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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큐티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염려와 걱정(갈 4:12~20)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01.27|조회수640 목록 댓글 0

오늘의 말씀 :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염려와 걱정(갈라디아서 4:12~20)

 

* 본문요약

 

    바울은 1차 전도여행 중에 갈라디아로 넘어갈 때에

    말라리아 풍토병의 후유증으로 간질과 열병과 심한 두통을 앓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 연약함이 기회가 되어

    갈라디아의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간질에 걸린 바울을 업신여기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천사나 예수님을 영접하듯 환영했습니다.

 

    바울은 그때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고 책망합니다.

    그들을 향하여 열심을 내는 대적자들은 바울과 그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이라며,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예수님의 형상이 회복되게 하도록

    다시 해산의 고통을 앓는다고 말합니다.

 

찬 양 : 506장(새 453) 예수 더 알기 원함은(원하네)

         416장(새 294) 하나님은 외아들을

 

 

* 본문해설

 

1. 이전의 복을 회복하라(12~16절)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너희도 알다시피 내가 처음에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의 연약함 때문이었느니라.

    (혹은, 내 육체가 질병을 앓았던 것이 기회가 되어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내 육체에 너희에게 시험 거리가 될 만한 것이 있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도리어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그런데 너희의 그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는 할 수만 있었다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을 것이라.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12절) :

    바울이 유대교의 틀을 벗어나서 이방인 그리스도인처럼 되어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도 유대교의 틀에서 벗어나

    오직 주님의 복음에만 머물라는 것입니다.

 

- 내 육체의 질병(13절) :

    바울은 1차 전도여행 중에 갈라디아로 넘어갈 때

    말라리아 풍토병의 합병증으로 간질과 심한 두통을 앓았습니다.

 

- 나를 업신여기지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14절) :

    업신여긴다는 것을 직역하면 ‘침을 뱉지도 않고’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간질과 심한 두통을 앓고 있었는데도

    그런 바울을 귀신 들렸다며 침을 뱉고 내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영접하듯 그렇게 환영했다는 뜻입니다.

 

- 그 복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15절) :

   “너희를 행복하게 했던 것,

    너희를 감격스럽게 했던 것이 어디 있느냐?”하는 뜻입니다.

    바울을 사랑하며 섬겼던 그때는 그들에게 기쁨과 행복이 있었는데,

    적대자들의 말을 듣고 복음을 떠난 지금은 그 기쁨과 행복을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을 것이라(15절) :

    고대 사회에서는 가장 심한 고문이 눈을 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바울을 위해 그런 심한 고문도 자처할 정도로 바울을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2. 대적자들의 잘못된 열심(17~18절)

 

17) 그들이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키려는 것이요,

     너희로 자기들을 향하여 열심 내게(자기들을 열심히 따르도록) 하려는 것이라.

18) 그들이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설명 : 그들이 좋은 뜻으로 열심을 낸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은 일이니라.]

 

 

3. 갈라디아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사랑의 고통(19~20절)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내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설명 : 내가 이제라도 너희를 만나

             내 음성을 부드럽게 바꾸어서 말할 수 있으면 좋겠노라.

             나는 너희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지 당황하고 있노라.]

 

 

* 묵상 point

 

1. 내가 너희와 같이 된 것같이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1)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 바울처럼 주님의 복음만 믿으라는 것(12절)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자기처럼 되라고 말합니다.

    얼핏 듣기에는 무척 교만한 말처럼 들립니다.

    아무리 바울이라지만 어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자기가 예수님처럼 완전한 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유대교에서 나와 오직 예수님의 복음만 믿는 것처럼,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도 더 이상 유대교를 따르지 말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유대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유대교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유대교와 기독교는 단순한 교단의 차이가 아닙니다.

 

    같은 기독교 안에서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도 등이 있으나,

    이것은 교단의 차이일 뿐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같습니다.

    어떤 교단은 조금 뜨겁게,

    어떤 교단은 조금 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유대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므로,

    교단의 차이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묵상 :

 

    영생의 복을 얻기 위하여 종교를 갖는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2. 고약한 질병에 걸린 바울을 환영하며 맞이한 갈라디아 교회

 

 1) 바울의 육체의 연약함과 질병(13절)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중에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넘어갈 때

    아주 가파르고 높은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평균고도 1,100m, 최고봉 3,300m의 타우루스(Taurus) 산맥을 넘는 동안

    설강가상으로 바울은 말라리아 풍토병까지 앓았고,

    그 합병증으로 간질과 열병과 심한 두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이 찾아간 곳이 갈라디아입니다.

 

 2) 그런 바울을 천사처럼 대접한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14~15절)

 

    그 당시 사람들은 간질을 귀신의 장난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사람들은 간질을 앓는 바울에게 침 뱉으며 내치지 않고,

    오히려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듯 환영하며 맞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3.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주의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을 적대시하고,

    바울이 전한 복음의 말씀까지 버리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때 바울을 사랑하며 섬겼을 때의 그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며 책망합니다.

