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사데 교회에 보낸 편지(요한계시록 3:1~6)
* 본문요약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명성)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책망을 받습니다.
주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사데교회의 행위의 온전함을 전혀 찾을 수 없으니,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완전히 죽게 되기 전에
그 남은 것이 회복되도록 깨어 일어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주께서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우지 않고,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그들을 시인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167장(새 179) 주 예수의 강림이
173장(새 184) 불길 같은 성신여(주 성령)
* 본문해설
1. 사데 교회에 대한 책망과 경고(1~3절)
1) 사데 교회의 사자(지도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2) 그러므로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너에게 아직 남아 있으나 죽게 된 것, 죽어가는 것이 완전히 죽기 전에 굳게 하라.)
나는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하고(기억하고)
굳게 지켜 회개하라.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내가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 일곱 영(1절) :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뜻합니다.
- 일곱 별(1절) : 각 교회를 맡은 천사들을 뜻합니다.
- 죽은 자(1절) :
육신은 살아 있으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자라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것을 ‘죽었다’로 표현합니다.
- 일깨워(2절) : 기누 그레고곤
‘일깨워’에 해당하는 ‘기누 그레고논’은
현재 미완료와 현재 능동태 분사가 결합된 단어로,
잠시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깨어 있는 상태로 살아가라는 것을 뜻합니다.
영적인 긴장감을 늦추거나 방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 굳게 하라(2절) : 스테리손
‘굳게 하라’에 해당하는 ‘스테리손은
‘굳게 하다, 세우다, 강하게 하다, 단단하게 하다, 버티게 하다’의 뜻으로,
그 남은바 죽어가는 것들을 다시 살리라는 뜻입니다.
죽어가는 믿음을 다시 살려서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 생각하고(기억하고, 3절) : 므네모뉴에
‘생각하고’에 해당하는 무네모유에는 현재 명령형으로
‘계속해서 잊지 말고 생각하며 기억하라’ 는 뜻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늘 마음속에 품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2.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에게 주시는 복(4~6절)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가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그들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단코 지우지 않을 것이며,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그 이름을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흰옷(4절) : 흰옷은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죄를 씻음 받은 자들을 뜻합니다(계 7:9).
- 생명책(5절) :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들(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이 기록된 책입니다.
* 묵상 point
1. 사데교회에 대한 책망
사데 교회의 문제는 이단도 핍박도 아닙니다.
사데 교회에는 핍박의 고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방해 없이 예배와 찬양과 기도와 봉사와 헌신에 열정을 보일 수 있었고,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질 만큼 활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들이 죽은 교회라고 평가하십니다.
사데 교회가 어떻게 주께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그 교회가 있는 사데 도시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 타락한 도시 사데의 특징
사데는 본래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도시 뒤쪽으로 트몰루스 산이 치솟아 있었으며,
이 산에서부터 교각 같은 암석으로 된 좁은 산등성이 있었고,
이 위에 사데 도시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천혜의 요새와 같은 도시로 외적의 침략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으므로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사데를 침략할 때 성을 지키는 경계병이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고레스는 무혈입성하였고,
그 후 고레스는 사데 성 사람들에게 일체의 무기 소지를 금지하고,
그 대신 춤과 노래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 후 사데는 퇴폐 일로에 들어가서
이교도들로부터도 경멸할 만큼 극도로 타락한 문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인구가 증가하자 산 아래쪽 계곡에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고,
이곳에 극장과 경기장을 건설했으며,
거대한 아르데미스 신전이 이곳에 있습니다.
일찍부터 양모 염색 기술로 부를 이룬 부유한 도시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데는
돈과 여유와 음악과 춤과 쾌락이 있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도시 안에 있는 사데 교회 역시
사데 도시의 이러한 영향 아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1)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진 교회
주께서 사데 교회를 ‘실상은 죽은 교회’라고 말씀하시니
신앙생활이 게으르고 형편없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사데 교회는 결코 게으르고 형편없는 교회가 아닙니다.
