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헤롯과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마가복음 8:14~26)
* 본문요약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시자 제자들은
자기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깜빡 잊은 것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알고 서로 수군거립니다.
이에 예수께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다시 환기시키시며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의 둔함을 책망하십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벳새다로 오시니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려옵니다.
예수께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뱉고 두 번 안수하여 그의 시력을 완전하게 회복시키십니다.
찬 양 : 377장(새 449) 예수 따라가며
395장(새 342) 너 시험을 당해
* 본문해설
1. 헤롯과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14~21절)
14)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깜빡 잊어버려 배 안에는 빵이 한 개밖에 없더라.
15)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경고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하고 말씀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며 “우리에게 빵이 없어서 그러시나보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그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빵이 없는 것을 두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로 5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
남은 조각을 몇 바구니나 거두었더냐?” 그들이 가로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빵 일곱 개를 4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는
남은 조각을 몇 광주리나 거두었느냐?” 그들이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그래도 모르겠느냐)?” 하시니라.
- 누룩(15절) :
누룩은 빵을 구울 때 조금 남겨 둔 생 빵조각을 말합니다.
빵을 굽기 위해 밀가루를 반죽할 때 전에 남겨 둔 그 생 빵조각을 넣어두면
그것이 발효가 되어 발효된 빵을 구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발효된 생 빵조각을 또 조금 떼어 놓았다가 다음 빵을 구울 때 사용합니다.
여기에서는 바리새인과 헤롯의 부패한 신앙을 누룩으로 비유하셨습니다.
- 바리새인의 누룩(15절) :
돈만 밝히는 형식적인(외식적인) 신앙, 교만과 부패한 신앙을 의미합니다.
- 헤롯의 누룩(15절) :
부귀영화로 인한 사치와 교만, 향락, 권력의 부패를 의미합니다.
2. 소경을 치유하신 예수님(22~26절)
22)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곳을 떠나 벳새다에 이르자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로 나아와 손을 대주시기를 거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 눈에 침을 뱉으시고 그에게 안수하시고는,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시니
24) 그 사람이 눈을 떠서 쳐다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예수께서 다시 한번 그의 두 눈에 안수하시니
그가 사람을 주목하여(뚫어지듯) 바라보더니,
시력을 회복하여 모든 것을 분명하게(똑똑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시며 가라사대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 묵상 point
1.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1) 누룩의 비유(15절)
오늘날에는 마트에서 누룩을 조금씩 팔지만,
그 당시에는 빵을 만들 때 조금 떼어 놓은 생 빵조각을 가리켜 ‘누룩’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보관했다가 다음에 빵을 만들 때 그 생 빵조각을 넣고 반죽을 하면
그것이 다시 발효를 하여 반죽을 부풀게 되고,
그 발효된 반죽에서 다시 조금 떼어 보관했다가 다음에 또 같은 방법으로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헤롯의 거짓된 신앙과 타락을
이렇게 조그마한 생 빵조각이 전체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누룩이 전체 반죽을 다 부풀게 하듯,
이러한 죄악은 처음에는 아주 작게 시작했더라도
결국은 내 몸 전체를 파멸시키고 만다는 것을
누룩이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는 것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2) 헤롯의 누룩 : 세속적인 즐거움
헤롯의 누룩은 권력, 부귀, 영화, 사치, 향락과 같이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세속적인 즐거움을 뜻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은 지금 당장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이니,
일단 이런 세속적 즐거움에 빠지면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쉽게 얻는 즐거움에 빠져
힘들고 오래 걸리는 신앙의 즐거움을 찾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 묵상 :
과거에는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가 위해서는
어디론가 그 즐거움을 누릴 만한 곳으로 가야 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내 손 안에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세상이 됐습니다.
세속적 즐거움에서 벗어나기가 훨씬 어려운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전의 어느 시대의 사람들보다도
더욱 은혜 속에 거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3) 바리새인의 누룩 1 : 형식적인 신앙과 교만
바리새인의 누룩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형식적인 신앙과 교만을 뜻합니다.
본래 신앙이란 내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채우는 것인데,
그렇게 하자면 회개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을 구하는 일을 매일 반복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가지고 있던 죄의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 않으니
필연적으로 갈등과 번민의 시간을 지나야 하는데 그 과정이 길고 힘듭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을 힘겨워하는 자들이
자신의 속은 채우지 않고 겉으로만 거룩한 척합니다.
