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참된 믿음의 열매를 맺으라 :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가복음 4:1~20)
* 본문요약
예수께서 모인 무리에게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가르치십니다.
제자들과 함께 한 자들이 그 뜻을 묻자 예수께서 그 비유의 뜻을 설명해주십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는 사탄에게 말씀을 빼앗기는 자요,
돌밭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지만 환난과 핍박이 오면 믿음을 버리는 자요,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는 세상 염려나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으로 결실하지 못하는 자이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잘 받아들여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자입니다.
찬 양 : 490장 (새 433)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492장 (새 435) 나의 영원하신 기업
* 본문해설
1. 씨뿌리는 자의 비유(1~9절)
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기 시작하시자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다 곁 육지에 있더라.
2)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가르치시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않으므로 싹이 곧 나왔지만
6) 해가 뜨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 버렸고,
7) 더러는 가시떨기(가시덤불)에 떨어지매
가시가 무성하게 자라 그 기운을 막으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였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싹이 나고 잘 자라서(무성하여) 열매를 맺었으니
30배, 60배, 100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 들으라(3절) : 아쿠에테
‘들으라’에 해당하는 ‘아쿠에테’는
‘듣는다, 순종한다, 깨닫는다’라는 뜻의 명령형으로,
말씀을 잘 들어서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 팔레스틴의 씨 뿌리는 방법(3~8절) :
우리나라는 먼저 땅을 갈고 난 후에 씨를 뿌리는데,
그 당시의 팔레스틴에서는 정반대로 먼저 씨를 뿌린 후 나중에 땅을 갈아엎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경우처럼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에 떨어지는 씨가 나오는 것입니다.
- 기운을 막으므로(7절) : ‘숨을 막다’, ‘질식시키다’의 뜻입니다.
-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9절) :
가벼운 마음으로 흘려듣지 말고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온 마음과 귀를 집중하여 들으라는 뜻입니다.
2.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10~12절)
10)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그 비유가 무슨 뜻인지를 묻자오니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됐으나,
외인(저 바깥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함이니라’(이사야 6:9~10)” 하시고
-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11절) :
믿음이 없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이
모두 수수께끼처럼 들리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3. 씨뿌리는 자의 비유의 해석(13~20절)
13)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가 이 비유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이해하겠느냐?
14) 씨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것이요,
16) 또 이와 마찬가지로 말씀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니
그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뻐하며 받아들이지만
17) 그들 속에 뿌리가 없어(신앙이,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하여)
잠깐 견디다가 오래가지 못하고,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지는 자들이요.
18) 또 어떤 이는 말씀이 가시떨기(가시덤불)에 떨어진 것과 같아서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여러 욕심(유혹)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 좋은 땅(옥토)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니
그들은 말씀을 듣고 잘 받아들여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자이니라.
- 곧 넘어지는 자들이요(17절) : 스칸달리조마이
‘넘어진다’에 해당하는 ‘스칸달리조마이’는
‘함정이나 덫에 빠져들어 간다, 올무에 걸렸다’를 뜻하는 것으로,
죄악에 빠졌거나, 절망과 좌절과 핍박을 견디지 못하여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조금만 힘들어져도 믿음을 버리는 자들입니다.
- 30배, 60배, 100배(20절) :
교회의 부흥이나, 성도의 개인의 삶의 부흥이나 번성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참된 믿음을 가진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 묵상 point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장차 온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께서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 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주께서 인정하시는 참된 믿음의 사람인지
그 심판의 기준을 설명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반드시 이 비유의 뜻을 잘 이해하여
주께서 원하시는 참된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들(3~4, 14~15절)
첫째로 길가에 뿌려진 씨는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 하고 있지만
이런 사람은 가인이나 가룟 유다처럼
주께서 처음부터 교회 밖의 사람과 똑같이 여기시는 자를 가리킵니다.
우리나라는 먼저 밭을 갈고 난 후에 씨를 뿌립니다만,
과거 팔레스틴에서는 먼저 씨를 뿌린 후에 밭을 갈아서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도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팔레스틴의 이러한 씨뿌리는 방식으로
말씀을 듣는 자세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하셨습니다.
주께서 제일 먼저 말씀하신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람입니다.
1) 말씀에 아무런 관심도 반응도 없는 사람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은 자들은 말씀을 들을 때
전혀 반응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에 대하여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은혜의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들어도 두려움이 없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에 대한 말씀을 선포해도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장차 자기가 당할 일임에도 남의 일 보듯 하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들을 때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자들은
곧 사탄이 그 말씀을 빼앗아 가서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믿음을 갖지 못하는 자가 됩니다.