사데 교회는 사람들이 ‘죽은 교회’라고 부를만한 교회가 결코 아닙니다.
핍박이 없었으므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서
예배나 기도나 찬양이나 봉사에 대단히 활동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진 교회입니다.
2) 성공한 교회라는 명성을 가진 교회
사데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우고 사도 요한이 양육한 교회로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큰 예배당을 갖춘 대형 교회였습니다.
다른 초대교회들과 달리 유대인 회당의 유대인들과 큰 충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인, 헬라인들도 사데의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지 않았다.
사데 교회는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교회들이 핍박에 고통받고 있었는데
그들은 핍박도 받지 않았고, 재정도 풍부했습니다.
더구나 그 교회를 세우고 양육한 사람이 바울과 사도 요한입니다.
그러니 더욱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큰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성공했다 할 만한 것들을 모두 갖춘 훌륭한 명성을 가진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데 교회야말로 생동감 넘치는 살아 있는 교회처럼 보입니다.
성도 간의 교제에 있어서나, 봉사와 섬김의 활동에 있어서나,
어느 면으로 보아도 전혀 문제가 없는 교회였습니다.
예배 역시 교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훌륭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부흥한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 신앙의 활동에서도 열정적이었던 교회
사데 교회가 큰 부흥을 이루었다고 해서
성도들이 세상 것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게으르고 나태하게 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예배나 각자 맡은 직분에
그 어느 교회보다도 열심히 했고 충성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배와 찬양과 봉사에 참여하면서
분명히 은혜도 받았고, 신앙적인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배와 찬양과 봉사의 삶을 통해 얻는 기쁨이
주께서 주시는 은혜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자기들이야말로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며 분명한 구원의 확신을 가졌습니다.
모든 면에서 열심히 하는 교회였으니 사데 교회는 크게 부흥했고,
또한 교인들 모두가 대단히 활동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으니
살아 있는 교회라는 명성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부흥한 교회로 볼 때나, 성도들의 활동 면에서도 단연코 앞선 교회였습니다.
그 명성에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교회였습니다.
➠ 그러나 주께서는 죽은 교회라 평가하십니다 :
그러나 주께서는 이 교회에서 칭찬거리를 찾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단 한 마디도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2. 실상은 죽은 교회라는 의미 :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교회
1) 사데 교회의 신앙 활동이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 자기만족을 위한 활동
바울이 세웠고 사도 요한이 양육했으니
사데 교회가 드리는 예배 자체는 신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고,
그들의 봉사와 헌신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사데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임에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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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데 교회는 핍박이 없고 부흥과 번영을 누리는 동안
육신적 평화에 취해 신앙 활동이 점차 형식적인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예배와 기도와 찬양이 여전히 뜨겁게 드려지고 있었으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의 모든 활동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헌신이 아니라
조금은 고상하게 보이는 종교적인 취미활동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들만의 잔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 활동이 아니라 종교적인 감정놀음이 되었습니다.
바리새인의 그 열정적인 신앙 활동이
자기의 의를 자랑하기 위해 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데 교회의 그 열정적인 활동이 역시
자기들의 종교적 감흥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시기에는 생동감 있는 교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죽은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죄의 즐거움과 신앙의 즐거움이 공존하는 교회 : 죄에 대한 저항감을 잃어버린 교회
육신의 번영과 평안함이 사데 교회를 서서히 병들게 했습니다.
번영과 부흥에 취하여 사데 도시의 타락한 문화를 영적인 전투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세상과 전투하는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육신적 평화에 취해 내적 갱신에 대한 필요성조차 망각해 버렸습니다.