 

 1) 너희의 복이 어디 있느냐(15절)

 

    갈라디아의 성도들이 간질과 열병과 심한 두통을 앓는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환영하며 맞을 때 그들에게 기쁨이 있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바울을 위해서 눈이라도 빼줄 수 있을 것처럼

    바울을 사랑하며 섬길 때 그들의 마음에 행복이 있었습니다.

 

    바울을 사랑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바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존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공허만 가득합니다.

    대적자들의 말만 듣고 바울을 멀리하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말씀까지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2) 그러면 나의 복은 어디에 있는가?

 

    바울은 동시에 우리에게도 이 질문을 합니다.

    나의 복은 어디 있는가, 나의 기쁨과 나의 행복은 어디 있는가를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해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돈과 권세와 명예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는 절대로 참된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기쁨과 행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는 것과,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을 사랑하며 섬긴 것처럼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기쁨과 행복을 주십니다.

 

 3) 기쁨과 행복을 얻는 두 길인 말씀과 헌신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경우에 한국교회는

    말씀과 섬김이라는 이 두 가지 기쁨과 행복의 통로를 잃어버렸습니다.

 

    말씀과 섬김과 헌신의 통로를 잃어버리니

    기쁨과 행복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돈과 권력과 명예와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을 채우는 데에만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런 것들로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면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다 기쁘고 행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평범한 사람보다 행복하지 못한

    부자들의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주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회복하기 위해 바울이 호소하는 바와 같이,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리와 헌신하고 섬기는 자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묵상 :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사랑의 헌신의 자리를 회복 할 때

    주께서 주시는 기쁨과 행복이 찾아옵니다.

    신앙의 기초를 회복하면 기쁨과 행복이 찾아옵니다.

 

 

4. 대적자들의 이간질 하려는 열심

 

 1) 바울을 비난하는 갈라디아의 거짓 교사들(17절)

 

    갈라디아 교회에 살며시 들어온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은

    비시다아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와 더베 등지로 흩어져 있는

    갈라디아의 교회의 성도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바울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의 열정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열심은 좋은 일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갈라디아 교인들을 이간질하려는 것입니다.

 

 2) 파괴적인 저주의 열심에 빠지지 마십시오.

 

    이런 열심은 파괴적인 열심입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의 말을 듣는 사람의 영혼을 함께 파괴하는 멸망의 열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 공동체를 파괴하는 속닥거림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여기저기에서 사람의 귀에 살며시 속삭여 서로 의심하게 하고 미워하게 하여

    결국 그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자들은

    우상숭배 하는 자와 같이 취급받아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묵상 :

 

    두세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속닥거린 것이라도 주께서 다 들으십니다.

    말로 천국에 가고 말로 지옥에도 갑니다.

    행동으로 범하는 죄보다 말로 범하는 죄가 더 무섭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5. 갈라디아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염려와 걱정(19~20절)

 

 1) 갈라디아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염려와 걱정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믿음의 길을 벗어나는 것을 걱정합니다.

    그들이 영영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에서 멀어지면 어떻게 하나 염려합니다.

 

    주께서 어떤 염려도 걱정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나

    주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세상 일에 대한 염려입니다.

 

    바울이 지금 하고 있는 이런 염려는 우리의 영을 살리는 염려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영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긍휼의 마음에서 나온 염려와 걱정이기 때문입니다.

 

 2) 너희를 위하여 해산의 고통을 겪노라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위하여 단순히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이 회복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가 지나쳐

    그의 마음에 큰 아픔이 느껴집니다.

 

    그 아픔이 얼마나 큰지 마치 여인들이 해산할 때와 같은 고통을 겪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가져야 할 참된 사랑입니다.

 

 3) 너희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기 위하여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마음에 고통까지 느끼면서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가 반드시 응답이 될 줄 믿습니다.

 

    바울의 갈라디아 교인들을 위하여 그의 마음에

    해산하는 여인이 겪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겪는 고통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어떻게 해서든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간절한 기도는 주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 교인들을 위해 느끼는 마음의 아픔을 불편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믿음이 회복될 때까지

    이 간절함과 고통의 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묵상 :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마음에 아픔을 느끼면서

    그가 믿음을 갖기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

    여기에서부터 전도는 시작됩니다.

 

    전도란 반드시 찾아가서 전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먼저 기도하고, 그다음에 그를 사랑하며 섬길 기회를 찾고,

    그러다 주께서 그의 마음을 여는 기회를 주시면 그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더 많은 기도와 섬김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 기도제목

 

1.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과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 바로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그래서 우리도 갈라디아 교인들이 처음에 그랬듯

   말씀을 사모하고 서로 사랑하며 섬긴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3. 바울처럼 간절함과 고통의 기도를 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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