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 계약,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11~28)
* 본문요약
예수님은 이미 이루어진 (혹은 장차 올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이 땅에 속하지 않은 크고 완전한 장막에 들어가셨습니다.
또한 짐승의 피로 하지 않고 자신의 피로 단번에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짐승의 피도 부정한 자의 육체를 정결케 하였는데,
하물며 흠이 없으시고 거룩하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언약은 피 없이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첫 언약도 짐승의 피로 장막을 섬기는 자와 모든 그릇을 정결케 함으로 맺어졌습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의 용서도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인 지상에 있는 성전은 짐승의 피로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참 성전은 더 좋은 제물로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늘의 참 성소에 단번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세상에 처음 오셨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제물이 되신 예수님은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두 번째로 다시 오십니다.
찬 양 : 543장(새 491) 저 높은 곳을 향하여,
137장(새 251)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 본문해설
1. 우리의 죄를 영원히 속량하신 그리스도(11~14절)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올 좋은 일(혹은, 이미 이루어진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짓지 않은 것,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구원을) 이루사 단 한 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정결하게 되어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재물로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뇨?
- 장래 올 좋은 일의 대제사장(11절) :
예수님은 구약 입장에서는 장래 올 좋은 일의 대제사장이지만,
신약 백성인 우리에게는 이미 일어난 좋은 일의 대제사장이십니다.
2.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15~22절)
15) 그러므로 이를 인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니,
그는 첫 언약 아래에서 저지른 죄들을 속량하시려고(용서받게 하시려고) 죽으셔서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영원한 유산)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유언이 효력을 내려면 그 유언한 사람이 죽었다는 확인이 있어야만 하나니,
17) 유언은 유언한 사람이 죽어야 그 효력을 나타내는 것인즉,
유언한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유언은 아무 효력이 없느니라.
18) 그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워진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언약 책)와 모든 백성에게 뿌려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하고 말하였고
21) 또 같은 방식으로 장막과 섬기는 일(제사 의식)에 쓰이는 모든 그릇(기구)에도
피를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좇아(율법을 따라서) 거의 모든 것이 피로 정결하게 되나니,
그러므로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도 없느니라.
- 속량(15절) :
죄인을 풀어 자유인이 되게 하는 것이 속량입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을 바치는 속죄제를 통해 죄를 속량했고,
새 언약인 신약에서는 구약의 때보다 더 거룩한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속량됩니다.
- 유언(16~17절) : 디아데케
‘유언’에 해당하는 ‘디아데케’는
‘유언, 언약’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디아데케’가 신약성경에서 대부분 ‘언약’의 의미로 해석되었으나
여기에서는 ‘유언’의 의미로 해석되었습니다.
- 거의 모든 것이 피로 정결하게 되나니(22절) :
모든 죄가 짐승의 피로 정결하여지나, 매우 가난한 자의 경우에는
짐승의 제물 대신에 작은 새들과 곡물가루로 대신하였습니다(레 5:11~13).
또 사람의 죄를 전가 받은 염소가 광야 가운데로 나가 굶어 죽거나
짐승의 밥이 되는 염소를 ‘아사셀 염소’라고 부릅니다(레 16:26).
-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도 없다(22절) :
언약을 어겼을 때는 언약한 자가 죽어야만 그 죄롤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범했다는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다는 뜻이므로
언약을 어긴 자, 즉 죄를 범한 자가 죽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사람이 죽지 않고 죄를 용서받을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구약 때에는 죄를 범한 자 대신에 짐승이 죽었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속죄제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흠 없는 거룩한 피이므로
주께서 한 단 번 바치신 그 십자가의 피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속량(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3. 자신을 단번에 드리신 예수님(23~26절)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참된) 것들을 (모방한) 이 땅의 모형은
이런 의식(동물의 피를 통한 의식)으로 정결하게 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나은 희생 제물로 정결하게 돼야 할지니라.
24) 그리스께서 참된 성소의 그림자인(모형들인)
사람이 손으로 만든 지상의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참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자주(여러 번) 자신의 몸을 바치실 필요가 없으니
26) 만일 그래야 한다면(그리스도께서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셔야만 한다면)
세상이 창조된 이후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만 했을 것이로되,
이제 자신을 단 한 번 희생 제물로 드려서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 하늘에 있는 것들을 모방한 이 땅의 모형(23절) :
옛 언약의 성소인 구약의 성전은
하늘에 있는 참된 성전을 모방한 모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 세상 끝(26절) :
‘세상 끝’은 ‘모든 시대의 끝’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세상 끝을‘말세’라고 표현했습니다(고전 10:11).
