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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큐티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님(막 15:33~41)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01.20|조회수556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님(마가복음 15:33~41)

 

* 본문요약

 

    제 육시(낮 12시)부터 온 땅에 어둠이 뒤덮여 제 구시(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제 구시(오후 3시)에 예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큰 소리로 외치신 후 숨을 거두십니다.

    그때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집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부터 숨을 거두실 때까지 모든 장면을 지켜보던 백부장은

    이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여인들이 멀리서 이를 지켜봅니다.

 

찬 양 : 405장(새 305) 나 같은 죄인 살리신

         141장(새 143) 웬 말인가 날 위하여

 

 

* 본문해설

 

1.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님(33~38절)

 

33) 제 육시(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오후 3)까지 계속하더니

34) 제 구시(오후 3시)가 되자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고 부르짖으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하는 뜻이라.

35) 곁에 서 있던 자 중에 어떤 이들이 이 말을 듣고

    “보라, 저가 엘리야를 부른다”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해융)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예수께 마시게 하고 가로되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숨을 거두시다).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 3시간 동안 계속된 어두움(33절) :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유월절인 아빕월(니산월) 15일은

    만월(滿月, 보름달)이므로 일식이 발생 될 수 없는 시기입니다.

    일식을 위해서는 태양, 달, 지구의 순서로 정렬해 있어야 하는데,

    만월인 15일의 경우에는 그 순서가 태양, 지구, 달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의 어두움은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권세로 만드신 우주적인 어두움입니다.

 

- 해면, 해융(36절) :

    해면(해융)은 해면동물의 정제된 뼈로 만든 것으로

    물이 잘 스며들어서 스펀지처럼 사용합니다.

    지중해 지역에서는 오늘날에도 해면을 천연 스펀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3. 예수께서 운명하시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39~41절)

 

39) 예수님을 마주 보고 있던 백부장이

     예수께서 이렇게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0)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 여자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던 자요,

     그 외에도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 요세(40절) : 요셉의 헬라식 표기

 

-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40절) :

    작은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이름이 같은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요 19:23)입니다.

 

- 살로메(40절) :

    살로메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이며,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자매(예수님의 이모)입니다.

 

 

* 묵상 point

 

1.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고(33절)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지 3시간쯤 지나 낮 12시가 됐을 때입니다.

    갑자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예수께서 숨을 거두시기까지 3시간 동안 계속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때 임한 어두움이 계기일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계기일식이라 하더라도

    3시간 동안 1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어둡게 되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위의 단어해설에서 보듯 이때는 만월이었으므로

    계기일식이 일어날 수 없는 때입니다.

 

    이때의 어두움은 해가 그 빛을 잃어서 생긴 우주적인 어두움입니다.

    이 어두움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1) 예수께서 느끼시는 절대고독과 고통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을 때부터 예수님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때 성령께서도 예수님을 떠나셔서

    하나님께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은 고독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으시는 것이므로

    죄가 하나도 없으셨으나 진짜 죄를 지어 벌을 받으시는 것처럼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 고통과 통증 외에

    하나님께 버림받은 고독과 아픔까지 함께 겪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어두움은 예수님의 절대고독과 절대고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2) 이 땅이 어두움에 속했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

 

    둘째로 이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어두움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 세상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분주하여 주님을 섬기는 일을 뒤로 미루거나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3) 마지막 심판의 시작을 알리는 경고

 

    또한 이 어두움은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보는 이 땅과 하늘의 모든 것이

    다 이렇게 어둠 속에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어두움이 임한 바로 그때부터 사실상 심판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예수께서 언제든지 이 땅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실 수 있는

    긴장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시려고

    그 시간을 조금씩 연장하신 것이 오늘까지 이른 것뿐입니다.

 

묵상 :

 

    그러나 예수께서 한정 없이 그 시간을 늦추시지는 않습니다.

    그날이 오늘이나 내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날을 준비하는 성도가 됩시다.

 

 

2.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1)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34절)

 

    예수께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께 절규하며 부르짖은 말씀이기도 합니다(시편 22:1).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다윗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그 절규를 합니다.

 

 2) 우리의 죄를 위하여 철저하게 버림받으신 예수님

 

    예수께서 이렇게 절규를 하신 것은

    적어도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만큼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렸다면 느꼈을 법한 고통과 두려움과 외로움을

    주께서 그대로 다 느끼신 것입니다.

