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석방되는 예레미야(예레미야 26:16~24)
* 본문요약
고관들과 백성이 예레미야를 죽이지 못하게 하자
몇몇 장로들이 히스기야 왕 때 미가의 예언에 모두가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간구했던 일과,
최근에는 선지자 우리야의 예언을 듣지 않고 그를 죽였었다는 것을 예로 듭니다.
그러자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죽이지 못하게 하고 풀어줍니다.
찬 양 : 102장(새 94)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98장(새 90)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 본문해설
1. 재판관들의 판단(16절)
16) 방백(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는 것이 부당하니라.”
2. 장로들의 변호(17~19절)
17) 그때에 그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가로되
18)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넷 사람 미가가 유다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시온은 밭 같이 경작함을 당하며,
예루살렘은 돌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과 같이 타락하게 되어)
수풀만이 무성한 언덕이 되리라’하였으나
19) 유다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 백성이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고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예레미야를 죽이면) 우리 생명을 스스로 크게 해하는 일이니라.
- 미가(18절) :
이사야(제1 이사야)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귀족 출신의 이사야와는 달리
농민 출신으로 다소 과격한 언어로 유다의 멸망을 외쳤습니다.
그때 마가가 한 예언인 18절은
‘이 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들같이 되리라’한 말씀이
개역개정에서는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산당과 같이 타락하게 되어
수풀만 무성한 언덕처럼 파괴되리라는 것입니다.
미가의 예언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마치 산당과 같이 타락한 것이 되었고,
이제 곧 미가와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수풀만이 가득한 폐허가 될 것입니다.
- 산당(18절) :
북왕국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자기 백성들의 관심을 예루살렘에서 북왕국으로 돌리기 위해
가나안의 전통을 도입해 북왕국에 산당들을 지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산당은 필연적으로 가나안의 우상인 돌기둥과 아세라 목상들이 들어왔고,
가나안의 종교적 매춘과 풍요제의 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와 함께 혼합되었습니다.
남왕국 유다에서는 솔로몬이 처음 세웠던 이런 우상들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전국으로 확산시켰습니다.
이후 아사와 여호사밧이 없애기도 했으나, 마치 독버섯처럼 또다시 생겨났습니다.
히스기야가 미가의 예언을 듣고 없앴으나,
그의 아들 므낫세가 산당을 다시 회복시켰습니다.
그 후 요시야 왕이 산당을 박멸하려 했으나 백성들이 이에 응하지 않았고,
그의 사후에 급격히 유다 전역에 다시 확산 되었습니다.
3. 또 다른 장로들의 변호(20~23절)
20) 또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기럇여아림 사람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가 한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을 쳐서 예언하자
21) 여호야김 왕과 그 모든 용사와 모든 방백(관리들)이 그 말을 듣고는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이를 듣고 애굽으로 도망하여 갔으나,
22) 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내었더니
23)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여호야김 왕에게로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 시체를 평민의 묘실에 던지게 하였다” 하니라.
4. 예레미야의 석방(24절)
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보호하여
예레미야를 백성의 손에 내어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 묵상 point
1. 예레미야를 변호하는 사람들
1) 재판관과 백성들의 변호(16절)
재판관(방백, 고관)들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였는데,
그를 죽이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말합니다.
예레미야의 무죄를 판결한 것입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제사장의 편에 서서 예레미야를 죽이자고 했던 백성들이(8절)
이번에는 태도를 바꾸어
예레미야를 변호하는 재판관들의 판단이 옳다고 말합니다.
2) 지방의 장로들 중 몇 사람의 변호 : 히스기야의 시대를 예로 들고(17~19절)
그러자 그곳의 장로(지방의 유지나 어르신) 몇 사람이
히스기야 시대의 미가 선지자를 예로 듭니다.
그때 미가가 예레미야보다 훨씬 강력하게 예루살렘의 패망을 예언했었는데,
히스기야는 그를 죽이지 않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었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던
앗수르의 18만 명의 군사들을 천사를 동원하여 죽이시고,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취소하셨던 일을 상기시킵니다.
