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예수님(히브리서 7:1~22)
* 본문요약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조카 롯을 사로잡아 간 여러 왕들을 추격하여 물리치고 돌아올 때
아비벨렉이 떡과 포도주를 들고 와 아브라함을 축복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그에게 전리품의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레위의 자손으로 제사장이 된 자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니
그들 역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멜리세덱은 아브라함보다 뛰어난 자이고,
멜기세덱의 계열에 속한 예수님 역시 아브라함보다 뛰어난 자입니다.
레위 지파 제사장을 통해 온전함에 이를 수 없어서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른 새로운 제사장이 되어 오셨습니다.
제사장이 바뀌었으니 마땅히 이에 따르는 율법도 바뀌어야 합니다.
레위 제사장은 육신에 속한 율법에 따라 제사장이 되었으나
예수님은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셨고,
레위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나,
예수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리라는 하나님의 맹세를 따라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찬 양 : 416장(새 294) 하나님은 외아들을 주시는 데까지
539장(새 488) 이 몸의 소망 무엔가(무언가)
* 본문해설
1. 제사장이며 왕인 멜기세덱(1~3절)
1) 이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그는 여러 왕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의 10분의 1일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멜기세덱의 이름을 번역하면, 첫째로 그 이름의 뜻은 ‘의의 왕’이라는 것이요,
그는 또한‘살렘 왕’이니 그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이요,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삶을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없어서(태어난 날도 모르고, 죽은 날도 언제인지 몰라서)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요(1절) :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며, 살렘은 예루살렘의 본래의 명칭입니다(시 76:2).
아브라함이 자신의 조카 롯을 사로잡아 간
네 나라의 왕들을 추격하여 쳐부수고 돌아올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라함에게 나와서 그를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 멜기세덱의 이름을 번역하면(2절) :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이 가진 뜻은 ‘의의 왕’이고,
‘살렘’은 ‘평화’라는 말이니 ‘살렘의 왕’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의 이름이 가진 두 가지 뜻인 의의 왕과 평화의 왕은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2.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침(4~10절)
4) 이 사람(멜기세덱)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그에게 노략물(전리품) 중의 10분의 1을 바쳤느니라.
5) 레위 자손들도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제사장의 직분을 받았으므로
율법을 따라서 자기 형제인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수입의 10분의 1을 거두라는(받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 그러나 레위의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10분의 1을 받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그를 축복해 주었나니,
7) 폐일언하고(두말할 것도 없이) 축복이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받는 법이니라.
8) 또 여기는(제사장들은) 그들 역시 죽게 될 자들이지만,
저기는 (멜기세덱은) 영원히 살아 있다는 증거를 가진 자로서 10분의 1을 받았느니라.
9) 말하자면 10분의 1을 받는 레위까지도
아브라함을 통해 (멜기세덱에게) 10분의 1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허리(몸) 속에 있었음이라.
- 살았다는 증거를 가진 자로서 (8절) :
이것은 멜기세덱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멜기세덱이 출생과 죽음에 대해 짐작할 수 없는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3. 멜기세덱 계열의 새로운 제사장(11~14절)
11) 레위 계열의 제사장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레위 계열의 제사장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계열을)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12) 제사장의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우리가 지금 말한 이는)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나오신 것이 분명하도다.
그런데 모세는 이 지파와 관해서는 제사장과 관련하여 말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다면(11절) :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얻을 수 있었다면
4.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된 제사장(15~19절)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체에 속한 규례, 곧 율법을 따라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썩지 않는 (불멸의)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된 것이니
17) 그러므로 성경에도 이르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계열을)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다”(시 110:4)라고 하였도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약하고 무익하므로(효력이 없으므로) 폐기되었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5.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예수님(20~22절)
20) 또 예수께서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니
21) 레위 사람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제사장이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시 110:4)
라고 하셨도다.
22)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더 좋은 언약을 보증하시는 분이 되셨느니라.
* 묵상 point
1. 왕이며 제사장인 멜기세덱보다 더 뛰어나신 예수님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구약에 나오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뛰어나신 분임을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예수님이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던
살렘 왕 멜기세덱의 계열에 속한 대제사장이심을 증거합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으니 아브라함보다 멜기세덱이 더 놓은 자이고,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계열에 속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당연히 아브라함보다 더 뛰어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1)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아브라함(1~2절)
살렘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그의 조카 롯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하고 돌아올 때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의 앞에 절을 하며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쳤습니다.
2) 족보도 없고, 태어난 날도 죽은 날도 모르는 신비의 사람 멜기세덱(3절)
‘살렘’이라는 말은 ‘의’ 혹은 ‘평강’으로 번역이 됩니다.
멜기세덱은 의와 평강의 왕이었으며,
또 멜기세덱이 어떤 족보를 가진 사람이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대제사장이시면서 의와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 역시 성령으로 잉태하여 나셨으니 그 존재 자체가 신비에 싸인 분이십니다.
3) 멜기세덱보다 더 뛰어나신 예수님
그러나 예수님의 신비는 멜기세덱의 신비보다 더 뛰어납니다.
