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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큐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왕의 행렬(막 11:1~10)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11.14|조회수487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왕의 행렬(마가복음 11:1~10)

 

* 본문요약

 

    예수께서 감람산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맞은편 마을로 보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어오게 하십니다.

 

    제자들이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주께서 쓰신다고 말하고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그 위에 겉옷을 얹자, 예수께서 그 위에 올라타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자기들의 겉옷을 펼쳐놓고,

    나뭇가지들을 깔아드리며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고 찬송합니다.

 

찬 양 : 132장(새 141) 호산나 호산나 다 노래 부른다

130장(새 140) 왕 되신 우리 주께

 

 

* 본문해설

 

1.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는 예수님(1~7절)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에 있는 벳바게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저기 보이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게 되리니,

   그 나귀를 풀어서 이리로 끌고 오너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고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그가 즉시 풀어 이리로 보내리라

   (혹은, 그리고 주께서 쓰신 후에 즉시 돌려보신다고 하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보니 과연 나귀 새끼가 길가로 난 어느 집의 문 앞에 매여 있는지라.

   그들이 그 나귀를 풀자

5) 거기 서 있던 사람 중 어떤 이들이 물어 가로되

  “나귀 새끼를 풀어서 무엇을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그들에게 말하자 그들이 허락하는지라.

7) 그들이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이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자

   예수께서 그 위에 올라타시니

 

- 벳바게(1절) : 감람산 남동쪽 기슭에 있는 베다니와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마을.

 

- 베다니(1절) :

    예루살렘 동쪽 3.2km 지점에 있는 마을로, 감람산 동편에 있는 마을입니다.

    마르다, 마리아의 자매와 나사로가 살던 마을이기도 합니다.

 

- 나귀새끼(2절) :

    스가랴 9:9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스가랴의 이 예언은 종말의 때에 한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리라 했는데,

    예수님은 이 예언을 실현하심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종말의 때가 시작되는 신호탄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행동을 통한 말씀)

 

 

2.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8~10절)

 

8) 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길 위에 펼쳐 놓았고,

   들에서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펴며

9) 앞서가는 자들과 뒤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10) 찬송하리로다.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 호산나(9절) :

    호산나는 본래 ‘여호와여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나

    나중에는 큰 소리로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순례자들이나 유명한 랍비들을 열렬하게 환영할 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소리입니다.

 

 

* 묵상 point

 

1.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는 예수님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3km쯤 떨어진

    감람산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 둘을 맞은편 마을로 보내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시고는

    그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십니다.

 

    나귀 새끼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예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나라가 평화의 나라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1) 세상의 왕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억압하는 폭력의 왕입니다.

 

    세상의 왕들은 자기가 가진 왕의 권세로

    백성들을 평화롭게 하는 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가진 힘으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 하고,

    모든 백성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 합니다.

 

    백성들에게 나타날 때에는 언제나 백성들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그 권력을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자기 조직의 사람들만을 위해 사용합니다.

    오직 백성들을 위해 왕의 권력을 사용하는 평화의 왕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2)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2절)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과 하늘에서 가장 크고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초 슈퍼맨이시면서도

    그를 따르는 백성들에게 평강을 내리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생각대로 백성들을 지배하며 군림하는 세상의 왕들과는 달리,

    그의 백성에게 평강을 내리시는 평화의 왕이시라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해

    어린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자기가 가진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백성들을 괴롭게 한 적이 없습니다.

    그를 믿고 따르는 자에게 하늘의 평화를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3) 우리를 섬기시는 겸손하신 예수님(7절)

 

    세상의 왕들은 오직 자기의 감정이 중요할 뿐입니다.

    백성들이 어찌 되든 자기 왕권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백성들에게 자기가 존귀한 자로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자기가 힘 있는 자로 보이게 하려고 권력을 사용합니다.

    오직 자기만이 이 나라의 왕이 될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 온갖 것으로 포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그의 백성을 구하시려는 일에만 자기의 힘을 쓰실 뿐입니다.

    자기 권세를 나타내기 위해 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자도 아니고,

    자기를 존귀한 자로 보이게 하려고

    힘없는 백성에게 과도하게 권력을 사용하는 자도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리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백성에게 평강을 내리시기 위해 스스로 낮은 자가 되어

    평범한 사람도 잘 타지 않는 어린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2. 왕의 행렬에 참여한 자들

 

 1)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는 예수님 : 승리하신 왕의 행렬(8~10절)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행렬은

    승리하신 왕의 행렬입니다.

 

    모든 마귀를 완전히 박멸하시고 온 세상 만민을 다 심판하신 후에,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는

    마지막 때의 승리의 행렬을 미리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기에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그 앞에 빨간 카페트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겉옷과 나뭇가지들이 깔려 있으나

    예수님은 최후의 승리의 행렬을 보이셨습니다.

 

 2) 이 땅과 하늘의 왕이신 예수께 드리는 찬양의 예배(9~10절)

 

    그리고 동시에 이 행렬은 하나의 예배 행위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이

    각자 자기의 믿음대로 예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때 예수님의 왕의 행렬에 참여한 자들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➀ 나귀의 주인(5~6절)

 

      예수님의 명을 따라 제자 중 둘이

      맞은편 마을의 길가로 난 어느 집 문에 매여 있는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려 했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나귀 새끼는 무엇을 하려고 푸느냐고 묻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일러주신 주가 쓰시겠다고 말하자

      그 사람들이 곧 끌고 가도록 허락합니다.