세상 끝, 즉 말세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때를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때가 바로 신약시대의 시작점이며 종말의 때의 시작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때부터 종말의 때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 후로 언제든지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세상 만민을 심판하실 수 있으므로
종말의 때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언제든지 예수께서 오실 수 있는
매우 긴장된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의 모든 시간은
‘모든 시대의 끝’이요 ‘종말의 때’인 것입니다.
4. 다시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실 예수님(27~28절)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그리고 두 번째로 오실 때에는 죄와 상관없이(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기다리는(갈망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다시 오시리라).
-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28절) :
예수께서 전에 오셨을 때에는
죄 있는 자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오셨으나,
다시 오실 때에는 죄 있는 자를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갈망하며 기다리는 자들을 구원하여
함께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시려고 다시 오십니다.
* 묵상 point
1. 더 좋은 예배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신 예수님
1) 지금까지의 히브리서 : ~보다 더 뛰어나신 예수님
히브리서를 처음 읽은 첫 독자들은
로마의 네로 황제에 의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위기의 때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처절한 위기의 시간을 사는 자들에게
히브리서는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계속 말합니다.
처음에는 천사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을 말하더니
그다음에는 모세보다 뛰어나신 예수님,
그다음에는 여호수아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여
구약 시대의 그 어떤 사람보다 예수님이 더 뛰어나신 분임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아론의 계열에 속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보다
더 뛰어나신 분임을 증거하기 위해 예수님은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라 된 대제사장이라고 말했습니다.
2) 히브리서는 긴급한 위기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왜 이런 말을 이렇게도 길게 하는가?
그런데 히브리서를 처음 읽은 첫 독자들이
지금 매우 긴급한 위기의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히브리서가 이렇게 예수님이 누구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무려 8장에 걸쳐서 길게 언급하는 것이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오늘 본문인 9장 11절 이하에서 비로소 밝혀집니다.
11절 이하의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초대하신 예배에 대한 말씀입니다.
3) 구약의 때보다 더 좋은 예배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구약의 예배보다 더 뛰어난 예배를 만드시고
그 예배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새로 만드신 새로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하기 위해
무려 8장에 걸쳐서 길게 누구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이라고 열거했던 것입니다.
최근 우리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예배드리기 힘든 시간을 경험했습니다만,
히브리서는 이보다 더 힘든 때를 만난다고 할지라도
결단코 예수님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하며 강조합니다.
2.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15~22절)
1) 구약의 율법 ➠ 죄를 지은 자를 대신하여 짐승이 죽어 용서받게 하신 것(16~18절)
유대인들은 중요한 계약을 할 때 짐승을 쪼개어 그 사이로 지나갑니다.
그 약속을 어기면 어긴 자가 반이 쪼개져서 죽은 짐승처럼 죽게 된다는 것으로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의미를 담아 다소 끔찍한 방법으로 계약(약속)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하는 이 언약의 방법으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셔서
모세에게 소로 번제를 드리게 하고
그 피를 양푼에 담아 절반은 제단에 뿌리고
절반은 백성에게 뿌려 피의 언약식을 하셨습니다(출애굽기 24:3~8).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본문의 한글 성경에서 ‘언약’이라고 번역된 ‘디아데케’가
‘언약’과 ‘유언’의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이용하여
그들의 이런 약속의 습관을 따라서 ‘유언이 사람이 죽어야만 효력을 보게 되듯
하나님과 사람 간의 약속도 반드시 피가 있어야만 그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다’
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2) 첫 언약인 구약의 언약도 피로 세워진 것입니다(18절)
구약의 언약도 피로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더불어 계약을 맺으실 때
장막을 섬길 사람과 그 장막에 있는 모든 그릇에 짐승의 피를 뿌려
정결케 한 후에 하나님을 섬기게 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니 사람의 피가 흘려져야 했으나,
하나님께서 사람 대신 짐승의 피로 구원을 위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3) 그런데 주께서 피 흘리심으로 첫 언약보다 더 좋은 새 언약을 우리와 맺으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언약은 짐승의 피로 된 것이어서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주의 순결하고 거룩하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와 새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맺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첫 언약 아래에서 범한 죄를 용서하시려고 죽으셔서 피 흘리심으로
약속된 영원한 유업을 받게 하셨습니다.
