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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큐티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 예고(막 9:30~37)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10.29|조회수642 목록 댓글 2

* 오늘의 말씀 :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 예고(마가복음 9:30~37)

 

* 본문요약

 

    갈릴리를 통과하여 지나시면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넘겨져

    죽임을 당한 후에 3일 만에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하신 두 번째 수난 예고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두려워서 그 뜻을 묻지도 못합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의 집에 도착하신 후 제자들에게

    오던 길에 무엇 때문에 다투었는지를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 사람인지를 두고 다투었으므로 대답을 못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한다면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을 영접하면

    그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518장(새 463) 신자 되기 원합니다.

         508장(새 454) 주와 같이 되기를

 

 

* 본문해설

 

1.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 예고(30~32절)

 

30)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갈릴리를 통과하여) 지나실 때에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예수님의 일행이 어디로 가는지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기를 바라셨으니)

31) 이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다시 말씀하셨기 때문이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고,

     묻기조차 두려워하더라.

 

 

2. 제자들의 자리다툼(33~34절)

 

33) 가버나움에 도착하여 예수께서 집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오는 길에 무슨 일로 서로 다투었느냐?” 하시되

34) 제자들은 잠잠하니(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으니),

     이는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기 때문이라.

 

 

3.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35~37절)

 

35) 예수께서 자리에 앉으신 후에 열두 제자를 불러놓고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하고 말씀하시고,

36)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그 아이를 껴안아 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어린아이(36절) :

    당시 어린아이는 전쟁에 참여할 수 없는 자이므로

    사회에서 쓸모없는 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어린아이뿐 아니라 그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는

    지극히 연약한 자를 영접하는 자는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영접하면(37절) : 텍세타이

    ‘텍세타이’는 ‘환영하다, 인정하다’는 뜻 외에
    ‘인내하며 참다, 역경을 극복하고 받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의 뜻은, 연약한 누군가를 참고 인내하며 받아주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두 번째 수난 예고와 세 번의 수난 예고의 정리

 

    예수께서 하신 세 번의 수난 예고를 정리합니다.

 

 1) 첫 번째 수난 예고 :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마 16:13~23, 막 8:27~33 눅 9:18~22)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고백한 후에

    예수께서 그의 고백을 들으시고 첫 번째 수난 예고를 하셨습니다.

 

    이 고백 후에 수난 예고를 하신 것은,

    누구든지 베드로가 고백한 것과 같이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고백하면

    그 죄를 용서하고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2) 두 번째 수난 예고 :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의 믿음 고백을 들으시고

    (마 17:14~23, 막 9:14~32, 눅 9:37~4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사람들에게 넘겨져서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번에 하신 두 번째의 수난 예고는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향하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라고 외친 후에 하신 예고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연약한 자를 도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주님을 믿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이런 자들은 구약의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확률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지킬 힘도 의지도 결단력도 약하기 때문에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구원받는 자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바로 이런 자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3) 세 번째 수난 예고 : 세 번째는 복음서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음

 

    세 번째 수난 예고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시던 중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직전에 말씀하신 수난 예고입니다.

 

    ➀ 마태복음 : 포도원의 일꾼의 비유를 하신 후에(마 20:1~19)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포도원에서 일꾼 구하는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장터에 나가 일꾼을 구할 때

       이른 아침,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와 오후 5시에도 나가 일꾼을 구하였습니다.

       오후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이미 하루의 반나절이 지났으니

       일꾼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은혜로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자들을 주의 백성으로 부르시기 위해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다는 것을 알리시기 위해

       포도원 일꾼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하셨습니다.

 

    ➁ 마가, 누가복음 :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렸다고 고백한 후에

       (막 10:28~34, 눅 18:28~33)

 

       예수께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나서서 자신을 포함한 주님의 제자들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의 고백을 들으시고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처럼 이 땅의 것을 모두 포기할 정도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열망하는 자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입니다.

 

    ➂ 요한복음 : 헬라인 몇 명이 예수님을 뵈러 왔을 때(요 12:20~23)

 

       사도 요한은 헬라인 몇 명이 예수님을 뵈러 왔을 때

       단 한 번 수난 예고를 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하신 몇 차례의 수난 예고 중에서

       헬라인이 예수님을 뵈러 왔을 때의 수난 예고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 여겼기 때입니다.