 

      나귀 새끼의 주인은 예수님을 왕으로 믿었던 자입니다.

      그는 왕의 명령이니

      그 명령대로 자기의 나귀를 주께서 쓰시도록 그대로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주께서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왕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왕께 드리는 예배는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왕의 명령으로 듣고 순종하는 자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드릴 때에 내 마음에 감동을 받기 위해 말씀을 듣지 말고,

      순종하기 위해 말씀을 듣는 자가 되십시오.

 

  ● 묵상 :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요, 우리의 왕이시라고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말로만 왕이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그가 우리의 왕이 되심을 보여드리십시오.

 

      주께서 나에게 무엇을 명하시면

      왕께서 하시는 명령이니 그 명령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으로 그가 나의 왕이심을 보여드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➁ 겉옷을 펴고 나뭇가지를 깔아드리는 자들(8절)

 

      제자들이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자,

      예수께서 그 위에 올라타십니다.

      그러자 많은 무리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서 예수께서 가시는 길 위에 펼쳐놓고,

      나뭇가지를 꺾어 길 위에 깔며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예비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왕이심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돈이 없는 가난한 자들이니 겉옷을 펼쳐 가시는 앞길에 깔아드렸고,

      그나마도 안 되는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 깔아드렸습니다.

 

      대부분 속옷을 입지 않는 자들이니

      겉옷을 깔아드렸다면 몸에 걸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들은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자기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이고 예배입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여 주께로부터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께 무엇을 드리고,

      내가 무엇으로 주님을 섬길까를 생각하며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입니다.

 

  ➂ 참된 믿음의 고백으로 영광 돌리는 자들

 

      그들은 예수께서 가시는 길 위에 겉옷과 나뭇가지들을 깔아드렸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며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고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9절과 10절의 찬양이 조금 다릅니다.

 

      ㈀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9절)

 

          호산나는 “여호와여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의 뜻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 여기고 따르며,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자들입니다.

 

          이들처럼 우리가 주께 예배드릴 때

          주님이 누구신지, 주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바르게 알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다해 감사하며 영광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찬송하리로다 다가오는 우리의 조상 다윗의 나라여”(10절)

 

          그러나 10절에는 ‘조상 다윗의 나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 군사적인 메시야로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로마를 물리치고 왕이 되면

          지금 이렇게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에게는

          말단 직책이라도 줄 것이라 여기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 똑같이 겉옷을 벗고 나뭇가지를 깔며 최선을 다해 예배를 드리고 있으나

 

          9절과 10절의 사람들과 마음이 다릅니다.

          9절 사람들은 주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지만,

        10절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겉으로는 예배의 예식에 참여하고 있으나

          실상은 자기 자신을 예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➃ 그 밖의 사람들

 

      그 밖에 마가복음에는 언급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옆에서 예수님의 왕의 행렬을 구경한 구경꾼들,

      이 행렬에 불만과 불평을 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그들입니다.

 

묵상 : 당신은 위의 사람들 중에 어떤 부류에 속한 자입니까?

 

    이들이 모두 왕의 행렬의 자리에 있었으니,

    오늘날로 하면 예배의 자리에 모두 참여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왕의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참여했고,

    어떤 이는 왕께 참된 영광을 올려드리면서 참여했으나,

    어떤 이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참여했고,

    어떤 이는 남이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을 구경만 했으며,

    다른 이들은 다른 사람이 영광 올려드리는 것을 못 마땅히 여기며 불평을 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3. 잘못된 믿음은 환경의 변화를 이기지 못합니다.

 

 1) 부족한 믿음일지라도 그 간절함과 열정을 보시는 예수님

 

    비록 그들의 마음은 서로 다른 곳에 있었을지라도

    예수님을 향하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면서 호산나를 외쳤으니,

    일단 예배 형식은 바로 갖춘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부족할지라도 주님 안에 있는 자들을 내치지 않으십니다.

 

    중풍병자와 수로보니게 여인과 소경 바디매오와 같이

    마가복음에서 소개한 자들이 다 믿음이 완벽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부족한 믿음을 가졌음에도

    예수께서는 그들의 뜨거운 열망과 열정을 믿음으로 여기시어

    그들이 구원받았음을 선포하셨습니다.

 

 2) 그러나 잘못된 믿음은 환경의 변화를 이기지 못합니다.

 

    이날 예수님을 따라가며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고 외쳤던 자들이

    불과 며칠이 못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자들이 됩니다.

 

    똑같은 예배를 드렸지만,

    자기만족과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드린 자들은 며칠이 못가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치는 자들이 됐습니다.

 

묵상 : 잘못된 믿음은 환경의 변화를 이기지 못합니다.

 

    특히 마지막 때의 그 엄청난 혼란은

    잘못된 믿음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그날이 오기 전에 주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고 기도하여

    우리가 건강한 믿음을 가진 자가 됩시다.

    그래야 끝까지 믿음을 지켜서 기쁨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 기도제목

 

1. 우리에게 참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2. 주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 때

   주님을 따랐던 자들처럼

   환경의 따라 믿음도 변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3. 우리는 오직

   주께서 쓰시겠다고 말씀하실 때

   언제든지 순종하는

   믿음과 순종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4. 신령과 진정으로 주께서 받으실 만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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