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13~26)
* 본문요약
자유를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으나,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는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려 하십시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 말씀으로 모든 율법이 완성됩니다.
육체의 일은 아주 명백하니 이런 일들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대적하여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자는 육체의 욕망을 이루려 하지 않게 됩니다.
만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자는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자가 되십시오.
찬 양 : 217장(새 425)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197장(새 263)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 본문해설
1. 이웃 사랑은 율법을 성취하는 것(13~15절)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자유를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너희를 부르셨으나),
그러나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육체의 욕망을 채우려는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서로 종이 돼라.).
14) 모든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라고 하신
이 한마디 말씀에서 이루었나니(이 한마디 말씀에서 완성되는 것이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서로 헐뜯고 해친다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 서로 종노릇하라(13절) : 둘류에테 알레로이스
‘둘류에테 알레로이스’를 직역하면 ‘서로에게 종의 임무를 수행하라’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답게 서로 종이 주인을 섬기듯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섬기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지
상대가 말하는 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2. 육체의 일(16~21절)
16) 내가 또 말하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러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혹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라.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게 될 것이라).
17) (왜 그런가하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이 둘이 서로 대적관계에 있으므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그러나 만일 너희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간다면,
너희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으리라).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명백하니,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방탕)과
20) 우상숭배와 술수(주술, 마술)과 원수 맺음과 분쟁(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당파심)과 이단과
21) 투기(질투)와 술 취함과 방탕(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놀음)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전에도 너희에게 경고한 것같이 이제 또다시 경고하노니,
이런 짓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요,
- 왜 그런가 하면(17절) : 가르
원어에는 17절 첫머리에 ‘가르(왜 그런가 하면)’란 말이 있습니다.
-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19절) : 파네라
‘현저하니’에 해당하는 ‘파네라’는‘눈에 띄게 드러나다’라는 뜻으로,
그 움직임이 감추어져 있지 않고
우리 눈에 현저하고 분명하게 나타나 보인다는 뜻입니다.
- 더러운 것(19절) :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부패하게 하는 온갖 더러운 것들
- 호색(19절) : 부끄러움을 모르는 음탕한 마음
3. 성령의 열매(22~26절)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선함)과 충성(신실함)과
23) 온유와 절제이니, 이런 것들을 금지하는 법(율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산다면, 또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서로 잘난 체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질투)하지 말지니라.
- 사랑(22절) : 아가페,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는 희생하는 사랑
- 희락(22절) : 카라, 행복한 자의 기쁨과 즐거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자의 유쾌함
- 화평(22절) : 에이레네,
‘에이레네’는 질서가 잡히고 모든 것이 평온한 상황에서 누리는 평안입니다.
세상이 복잡한 때에도 성령의 은혜로 우리 마음은 이런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 오래 참음(22절) : 마크로뒤미아
‘마크로뒤미아’는 단순히 눈물을 삼키며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고통 중에도 자신의 사명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 자비(22절) : 크레스토테스
‘크레스토테스’는 ‘친절,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데
특별히 가장 연약한 자, 긍휼이 필요한 자에게 베푸는 관심과 사랑을 뜻합니다.
- 양선(22절) : 아가도쉬네
‘아가도쉬네’는 마음이 부드럽고 선한 상태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랑으로 행하는 착하고 선한 일, 행실로 나타나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 충성(23절) : 피스티스
신실함,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 항상 변함없이 행하는 것
* 묵상 point
1. 죄의 억압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신 예수님
1) 죄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➀ 죄의 억압의 굴레를 벗지 못한 구약의 율법
만일 우리가 무슨 잘못이든 한 번 죄를 범하기만 하면
주홍글씨처럼 우리 몸에 그 죄의 낙인이 찍혀
다시는 그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면
우리는 두려워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이 바로 그러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죄를 범하면 어떤 벌을 받는다는 율법 조항만 가득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 죄를 이길 힘이 없으니
구약의 율법은 사람에게 죄의 억압의 굴레만 잔뜩 짊어지고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➁ 죄의 억압에서 해방 시켜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일단 죄를 지었다면 죄를 지은 자가 그에 합당한 벌을 받기 전에는
절대로 그 죄를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그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는다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일을 예수께서 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가 받을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님 앞에 회개하면
그 죄를 짓지 않은 자처럼 여김 받게 된 것입니다.
