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겨자씨 비유,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마가복음 4:30~41)
* 본문요약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 한 알이
새가 깃들 만큼 큰 가지를 낼 정도로 크게 자라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생명이 있을 때 자란다는 생명의 특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가진 자들은 영생을 얻을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에 큰 광풍이 일자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자기들을 살려 줄 것을 간청합니다.
예수께서 바람을 꾸짖고 바다를 향해 명령하시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집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크게 두려워합니다.
찬 양 : 455장(새 370) 주 안에 있는 나에게
457장(새 401) 주의 곁에 있을 때
* 본문해설
1. 겨자씨 비유(31~32절)
30)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를 무엇에 비교하며, 또 어떤 비유로 나타낼꼬?
31)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그 어떤 풀보다 더 크게 자라서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 겨자씨(31절) :
겨자씨는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씨입니다.
유대교의 율법학자들이 작은 것을 비교할 때 항상 겨자씨를 말했으므로
예수께서도 겨자씨를 가지고 비유하신 것입니다.
- 큰 가지를 내니(32절) :
겨자씨는 바늘구멍 정도의 크기로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으나
다 자라면 보통 1~2m, 큰 것은 3~4m까지 자라는 1년생 잡풀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3:32, 누가복음 13:19에서 예수님은
겨자씨가 새가 깃드는 아주 큰 나무가 된다고 비유하셔서
이 땅에서는 이룰 수 없는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비유하셨습니다.
-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32절) :
예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영원히 평강을 누릴만한 아주 좋은 곳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2. 비유로 가르치시는 예수님(33~34절)
33) 예수께서는 이와 같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많은 비유를 들어 말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혼자 계실 때에는 제자들에게 그 모든 것을 일일이 (해석하여) 주시더라.
-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많은 비유를 들어(33절) :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들 생활 주변의 것들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없는 자들은
그렇게 쉽게 비유해주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3.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35~41절)
35) 그날 저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제자들이 무리를 남겨두고 떠나 예수님을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가더니
37) 그때 큰 광풍이(거센 바람이) 일어나며
파도가 배 안으로 부딪혀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배의 뒷부분)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잠을 깨어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고요하라! 잠잠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 베개(38절) : 방석 같은 것을 둘둘 말아서 베개를 하고 주무신 것을 뜻합니다.
-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38절) :
큰 광풍이 불고 파도가 들이쳐 배가 침몰할 정도가 됐음에도
예수께서 주무시고 계신 것은 그만큼 피곤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 그러자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여(41절) :
처음에는 바다의 파도를 두려워했으나,
예수께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신 후부터는 예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바뀐 것입니다.
(겨자씨 )
* 묵상 point
1. 겨자씨 비유
1) 비유의 핵심 : 지극히 작은 것과 지극히 큰 것과의 비유(30~32절)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신 것은,
겨자씨가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이기도 하지만,
유대교의 율법 학자들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것을 비유할 때
항상 겨자씨에 비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반전은 겨자씨가
새가 깃들일 정도로 큰 가지를 내는 나무로 성장한다고 말씀하신 데 있습니다.
겨자씨는 바늘구멍 정도의 크기로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으나
다 자라면 보통 1~2미터, 큰 것은 3~4미터까지 자라는 1년생 잡풀입니다.
마태복음 13:32, 누가복음 13:19에서 예수님은
새가 깃들일 정도로 큰 가지를 내는 나무로 성장한다고 비유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겨자씨가 1년생 풀이라는 것을 모르시고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지극히 작은 것과 지극히 큰 것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
세상 모든 것을 다 멸하는 지극히 큰 것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밤낮 자고 깨고 하는 가운데 스스로 자라 큰 나무가 되는 겨자씨(26~29절)
그러나 겨자씨가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은 아무리 큰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낡고 쇠하여지지만,
겨자씨는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밤낮 자고 깨고 하는 가운데 스스로 그 씨가 자라서
새가 깃들일 정도로 크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면 비록 내가 지극히 작은 자일지라도
내 안에 있는 주님의 참된 말씀이 내 믿음을 자라게 하여
나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30배, 60배, 100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겨자씨 비유도 교회의 부흥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됩니다.
30배, 60배, 100배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만한 믿음의 열매를 맺는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겨자씨가 새가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되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믿음을 가진 자로 자라게 된다는 뜻입니다.
3) 새가 깃들이는 큰 나무 : 우리를 평안케 하는 하나님 나라(32절)
새가 깃들이는 나무는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영원히 평안하게 하는 복된 곳임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좋은 곳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좋은 곳입니다.
그곳이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니었다면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면서까지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려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주님의 신령한 것을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에 마음을 쏟으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 중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과시할 만한 것을 만들기에 힘쓰지 말고,
내 안에 하나님의 신령한 것을 채우기에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2.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가르치시는 예수님(33~34절)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항상 비유로만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기 쉽도록 가르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말로 해 봐야 알아듣지 못하니,
이해하기 쉽도록 그들의 삶의 이야기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도 관심도 없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이해하기 쉽도록 삶의 이야기로 비유하여 하신 말씀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 말씀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씀을 깨닫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이 내게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어렵거나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주께서 깨닫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제일 좋아하십니다.
3.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
1) 큰 풍랑 속에서 고물에 베개를 하고 주무시는 예수님(35~38절)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말씀을 듣던 무리를 그 자리에 남겨두고,
예수께서 배에 타신 그대로 예수님을 모시고 바다를 향해 저어갔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큰 광풍이 일어 파도가 배에 들이쳤습니다.
배에 물이 가득하여 침몰할 지경이 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난리통에도 고물(배의 뒷부분)에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이런 상황에도 주무신 것은 그만큼 예수님이 피곤하셨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또 병을 고치시느라 잠시도 쉬지 못하신 것입니다.
2) 어찌하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38절)
파도가 배에 들이쳐서 배가 침몰할 지경이 되자
제자들이 두려워 예수님을 깨웁니다.
“선생님이여 어찌하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들은 예수께서 비록 잠들고 계시지만
그 배 안에 자기들과 함께 타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 우리를 구원하실 이가 그 배 안에 함께 계시는데
그들은 그저 눈앞의 파도만 보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 예수님(39절)
잠에서 깨신 예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에게 잠잠하고 조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도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시고 사람의 질병을 향하여도 명령하시는 예수께서
이제는 바람과 바다를 향하여도 명령하셨습니다.
4)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40절)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지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예수께서 그 배 안에 함께 계셨는데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이가 그 배 안에 함께 계신 것을 자기들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주님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한 것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 묵상 :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염려될 일이 생겼거나 두려운 공포심이 밀려왔을 때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자가 되십시오.
4. 예수님을 두려워하는 제자들 : 두려움의 대상이 바뀜(41절)
예수께서 바람을 그치게 하시고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자
제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며 서로 말합니다.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조금 전까지는 파도를 두려워했으나 이제 예수님을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바뀌었다는 것은
바람이나 파도보다 예수님이 더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믿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으니 예수님을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 묵상 :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황제보다 하나님의 권세를 더 두려워하니
황제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만일 세상보다 하나님의 권세가 더 크시다는 것을 믿고 있다면,
그 믿음을 삶과 행동을 통해 보이십시오.
주일에 친구나 가족 모임을 하느라 예배에 빠진다면
당신은 하나님보다 친구나 가족을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고,
입으로 시인한 것을 행동으로 나타내 보일 때
비로소 믿음이 인정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기도제목
1. 겨자씨 같은 작은 것일지라도
참 생명이 있다면 자라게 된다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2.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오직 주님의 신령한 것을 채우기에
힘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주님이 더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이심을
믿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