 

    그렇게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셔야

    우리가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성자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신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지극히 연약한 사람의 입장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묵상 :

 

    적어도 그 순간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셨으니

    우리처럼 두렵고 우리처럼 고통스러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예수께서 그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견디기 힘드셨을까를 생각하십시오.

 

    그 아픔과 고통을 다 겪으셨기에

    오늘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는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주께서 기뻐하며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3. 두 폭으로 휘장이 찢어짐

 

 1)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 찢어짐(37~38절)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던 곳에 있던 휘장입니다.

    이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대제사장도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대제사장들조차 그 지성소에 들어갈 때

    기절할 정도로 두려워했던 곳이 바로 그 휘장 안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던 바로 그 순간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께서 계신 그곳을 아무 두려움 없이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부를 때 그곳이 바로 지성소가 되는 은혜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2) 성소와 뜰을 구분하는 휘장, 이제 그 구분이 사라졌습니다.

 

    또 성소와 뜰을 구분하는 휘장도 있습니다.

    이 휘장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휘장입니다.

    이방인은 절대로 이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방인은 물론 유대인의 여자들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휘장도 함께 찢어졌습니다.

    이제 유대인의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도, 이방인들도

    모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죄를 지은 자들이든지 그가 누구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께 죄를 고백하여 그 죄를 용서받은 자라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가 된 것입니다.

 

묵상 :

 

    그러므로 언제 어디에서든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십시오.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도 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를 빌기도 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세계로 인도해 주실 것을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기도는 의무이면서 동시에 권리입니다.

 

 

4. 주변의 구경꾼들

 

  • 이 엄청난 십자가의 사건 옆에서 그저 구경이나 하는 자들(35절)

 

    마가복음에 기록된 여러 사건마다 항상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의 말씀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 곧 구경꾼들입니다.

 

    주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구경만 했던 자들,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혈루증에 걸린 여인을 치료할 때에도 구경만 했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예수께서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이때까지도

    계속해서 구경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해면에 신포도주를 적셔 예수님의 마른 입술을 적셔주면서도

   “혹시 엘리야가 내려와서 저를 십자가에서 내려주나 지켜보자”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우리에게 어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그 광경을 눈요기로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 예배의 자리에 구경꾼으로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고 섬기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이렇게 구경만 하는 관람객으로 있습니다.

 

    예배도 구경하고, 그래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 않고 예배를 본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섬기는 것을 구경하며 감동만 받는 사람들,

    이들이 연극을 구경하며 감동하는 자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혹시 나도 이런 자들처럼 남들이 주님을 잘 섬기는 것을 보고

    감동만 받는 구경꾼은 아닌지 자신을 살펴봅시다.

 

 

5. 그 외에 십자가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

 

 1) 백부장의 고백 :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39절)

 

    로마 군대의 백부장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는 모든 일의 책임자입니다.

    처음에는 이 사람 역시 다른 로마의 군사들처럼

    예수님의 머리에 갈대를 치고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 조롱했던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셔서 운명하실 때까지의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후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2) 불과 3시간을 지켜본 이방인도 아는 것을 유대인들은 어찌하여 몰랐을까

 

    로마의 백부장이니 그동안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의 죽는 모습들을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이렇게 죽는 분은 처음 봅니다.

 

    마지막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그 의연함을 잃지 않으신 예수님,

    이 백부장은 3시간 동안의 어두움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후에 이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이 없으니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똑같은 장면을 보고도 이렇게 주님을 고백하는 자들이 있고,

    그 주변의 사람들처럼 구경이나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묵상 :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똑같이 말씀을 들어도

       주께서 내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그저 그날 예배의 분위기나 구경하다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3) 멀리서 이 장면을 지켜보는 여인들

 

    마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던 여인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활동하실 때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주님의 제자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가복음은 이 자리에 주님의 제자들은 없고 여인들만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누가 진짜 주님의 제자인지를 묻습니다.

    진짜 주님의 제자는 위기 때에 주님과 함께한 바로 이 여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묵상 :

 

    누가 진짜 주님의 제자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묵상해 봅시다.

    나는 구경꾼인지, 백부장처럼 믿음의 고백을 하는 자인지,

    이 여인들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주님 곁에 있는 자인지 자신을 살펴봅시다.

 

 

* 기도제목

 

1. 우리를 위해 그 극한의 고통과 외로움을

   끝까지 참으신 주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2. 주께서 고통받으심으로 이방인인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되었음에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3. 우리는 그 곁에 있던 구경꾼들처럼 되지 말고

   백부장처럼 참된 믿음의 고백을 하고

   여인들처럼 위기의 때에도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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