➀ 모세로 인하여 이스라엘과 맺으신 새 계약(19~21절)
모세가 호렙산에서 40일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과 율법을 받고 있을 때
산 아래에서는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는 광란의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간곡한 기도로 이스라엘을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면서
다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내리셨습니다.
이때 맺어진 계약이 바로 ‘새 계약’입니다.
우상숭배로 멸망할 자들과 새로 맺은 계약이므로
그들 입장에서는 ‘새 계약’입니다.
➁ 예수님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과 맺으신 새 계약(15, 28절)
모세를 통해 주신 그 새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의 지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새 계약으로 주어진 율법을 그들이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모세를 통해 내리신 새 계약으로도 멸망하는 자들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오셔서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심으로
또다시 새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이번엔 이전의 계약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새 계약입니다.
➂ 새 계약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주께서 자신의 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새 계약이 맺어졌으므로
우리가 허물과 죄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그 죄를 모두 용서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일은 전적으로 주께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주께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3.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예수님(11~14절)
1) 짐승의 피로 드린 구약의 속죄제 : 죄를 지을 때마다 반복해야(25절)
옛 언약의 제사에서 흘려지는 짐승의 피를 통해서도 육체의 죄는 정결케 될 수 있었지만
짐승의 피는 그들의 마음까지 정결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일시적으로만 정결케 하였으므로
제사를 드릴 때마다 반복하여 짐승의 피가 흘려져야만 했습니다.
2) 단 한 번 피 흘리심으로 온 세상 사람을 정결케 하신 예수님(11, 25~26절)
그러나 거룩하시고 흠이 없으신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육체는 물론 우리의 혼과 영까지 온전하게 용서받고 깨끗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깨끗한 육신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피 흘리심으로 단번에 하늘에 있는 참 성소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의 죄가 영원히 용서함을 받는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단번에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인
그 영광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3) 예수님의 피의 효력은 영원합니다(11, 28절)
이미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장차 올 좋은 일이 우리 모두에게도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육신뿐 아니라 생각과 마음까지도 깨끗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효력은 영원합니다.
우리 세대뿐 아니라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효력이 있습니다.
4. 장래에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11절)
예수께서 이미 이루신 십자가의 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장래에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1절에 나오는 ‘장래 좋은 일’은 구약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으로,
구약의 예배보다 더 좋은 예배를 위하여 주께서 친히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1) 구약의 율법의 한계 : 구약의 율법으로는 용서받지 못할 죄도 있습니다.
구약의 짐승의 피도 사람의 죄를 용서하게 하는 힘이 있었으나
모든 죄를 다 사하지는 못합니다.
가령 우상숭배나 음행과 같은 죄는 짐승의 피로 사함 받지 못해
그 마을의 공동체가 돌로 쳐서 그를 죽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 자신의 피가 흘려져야 사함을 받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런 형벌이 끔찍하게 보이지만
그 사람의 영이라도 구원받게 하려면 그 자신이 피가 흘려져야만 했던 것입니다.
2)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가 모두 사라져
하나님 앞에서 처음부터 죄가 아예 하나도 없었던 사람으로 인정받아
거룩하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구약의 짐승의 피로 사함을 받지 못했던 죄를 지은 사람들까지
모두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3)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단번에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인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구약의 옛 언약처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짐승의 피를 흘릴 필요가 없습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위해 이미 흘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성소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제사장에게 기도를 부탁해야 했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기도합니다.
더 이상 사제나 그 누구를 통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 묵상 :
목사나 사제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돕는 자들이지,
이들이 성도들을 대신하여 기도하는 또 다른 중재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목사와 사제는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성도들과는 다른 하나님의 특별한 종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그저 성도들과 다른 은사를 가진 자에 불과합니다.
