로 인하여도 수치를 당할 것이라.

37)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얼굴을 들지 못하고) 거기서도 떠날 것이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이니라.”

 

-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며 이러지리 돌아다니느뇨(36절) :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주변의 힘 있는 강대국을 의지하려니

    앗수르가 강하다 싶으면 앗수르를 의지하고,

    애굽이 강하다 싶으면 애굽을 의지하곤 했던 것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다 그들 모든 나라에 미움을 받아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37절) :

    유다 백성들이 주변 나라들을 의지했으나,

    정작 바벨론에게 침략을 당할 때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 역시 바벨론에게 침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의지했던 것들이 모두 무너졌으 다가오는 재앙을 속절없이 당하게 된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환난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1) 징계를 받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26절)

 

    허접한 물건이나 훔치는 도둑들도 붙들리면 수치심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과 족장들,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큰 수치를 당하고 있음에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여야 할 책임을 가진 이들이

    우상숭배에 빠졌으므로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를 당한 것인데,

    그 징계의 재앙 중에도 그 음란한 짓들을 멈추지 않고 있음을 두고 한 말입니다.

 

 2) 환난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27절)

 

    그들은 나무와 돌을 을 보고 그것들이 나는 만든 창조주(아비)라고 고백했습니다.

    더욱 기가 막힐 일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우상 숭배를 해놓고

    환난을 당하면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하며

    하나님께 구원을 청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섬기던 그 우상들이 능력이 있다면 너희를 구원해줄 것이니,

    그 신들에게나 가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묵상 :

 

  ➀ 혹시 어려울 때만 반짝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보는 것을 귀찮은 일로 여기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일을 멍에를 맨 것과 같이 괴로운 일로 여기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때만 반짝 기도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어려운 때만 기도할지라도

     기도는 하고 있으니 스스로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의 대상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때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너희가 평소에 찾던 것들에게나 가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➁ 어려울 때만 반짝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이렇게 평소에는 하나님을 잊고 있다가

     어려움이 올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하십시오.

     말씀과 기도가 당신의 일상생활 속에 항상 있게 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께서 당신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여기십니다.

 

 

2. 이스라엘이 재앙을 당한 이유

 

 1) 헛된 것들을 섬기고, 그들을 책망하는 선지자들을 죽인 것(27~29절)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거짓 신을 섬긴 죄로 인하여 재앙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오히려 죄를 범한 적이 없는 자기들을 어찌하여 괴롭히느냐며

    하나님을 향하여 큰 소리로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깨닫게 하려고 내리신 징계였으나 그들이 그 징계의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하려고 내리신 징계였으나 돌아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괴롭혔으니 이제 하나님께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더욱 죄를 범합니다.

 

 2)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로 가기 위해 몸을 꾸미는 여자 같은 이스라엘(32~33절)

 

    이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결혼한 신부가 결혼식 때 받은 패물과 그 패물을 준 남편을 모두 잊고

    다른 남자를 찾아다니는 것과 같다며 탄식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결혼 패물과 함께 그 패물을 준 남편을 잊고

    다른 남자에게로 가기 위해 아름답게 몸단장하는 여인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몸단장하는 솜씨와 남자를 호리는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경험 많은 창녀들조차도 와서 배워야 할 정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하여 선지자들을 죽이는 자들(34절)

 

    그들은 심지어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담에 구멍을 뚫고 들어오는 강도를 죽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책망한 선지자들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말씀 전하는 자를 아예 죽여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자기들은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들은 무죄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시라고 말합니다.

 

➠ 이에 그들이 의지하는 애굽과 앗수르를 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36~37절)

 

    하나님께서 그들이 의지했던 애굽과 앗수르를 치시니 의지할 곳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포로가 되어 두 손을 머리 위에 한데 묶여서 끌려가는

    극도의 절망과 슬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대신에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니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그들이 의지하는 것들을 먼저 치셨습니다.

 

    그러나 애굽과 앗수르에서 일어난 그 참담한 광경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그다음에는 유다의 차례가 될 것입니다.

 

묵상 :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그것부터 빼앗으십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 대신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했던 것처럼

    무엇인가 나를 든든하게 할만한 것들을 의지하고 하나님 섬기기에 게으름을 피운다면

    하나님께서 그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그가 의지하는 것들을 제거하십니다.

 

    그것이 돈이면 돈을, 사람이면 사람을, 세상의 권세면 권세를

    내가 그것이 있다고 마음 든든해하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그것을

    먼저 내게서 제거하십니다.

 

    이때의 환난과 고통으로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만,

    유다 백성들처럼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

    결국은 멸망의 심판을 당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고

    평안할 때 주께로 돌아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됩시다.

 

 

3. 우상숭배에 빠지는 원인과 그 치명적인 결과

 

 1) 가나안 종교 : 윤리적인 의무는 없고 풍요와 쾌락만 준다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향하여 갔습니다.

    가나안의 종교들은 윤리적인 계명은 없고

    오직 세상의 풍요와 쾌락을 준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바알신과 같은 것들은 아예 그 예배의 의전 자체에 집단 음란행위가 있으니,

    쾌락의 욕망을 가진 자들이 가나안의 우상숭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는 어렵고,

    죄의 습관은 버리기 싫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윤리적 계명이나 의무는 없으면서

    세상의 풍요는 준다고 하는 우상숭배에 쉽게 빠지게 된 것입니다.