       그 헬라인 같은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가 복음서마다 차이가 나는 이유

 

    세 번째 수난 예고가 이렇게 복음서마다 차이가 나는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이 기자들처럼 따라다니며 기록한 것이 아니라,

    후일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과거의 일을 기억하며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없는 것을 기록한 것은 아니니,

    실제로는 예수께서 수난 예고를 세 번 이상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리라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책망한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말씀하실 때는 무엇으로 듣고,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당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여러 번(세 번 이상) 수난 예고를 하셨으나

    각 복음서를 기록한 복음서의 저자들은 각자 자기가 기록하는 복음서의 성격에 따라

    예수께서 하신 수난 예고 중에서 3개, 혹은 한 개를 기록한 것입니다.

 

묵상 :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미리 예고하신 대로 죽으셨고,

    또 미리 예고하신 대로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며,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할 참 구세주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2. 제자들의 자리다툼(32~34절)

 

    예수께서 두 번째 수난 고를 하실 때에

    제자들은 자기들 중에서 누가 제일 높은 자인지를 두고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두 번째 수난 고를 하실 때에는

    십자가에 들리시기 불과 몇 개월 전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당할 일이 어떤 것인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므로

    그날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큰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답답함을 느끼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아픔과 두려움과 고독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자기들끼리 자리다툼이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 당신은 지금 무엇 때문에, 어떤 문제로 힘들어하십니까?

 

    오늘날 우리가 이 땅의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우리를 보시고 느끼시는 감정이

    이때 제자들을 보시고 느낀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다면서,

    그 나라가 영원한 것이고 그 나라의 기쁨과 영광은

    이 땅의 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면서,

    실제로 고민하고 걱정하는 일들은 대부분 이 땅의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주님을 믿는다면 그 믿음을 보여드리십시오.

    하나님 나라도 믿고, 그 나라의 영원함도 믿고,

    그 나라가 이 땅의 것들보다 훨씬 더 기쁘고 영광스러운 것임을 믿는다면

    시시하게 이 땅의 문제로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내가 주님과 그의 나라를 믿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3.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꼴찌가 되어야 하고

 

 1)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꼴찌가 되어야 하고(35절)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모으신 후

    아까 오던 길에서 무엇 때문에 다투었느냐고 물으시지만,

    제자들은 유구무언입니다.

    서로 자리 때문에 다투었다는 것을 차마 말씀드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누구든지 첫째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꼴찌가 되어

    그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2)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35절)

    겸손하게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자만이 바르게 섬길 수 있으므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원하는 자들은

    이 땅의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자라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들은

    이 땅의 권세에 욕심부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나보다 큰 자로 여기며 겸손하게 섬기는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왜 내가 저 사람을 섬겨야 합니까?

    그래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받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이 어린아이 같은 자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1)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37절)

 

    예수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꼭 껴안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37절)

 

    당시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어린아이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직 전쟁에 나가서 싸울 힘을 가진 사람만이 사람대접받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어린아이처럼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는

    지극히 연약한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주님이 백성이 됩니다.

 

    내가 본래 그런 자들과는 상대를 하지 않던 교만한 자였는데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주님 말씀 기억하고

    나보다 못한 연약한 자들을 귀하게 환영하며 영접하였다면

    그것이 곧 주님을 영접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묵상 : 저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자

 

    이것을 폭넓게 적용하면, 남편이나 아내가 못쓸 짓을 했는데도

    내가 예수님을 기억하여 그를 변함없이 사랑하며 섬긴다면

    이 역시 예수님을 섬긴 것이 됩니다.

 

    나를 항상 대적하며 내 마음을 괴롭게 하는 친구나 직장 동료를

    예수님을 생각하며 섬긴다면

    그 역시 예수님을 대접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2.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영광을 바라보며

   이 땅의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나보다 못한 연약한 자를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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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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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침빛같이 | 작성시간 24.06.20 너무나 은혜롭습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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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송호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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