사데 도시의 타락한 문화에 물들어 함께 죄의 쾌락에 빠져 있으면서도
아무런 후회도 갈등도 없이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가능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 신앙의 열정과 사데 도시의 타락한 문화를 동시에 가진 교회
사데 교회는 신앙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타락한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사대 교회의 사람들도 극도로 타락한 사데의 이런 문화적 토양에 오염되어
사데 사람들이 죄의 즐거움에 그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아무런 영적인 저항감 없이 신앙 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교회 밖에서는 죄의 즐거움을 위한 활동에 열정적이었고
교회 안에서는 종교적 즐거움을 얻기 위한 활동에 열심이었습니다.
죄의 즐거움과 신령한 영의 즐거움을 동시에 가진 교회,
이 모순된 두 가지가 전혀 이상하지 않게 서로 공존하는 교회가 사데 교회입니다.
➠ 실상은 죽은 교회라는 의미 : 이미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교회
여기에서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과 부흥도, 생동감 넘치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활동들도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3. 일깨워 굳게 하라. 생각하고 굳게 지켜 회개하라.
1) 일깨워 : 아직 남은 것이 완전히 죽기 전에 그 남은 것을 굳게 하라(2절, 에스겔 9:4)
그러나 예수님은 사데 교회가
아직은 완전히 죽어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의 즐거움 속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자기가 저지르고 있는 죄의 일을 고통스러워하며 탄식하는 자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9:1~11을 보면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완전히 멸망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죄의 가증한 일에 탄식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자의 이마에
도장을 찍어주라고 명령하시는 장면을 에스겔에게 보여주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멸망하는 날 이마에 도장이 찍힌 자들은
손을 대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겔 9:6).
그러나 그들 역시 죄의 문화에 오염된 사람들이므로
70년간 바벨론 포로의 고통을 겪으면서 죄의 독을 씻어내야 합니다.
이처럼 아직은 그 영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 영의 상태가 마치 죽어가는 환자처럼 아주 미약하여
언제 끊어질지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비록 사데 교회의 모든 영적 활동들이
바리새인들처럼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어서 실상 죽은 교회라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그러한 신앙의 활동들 속에
아직은 영적으로 회복할 약간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보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서둘러 깨어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죽은 자가 되기 전에
서둘러서 그 죽어가는 믿음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깨어나서 영이 죽은 자가 아니라 영이 살아있는 자라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나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항상 영적인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라는 것입니다.
2) 생각하고 굳게 지켜 회개하라 (3절)
3절에는 죽어가는 그들의 믿음을 회복하기 위한 세 가지 방안이 제시됩니다.
이것은 영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이면서
동시에 주님의 엄중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➀ 생각하고 :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하고
에베소 교회가 처음에 바울에게서 말씀을 듣고 배울 때
참고 견디며 게으르지 않았던 것처럼(계 3:3),
사데 교회도 바울과 요한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게으르지 않았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부흥한 교회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하고”
처음 그들이 말씀을 듣고 주님을 알게 된 때,
그 은혜의 때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처음 알던 그때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주님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과의 사랑은 사라지고 교회 활동만 남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며 교제하던 그때를 생각하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➁ 굳게 지켜 : 믿음의 자리를 회복하라는 것
그래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조금은 남아 있으니
교회 활동이라도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활동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기만 할 뿐 주님과의 교제는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꺼져가는 등불처럼 믿음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꺼져가는 믿음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회복하라고 명하십니다.
맡은바 직분에 충성하며 교회 활동을 열심히만 하면
세상의 향락과 쾌락에 빠져 있어도 상관없으려니 생각했던 잘못을 버리고
서둘러 주께서 명하신 그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명하십니다.
➂ 회개하라
그들이 죽어가는 믿음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님 앞에 나와 회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주 앞에 고백하고
더러워진 영을 치유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타락한 도시 사데의 향락의 문화에 저항해야 합니다.
죽은 낙엽처럼 맥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 다시 깨어나는 방법은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은
창세기의 주제였었는데,
여기 요한계시록에서도 여전히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깨어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도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게으름과 잠에 빠진 것이고,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자는 그 영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다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말씀을 찾으면
그 말씀을 굳게 지켜 명하신 일에 충성합니다.