➂ 죄의 억압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우리들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는
이미 지은 죄의 굴레, 죄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지은 죄에 대하여도 주홍글씨 같은 그 억압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2) 바울이 전하는 ‘주님의 은혜와 자유’를 악의적으로 왜곡한 사람들
바울이 ‘주께서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셨다’고 증거하자
일부 사람들은 바울이 어떤 죄를 지어도 좋다고 증거한다며
바울이 외치는 자유를 왜곡하여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유를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는 바울의 복음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도덕적 부패를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용서해 줄 터이니 마음껏 죄를 짓자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3) 바울은 이런 악의적인 왜곡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주님의 은혜와 자유를 완전히 오해하였습니다.
잘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자기 생각대로 왜곡하여 바울을 고발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채울 기회로 삼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자유는 그런 도덕적 해이의 자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주님의 자유는 오직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에게만 주시는 은혜입니다.
오직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하여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에게만
그 죄를 없는 것으로 여기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을 공격하는 자들의 말처럼
주님의 자유가 도덕적 타락을 부추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도리어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욱 넣어주셔서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2. 섬김을 위한 자유, 서로 종이 되기 위한 자유
1) 섬김과 사랑을 위한 자유
죄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외에
바울이 증거하는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또 다른 자유는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자에게 주시는 기쁨입니다.
휴일에 자녀들을 위하여 시간을 내는 것을 귀찮은 일로 여긴다면
그것은 나에게 율법과 같은 ‘속박’이 되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하는 일로 여긴다면
그것은 기쁨으로 행하는 ‘자유’가 될 것입니다.
2)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자에게 주시는 기쁨과 평강
성도를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일이 기쁜 일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도 내 마음이 기쁘고 평안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곧 자유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의 차이입니다.
구약에서는 이 모든 일이 억압이요 속박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자유가 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기쁨으로 행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3) 성령께서 이 일을 도우십니다(16절)
어떻게 남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을 행하면서 자유를 느낄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니 가능합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며 사랑과 섬김을 기쁨으로 행하게 하시니
남을 사랑하며 섬기면서도 자유를 느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며 섬길 때 그것을 억압과 속박으로 느끼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께서 부모에게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을 주셨기에
우리는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섬기면서 자유를 느끼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열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다음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됩니다.
1)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22절)
성령께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희생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하는 일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질서가 잡히고
고요한 상태가 되어야만 이런 평안을 누릴 수 있지만,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께서 그 마음에 이런 기쁨과 평안을 주시므로,
전쟁과 같이 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주의 평안을 받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이 있으므로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참고 견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희생하고 섬기는 일을 계속 행하면서 참는 인내입니다.
이런 인내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2)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22~23절)
사랑하고 섬기는 행동의 출발점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혹은 이웃이나 성도들이나 그 어떤 사람이든
사랑하고 섬기는 행동의 출발점은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면
내가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이렇게 그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 착한 일이 양선입니다.
그리고 그런 양선의 일을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항상 변함없이 행하는 것이 충성(신실함)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면서 자기가 했노라고 자랑하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행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행하되 자기 욕심과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절제입니다.
●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는 것은,
이것을 없애고 또 다른 새로운 법을 만드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가 구원의 마지막 열매입니다.
이런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 자는,
또는 이런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을 구하며 사는 자는
이미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4. 그러나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명백하니)
1) 그러나 육체의 일은 현저합니다. 아주 명백하게 드러납니다(19절)
마치 추수할 때가 되면 피나 독보리가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어서
어떤 것이 곡식이고 어떤 것이 잡초인지 분명히 알게 되는 것처럼,
그 마음속에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분명하게 그 모습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2) 마음에 항상 육체를 위한 욕망을 품고 살기 때문입니다.