예배드릴 때만 거룩한 척, 성도들이 있을 때에만 열심히 기도하는 척,
이렇게 겉으로만 신앙인인 척하는 것이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형식만 있는 신앙,
자기 안에는 아무것도 채우지 않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만 평가하고 비난하는 못된 교만이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4) 바리새인의 누룩 2 : 종교적 기득권과 거짓된 위선
헤롯이 세상 속에서 누리는 세상의 즐거움을 대표하는 자라면,
바리새인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짓된 신앙과 위선을 대표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당시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예루살렘 교회를 차지하고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온통 거짓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말씀을
일반 백성들이 지키기 힘들도록 훨씬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지키는 자기들만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며 과시하고 다녔던 자들입니다.
헤롯과 같이 세상의 사치와 향락의 즐거움에 빠진 자들이라도
교회가 제 기능을 바로하고 있다면
회개하여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올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 교회를 형식적인 신앙으로 가득하게 만들었고,
율법을 자기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서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 자체를 막아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헤롯의 세속적 타락보다 바리새인의 종교적 타락을
훨씬 더 무서운 죄악으로 보시고 가장 무서운 진노의 말씀으로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 묵상 :
오늘날 한국 교회도 예배와 말씀을 교회 부흥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바리새인같이 종교적 타락에 빠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다른 구별된 교회가 아니라
세상과 다를 바가 없는 그렇고 그런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신실한 기능을 잃어버리는 것,
이것이 교회의 가장 큰 타락이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가장 큰 심판을 받는 중대한 죄악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2.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점의 차이 : 너희가 아직도 그렇게 둔하냐(18절)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헤롯의 죄에 빠지지 말라는 뜻으로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일곱 광주리나 남은 빵에서
겨우 빵 한 개만을 가져왔느냐고 말씀하시는 줄 알고 서로 수군거립니다.
예수님은 신령한 은혜의 세계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여전히 육신의 양식인 빵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답답해하시면서 아직도 그렇게 깨달음이 없느냐고 물으십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기신 예수님,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 7,000명을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를 남기신 예수님,
그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시는데도 제자들은 빵이 부족한 것을 염려했습니다.
예수님의 책망은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과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분인 줄을
아직도 알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 묵상 :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장차 이 세상에 주님의 복음을 전할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그들이 먼저 알고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께 주님이 누구신지 알게 해주실 것을 구하십시오.
주께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곳인지 알게 해주실 것을 구하십시오.
3. 맹인을 치유하신 예수님
1) 맹인을 치유하신 예수님(22~26절)
예수께서 벳새다에 도착하시니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예수께로 데려옵니다.
예수께서 그의 눈에 침을 뱉으시고 그의 두 눈에 안수하시고는,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사람이 보이기는 하는데
마치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한번 두 눈에 안수하시니
그 사람의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이 분명하고 똑똑하게 보이게 됐습니다.
2) 두 번에 걸쳐 치료하신 이유 : 제자들의 신앙의 상태를 나타내신 것
예수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이렇게 두 번에 걸쳐서 낫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조금 전에 있었던 제자들과의 대화의 연장선에서,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 일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지금 현재의 신앙의 상태는
마치 맹인이 사람을 나무 같은 것이 걸어가는 것으로 보는 것과 같은
그런 정도의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주님 안에서 새롭게 되어
예수님이 누구신지, 주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분명하고 확실하게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묵상 :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의 즐거움을 깨닫는 자가 되십시오.
➀ 세상 즐거움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는 성도들
세상 즐거움이 없으면
살 재미도 살아갈 의미도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천국도 가야 하겠고 하나님의 백성도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세상 즐거움을 벗지 못해 은혜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➁ 주께서 주신 기쁨이 세상의 기쁨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러나 이것은 콩나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콩나물을 싫어하게 되면
세상에 먹을 음식이 없다고 고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 말고도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콩나물 하나 못 먹으면 먹을 것이 없을까 봐 고민하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말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세계가
얼마나 우리를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지를 알지 못하니
그런 어리석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의 기쁨과 즐거움을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것을 알게 해 달라고 구하십시오.
이것을 깨닫기 전에는 바른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 기도제목
1. 헤롯같이 세상의 즐거움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2. 바리새인같이 거짓된 신앙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3. 주님과 주께서 주시는 복을
더욱 분명하게 알고 깨닫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