 

 2)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을 광야나 끔찍한 재앙의 장소로 여기게 되고

 

    그러다 세상 즐거움에 깊이 빠진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길 없는 광야나 위험과 재난의 장소쯤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가장 끔찍한 재난으로 여긴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점점 싫어지다가

    결국엔 하나님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듣기 싫은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3) 우상숭배의 치명적 결과 ➠ 죄의 감각이 무뎌지고, 결국 멸망의 자식이 됨

 

    돌과 나무로 만든 우상은 결단코 그들에게 물질의 풍요를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징계로 더 많은 고통과 재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제사장들은 그 재난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우상숭배를 버리지 못합니다.

    이미 우상의 제의에 속해 있는 육체적 쾌락에 깊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 우상숭배를 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보호막이 제거됩니다.

  • 은혜의 보호막이 제거된 상태에서 죄가 계속해서 쌓입니다.

  •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죄악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멸망으로 달려가게 합니다.

 

    그러다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연약한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무섭고 끔찍한 죄를 짓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도덕적 가치관이 무너진 것입니다.

    화인 받은 양심을 가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신실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4. 자기중심적 신앙관의 위험

 

 1) 이스라엘 사람들의 타락의 과정

 

    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살기 위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찾아갑니다.

       우상숭배에는 세상의 즐거움은 있고 도덕적 의무는 없기 때문입니다.

    ➁ 그러다 서서히 도덕적 가치관이 붕괴됩니다.

    ➂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자를 고통에 빠뜨리는 등의 무서운 죄를 짓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양심의 자리까지 죄로 오염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살아 있으나 실상은 심판을 받은 자(고범죄)가 됩니다.

    ➃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장 끔찍한 벌로 심판하시리라 말씀하십니다.

    ➄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라고 여깁니다.

 

 2) 그러면서도 스스로 자기들을 의로운 자로 여깁니다 ➠ 형식만 남은 예배 때문

 

    이렇게 당장이라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을 정도로

    엄청난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몹시 진노하시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죄가 없는 의로운 자라고 여기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 그들이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그들이 예배를 드리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 죄를 다 용서해주실 터이니,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입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있으니,

    자기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 혼합주의 : 삶과 예배가 분리된 형식만 있는 거짓 예배

 

    이렇게 죄를 범하고 있는 자가 그 죄에 대한 수치심도 없고,

    회개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예배에만 참여하고 있는 자들은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혼합주의자들입니다.

 

    밖에서는 세상을 섬기고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세상의 하나님과 교회의 하나님이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동시에 두 신을 섬기는 혼합주의자들인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거짓된 예배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도

    신학적으로나 예배학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거룩한 예배를 드렸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토악질을 하실 정도로 싫어하셨습니다.

 

 3) 자기중심적인 신앙의 위험(35절)

 

    본문에서 예레미야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우상은 자기중심적 신앙관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신앙의 질서가 아니라

    자기가 임의로 정한 자기만의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심지어 까닭 없이 사람을 죽이고도 죄책감도 없이

    스스로 자신을 거룩한 자로 여기면서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적 신앙관은 우상숭배만큼이나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의 대상으로 여기시는데,

    본인은 자기가 정한 방식대로 경건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것을 알아야 회개를 할 텐데 자신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회개할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우상숭배만큼이나 위험합니다.

 

묵상 :

 

    ➀ 자기만족을 위해 예배드리는 자는 ➠ 헛되고 거짓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하여 드리는 우리의 감사와 헌신과 경배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도록 해 드리는 것이지

       우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기만족을 위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나를 만족하게 하는 설교를 찾습니다.

       나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찬송을 찾고 나를 즐겁게 하는 예배분위기를 찾습니다.

 

       모두가 자기중심적 신앙관입니다.

       이런 예배와 이런 신앙생활은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짓 예배,

       거짓 신앙입니다.

 

    ➁ 경건의 형식만 있는 헛된 신앙에 빠지지 마십시오.

 

       이렇게 거짓 예배를 드리면서도 이웃에 대한 배려심도 없습니다.

       경건의 형식은 있으나 섬김과 성도의 신실한 교제가 없습니다.

 

       이렇게 윤리도 버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도 버린 채

       오직 나만을 위해 행하는 모든 경건 행위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지 못합니다.

 

    ➂ 경건의 형식도 경건의 내용도 함께 갖춘 성도가 됩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가족과 교회와 이웃들을 함께 섬기는

       건강한 신앙을 가진 신실한 성도들이 됩시다.

       그래야 주께서 우리의 예배와 신앙을 받으십니다.

 

 

* 기도제목

 

1. 자기중심적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 신앙을 갖게 하옵소서.

 

2. 말씀과 기도와 같은 경건의 형식만이

   사랑과 섬김과 같은 경건의 능력도 갖게 하옵소서.

 

3. 어려울 때뿐 아니라 평안할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히 여기고

   늘 기도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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