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시대를 보는 눈을 가진 자(예레미야 4:11~22)
* 본문요약
심판의 강하고 뜨거운 바람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불어올 것입니다.
유다가 구원받을 길은 마음의 악을 씻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길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끝까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거부하면 예루살렘이 포위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태평한 마음으로 죄 속에 머물러 있는 동족 유다 백성들을 보고 슬프게 탄식합니다.
찬 양 : 262장(새 523) 어둔 죄악 길에서
318장(새 528)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 본문해설
1. 광풍보다 무서운 심판의 바람이 불어온다(11~14절)
11) “그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말씀을 전할 자가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 자산(헐벗은 벌거숭이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
이는 (곡식을 골라내기 위해)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함도(알곡을 깨끗하게 골라내려고 부는 바람도) 아니며,
12)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나의 명령을 따라서) 불어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나의 백성,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
13) 보라, 그가(원수가) 구름처럼 올라오나니,
그 병거는 회오리바람 같고, 그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이제는 멸망하게 되었다’ 하리라.
14)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머물겠느냐?
(흉악한 생각을 네 속에 얼마나 품고 있을 작정이냐?)
- 뜨거운 바람이 광야 자산에서(11절) :
광야에서 부는 뜨거운 바람은 사하라 사막에서 부는 열풍으로 ‘파멸’을 상징합니다.
- 내 딸 백성에게(11절) :
‘내 딸’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무서운 심판을 말씀하시면서도 ‘내 딸’이라고 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 더 강한 바람(12절) :
이제 불어오는 바람은 농사를 돕는 이로운 바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파괴하는 심판의 바람이라는 것입니다.
- 나를 위하여 불어오리니(12절) :
광야 자산에서 부는 열풍이 자연적으로 부는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부는 심판의 바람이라는 것으로,
북쪽에서 남왕국 유다를 치기 위해 오는 바벨론 군대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오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2. 예루살렘이 포위되리라(15~18절)
15)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16) 너희는 열방(만방, 여러 나라)에 알리며, 또 예루살렘에 전하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전쟁의 함성을 지른다’하라.
17) 그들(적군)이 밭을 지키는 사람처럼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유다와 예루살렘이)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8) 네 길과 행위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너의 악함(너의 죄악)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그 고통이 네 마음속까지 파고들 것이라).”
-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15절) :
‘단’과 ‘에브라임’은 지명이름입니다.
단은 팔레스틴 최북단의 경계 지역이며, 에브라임 산은 예루살렘 북쪽에 있습니다.
북쪽에서 오는 바벨론 군사들이
팔레스틴 최북단 경계 지역의 단에서부터 예루살렘 북쪽의 에브라임 산으로
예루살렘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 밭을 지키는 사람처럼(17절) :
곡식을 추수할 때가 되면 예루살렘 성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밭의 농부들이
추수한 곡물을 지키기 위해 임시로 오두막 같은 것을 만들어
밭을 지키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처럼 바벨론 군사들이 예루살렘 성을 에워쌀 것임을 경고한 것입니다.
3. 예레미야의 탄식(19~22절)
19)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견딜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전쟁의 함성소리)를 들음이로다.
20)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재난에 재난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온 땅이 황폐하게 되었나니),
나의 천막은 홀연히 파멸되며,
나의 휘장은 순식간에 열파 되도다(갈기갈기 찢겨졌도다).
21) 내가 내 기호를(저 깃발을) 보며 나팔 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
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 묵상 point
1. 예레미야의 심판의 경고 : 네 길과 행위가 이 일을 부르게 하였다
1) 심판의 바람이 불어온다(11~13절)
사막에서 이스라엘로 불어오는 시로코 동풍은
모든 식물을 마르게 하는 무서운 바람입니다.
때로 이 바람은 토네이도와 같은 회오리바람을 동반하여
식물뿐 아니라 모든 것을 날려 버리는 광풍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 무서운 광풍보다 훨씬 더 무섭고 강력한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이 곧 불어올 것입니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모조리 싹 쓸어 가는 바람,
저항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파괴적인 심판의 바람이
유다를 향하여 불어오고 있습니다.
이 심판의 바람은 흉악한 이방인의 군대를 의미합니다.
그 군대의 병거는 회오리바람 같고, 그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릅니다.
2) 그들의 부패한 삶이 심판의 바람을 불러들였습니다(13, 18절)
그들의 부패한 삶이 심판의 바람을 불러들였습니다.
마음의 악은 씻어 내지 않고 적당히 회개하는 흉내만 냈기 때문입니다.