2) 세상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과의 차이 ➠ 생명의 차이
세상의 다른 지식은 열심히 듣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 일정 부분 남아 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셈할 줄 알고, 글 읽을 줄 압니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자라도 일상생활 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처럼 살아 있는 말씀이라
우리 마음에 제대로 심어지지 않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마치 씨를 선반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100년이 지나도 그 씨에서 싹이 트지도 않고 씨 그대로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지식이라 열심히 듣지 않으면 사탄이 빼앗아 가서
그가 들은 말씀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으로 자라게 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다든지, 바울이 어떻다든지 정도의 지식이 머리에 남아 있더라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으로 자라지 못하고,
바울처럼 온몸을 바쳐 주께 충성하는 자가 되지 못합니다.
마귀가 그의 마음에 믿음이 자라지 못하도록 말씀을 빼앗아 가 버려서
마치 씨가 선반 위에 그대로 있는 것처럼
말씀이 내 마음에 깊이 심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묵상 :
내가 듣고 읽은 말씀을 내가 묵상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으며,
그 말씀대로 살게 해 주실 것을 주께 간구해야
비로소 말씀이 내 안에 제대로 심어지게 됩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라 여기고
단 한마디의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간절함으로 들으십시오.
2. 돌밭에 뿌려진 씨 :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받지만~(5~6, 16~17절)
둘째는 돌밭에 뿌려진 씨로,
신앙생활의 기쁨은 있으나 구원의 열매는 없는 자를 의미합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돌 위에 있는 얇은 흙에 씨가 뿌려진 것을 말합니다.
씨에서 싹이 터서 뿌리가 나오기는 했지만
흙이 얇아 뿌리가 깊지 않으니, 낮의 뜨거운 햇볕에 금방 말라 죽게 됩니다.
1) 자기만족과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
돌밭에 뿌려진 씨와 같은 자는 말씀을 들을 때는 기뻐하며 받지만,
그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믿음에서 떠나는 자들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가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마침 설교에서 그 말씀을 전하니 기쁨으로 받습니다.
“어쩜,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저렇게 말씀하실까!”
자기 마음의 답답하고 가려운 곳을 건드려 주니 말씀을 들을 때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낍니다만, 그저 그뿐입니다.
2) 그 속에 뿌리가 없어 환난이나 박해를 견디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신령한 하늘의 생명이 담겨있습니다.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여기고 순종하려는 간절함으로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는 그 말씀에 담긴 생명이 그 안에 심어져서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을 때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만 들으려 하였으니
그 말씀에 담긴 생명이 심어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생명의 뿌리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처음부터 자기 기쁨이 중요하기 때문에
신앙으로 인하여 박해가 오거나 갈등이 생겨서 기쁨이 사라지면
언제든 주님 품을 떠날 사람들입니다.
그 안에 주님을 향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3) 좌절과 갈등과 번민의 환난을 이기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만일 한 번 회개를 한 후에 다시는 그 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면
신앙으로 인한 좌절이나 갈등과 번민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 대부분은 회개를 하고 또 죄를 범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사랑한다고 해놓고 다시 싸우기를 얼마나 반복합니까?
이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좌절과 갈등과 번민을 경험합니다.
믿음의 뿌리가 없는 사람들은 이 좌절과 갈등의 광야를 견디지 못합니다.
이렇게 아무런 핍박이나 박해가 없어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시간을 지나기도 어려운데,
여기에다 신앙으로 인한 핍박이나 박해까지 있다면 더욱 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말씀에 담긴 신령한 하늘의 생명이 심어진 자는
이런 갈등과 박해의 비바람을 이기고 그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4) 마음의 평안은 회개 후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이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한 주간 동안 세상살이하느라 힘들었던 마음을
주일 예배를 드리며 평안과 위로를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평안과 위로를 어디에서 얻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번민과 갈등의 광야의 과정을 지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와 만날 때 비로소 주께서 주시는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위로와 평안을 얻기를 바란다면
먼저 주님 앞에 회개를 하고 주께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감사할 줄 아는 자가 돼야 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크고 영광스러운 분이신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기쁨과 감사로 주께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고,
주께서 주시는 마음의 평안도 얻게 됩니다.
5) 회개도 죄의 용서도 없이 오직 평안은 얻기만을 바라는 신앙의 위험
그러나 회개도, 참된 믿음의 고백도, 주께 대한 감사와 감격의 찬양도 없이
단지 교회 환경이나 예배의 분위기에서 평안을 얻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없는 평안입니다.
이런 평안은 음악회에 가거나 조용한 숲속에서 느끼는 평안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음악회에서는 그 어떤 회개나 믿음의 고백이 없어도
위로를 얻고 평안한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그저 교회에 들어가기만 해도
들어가는 순간 위로와 평강이 곧 내 안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은
설령 그런 방식으로 위로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위로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험 거리가 전혀 없는
아주 조용한 환경에서만 신앙생활이 가능합니다.