또 말씀을 묵상하다가 내가 잘못한 부분을 찾으면
그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날마다 영의 더러움을 씻어내어 정결케 하고,
영의 양식을 채워 우리의 영을 건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영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깨어 있는 자가 항상 해야 할 일입니다.
3) 내가 어느 때 너희에게 올는지 알지 못함이니라(3절)
주께서는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쓰던 로마의 황제 도미티안의 시대에 오실 계획이셨습니다.
만일 주께서 계획하신 대로 그때 오셨다면
사데 교회에 주신 이 말씀은 그야말로 최후통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가까운 장래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니
그때가 오기 전에 서둘러 회개하라고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 묵상 : 주께서 곧 오시리라는 영적인 긴장감을 잃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때가 연기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습니다.
주께서 오늘도 여전히 주님의 날을 연기하셔서
우리 때에도 오시지 않을 것이라 여기지 마십시오.
주께서 이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그날
세상은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항상 영적인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가 되십시오.
4. 흰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에게 주시는 복
하지만 사데 교회에
흰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가 몇 명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4절).
여기에서의 흰옷이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들이 입는 천국 백성들의 옷입니다.
그러므로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것은 믿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1) 그들은 세상 것을 얻기 위해 주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실패하는 자가 되더라도
주님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직장에 떨어지거나 승진 시험에 누락 되는 한이 있더라도
주님과 동행하는 자리를 포기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2) 그들은 분주한 활동을 하느라 주님과 동행하는 자리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회 활동에 분주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기도의 골방을
뒷전으로 미루지도 않았습니다.
차라리 교회 활동을 줄이는 한이 있어도
주님과 자기 개인과의 만남인 말씀 묵상과 기도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3) 그들은 무엇을 하든 항상 순전한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주께서 주시는 은혜를 항상 공급받아,
그 마음에 주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겉보기에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예배드리는 것 같지만
이들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향한 감사가 있습니다.
똑같이 기도하는 것 같지만
이들은 주님의 사랑을 구하는 기도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4) 주께서 그들을 흰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로 여기십니다(4절)
그들이 주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쓴 것을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가리켜 흰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라고 평가하셨습니다.
5. 끝까지 이기는 자는 생명책의 이름을 결코 지우지 아니하리라
사데 교회에 흰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명의 사람들이
끝까지 그 믿음을 잃지 않고 인내하면
다음과 같은 복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 그들은 장차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거닐게 될 것입니다(4~5절)
사데에서는 합당한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연회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데의 이러한 습관을 비유하여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예복인 흰옷(흰 세마포 옷)을 입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옷을 입고 영광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거닐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2)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을 것이며(5절)
그의 이름을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서 결단코 지우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책에는 천국에 들어갈 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에서는 버림받고,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조롱을 당할지라도
주께서는 그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이름을 결단코 지우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3) 내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그 이름을 시인할 것이라(5절)
그리고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시인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그들을 시인하면, 주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 묵상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6절).
➀ 생명책의 이름을 결단코 지우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생명책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이름도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다가 결국 성령이 그에게서 떠나시면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 믿음을 잃지 않으면
주께서 결단코 그 이름을 지우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믿음을 가졌는데 주께서 이름을 지우시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혹시 착오가 있기도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절대로 착오가 없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➁ 그러므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자가 되십시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
이것이 주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다 해야 할 일을 발견하면 그 말씀에 순종하고,
내가 저지른 죄를 발견하면 자복하고 회개합니다.
오직 이 일만이 마지막 때의 환난을 이길 힘을 갖게 합니다.
* 기도제목
1. 세상일에 분주하여 하나님 섬기는 일을
잃어버리는 자 되지 말게 하옵소서.
2. 오직 하나님 앞에 거짓 없는 순전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며 경배하게 하옵소서.
3.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망으로
주께 봉사하며 헌신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