3) 또 다른 장로들의 변호 : 선지자 우리야에 대한 일을 예로 들고(20~23절)
장로들은 또 다른 예로
바로 그 시대에 일어났던 선지자 우리야에 대한 일을 상기시킵니다.
우리야 역시 예레미야와 똑같이 예루살렘의 패망을 예언했던 자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여호야김 왕이 진노하자
죽음을 피하기 위해 애굽으로 도망했다가 다시 붙잡혀 와서 처형되었습니다.
장로들은 전에 히스기야 시대에는 예언자의 말을 듣고 부르짖어 회개하였는데,
지금은 예언자가 조금 불편한 소리를 한다고 해서
이렇게 벌써 한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서,
지금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예언자를 또다시 죽이려느냐는 뜻으로
선지자 우리야의 예를 듭니다.
4) 예레미야의 석방(24절)
일부 장로들의 말을 듣고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죽이지 못하게 하고 풀어주었습니다.
아히감의 아버지 사반은 요시야 왕 때에 성전 보수공사에 참여했으며,
제사장 힐기야가 성전 보수공사 중에 발견한 하나님의 율법책을
요시야 왕에게 전달한 인물입니다.
지금은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가 죽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를 구하여주고,
이후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그달랴)는 감옥에서 풀려난 예레미야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돌보아 줍니다(예레미야 39:14 참조).
2. 당신은 다음 중에서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1) 예레미야와 같은 사람 : 죽기까지 주께 충성하는 사람들
예레미야는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했습니다.
그가 처한 환경이나 처지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다 죽음이 오면 죽고,
그러다 시련이 오면 시련을 당하리라는 마음으로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에 충성합니다.
2) 예루살렘의 제사장과 선지자들과 같은 사람 : 하나님의 일꾼들을 핍박하는 사람들
그러나 예레미야를 핍박하는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서 권력의 맛을 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지금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권력의 즐거움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이 즐거움을 빼앗으려 하는 자들은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보내신 사역자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누리는 권세를 위협하는 자들은 가만두지 않습니다.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세상의 욕심이 가득 차 있습니다.
3) 몇몇 장로들과 같은 사람들 : 상황 분석은 잘하나 두려움에 빠진 자들
그들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분석을 바르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미가 선지자 때에 히스기야 왕이 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최근에 있었던 선지자 우리야를 처형한 사건은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일이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레미야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말까지는 하지 못합니다.
그저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다가
정작 필요한 말은 하지 못하여 변죽만 울리다 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상황 분석은 바르게 하지만 그 일에 자신의 목숨을 걸지는 못합니다.
지혜는 있으나 그 지혜대로 결단을 못합니다.
성경은 이런 자들도 죄인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4) 주변의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마음이 바뀌는 백성들(8, 16절)
백성들은 8절에서는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자
그때는 함께 목소리를 높여 “이런 놈은 죽어 마땅하다”하고 외쳤으나,
16절에 방백(지방의 재판관)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하자
이번에는 그들과 함께 예레미야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권세 있는 자들의 말에 따라 낙엽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입니다.
5) 예레미야를 돕는 아히감 같은 사람들 : 하나님의 일꾼을 돕는 사람들
아히감은 자신이 가진 권세를 적절히 활용하여 예레미야를 위기에서 구합니다.
후일 아히감의 아들 그달랴 역시 예레미야를 돌보아 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아리마대 요셉도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 역시 자신의 가진 권세를 이용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시신을
자신의 무덤에 묻었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권세와 물질 등의 달란트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적절히 사용할 줄 압니다.
● 묵상 : 하나님의 복은 당신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위에 사람들처럼 선택해야만 하는 일들이 매일 매 순간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그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당신이 선택한 결과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를 지켜보십니다.
당신은 위의 사람 중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 기도제목
1. 예레미야와 같이 맡겨진 사역에
충성된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또한 아히감 같이 사역자를 돕는 일에도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3. 중보기도 : 고통과 시련 중에 있는 모든 사역자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