멜기세덱의 신비는 단지 그가 어디에서 났는지 죽었는지 몰라서 생긴 신비로움이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영광의 몸을 친히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00여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여 올라가셔서
그분이 본래 하나님이셨음을 보이셨습니다.
● 묵상 :
예수께서 이런 신비의 능력을 우리에게 보이신 것은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유일하신 분임을 보이시기 위해서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믿음을 돕기 위하여 친히 주님의 신비의 영광을 보이셨음에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2. 아브라함보다 더 나은 멜기세덱
1) 구약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인 아브라함보다 더 뛰어나신 예수님(4~10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볼 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절하며 십일조를 바쳤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 후에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레위 지파의 제사장이
다른 지파 사람들의 십일조를 받았으나 레위의 제사장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니
결국 그들도 아브라함과 함께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과 같다는 점을 또한 강조합니다.
2) 이렇게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더 나은 자임을 반복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멜기세덱 계열의 대제사장이므로
아브라함이나 모세보다, 혹은 그보다 더한 어떤 자보다도
더 뛰어나신 분이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가 이렇게 예수님이 더 뛰어나신 분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이렇게 위대하신 분이시니
우리가 다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가장 중심에 모셔야 한다고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 묵상 : 나의 삶에서 예수님은 어느 정도 가치 있는 분입니까?
당신은 예수님을 당신의 삶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두고 있습니까?
많은 경우에 세상에서는 자기만의 삶을 살다가
예수님은 주일에 교회에서 잠깐 만나는 정도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가장 변두리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이 세상과 저세상에서 지키고 도울 힘과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당신의 삶의 가장 중심에 모시십시오.
3. 멜기세덱 계열의 새로운 제사장(11~15절)
1) 구약 시대에 제사장을 세우신 이유 : 속죄의 제사를 통해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려고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세우신 이유는
죄를 지은 사람은 다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으로 하여금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하여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신 후에 정결함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2) 구약의 율법과 제사장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11절)
그러나 구약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예배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저 죄를 범한 후에 짐승을 바쳐 제사를 드리면 그만이었습니다.
점차 제사는 형식적인 것이 되었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러다 예수님 때에는 그나마 있던 예루살렘 교회마저 장사치들의 터가 되어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할 자리까지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3) 구약의 율법으로 사람을 구하기에는 사람이 너무나도 악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이나 구약의 율법도
본래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었으나
사람들이 완악하여 구약의 율법만으로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완악한 사람들을 구하기에는 구약의 율법은 너무나도 약했고, 부족했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계열의 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12~15절)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약의 율법과 제사장직을 폐기하시고
멜기세덱 계열의 새로운 제사장을 세우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멜기세덱 계열의 제사장이시라는 것은
구약의 제사장들처럼 잠깐 있다 사라지는 연약한 제사장이 아니라
우리를 영원토록 지켜주실 영원하신 제사장이시라는 뜻입니다.
4.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된 제사장(16~22절)
1) 우리 모두를 다 구원할 위대한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15~16절)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제사장직이 아론의 계열의 제사장직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을 강조하기 위해
멜기세덱 계열의 제사장직을 승계하였다는 점을 계속 반복하며 강조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누구의 후손이라 자동적으로 된 제사장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친히 보여주신
영원한 생명의 제사장이시라는 것입니다.
2)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으니 오직 예수님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으니,
히브리서의 성도들이 늘 당면하고 있는 것과 같은 죽음의 위기를 만나게 되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 묵상 : 마지막 혼란의 때 정신을 차리고 믿음을 지키십시오.
히브리서의 성도들만큼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라도,
오늘 우리의 시대도 제정신을 차리고 살기 힘들 만큼 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정신을 차리고
오직 주님을 믿는 신앙 가운데 굳건히 서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5.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예수님(22절)
1) 구약의 제사장의 역할 : 속죄제를 집전함
구약의 제사장은 죄를 지은 자가 짐승을 가져오면
그 사람 대신 짐승이 죽게 하는 속죄제를 집전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제사장 앞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 죄를 용서함을 받은 후에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자가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속죄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속죄제로 용서받은 후에 주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속죄제로 용서받은 후에
주님을 사랑하며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2) 그러나 구약의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감사와 기쁨의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저 죄를 범하고 속죄제의 제사를 드리는 일을 반복할 뿐입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이마저도 형식적이 되어 흠 없는 짐승을 바치지 않고,
시장에 내다 팔 수 없는 병들고 못 쓸 것들을 바쳤습니다.
이런 점에서 구약의 율법과 구약의 제사장직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고 히브리서는 진단합니다.
3)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예수님(22절)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의 제사장들처럼 그렇게 나약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할 능력이 있음을 보이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반드시 인도하시리라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어떤 사람보다도 더 큰 은혜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부르며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십시오.
주께서 우리에게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어주셨으므로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언제든지 하나님을 찾고 부를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경배할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길을 열어주셨더라도
그 길을 따라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부르며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십시오.
* 기도제목
1.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그 권세와 영광을 깨닫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위대하신 주님을
우리의 삶의 가장 중심에 모시게 하옵소서.
3. 우리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주께서 더 좋은 길을 열어주셨으니
항상 주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