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갈라디아서 큐티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11~21)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01.08|조회수630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라디아서 2:11~21)

 

* 본문요약

 

    게바(베드로)가 안디옥에 왔을 때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서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 몇 명이 들어오자

    베드로는 마치 그들과 식사를 하지 않은 체하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유대인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여 이방인에게 강요하느냐며

    베드로의 위선을 책망했습니다.

 

    바울은 이 일을 예로 들면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율법을 지키자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된 것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찬 양 : 102장(새 94)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511장(새 314)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 본문해설

 

1. 바울이 베드로의 외식을 책망함(11~14절)

 

11) 그런데 게바(베드로)가 안디옥에 왔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어서,

     내가 그를 면책(대면하여, 그의 얼굴을 마주 보고 책망)하였노라.

12) 게바(베드로)가 이방인 교우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야고보가 보낸 몇몇 사람들이 들어오자

     그가 할례를 주장하는 그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슬그머니 그 자리에서 떠나 물러가매

13) 다른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안 먹은 체하며 함께 나갔으므로),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외식에(위선적인 행동에, 가식적인 행동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처럼 살지 않고 이방인처럼 살면서

     어찌하여 이방인에게 유대인처럼 살라고 강요하느냐?” 하였노라

 

- 책망하였노라(11절) :

    그냥 책망한 것이 아니라 정죄하였다는 뜻으로,

    베드로의 위선적 행동은 믿음을 떠난 행동이라고

    아주 강하게 경고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 안 먹은 체하며 함께 나갔으므로(13절) :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장로들의 전통을 지켰는데,

    게바(베드로)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오자

    그들과 함께 식사하지 않은 것처럼 위선적인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한국의 경우로 본다면

    술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 안 마신 것처럼 행동한 것과 같습니다.

 

- 외식(13절) : 휘포크리노마이

    외식(휘포크리노마이)은 ‘~인 척하다, 속이다’라는 뜻의 동사로,

    가면을 쓴 것처럼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2. 율법으로 의롭게 된 자가 없다(15~18절)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6절을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알기에 유대인인 우리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자가 된 것을 인정받으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전에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이미 헐어버린 율법을 다시 세운다면)

     나는 나 스스로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16절) :

    의롭게 된다는 것은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완전하게 회복된 것을 뜻합니다.

 

 

3.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19~21절)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나는 율법으로 사는 것을 그만두었나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 하는 것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지금 내가 육신의 몸으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하나님과 올바를 관계를 맺는 것이) 율법으로 되는 일이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 나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19절) :

    나는 이제 더 이상 율법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20절) :

    주님을 알기 전의 이전에 나의 삶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20절) :

    주께서 단순히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내 안에 계심으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A가 A′가 된 것이 아니라, A가 B가 된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베드로의 외식을 책망한 바울

 

 1) 위선적인 행동을 한 베드로(11~13절)

 

    율법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한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런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누가 오든지 그냥 밥을 먹으면 되는데,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이 식사 자리에 들어오자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지 않은 사람처럼 가식적으로 행동했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경우로 본다면 술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

    안 마신 것처럼 행동한 것과 같습니다.

 

 2) 베드로의 가식적 행동을 책망한 바울(11, 14절)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것은 베드로가 아직 율법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믿음의 법을 주셨는데

    베드로는 자기가 여전히 율법을 지키는 자인 것처럼 거짓으로 행동했으므로,

    베드로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바울의 책망의 본질 : 왜 유대인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이방인에게 강요하느냐(14절)

 

    바울이 베드로는 면전에서 책망한 것은

    이 문제가 단순히 개인적인 죄를 범한 것에서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어서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인 것처럼 행동한 것이라면

    그는 구원받을 수 없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중의 리더인 베드로가 주를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 바르게 보이지 못했으니

    바울이 그를 책망한 것입니다.

 

    또 자기들도 잘 지키지 못하면서

    이방인에게는 목숨을 걸고 지키라고 강요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위선적인 행동이냐며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어른인 베드로를 책망한 것입니다.

 

묵상 :

 

    개인적으로 범하는 도적적인 죄와

    구원의 문제와 직결되는 죄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범하는 도적적인 죄는 회개하여 용서받을 수 있지만,

    우상숭배나 믿음을 바르게 갖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그 길 자체를 막는 것이니

    가장 무서운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을 바르게 믿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익혀서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바울이 율법주의를 비난하는 이유

 

    바울이 율법주의를 그토록 강력하게 비난하는 이유는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주장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으니

    바울이 흥분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1) 율법이 요구하는 도덕적 표준이 너무 높아서 사람이 이것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수준이 너무 높습니다.

    마음으로 미움을 품기만 해도 살인이고, 음욕을 품기만 해도 간음을 범하는 것인데

    이 세상에서 이를 지킬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2) 율법은 법 조항만 있고, 그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율법의 치명적인 약점은

    그 율법을 지킬 힘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저 무엇을 하라든지 하지 말라는 법 조항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는 지키지 않는 자를 처벌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지킬 힘을 가진 자가 없으니

    결국 율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 되었습니다.

 

➠ 율법도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이지만,

    이런 이유로 도리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되었습니다.

 

    구약의 율법도 분명히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다 지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지킬 사람도 없고, 지킬 힘도 주지 않으니

    구약의 율법은 도리어 사람을 죽이는 법이 되었습니다.

 

 

3.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1)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수준을 대폭 낮추셨습니다 : 의지하는 것, 구하는 것(16절)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동안 우리가 범한 모든 죄가 다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이미 수없이 많은 죄를 범한 자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또 율법을 지킬 힘이 없는 자도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할 수는 있습니다.

 

    전에는 그 모든 것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이제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해 주시기를 구하기만 해도 구원을 받습니다.

    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수준을 대폭 낮추신 것입니다.

 

 2)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믿는 자가 되도록 힘과 능력을 공급하십니다(20절)

 

    우리가 구하기만 해도 구원을 받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공급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마음의 자리를 바꾸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내 안에 넣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가 되어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4. 이 모든 일을 주께서 이루셨습니다.

 

 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20절)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받는 자 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면

    이전에 우리가 범한 모든 죄는 다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것들이 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전의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컴퓨터는 삭제해도 다시 복구할 수 있지만,

    주께서 용서하신 우리의 죄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그것을 기억하여 가끔 그 생각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만,

    주께서는 완전히 잊어버리셨습니다.

 

 2)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20절)

 

    죄를 용서해 주신 것뿐만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은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사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셨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고린도후서 5:17)

 

    주님 안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A가 A′가 된 것이 아니라, A가 B가 된 것입니다.

    돼지가 리본을 매단 정도가 아니라 양이 된 것입니다.

 

    이 땅의 사람으로 무엇을 더 얻어 부자가 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이미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이미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생명의 지속성(20절)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가 열렸으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예배드렸는데 이번 주일에 왜 예배를 또 드립니까?

    어제 먹은 밥을 오늘도 먹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이란 지속성을 갖습니다.

    어제도 밥을 먹고 오늘도 먹어야만 우리의 생명이 유지되듯,

    우리가 주님 안에서 영의 생명을 다시 회복했다면,

    하나님과 계속 관계를 맺어 그 생명이 유지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믿음을 바르게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이해하고 깨닫게 하옵소서.

 

2. 이제는 우리도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3. 무엇을 더 얻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믿고

   기뻐하며 찬양하게 하옵소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