음행과 우상숭배와~,
이렇게 19~21절에 나온 항목들을 일일이 그 뜻을 밝히는 것보다는
육체의 일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육체의 일에 속한 자는 자기 욕망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아무리 거룩으로 포장하고,
아무리 그럴듯하게 신실한 사람인 것처럼 위장한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에 하나님의 거룩한 열매가 없는 자는
자기 욕망대로 살아가는 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형편에 따라 그 욕망이 때로는 향락과 쾌락으로,
또는 인간관계의 분란으로, 시기와 질투와 허영으로 나타납니다(19~21절)
자기 욕망이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따라 향락과 쾌락과 방탕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욕망과 부딪칠 때에는 다툼과 싸움과 분당과 파당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자기를 높이려는 것으로 나타날 때에는 교만과 허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말보다는 그 사람의 열매를 통해
그의 중심에 성령이 거하시는 지의 여부를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5. 이 둘이 서로 대적하여 자기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함
1)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서로 대적하나니(16~17절)
그런데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서로 대적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기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 우리 마음을 부패시켜 육체의 욕망대로 살게 하려하고 있고,
성령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거룩한 자가 되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이에 낀 자로, 그 두 세력의 힘이 우리보다 더 크니
자기 힘과 자기 생각으로 사는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2) 이것은 모두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악령이나 성령, 두 영 중의 하나의 지배를 받고 살고 있습니다.
이 두 영은 다 강력하여 사람이 혼자 힘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분명히 악령의 주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틀림없이 멸망의 자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 속에 머물기에 힘쓰는 자가 돼야 합니다.
6.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어떻게 이런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맺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 구약의 율법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우리의 열매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성령께서 그 열매를 맺도록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어떻게 도우십니까?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는 자들에게 도우십니다.
1)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이것은 내가 죄의 오염된 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데
이미 내 몸과 마음과 정신이 죄에 오염되어 있어서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안 되니
성령이여 도와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2)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나는 영영 이대로 망하고 말 것임을 분명히 인식했다면
이제 우리가 바라고 기댈 곳은 오직 성령뿐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우리는 구원 받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부터 오직 성령만을 구하고 또 구해야 합니다.
3) 잘못을 범할 때마다 죄의 치유를 받는 것을 반복하십시오.
그렇게 성령을 구하고 있는 중에도 우리는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죄의 습관이 우리 안에 깊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할 때마다 회개하여 그 죄를 씻는 일을 매일 반복하십시오.
몸을 씻듯 영을 씻는 일을 주님 오실 때까지 반복해야 합니다.
4) 그리고 말씀을 채우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도구인 말씀을 채워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과 죄의 회개와 말씀을 채우는 일,
이 일을 반복하는 일을 통해 우리는 서서히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로 변해가게 됩니다.
5) 이렇게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을 따라 살기에 힘쓰는 자가 되면
내 안에 육체의 욕심을 이루려는 욕망이 서서히 사라지게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변하고, 나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성령은 내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기를 도우십니다.
➠ 이 일을 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이룬 것같이 인정을 받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이 모든 일을 다 이룬 것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의를 이룬 것이 아니라 의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자격 없는 자가 의를 인정받으니 복음인 것입니다.
당신도 가능합니다. 당신도 구할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7. 헛된 일을 행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투기하지 마십시오(26절)
1) 성령 안에서 살기에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25절)
성령의 인도를 받기를 바란다면 성령 안에서 살기에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헛된 일을 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투기하지 마십시오.
성령 안에서 살기에 힘쓰는 자가 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사는 것이고,
헛된 일을 행한다는 것은 잘난 체하며 서로 노엽게 하고, 서로 질투하는 것을 뜻합니다.
2) 성령의 인도하심이 중단되면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해야만 합니다.
잘난 체하여 나로 말미암아 누군가 그 마음에 노여움과 분노가 일어난다면
성령의 도우심이 중단됩니다.
또 위에 언급된 현저한 육체의 일에 빠져 죄를 범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중단됩니다.
이런 자는 자기 능력으로 화평과 평안을 이루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령 안에서 사는 자가 되면
성령께서 하늘의 평안과 기쁨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 기도제목
1. 성령이여 함께 하셔서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백성 되게 하옵소서.
2. 성령이여 우리의 죄의 습관을 치유하여 주시고
성령의 열매를 채워 주옵소서.
3. 성령의 인도를 받아
죄의 소욕을 이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