시험 거리가 조금이라도 있든지, 아주 작은 시련과 핍박이 있어도 넘어집니다.
● 묵상 : 생명이 없는 거짓 신앙에 주의하십시오.
➀ 종교적인 감정 놀음에 머물러 있는 자들
겉으로 보기에는 이런 사람들이
아주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찬송도 열심히 부르고 기도도 큰 소리로 부르짖으면서 열심히 합니다.
어떤 때는 밤을 새우며 기도하기도 하고, 심지어 금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바로 사랑하며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만족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그가 하는 모든 신앙 행위들은 종교적인 감정 놀음에 불과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찬송을 박수를 치며 몇 시간을 불러
온몸에 땀이 흥건히 적셔질 정도가 되면
한참을 울고 난 후에 느껴지는 시원함처럼 마음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노래방에서 싸이의 노래나 조용필의 노래를 몇 시간 동안 불러도
이런 정도의 즐거움은 얻을 수 있습니다.
그저 노래방이 아니라 교회에서 찬송을 불렀을 뿐입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면,
그저 내 감정을 뜨겁게 하기 한 것이었다면
그 결과는 길가에 떨어진 씨의 경우와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➁ 이런 자기 주관적인 신앙을 가진 자들은 말씀으로 인한 환난과 박해를 이기지 못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도 어쩌면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며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니 말씀을 들을 때 기뻐하며 듣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으로 내 마음이나 인격이 변화되는 것은 없습니다.
애당초 처음부터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들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가 원하는 찬송만 부르고,
내가 좋아하는 말씀만 듣는 자기 주관적인 신앙을 가진 자들은,
그러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말씀을 들으면 은혜가 되지 않는다며 거부합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전하면 불쾌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이런 자들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곧바로 믿음을 버립니다.
처음부터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자기감정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로 인하여 환난이나 어려움이 생긴다면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 마음을 평안하게 할 다른 일을 찾을 것입니다.
믿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3.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들(7, 18~19절)
셋째는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로,
세상의 염려와 걱정에 막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얻지 못한 자를 의미합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뿌리도 내리고 싹과 잎과 줄기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가시덤불이 햇볕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처럼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와 같은 자들은
신앙의 기초도 있고, 믿음의 고백도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다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여러 욕심(유혹)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입니다.
1)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자들 : 염려와 근심에 막힌 자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자들은
말씀을 들어 신앙의 기초는 알지만
염려될 만한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히는 자들입니다.
돈 문제, 건강 문제, 직장 문제, 집 문제들이 생기면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기도도 안 되고, 예배도 찬양도 안 됩니다.
그것이 해결되면 그제야 한숨을 쉬면서
겨우 다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런 자들은 이미 염려와 걱정이 약점이라는 것을 사탄에게 노출되었으므로,
사탄은 그의 앞에 염려 거리들을 계속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염려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내 앞에 어떤 재앙이 닥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을 뿐입니다.
그 두려움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결단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에까지 이르지 못합니다.
2)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자들 :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는 자들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자들은
교회에 다닌 지 오래됐으니, 말씀도 어느 정도 알고 교회 직분도 가졌으나
이전에 행하였던 죄의 습관들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본래 유혹에 약한 자들이니
이 세상에 유혹을 완전히 이기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사사건건 유혹에 넘어진다면
그가 듣는 말씀이 그를 건강한 신앙으로 이끌어 주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런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유혹을 이기는 자가 되게 해 주실 것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죄의 즐거움 때문에 기도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저 죄를 이기지 못하는 자신을 걱정하기만 하고 주께 도움도 청하지 않습니다.
그랬다가 정말 주께서 죄를 떠나게 해 주시면
그 죄의 즐거움을 영영 누리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
주께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죄에 대한 염려만 하다가
영영 건강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3) 욕심을 이기지 못하는 자들 : 하나님의 복의 존귀함을 깨닫지 못한 자들
욕심을 이기지 못하는 자들은
마음속에 있는 돈이나, 권력이나 인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아직 세상 것에 대한 욕망과 열망을 벗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그 욕망과 욕심을 자극하면
그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도 포기합니다.
아직까지는 하나님보다 그것이 나에게 더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다행히 예배의 자리에 나왔지만 다음 주는 장담을 못합니다.
누가 함께 등산을 가자고 할지,
혹은 어디 좋은 계약 건이 나왔으니 함께 가자고 할지, 함께 낚시에 가자고 할지,
골프나 그 밖에 어떤 것이라도 아직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그것을 하자고 하면
나는 다음 주에는 예배에 나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 묵상 :
➀ 돌밭과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주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나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와 같은 자들은
단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아닙니다.
외인에 속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밖에 있는 자들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율법의 말씀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여기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존귀한 것으로 여기는가,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갈망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➁ 하나님 사랑하기를 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십시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는다면,
말라기가 경고했듯
그 모든 신앙의 행위들은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신앙생활에 불과합니다.