죄의 습관은 그대로 둔 채
경건의 형식만 몇 가지 행하는 정도에서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이런 방식의 형식적인 신앙 행위가
하나님의 진노를 더욱 촉발하였습니다.
2. 예레미야의 호소 : 마음의 악을 씻고 주께로 돌아오라
1) 그러므로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고 돌아오라(14절)
비록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 시간 안에 유다 백성들이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재앙은 물러가고 유다 백성들은 다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귓전으로도 듣지 않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까(19절)
그러나 유대 백성들이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언제까지 그 악한 생각에서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으려 하느냐며 한탄하십니다.
● 묵상 : 최소한 마음의 악을 씻어달라고 구하기라도 했더라면
하지만 마음의 악을 씻어 내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행동이야 조심하면 되겠지만
마음의 충동적인 욕망을 어찌 해결한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습관이나 마음의 욕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주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구원의 시작은 주께 나를 고쳐주실 것을 구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를 어찌합니까?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를 고쳐주실 것을 구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께서 정말 고쳐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셔서 고쳐주시면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죄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도와달라는 기초적인 기도하는 것조차 하지 않습니다.
불 속에 뛰어드는 날벌레들처럼.
3. 시대를 보는 눈을 가진 자의 아픔 : 무지한 저 백성을 어찌할꼬
1) 임박한 심판의 경고(15~17절)
심판의 바람이 국경 지역의 단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에까지 불어왔습니다.
에브라임 산은 예루살렘에서 불과 하루거리(12km)에 있습니다.
심판이 대단히 임박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오면 마치 밭 주인이 자기 밭을 지킬 때처럼
그들이 예루살렘을 빈틈없이 포위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임할 때 고통이 그들의 마음속까지 파고들어 갈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길과 행사가 이 일을 불러왔습니다.
그들의 부패한 삶이 이런 일을 불러왔습니다.
2) 그 어떤 경고의 소리도 듣지 못하는 무지한 백성들(22절)
예레미야의 귀에는 그렇게도 분명하게 들리는 심판의 소리가
어쩌면 이렇게도 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영적인 감각을 잃은 사람들은 코앞에 다가오는 심판의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적 감각을 잃어버린 이 자체를 심판이라고 규정하기도 합니다.
3) 시대를 보는 눈을 가진 예레미야(20~21절)
아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예레미야는 보고 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영의 감각이 예민해지면 시대를 보는 눈이 생깁니다.
예언자란 이렇게 하나님의 주신 영적인 감각으로
시대를 보는 눈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시대를 보는 눈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무슨 일을 하려 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일으키려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 일을 이루기 전에 먼저 시대를 보는 눈을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이 시대에 당신과 당신이 속한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이 보일 것입니다.
4) 예레미야의 안타까움 :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19절)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로운 말씀으로 들려 더욱 듣기를 사모하게 되지만,
악에 사로잡힌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를 괴롭게 하는 원수의 소리처럼 들립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선포해도
이미 죄에 빠진 유다 백성들의 귀에는 시끄러운 소음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말씀을 전할수록 유다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괴롭게 합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향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매국노로 생각합니다.
우리식으로 하면 민족의 구원을 외치는 예레미야를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 남의 일처럼 허망한 소리로 듣는 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결국 하나님의 경고하신 대로
멸망의 참혹한 심판의 바람이 예루살렘을 휩싸게 되리라고 생각하니
예레미야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낍니다.
예레미야는 이 무지한 백성을 어찌해야 하느냐며 안타까움에 가슴앓이를 합니다.
4. 당신의 귀에는 심판을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가 들립니까?
1) 심판의 소리를 들어야 회개를 할 수 있고, 회개해야만 심판을 피할 수 있는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에서 패망의 울부짖는 소리가 연이어서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레미야의 경고의 소리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회개하여야만 그 참혹한 심판을 막을 수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영의 감각이 무뎌질 때까지 자신을 방치해 두지 마십시오.
잠시 머뭇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에
악한 영이 나의 영의 감각을 무디게 만듭니다.
일단 영의 감각이 무디어지면
그다음부터는 악한 영에게 사로잡히기 쉬운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그 어떤 질병보다 더 무서운 병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십시오.
말씀을 깨달을 때마다 주신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십시오.
* 기도제목
1. 무뎌진 영적인 감각이 예민해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을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예레미야처럼
시대를 보는 눈을 갖게 하옵소서.
3. 중보기도 :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일으키는 교회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