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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큐티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막 2:1~12)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09.16|조회수1,244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마가복음 2:1~12)

 

* 본문요약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의 집으로 들어가시자 그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왔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문밖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데려와서 지붕을 뚫고 상에 달아내렸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죄를 사하시리라 말씀하십니다.

    서기관들이 이 말을 듣고 속으로 불평하자 예수께서 마음에 이를 아시고

    주께서 죄 사함의 권세가 있는 것을 보이시겠다고 하시고는

    중풍병자에게 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십니다.

 

    중풍병자가 상을 들고 걸어가자 모인 사람들이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찬 양 : 342장(새 543) 어려운 일 당할 때

         340장(새 542) 구주 예수 의지함이

 

 

* 본문해설

 

1.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신 예수님(1~5절)

 

1) 며칠 후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예수께서 집에 계신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집 안은 물론 문 앞까지도 발 디딜 틈이 없게 되었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말씀을 전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서 올새,

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리고 갈 수 없으므로

   예수께서 계신 곳의 지붕을 뚫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상에 눕힌 채 달아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얘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시니

 

- 지붕을 뚫어 구멍을 내고(4절) :

    팔레스틴의 지붕은 평평하고, 흙과 짚과 나무 등으로 엮어 만들었으므로

    구멍을 뚫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 상에 눕힌 채 달아 내리니(4절) : 크라밭톤

    ‘상’에 해당하는 ‘크라밭톤’은 침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나 ‘요’와 같은 휴대용 침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자리’로 번역했습니다(요 5:8).

 

- 네 죄 사람을 받았느니라(5절) :

    그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은 다른 네 사람입니다만,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이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신 것은 그의 간절함 때문입니다.

    (묵상포인트 참조).

 

 

2. 서기관들을 책망하시는 예수님(6~10절)

 

6) 거기에 앉아 있던 몇몇 서기관(율법학자)들이 마음에 의논하기를(속으로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외에 누가 능히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인가?”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마음으로 알아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네 상을 들고 걸어가라’하고 말하는 것 중에 어느 말하기가 더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하시되

 

- 인자(10절) :

    인자(人子)는 말 그대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만,

    성경에서 쓰이는 ‘인자’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자(메시야, 그리스도)를 뜻하는 말입니다.

 

 

3.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11~12절)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하고 말씀하시니

12) 그가 곧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나가거늘

     그들이 다 크게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가로되

    “이런 일은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하더라.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 묵상 point

 

1. 하나님 나라의 대한 간절한 소망을 품으십시오.

 

    예수께서 한적한 곳에서 며칠 지내신 후 다시 가버나움의 집으로 돌아오시자

    예수께서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찌나 많이 모였는지

    집 안은 물론 문밖까지도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1) 네 사람이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상에 뉘어 달아 내려놓으니(4절)

 

    그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와서

    네 사람에게 메우고 예수께 나아가고자 했으나

    사람들이 많아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계신 집의 지붕을 뚫고

    그 중풍병자를 메어 온 자리에 누인 후 끈에 달아내렸습니다.

 

 2) 주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5절)

 

    예수께서 그 중풍병자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께서 지붕까지 뚫고 들어올 정도의 열정과 그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그의 병뿐만 아니라 그의 죄까지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왜 네 사람이 아니고 중풍병자의 믿음인가 : 그의 간절함을 보시고

 

    그러나 사실은 이 중풍병자의 열정이 아니라

    지붕에 구멍을 뚫고 그를 자리에 달아내린 네 사람의 열정입니다.

 

    하지만 5절 앞부분에서는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하셨으나,

    정작 죄를 사하시리라는 말씀은 그 중풍병자에게만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네 사람도 함께 포함하여 말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만,

    예수께서 그를 보고 말씀하신 것은 그를 데리고 온 네 사람의 믿음보다

    그 중풍병자의 믿음을 더 크게 보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왜 그를 데리고 온 네 사람의 믿음이 아니라 중풍병자의 믿음입니까?

    이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간절함에 차이가 있습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자들의 믿음 역시 칭찬받을만한 믿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의 간절함을 더 크게 보셨습니다.

 

 4) 섬기는 자가 아니라 간절한 열망을 품은 자입니다.

 

    예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섬기는 일이 아니라 간절한 열망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천국 백성이 되기를 정말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을 바라십니다.

 

    수고의 땀을 흘리는 마르다보다

    예수님과 무릎이 닿도록 가까이 와서 그 말씀을 경청하는

    마리아의 간절함을 더 원하십니다.

 

묵상 :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주께 예배드리고 찬양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단 5분을 기도하더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단 10분을 말씀을 묵상하더라도 주님을 사랑하려는 간절함으로 하십시오.

    그 간절함이 상달되어 주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2.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1) 어느 말하기가 더 쉽겠느냐(9절)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그의 죄를 용서하리라는 선언을 하시자

    서기관(율법학자)들이 속으로 예수께서 참람한(신성모독적인) 말을 했다며 불평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마음으로 그것을 알아채시고는

    그들에게 ‘죄를 사하리라’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상을 들고 걸어가라’하고 말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을 말하기가 더 쉽겠느냐고 물으십니다.

 

 2) 말하기로만 따지면 죄를 사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중풍병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죄를 사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는 이는 주님이시니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만 가지고 따진다면

    중풍병자를 일으키는 것은 실제로 그 능력이 나타나야 하는 것이지만,

    죄를 사한다는 것은 그저 말만 하면 되는 것이니 그것이 훨씬 쉬운 일입니다.

 

 3) 죄 사함의 권세가 있는 줄 알게 하기 위해 기적을 일으키심(11~12절)

 

    그러므로 예수님은 둘 중에 어느 말하기가 더 쉽겠느냐고 물으시고는
    그 중풍병자에게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그러자 그 말하기가 무섭게 그가 일어나 자리를 가지고 집으로 갑니다.

 

    예수님은 죄 사함의 권세가 있는 것을 보이시기 위해

    중풍병자를 고치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말씀입니다.

 

 4) 중풍병의 치료보다 죄를 용서받는 일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가 중풍병을 고쳐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면 영원한 멸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풍병을 고치지 못했더라도 죄 사함을 받는다면

    그는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중풍병을 고치는 것보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묵상 :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하십니까?

 

  ➀ 만일 당신이 그 사람이었다면

 

     만일 당신이 그 사람이었다면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하겠습니까?

     중풍병을 고치신 일입니까? 죄를 사하여 준 일입니까?

 

     중풍병이 고쳐진 것은 지금 당장 경험하는 일이고,

     죄 사함은 지금 당장 경험되는 일이 아니니

     일반적인 경우라면 당연히 중풍병을 고치신 일에 감사할 것입니다.

 

  ➁ 그러나 죄 사함이 훨씬 더 큰 은혜입니다.

 

     가령 돈 10만 원 받을 때에는 엄청 감사하면서

     다이아몬드를 받았을 때에는 데면데면 대한다면,

     저 사람이 다이아몬드가 무엇인지 모르는 모양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만 좋을 뿐인 일에는 크게 감사하면서

     영원한 복에 대하여는 별로 감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저 사람이 영생의 복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➂ 내 죄를 용서해주신 것에 감사하십시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일에 감사하십시오.

     나를 영생의 나라 낙원으로 인도하신 일에 감사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음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드려야 할 감사의 제목입니다.

 

 

* 기도제목

 

1. 주께서 내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음에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2. 나를 용서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셨음에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3. 우리도 중풍병자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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