마음은 딴 곳에 두고 몸만 예배의 자리에 있는 이런 자들을
예수께서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 주시기를 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십시오.
4. 좋은 땅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들(8, 20절)
넷째는 좋은 땅에 뿌려진 씨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 구원에 이르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1) 좋은 땅에 뿌려진 씨에 속한 자들은 듣기에 불편한 말씀도 받아들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들은
말씀을 기쁨으로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듣기에 불편한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에 순종하려 힘쓰는 자들입니다.
➀ 나의 죄를 지적하는 말씀을 들을 때
내가 잘못을 범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불편한 감정을 갖게 됩니다.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이런 때 그 말씀을 거부합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자기를 즐겁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좋은 땅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목적이니
이런 불편한 말씀도 마음에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고백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청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➁ 내가 유혹받고 있는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아직 세상의 유혹을 완전히 벗지 못한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에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역시 위에 언급한 자들은 이 말씀도 거부합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속한 자들은 이 말씀도 받아들입니다.
자기가 아직 연약하여 이 부분에서 여전히 유혹을 받고 있으니,
혹시 이런 부분에 유혹이 올 때 넘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주께 도움을 청합니다.
이런 자들은 지금은 연약할지라도 점차로 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됩니다.
➂ 내가 욕심을 품고 있는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돈 욕심, 집이나 차나 직장이나 학교나 인기에 대한 욕심이 떠나지 않아
걱정인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역시 위에 언급한 자들은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속한 자들은 그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 욕심이 자기 마음에서 잘 떠나지 않으니,
그 욕심을 버리게 해 줄 것을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가 주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➃ 내가 해야 할 사명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신앙생활의 목적이 자기감정에 있으므로
헌신이나 사명에 대한 말씀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저 복이 되는 말씀만 듣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속한 자들은
주께서 명하시는 사명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오히려 더 귀 기울여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장의 이익보다는 지금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자가 되려 힘쓰는 것입니다.
2)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힘쓰는 자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땅에 뿌린 씨와 같은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힘쓴다는 점입니다.
찬송을 부르거나 기도를 하거나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배우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다 알게 되면 그 일에 충성을 다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해 아쉽고 슬픕니다.
이런 자가 좋은 땅에 뿌려진 씨와 같은 자들입니다.
3)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열망
결국 말씀을 듣는 태도에 따라 구분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까?
몸의 자세가 아니라 마음의 태도입니다.
간절함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려는 간절한 열망을 가진 자입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자,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 세리와 창기들,
이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열망이 있음을 주께서 보시고
주께서 친히 그들을 찾으셨고, 그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열망을 잃지 않게 하십시오.
4) 30배, 60배, 100배의 결실(8, 20절)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려 힘쓰는 자들,
주께서 주려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사람들,
그 말씀이 내 안에서 능력으로 나타나기를 간절히 열망하는 자들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집이 30배로 늘어난다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가 60배, 100배로 부흥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그 믿음을 인정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 묵상 :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인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살려 힘쓰는 자인지 나는 누구인지,
이 중에 나는 어디에 속하는 자인지 살펴보십시오.
5.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10~12절)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너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 것이 허락됐으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무엇인지 알고,
주께서 주시는 저 영생의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곳인지를 알아서
그 나라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구하고 또 구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미 중풍병자를 고치신 일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온 네 명의 사람들보다
그 중풍병자의 믿음을 더 크게 보신 이유는 그의 열망과 간절함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자들에게는
장차 우리가 어떤 영광을 누리게 되는지 알게 해주십니다.
2) 저 외인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말한다.
저 외인들이란
길가에 떨어진 씨, 돌밭과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와 같은 자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오직 이 땅의 일에만 관심이 있으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자기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 듣듯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도록 비유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비유로 말씀하셔도 순종하는 자들은
열심히 그 뜻 깨닫기를 구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지만,
이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무슨 수수께끼를 여기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하늘의 것에는 관심이 없으니
조금 관심을 보이다가 뜻을 알기도 전에 그만둘 것입니다.
그러니 영원히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지 못합니다.
3)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있는 자에게는 더 주시고
없는 자에게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열망이 있는 자에게는 더 깨닫도록 말씀을 더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이 없는 자에게는 그나마 있는 열망도 말씀도 빼앗으셔서
도무지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는 자가 되도록 힘쓰십시오.
우리가 말라기에서 살펴보았듯 신앙에 게으름을 피우면
신앙의 허무주의에 빠져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와 같은 자들이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고,
신앙의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 기도제목
1. 말씀에 무관심, 무감각한
길가에 떨어진 씨와 같은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2. 자기 주관적인 신앙에 빠져
믿음을 잃는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3.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간절함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4. 말씀 묵상과 기도를 항상 하여
신앙의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