성도들도 목사와 사제에게 필요 이상으로 기대감을 갖거나 의지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기대감을 갖고 의지해야 할 이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저 예수님을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4)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자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예배드릴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전에는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었든지, 만져서는 안 될 것을 만졌을 경우나
병든 자와 같이 부정한 자들은 그 부정한 기간 동안에 예배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평생 단 한 번도 예배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먼저 지성소에 들어가시면서 성전의 휘장을 두 폭으로 찢으셨으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길이 모두에게 열렸습니다.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는 부정한 사람은 없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그 즉시 예배드릴 수 있는 자라 됩니다.
이방인인 우리도 예배드릴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 묵상 :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감사와 찬양과 경배와 예배가 얼마나 놀랍고 큰 은혜인지를 깨닫고
주께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5. 자신을 단번에 드리신 예수님(23~26절)
1) 하늘에 있는 장막을 위하여는 더 나은 희생 제물로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23절)
구약의 성소인 장막이나 제사장들은 모형일 뿐이고(23절)
실재는 하늘에 있습니다(24절, 히 8:5).
이 땅에 있는 장막이나 제사장들은 죄와 부정함에 오염되어 있으므로
피로 정결하게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 있는 참 성전은 이 땅에 있는 모형보다
더 좋은 제물이 드려져야 합니다.
이것은 하늘에 있는 참 성전이 죄가 있어서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더 좋은 하늘의 성전에 들어가기 위하여
지상의 모형물인 지상의 장막에 들어갈 때보다 더 좋은 제물이 드려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2) 예수께서 우리들이 땅의 장막보다 더 좋은 하늘의 성전에 들어가게 하려고
더 좋은 제물로 단번에 드려졌습니다(25~26절).
이 땅의 제사장들은 성전의 모형물에 들어가지만,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은 하늘의 참 성소에 이미 들어가 계십니다.
이 땅의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모형물인 하나님의 법궤 앞에 나아갈 뿐이지만,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은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주심으로 인하여
지금 예수님이 계신 곳, 하늘의 참 성소와 살아계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장차 우리도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께서
세상 끝에 이 세상에 오셔서 더 좋은 희생 제물이 되셔서 죽으셨습니다.
6.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예수님
1)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려고(28절)
새 언약의 특징은 무엇을 하는 자에게 구원의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참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구원의 상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사랑하는 자를 바라보며 사는 연인들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 간에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2)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주께서 다시 오십니다(28절)
전에 오셨을 때는 십자가로 구원의 길을 열기 위해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에는 주의 십자가의 복음을 붙잡은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십니다.
그때에는 복음을 붙잡은 자와 붙잡지 않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오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지 벌써 20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종말의 때의 긴장감이 많이 무뎌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매 순간 종말이 될 수 있는 매우 긴장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그리스도인의 생각 속에서 많이 흐려졌습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갑자기 임하게 될 것이므로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경고합니다(베드로후서 3:1~10).
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1) 사람이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27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이 땅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국에는 우리가 모두 다 겪게 될 일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행한 모든 말과 행동이 우리의 머릿속에 다 입력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잊어버리고 있을지라도 우리 안에 입력된 것은
지워지지 않고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가 우리가 죽어 심판을 받을 때
우리 입으로 스스로 자신이 행하였던 죄와 허물을 모두 낱낱이 말하게 될 것입니다.
2) 일단 그렇게 심판을 받은 이후에는 다시는 자신의 삶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일단 심판을 받은 후에는 신분의 상승을 위한 그 어떤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 순간의 결정이 영원토록 유지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크게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날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 묵상 : 그러나 우리가 땅의 시간 속에 있을 동안에는 아직은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심판 이후에는 영원히 변화될 가능성이 없지만
우리가 육신의 생명을 갖고 있는 이 땅에서는 기회가 있습니다.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할 수 있습니다.
지옥 백성에서 천국의 백성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믿으면 당신도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는 땅의 시간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 앞에 시간이 많이 있으려니 하며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결단하고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3)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영광의 나라에 가려면
먼저 주께서 세우신 그 거룩한 예배의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며 드리는 예배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사랑하며 드리는 예배
주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를
위기의 때를 사는 히브리서의 성도들에게
예수께서 세우신 예배의 자리를 지키라는 말을 이렇게도 길게 한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고
하나님께 직접 예배드리는 자가 되게 해 주신 주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2. 이 모든 일들이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되었음을 기억하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께 기도하여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3. 종말의 때를 항상 준비하고 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4. 항상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5. 중보기도 : 아직 주님을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을 믿게 되도록